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화(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
―뭐… 뭐? 시끄럽다고!
포옹 하는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른 불꽃은 페이건과 눈을 맞추며(불꽃에도 눈이 있다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내가 보이지도 않는 허깨비를 상대로 헛소리를 할까?”
―우, 우와… 진짜 보이나 봐.
하지만 불꽃의 기세는 페이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금세 한풀 꺾이고 말았다.
“네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는 일도 없이 한가한 것 같아서 웬만한 소음은 그냥 참아 주려 했어. 근데 뭐 그렇게 말이 많아? 나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영특하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중했던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퉁명스러운 말투.
가족이나 유모들을 상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으로 페이건은 재차 말했다.
“구경을 하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겠어.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니 최소한 방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마. 조용히 있을 자신이 없으면 저기 창문 밖으로 나가든가.”
―우와아… 아니 나는 그냥 네가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 조언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애초에 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들려. 아주 잘 들려.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
―으으….
“혹시 더 할 말 있어?”
페이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손수건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후 눈을 감았다.
―저… 저기 그런데 있잖아.
째릿.
하지만 페이건의 집중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이 분명히 인지되었음에도 소외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불꽃이 다시 입을 연 것이다.
―너, 내가 누군지 안 궁금해?
“네가 누군지 내가 꼭 알아야 돼?”
―그, 그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이래 봬도 그 꺽다리, 그러니까 너희들은 가문의 시조님이라고 부르는 그 녀석과도 긴밀한 사이였고 네 선조들 중에서도 간간이 나를 알게 된 녀석들이….
“됐어. 하나도 안 궁금해. 그러니까 조용히 해.”
―으으… 이게 아닌데. 궁금해해야 되는데. 다른 녀석들은 다 그랬는데….
불꽃은 산책을 조르는 강아지의 꼬리와도 같은 모습을 한 채 페이건의 머리를 맴돌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됐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정도로 친화력이 높은 녀석이라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앙겔루스 습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만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야! 너”
―…!
“너 조금 전에 그게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었지?”
불꽃이 수십 바퀴의 원형 비행을 마쳤을 무렵 페이건이 불쑥 입을 열었고, 불꽃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이래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어!
갑작스러운 감정의 동요를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꽃이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며 몸집을 부풀렸다.
―마나가… 앙겔루스의 흐름이… 안정적이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향을 잃은 채 역류하고만 있던 앙겔루스의 흐름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 수행의 기간이 워낙에 짧은 탓에 아직 뚜렷한 써클을 만들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앙겔루스의 인을 따라 마나가 흘러가야 할 통로가 미약하게나마 개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속을 알 수 없는 꼬마가, 오늘 처음으로 앙겔루스를 배운 것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아니, 아직 마나 회로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무작정 당겼다가는 통로가 개설되기는 커녕 상처를 입기 십상인데 이게 왜… 안정적이지?
만약 페이건이 마나를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쌩초보라면 불꽃의 염려는 타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꽃의 예상과는 달리 페이건은 이미 지난 1년간의 아르카 단련을 통해 마나를 다루는 일에 상당히 익숙해진 터.
막 자리를 잡은 앙겔루스의 거센 물결을 원하는 대로 인도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심장이 아닌, 페이건의 ‘피와 근육’에 스며든 아르카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불꽃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펄럭.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앞에 둔 불꽃이 깜짝 놀라 움찔거리고 있을 무렵. 형형색색의 자수로 수놓아진 비단 이불이 크게 뒤척였고, 아직은 아담하기만 한 페이건의 몸이 그 안으로 쏘옥 하니 들어가 버렸다.
―뭐야?
“뭐기는 뭐야? 잘 거야.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그러니까 너도 지금부터는 진짜로 조용히 해.”
―이대로 잔다고? 나랑 더 얘기를 안 하고? 진짜?
“당연히 진짜지. 내 방에 있는 것 가지고는 뭐라고 하지 않겠어. 하지만 아까처럼 쫑알거리기만 해 봐. 그때는 진짜로 창밖으로 던져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이 말을 끝으로 페이건은 폭신한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린 후 눈을 감아버렸다.
―….
새근새근.
시끄럽게 굴면 쫓아내 버리겠다는 엄포가 무서웠던 탓일까? 불꽃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페이건의 얼굴 위를 날아다닐 뿐이었다.
뭐지? 뭘까? 인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불꽃으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
온통 어지러운 일로 가득한 작금의 상황 앞에서 분명한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어느새 잠이 든 요 꼬마에게서 불꽃이 그동안 지켜봐 왔던 숱하게 많은 클라디우스와는 궤를 달리하는 ‘특별함’이 느껴진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 꼬마가 아침마다 하는 이상한 체조, 그 체조에서 특별함이 기인하기라도 하는 걸까?
불꽃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방에 머물며 페이건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뭐 이런 꼬맹이가 다 있지?
페이건의 가지런하기만 한 숨소리 위로 불꽃의 기가 찬 중얼거림이 덧씌워질 뿐이었다.
* * *
6년 후.
“으다다다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꿰뚫어 버릴 듯이 내리쳐 들어오던 햇살의 기세가 조금은 약해진 늦은 오후.
난 기지개를 한껏 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난 후 줄곧 의자에 앉아 의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어쩔 수 없는 뻐근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양어깨를 여러 번 돌려 준 후 서재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치료술, 그리고 사람의 신체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새삼스레 놀랄 일이 하나둘씩 생겨나고는 한다.
조금 전의 일만 해도 그렇다.
매일 아침마다 신체를 단련해 온 지 어느덧 7년.
사실 몇 시간, 아니 설령 하루를 꼬박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한들 상당히 단련된 내 육신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기능에 저하가 오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의 나는 무려 기합까지 토해 내며 ‘사실은 느껴질 리 없는’ 뻐근함을 호소 한 바 있다.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한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심리적인 부담이 나도 모르게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현혹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과정이 필요치 않다. 라는 문장의 증명인 셈인가?’
일주일 전, 의학서에서 읽은 한 문장을 떠올리며 나는 걸음을 옮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해야 할 공부는 많고, 읽어야 할 책은 아직도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잠시 멈춤이 필요한 타이밍.
책과 잉크 냄새로 가득한 서재를 잠시만이라도 벗어나 시원한 음료도 좀 마시고, 달콤한 주전부리라도 몇 개 입에 집어넣어 줘야만 이 찌뿌둥한 기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삐그덕.
그리고 오후 내내 닫혀있던 서재의 문이 열린 순간.
“오라버니!”
병아리의 삐약거림을 닮아있는, 앙증맞은 목소리가 허리 부근에서 들려왔다.
“라나야?”
“오라버니가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와아아! 오라버니!”
기쁨의 탄성을 저지르며 내 품에 안겨드는 이 귀염둥이의 이름은 ‘라나 클라디우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축복 속에 태어난 내 여동생이었다.
“유모,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네. 도련님. 아가씨께서 오늘 간식은 꼭 도련님과 같이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라나 뒤편에 자리를 잡은 채 우리를 바라보는 유모에게 질문을 던지니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한 시간이 조금 넘지 않을까 싶네요.”
“왔으면 바로 문을 두드리지 그랬어요? 그럼 내가 진즉에 나왔을 텐데.”
“아가씨께서 도련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랑 아가씨랑 손을 꼭 잡고 도련님이 휴식을 취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라나! 오라버니를 보채지 않고 여기서 착하게 기다렸어요! 헤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
그 깜찍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한 라나의 뺨을 매만질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오늘 아침 섬에 돌아온 마쉐르 할아버지가 에우토에서 파는 과자를 가져다주셨어요. 라나, 이거 오라버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요!”
만세 자세를 취한 채 좌우로 움직이는 라나의 고사리손 뒤로, 유모의 손에 들린 고급스러운 과자 상자가 보였다.
마쉐르는 물자 공급을 담당하는 가신이었고, 에우토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의 이름이었다.
보아하니 에스페타라 밖으로 출장을 다녀온 마쉐르 영감이 라나를 위한 특별 선물을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 귀여운 병아리께서는 그 과자를 맛보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오라버니와 같이 누리기 위해 내 개인 서재 문 앞에 오도카니 앉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 준 것이다.
“괜히 오빠 기다리거나 하지 말고 유모랑 둘이서 나눠 먹어도 되는데.”
“안 돼요! 오라버니랑 같이 먹을 거예요. 나랑 오라버니랑 유모랑. 이렇게 셋이.”
아직 어린 동생이 보여주는 사랑에 감격을 금치 못한 나는 라나를 덥석 안아 올렸고, 품에 안긴 라나는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다과회에 꼭 참석해야 하는 참석자 명단을 헤아렸다.
“도련님, 차를 준비하라 말해 놓았는데 정원으로 가시겠어요?”
“좋죠. 그러고 보니 한동안 정원에 가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꽃구경이나 갈까요?”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도련님은 학업에 열중하시느라 피곤하실 거예요. 제가 안아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싫어요! 난 오라버니랑 같이 갈래요.”
“유모, 괜찮아요. 라나는 내가 안고 갈 테니 앞장서요.”
“어휴, 아가씨도 정말. 도련님을 너무 좋아하신다니까.”
라나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유모는 고개를 내저은 후 정원을 향했고, 난 목덜미에 와닿는 라나의 부들부들한 뺨의 감촉을 느끼며 뒤를 따랐다.
“따따따♬ 오라버니랑 같이♪.”
복도와 계단을 따라 걷는 동안에도 라나의 콧노래는 연신 멈추지 않았다.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 보이는 얼굴.
아직은 어린 동생이 이토록 천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면 역시 오빠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 품에 안긴 채 이동할 것을 고집하는 모습만을 본다면 라나를 고집쟁이에 응석꾸러기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의 라나는 결코 어리광쟁이가 아니었다.
외려 라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젓하기 그지없는, 그 보드라운 뺨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보여 주는 요조숙녀였다.
가족과 가신, 사용인을 가리지 않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라나가 나이에 걸맞는 응석을 부리는 건 오직 내 앞에서뿐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했다.
‘라나, 너는 어쩜 그리 오빠를 좋아하니. 네가 아빠한테는 예의 바르게 굴면서 페이건한테만 그렇게 응석을 부리니까 아빠가 말씀은 안 하셔도 내심 서운해하시잖아.’
물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해도 라나의 태도가 바뀌는 일은 없었고, 자신의 품보다 내 품을 더 선호하는 라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는 쓸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하셨다.
“따따라따따♫.”
라나가 흥얼거리는 멜로디에 맞춰 콧노래를 따라 불러 주며 대형 창문 너머에 위치한 정원을 바라봤다.
딱히 조경(造景)에 능한 장인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스페타라의 모든 정원은 언제나 눈부셨다.
태양이 길러 내고 비옥한 땅이 빚어내며 해풍이 조각해 낸 꽃과 나무의 낙원.
언제나 푸르고 아름다운 그 정원을 시야에 담으며 난 지난 11년의 시간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아르카를 비롯한 암살류 체술을 수련한 지는 7년, 앙겔루스와 의료술을 익힌 지는 6년이 지났다.
나에 대한 가문 내의 평가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클라디우스 가문의 의료술을 익히는 속도며 완성도는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께서도 역대 가주의 평균치보다 더 습득 속도가 빠른 편이었는데 내가 배워 가는 속도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술보다도 더욱더 중요한 건 앙겔루스를 완성시켜 나가는 속도였다.
듣자 하니 내가 앙겔루스를 완성시켜 나가는 그 속도가 클라디우스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역대 가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나?
‘…뭐 따지고 보면 이토록 진척이 빠를 수 있었던 이유의 절반 정도는 ‘그 녀석’ 덕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