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0)화(5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0)
―뭐?
“페이건 클라디우스랑 무슨 사이냐구.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뭐 어때서….
“어떻기는 몰라서 물어. 자기 내 말 잘 들어. 나도 페이건 군은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더 많이 친해질 생각이야. 하지만 제아무리 귀여운 후배라 해도 자기는 절대 양보 못 해.”
예상 못 한 유리안의 말에 줄곧 아련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던 자기의 표정이 변했다.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뭐 잘못 먹었어?
“쓸데없는 소리가 아닌걸. 우리가 만난 이래로 자기가 외간 남자한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나랑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놈팽이 얘기를 자꾸 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잖아.”
―어휴….
“페이건 군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한눈파는 건 용납 못 해. 이건 자기의 약혼자로서 정당한 권리란 말이야.”
농담과 진담이 섞인 투정.
페이건에 대한 질투는 과장이었지만 뭔가 있는 게 분명한 자기와 페이건의 과거사에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매사에 냉정한 데다 특히 남자에 관해서라면 얼음장 같은 태도를 보이는 자기가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이다니.
유리안으로서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이는 무슨, 그저 클라디우스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있을 뿐이야. 쓸데없는 생각할 정신 있으면 변장에나 신경 써.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응.
“진짜?”
―너 자꾸 그러면 나 진짜 화낼 거야.
몇 번이나 추궁을 했음에도 자기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그제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디우스 가문에 오래전 신세를 진 일이 있을 뿐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러니 너도 마음 푹 놓고 내가 말한 일에나 조금 더 신경 써 줘.
“알았어, 그러니까 페이건 군이 폴리다고스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거지? 나도 페이건 군은 마음에 드니까 최선을 다해 볼게.”
―정말?
“응,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은혜를 입은 가문의 일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지. 대신 자기는 딱 하나만 기억하면 돼.”
유리안은 자기의 얼굴이 선명하게 맺혀 있는 수정구를 집어 든 후, 얼굴을 최대한 가까이 댔다.
그리고 초승달을 닮은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명심해. 나는 자기밖에 없고 자기는 앞으로도 쭉 내 거라는 거.”
* * *
딩동댕동.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부터 까다로운 내용이 나오기 시작할 테니 혹시 진도를 따라가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미리 읽어오는 게 좋을 거야.”
수업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자 열띤 강의를 하던 교수가 책을 덮었다.
“으에에… 오늘보다 더 까다롭다고? 난 죽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격투가 지망인 내가 정령의 생태와 마나 흐름의 상관 관계를 왜 배워야 하는 거야? 이런 건 정령사 지망생 비실이들이나 배우면 되는 거잖아?”
수업이 시작된 지 나흘.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각자의 가문에서 입까지 떠먹여 주는 맞춤식 교육만을 받아온 터라 새로운 교육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 그리고.
“재미없어.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 건데?”
“마찬가지야. 한참 전에 이해가 끝난 걸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교수님들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넘치는 재능과 한참 전부터 이루어진 선행 학습 덕분에 너무 평이해진 수업에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
사각사각.
그런 의미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제라르는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별종이라 할 수 있었다.
“헤에… 타푼 교관님은 이 이론을 이렇게 설명해 주시는구나. 정통 해석법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참신한 발상이야.”
수업의 내용 정도는 이미 줄줄 꿰고 있음에도, 제라르는 항상 반짝이는 눈을 한 채 수업에 임했고 교관의 말 한마디, 칠판의 글자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필기를 했다.
“…야, 그렇게 재미있냐?”
“응! 어, 혹시 페이건은 수업이 재미없어?”
“아니, 나도 나쁘거나 지루한 수업은 아니라고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너처럼 재미있지는 않지.”
“아, 그건 페이건 군이 너무 뛰어난….”
“거기까지.”
여기서 틀어막지 않았다가는 또다시 나의 재능에 관한 찬사가 터져 나올 것 같아 난 서둘러 제라르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후 말했다.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 * *
짤그랑.
폴리다고스 내에서만 통용되는 특별 주화 ‘폴리넨’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투입구 안으로 사라졌다.
―맛. 있. 게. 드. 십. 시. 오.
대금이 지불된 걸 확인한 조리용 골렘이 여덟 개에 달하는 팔을 내밀었고 곧 식판은 가지각색의 요리로 가득 찼다.
오늘 내가 선택한 메뉴는 특제 고기 파티 특대.
맵고 짜고 달고 감칠맛 나는 각각의 고기 요리가 담긴 식판을 들고 제라르가 기다리는 자리로 향하고 있자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신입생 한 쌍이 보였다.
“정말 폴리다고스는 다 좋은데 이놈의 식당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사용인 동반 금지라니. 우리가 무슨 평민들도 아닌데 직접 배식을 받아야 한다고? 이거 모양이 빠져서….”
“참아. 선배님들은 물론 우리보다 훨씬 더 지체 높은 평교수님들도 식당에서는 직접 배식을 받는다잖아. 어쩔 수 없지 뭐.”
자신의 손으로 뭣도 이뤄 낸 바 없는 피라미들이 토해 내는 투정.
붐빌 시간을 피해 온 터라 식당은 제법 한산했음에도 위의 것과 비슷한 투정을 부리는 놈들은 꽤나 많이 보였다.
―건방진 놈들! 지들 입으로 쑤셔 넣을 걸 가지러 가면서 뭐 저렇게 불만이 많아? 그게 싫으면 처먹지를 말든가!
‘맞는 말이기는 한데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
―저놈들이 꼴사나우니까 그렇지. 어쩌다 운이 좋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게 전부인 놈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잘난 척하기는… 음, 그에 비해 우리 페이건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잘만 다니고, 참 잘했어요 앙!
‘잘했다면서 왜 정수리에 이빨을 들이대?’
―히히, 이건 칭찬하는 의미의 앙.
북슬이와 만담을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제라르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 구석 자리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배식을 받아 온 나와 달리 제라르의 앞에는 정갈하게 준비된 2층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내 식판을 메우고 있는 요리 만큼의 화려함은 없지만 소박하고 깔끔하게 준비된 식단.
“이걸 주고….”
내 식판 위에 있던 양고기 소테와 훈제 연어 절반, 칠면조 스테이크 한 덩이, 바질 소시지 두 조각이 제라르의 도시락 통으로 가고.
“이걸 이만큼 받아오면.”
도시락 통에 있던 각종 샐러드와 계란 부침이 내 식판으로 왔다.
“이러면 오늘도 조화로운 한 끼 식사의 완성, 먹자.”
제라르 특제 레몬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 맛을 본 후 소시지를 잘라 입에 넣었다.
이런 식의 반찬 교환을 한 게 이걸로 나흘째.
풍미는 좋지만 다소 맛이 강한 식당의 음식과 정갈하고 삼삼한 제라르의 도시락은 제법 잘 어울렸다.
“저기… 고마워.”
“얘가 또 이러네, 애초에 교환인데 고마울 게 뭐가 있어?”
“그래도 내가 도시락을 싸는데 드는 식비에 비해 이곳 음식은 훨씬 비싸잖아. 그런데 매번….”
멋쩍은 표정을 짓는 제라르.
오해가 있을까 말하자면 제라르의 부모님은 착실하게 생활비를 송금해 주고 계신 데다 그 금액은 학생 식당 이용이 어려울 정도로 약소하지 않았다.
비록 동부 연금술 연합회가 다소 영세한 단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제라르의 아버님은 연합회의 의장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연금술사였으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소화가 안 될 것 같으니 그런 말은 제발 좀 삼가 줘.”
“그치만… 그래도 매번 미안하….”
“것보다 연구 재료는 어때? 어제 저녁에 보러 갈 예정이라며? 재미있는 건 좀 발견했어?”
하지만 제라르는 집에서 보내 주는 생활비 대부분을 연구 재료(학교에서 연구하는 수업용 교재가 아닌 개인 연구에 사용할 재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식당을 이용하기에는 부족할 게 없지만 식비와 연구비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금액. 이 딜레마 앞에서 제라르는 식비를 과감히 포기해 버렸고, 그 결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와 제라르 사이에 형성된 교환 공정을 통해, 정성이 가득 담긴 마페이언표 건강 식단의 절반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는 구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응, 확실히 폴리다고스는 대단해. 내가 있던 곳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들었던 재료들이 도구점에 널려 있더라구. 가격도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 헤헤 사실은 어제저녁 먹고 바로 도구점에 갔는데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폐점 시간까지 있었지 뭐야.”
도구점에 다녀온 후기를 들려 주는 제라르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매일같이 이렇게 1.5인분씩 사 오면 식비도 만만찮게 나올 텐데… 정말 괜찮아? 물론 클라디우스는 이름 높은 명가니까 우리 집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재정 능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혹시라도 나 때문에 페이건에게 무리가 간다면….”
“괜찮아, 여기 오기 전에 많이 벌어둔 게 있으니까 문제없어.”
“벌었다니?”
“에스파타라에 있을 때 약재를 제조하거나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용돈으로 주셨거든, 그걸 모았지. 차곡차곡 부지런을 떨었더니 그 금액이 꽤 되더라고.”
“그럼 따로 용돈을 부쳐 주거나 하지는 않는 거야?”
“응, 뭐 수업료는 내주시지만 여기서 쓰는 내 용돈은 기본적으로 내가 충당하고 있어.”
“우와….”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에게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사회의 풍토.
일찍 자립을 시도한 내가 대단하게 보였는지 제라르는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페이건은 진짜 대단하구나. 그에 비해 나는….”
“얘가 또 시작이네. 야! 거기까지.”
“페이건 어제랑 그제 동부 국가 소속 대귀족들로 구성된 오찬회에 초대받았다며? 그런데 혹시 나 때문에 안 가고 있는 거라면 내가 너무 미안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안 가겠다고 한 건 그 자식들이 나를 부르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지 너 때문이 아니거든. 너 자꾸 그러면 그거 자의식 과잉이다. 어떻게 내가 상담 좀 해줄까?”
“꼭 동부 국가 연합이 아니더라도 페이건은 대단한 선배님들한테 관심을 많이 받고 있잖아. 그런데 내가 외톨이가 될까 봐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돼. 페이건은 나보다는 더 훌륭한 동기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편이 좋을 거야.”
“이 자식 이거 증상이 중증이네. 농담으로 넘길 일이 아닌걸.”
“으으… 미안, 그치만 역시 난 마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열등생이니까….”
착하고 배려심도 넘치며 학업에 열정적이기까지 한 데다 의외의 강단도 있는 제라르.
폴리다고스에 와서 처음으로 사귀게 된 이 친구의 거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딱 하나 마뜩잖은 점이 있다면 이렇게 가끔씩 자기 비하에 빠진다는 점이었다.
―이 꼬마는 왜 이러는 거야? 이곳에 있는 수많은 얼간이 천치들은 고개 빳빳하게 들고 제 잘난 맛에 사는데 제일 열심히 사는 주제에 왜 이렇게 자신감이 부족한 거지. 어휴, 답답해.
―어쩔 수 없어, 벨제키엘. 착하고 섬세한 사람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기 비하거든. 이 아이는 자기가 주위 사람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애초에 악독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해.
짧은 앞발을 뻗어 가슴을 통통 두드리는 북슬이와 안쓰러운 표정으로 제라르를 내려다보는 라무테 님.
제라르가 가진 탁월한 학술적 능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자신감.
‘마나 감응 능력이겠지. 완전히 엉켜 버린 마나 회로에서 기인하는 부족한 마나 감응 능력이 이 녀석의 자존감을 좀먹고 있는 거야.’
으적.
결대로 잘린 칠면조 가슴살 스테이크를 소스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레이비 소스의 묵직한 향이 옅어져 가기를 기다리며 요 며칠간 줄곧 생각하고 있던 고민을 한 번 더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지막 검토 끝에 도출된 결론을 꺼내 들었다.
“야, 제라르.”
“응?”
“너, 나 얼마나 믿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