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4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9)화(4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49)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유리안의 오러를 차단하고 수정을 쥐는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 건 유리안뿐만이 아니었다.
“수정을 쥐고… 승리 선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실패한 건가?”
“어? 그렇지만 결국 실험국장님을 비롯한 분들이 보고자 했던 건 신입생 대표 후보생들이 유리안의 오러를 차단할 수 있는지 여부였잖아. 어쨌거나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오러 차단을 해 냈으니 도전도 성공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규칙은 규칙인데… 더군다나 규율국장님께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못마땅하신 것 같은데 인정을 해 주시려고….”
갈리는 의견과 그 어느 쪽을 편들어 주기도 애매한 상황,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에서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애초에 불꽃을 당긴 장본이었다.
“실험국장님,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어디를 가기는? 내가 갈 데가 실험실밖에 더 있나?”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팩셰르 에우리디케.
행사를 담당하는 규율국 직원이 깜짝 놀라 붙잡으려 했지만 팩셰르는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행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그나마 볼만했던 일이 끝난 마당에 내가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맹금류를 닮은 회안(灰眼)을 번득이는 것으로 직원을 떨쳐 버린 팩셰르.
“페이건 클라디우스.”
“네. 국장님.”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다. 네놈이 발버둥을 치는 걸 보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더구나. 재롱치고는 볼만했어.”
실험국의 광인은 물러서는 와중에도 그 전신에 서린 독기를 흩뿌려 대는 걸 잊지 않았다.
“다음 주 중 실험실로 와서 13구역 유적과 지하 미궁의 출입증을 찾아가거라.”
“…국장님께 직접 수령을 하면 되는 겁니까?”
“뭐가 예쁘다고 내가 네놈의 얼굴을 또 본다는 말이냐? 적당한 곳에 맡겨 놓을 테니 알아서 찾아가도록.”
팩셰르의 목소리며 표정은 여전히 삭막했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잠깐만! 지금 실험국장님이 말씀하신 건 도전이 성공했을 시 지급 약속된 보상이잖아. 그럼 실험국장님께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성공을 한 걸로 간주하시는 건가?”
“그… 렇겠지. 성공이 아니라고 판단하셨다면 실험국장님께서 포상을 내어주실 리가 없으니까.”
내가 수정을 낚아챘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술렁거림이 관객석을 덮쳤다.
이제 막 입학식을 치르고 있는 내가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두 존재를 연이어 납득시켰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놀랍게 만든 것이다.
쾅.
실험실로 오라는 말을 끝으로, 알크페인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팩셰르는 대강당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당초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학년 대표 선발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
자신의 용건이 끝난 이상 그 일 따위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걸까?
“축하해 페이건 군. 실험국장님은 너의 성공을 인정하신 것 같아. 후우, 다행이다. 페이건 군이 이렇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줘 놓고도 아무런 보상을 못 받는다면 나 정말 속상했을 거야.”
“감사합니다. 의식을 주관하시는 규율국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만 말이죠.”
“엥, 실험국장님이 인정하셨는데 규율국장님께서도 다른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 거야. 종종 오해를 사고는 하지만 규율국장님 사실 되게 좋은 분이거든.”
“…사실 뭐 저로서는 어찌 되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저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실험국장님의 포상이니까요.”
아니면 알크페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의 표현인 걸까?
물론 유리안에게 말했던 것처럼 알크페인의 반응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도전한 건 출입 허가를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정리해. 15분 후에 중지되었던 입학식을 다시 개최한다.”
하지만 이대로 어영부영 상황을 종료시킬 생각은 없었는지, 알크페인은 어느새 그 차가운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한 채 결과를 선언했다.
“이번 입학식의 신입생 대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맡는다. 30분 주지, 그때까지 학년 대표로 나설 준비를 마치도록.”
“규율국장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 또한 도전에 성공하지는 못했기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단할 권한은 너에게 있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하지. 30분이야, 그 안에 준비를 마쳐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시간 내에 준비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크페인의 위엄이 손상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실험국의 노괴물에게 가벼운 농락을 당한 것 정도로 훼손되기에는 알크페인이 그간 쌓아온 위엄이 너무나도 굳건했던 것이다.
―그럼 페이건이 아까 그 단상 위에 올라 신입생 대표를 맡는 거니? 어마마! 감동적이야, 티베리와 멜리사가 이 광경을 봤어야 하는데 흑흑.
―근데 저 떽떽이는 갑자기 왜 저래? 쟤는 네가 대표 역할을 맡는 게 싫어서 아까부터 그렇게 인상 쓰고 있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 싫지, 그것도 엄청.’
―그럼 왜? 어… 음 그러니까 규칙대로만 따지면 페이건 너도 성공한 건 아니니까 전부 다 무효라고 우길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옹졸한 처사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 아무래도 알크페인 무라노어는 소문 그대로의 사람인 모양이야.’
―저 사람에 관한 소문이 어떤데?
‘깐깐한 데다 무척이나 교만하기까지 하지만 얄팍한 핑계로 스스로를 속이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한 탓에 졸렬한 짓은 차마 하지 못하는 천상 귀족.’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버린 알크페인.
그 모습을 시야에 새기며 준비된 자리로 이동하려 할 때 어깨를 두드리는 하얀 손이 보였다.
“축하해, 규율국장님까지 인정하셨으니 페이건 군의 성공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선배님. 물론 선배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애초에 성공하지도 못했을 일이지만 말입니다.”
“에이! 아니야, 전부 다 페이건 군이 잘해서 된 거지 꼴사납게 당한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리고 입학식 중간 정도에 내가 신입생 대표에게 리본을 달아 주는 차례도 있거든, 그러니까 조금 이따가 저기 위에서 보자.”
도자기 같이 새하얀 손을 들어 자꾸만 내 어깨를 두드리는 유리안.
그렇게 한참 동안 기쁨을 표시한 후에야 ‘아아! 그래도 모처럼 재미있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유리안은 멀어졌다.
“역시… 규율국장님께서도 인정하셨네. 하긴 결과가 저리도 명확하니 규율국장님 성품에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겠지.”
“그러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줬으나 어쨌거나 쓰러진 아스트라와 흉한 모습만을 보인 채 나가떨어져 버린 오벨리언 패거리.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말로 흐지부지하기에는 결과가 너무 명확해.”
“오벨리언 마르커스는 개망신을 당했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또다시 자신을 증명했어. 결국 오늘 일은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완승으로 끝났네.”
벗어 놓은 예복을 찾기 위해 자리로 돌아가는 중 오늘 사건에 대한 관객들의 품평이 들려왔지만 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그 목소리가 귀에 스며들어 오지 않았다.
‘생각해 둔 수가 먹혀 어찌저찌 성공은 했다만 유리안 과의 차이는 더없이 명확했어. 아르카나 드루이드의 힘을 제외한, 앙겔루스만을 사용했을 때 내 현 위치는 이 정도쯤이라는 건가.’
앙겔루스와 비검술의 조화가 유리안 정도의 강자에게도 먹힌다는 사실을 확인한 건 반가운 사실이었으나 모든 결과가 만족스럽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아르카와 드루이드의 힘을 당분간 숨겨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현재 내가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힘의 수준은 꼬맹이들 선에서나 탁월한 정도에 불과해. 진짜 강자들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라니… 결국은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 멀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인가?’
그렇게 숨겨둔 칼과, 드러낸 칼의 날카로움을 가늠하며 자리에 돌아가니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을 한 제라르가 나를 맞아 줬다.
“페이거어언! 진짜 멋있었어!”
“고마워, 응원해줘서. 그리고 그 눈물의 발버둥을 멋있게 봐줬다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아니야! 진짜 멋있었어! 그리고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페이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진짜 지인짜 멋있었어!”
제라르는 내 손을 움켜쥔 채 위아래로 흔들기 바빴는데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을 통해 녀석이 얼마나 진심으로 날 응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축하해.”
“아스트라?”
“그런 깜짝 놀랄 방법을 준비하고 그 와중에도 유리안 선배를 상대로 버텨 내다니, 내 완패야. 축하한다, 넌 오늘 이 자리에서 대표 역할을 자격이 있어.”
후방에서 들린 의외의 축하 인사.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인지 그 얼굴은 다소 창백했지만 축하 인사를 건네는 표정에서 미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이긴 적이 없고 너 또한 나에게 진 적이 없어. 그러니 완패라는 말은 말아 줘.”
“완패라는 말을 듣는 게 불편하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번에도 오늘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다를 거야. 나도 너에게 뒤쳐질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
“뭐, 너를 앞섰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일단 기대는 하고 있을게.”
“그래, 그럼 다시 한 번 축하하고 이만 가볼게. 가요 누나.”
“네, 도련님. 클라디우스 공자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얼굴을 가린 페르디난드의 하녀는 사용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품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인 후 아스트라의 뒤를 따랐다.
‘…누나? 명문가의 도련님께서 하녀에게 사용하기에 어울리는 호칭은 아닌데?’
예복을 어깨에 걸치자 조금 전 아스트라와 오벨리언을 단상으로 에스코트했던 진행 요원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클라디우스 공자님,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동을 한 후 준비를 도와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시지요.”
“알겠습니다. 제라르, 입학식 끝나고 다시 보자.”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단상으로 나아가던 중 유독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으득.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온 오벨리언이 이글이글한 눈동자를 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오늘의 승리가 나를 곧바로 학년 대표 자리에 인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 이 자리에서 신입생 대표로 서는 영광은 내가 누리게 되었고 그 사실이 저 허영심 넘치는 아가씨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다가온 것이다.
‘용서 못 해! 죽여 버릴 꺼야!’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오벨리언은 표정을 통해 확실한 의사를 전달했고.
‘그러든가 말든가.’
나 역시 선명한 비웃음으로 의사를 전달한 후, 마저 단상에 올랐다.
“일단 예복부터 갈아입으시지요. 그리고 행사 순서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갈하나 다소 수수한 외투를 벗고 폴리다고스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망토를 둘렀다.
안내해 주는 대로 의자에 앉았을 뿐인데 도합 일곱 명이나 되는 인원이 붙어 몸치장을 해 준 덕분에 제법 화려한 치장을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지 꾸며 놓으니까 태가 나기는 하네.”
“그러게, 밉상은 밉상인데 오늘은 어쩔 수 없지 뭐. 누가 봐도 멋있었던 것 사실이니까.”
단상 아래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감정이 섞인 목소리.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의외였다.
워낙 버거운 전생을 보낸 덕분에 이런 자리에 앉는 건 마냥 귀찮은 일이라 여겨 왔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는게.
‘이런 것도 한번은 괜찮을지도. 물론 두 번은 사양이지만.’
그렇게 나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어쩌기는? 아주 잘했지, 꺄하! 되게 멋졌어. 응응 내가 되게 잘생겼다고 말했나? 꽃돌이가 반짝반짝하게 꾸미고 단상 위에 올라가 선서를 하니까 그림은 아주 좋았지 뭐.”
그날 밤, 유리안은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워 키득거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음… 분위기는 뭐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는데 그래도 지들이 어쩌겠어? 워낙에 큰 차이를 보여 준 게 있으니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페이건 군이 대표로 나서는 걸 인정할 수밖에 흐흐.”
드러누운 유리안이 깔깔거릴 때마다 ‘폴리다고스의 왕자님’ 모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봉곳해진 흉부가 상승과 하강 운동을 반복했다.
“무엇보다 오벨리언 마르커스 그 앙큼한 것과 걔 뒤를 붕어 똥처럼 쫓아다니는 바보들이 꿀 먹은 벙어리 꼴이 된 게 히트였지. 아, 자기도 그걸 봤어야 하는데 키킥.”
바스락바스락.
가느다란 손가락의 인도를 받은 간식이 계속 입으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안의 허리는 일말의 융기도 찾아볼 수 없는 탄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데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복부가 왕자님의 그것이라기보다 공주님을 연상케 하는 수려한 곡선을 그리며 꿈틀거렸다.
“음… 그런데 말이야. 참 예의는 바른 친구 같은데 어째 통 웃지를 않더라. 자기도 알잖아, 내가 슬쩍 가기만 해도 대부분은 껌뻑 죽는 표정을 하며 실실거리는 거. 이건 도끼병 같은 게 아니라 수많은 사례 연구로 증명된 분명한 사실이거든.”
아삭아삭.
“그런데 통 웃지를 않더라고. 몰라, 자기 친구랑 있을 때는 간간이 킥킥거리는 것도 같던데 나한테는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구는지 모르겠어. 내가 혹시나 싶어서 어깨도 두드려 주고 그랬는데 미동도 안 하더라구. 음… 내 손길이 너무 약했나. 다음번에는 조금 더 은밀하게 두드려 볼까.”
―그러지 마.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계속 얘기해.
평소 같지 않은 반응이다 싶어 수정구를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수정구 너머의 자기는 팔짱을 낀 채 설명을 재촉할 뿐이었다.
“음… 자기의 명을 받고 오늘 하루 동안 페이건 군을 관찰한 결론은 일단 심지가 굳은 사람이랄까? 머리도 좋고, 그 나이를 생각하면 재능도 정말이지 탁월한 수준이라고 생각해. 전투 센스는 치료술사 전공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고 또….”
―또?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아이랄까.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평소에는 시큰둥하게 있다가 머리에 불이 들어오면 상상도 못 할 기세로 밀어붙이는 사람들. 그런 느낌이 있어.”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음… 실험국장이 처음 판을 벌릴 때까지만 해도 페이건 군의 표정은 여전히 시큰둥했거든. 그런데 보상에 대한 합의가 끝나자마자 눈빛이 달라지더라구.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날 몰아붙인 솜씨까지. 그 정도면 척하면 척이지.”
―그렇구나.
유리안이 재잘대고 자기가 경청하는 대화 구조에 갑작스러운 침묵이 찾아왔다.
반응을 멈춘 건 자기.
그런데 수정구 너머의 자기의 표정이며 행동을 본 유리안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이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태연한 척 연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아련하다 못해 애련해지기까지 한 눈동자.
그리고 ‘더 이상 흥미 없어.’라기 보다는 ‘그랬구나, 다행이야.’라는 의미가 깃든 침묵.
“뭐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유리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기, 페이건 클라디우스랑 무슨 사이야. 말해 봐, 혹시 두 사람 아는 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