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2)화(5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2)
“…그렇게 하시죠.”
“고마워.”
내가 자리를 청하는 아일리 바스티아의 제안에 응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
안 그래도 이쪽을 향해 쏠리고 있던 시선의 흐름이 한층 더 거세졌다.
‘이봐요 아저씨들, 물론 당신들의 합석 제안을 거절한 여왕벌이 굳이 나한테 와서 자리를 청했다는 사실이 속상할 수 있지. 그런데 그게, 더군다나 상급생씩이나 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눈을 부라릴 일이야?’
4층에 착석한 학생들은 대부분이 5학년 이상의 고학생들이었고, 상급생으로서 티를 내기 위함인지 신입생들과는 달리 이들은 나에 대한 적개심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최소한의 어른스러움을 아일리 바스티아라는 여왕벌은 날갯짓 한 번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이런 꼴이 벌어질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굳이 이런 광경을 연출하며 접근을 해 왔다라… 목적이 뭘까?’
아일리 바스티아는 백옥같이 하얀 손을 들어 마법사의 의복치고는 과감하게 노출된 흉부를 슬쩍 가린 후 자리에 앉았다.
“어후, 여기 오는 길이 오르막길이잖아. 그런데 4층 계단까지 올라오려니 조금 숨차네. 페이건 군과는 이게 첫 만남인데 밉보이면 어쩌지?”
무심한 듯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동작과 송골거리는 땀에 젖어 귓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차라리 본인의 육성으로 ‘난 너를 만나기 위해 꽤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으니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피차 덜 민망할 텐데.
“다만 제가 약속이 있는지라 곧 일어날 예정이라서요. 그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응 괜찮아, 오히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내 표정이며 목소리에서 차마 완전히 지우지 못한 민망함이 조금은 묻어나왔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일리 바스티아는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커피 차가운 걸로 주세요. 흠흠, 그러니까 내가 페이건 군을 찾은 건 다름이 아니라 제안을 하고 싶어서야. 페이건 군, 혹시 가입 예정인 학회가 있을까?”
“아니요, 아직 생각하고 있는 건 없습니다.”
“그래? 잘됐네!”
호들갑스럽다면 호들갑스럽고 귀엽다면 귀엽다고도 할 수 있는 동작으로 박수를 쳐 보인 후 아일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종이 다발을 내밀었다.
“아직 마음에 둔 학회가 없다면 우리 ‘푸른 달’에 가입하는 건 어떨까? 페이건 군은 치료술사잖아?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우리 학회는 마나 운용에 관한 연구에서 뛰어난 연구 실적을 남긴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거든. 푸른 달에 가입한다면 페이건 군에게도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선후배 간의 끈끈한 관계는 덤으로 따라올 거구.”
“글쎄요, 선배님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일인 터라 조금 당황스럽네요.”
“응응,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래서 이 안내 책자를 준비한 거니까 꼭 한번 읽어 줬으면 해.”
푸른색 바탕으로 제작된 안내 책자.
아일리가 내민 종이 다발 안에는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수려한 글씨로 쓰인 연구 성과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폴리다고스가 다른 아카데미와 차별화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다방면에 걸쳐 만들어진 학회였다.
학회란 일종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결성, 유지해 나가는 학술단체로 ‘폴리다고스에 와서 학회 활동을 하지 않는 건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생들의 교내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답을 줄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단순 견학도 환영이니까 언제라도 찾아와 줘. 혼자 오기가 좀 쑥스러우면 친구랑 같이 오는 것도 얼마든지 괜찮아. 페이건 군이 학회실에 와 주기만 한다면 내가 좋은 차도 끊여 주고 맛있는 밥도 사줄게.”
양손을 턱에 받친 아일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입에 문 빨대에 공기를 불어넣자 커피 표면에서 몽글몽글 거품이 솟아올랐다.
“한 가지만 물어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주신 책자를 읽어 보니 푸른 달이 정말로 훌륭한 학회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 훌륭한 학회라면 가입하고자 하는 지원자도 차고 넘칠 거라 생각합니다.”
“응, 사실은 그래. 내 자랑 같지만 매해 신입생들의 입회 희망 신청서로 서랍장이 가득 차 버리는 게 우리 푸른 달의 연례행사거든. 물론 그건 올해도 마찬가지구.”
“그렇다면 굳이 저 같은 사람한테까지 오셔서 입회 희망 의사를 타진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니야! 그럴 필요가 없다니! 페이건 군이 얼마나 소중한 인재인데 왜 그런 말을 해? 가슴 아프게.”
그녀가 짐짓 울상을 보이며 토라진 표정을 짓자 유독 도톰한 분홍빛 입술이 쭉 내밀어졌다.
제아무리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남자라도 살살 녹여버릴 수 있을 듯한 귀여운 표정과 자세였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페이건 군이 입학식 날 보여 준 그 놀라운 모습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 나 유리안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지 잘 알거든. 그런데 그런 유리안을 몰아붙이다니, 페이건 군 자신의 가치를 폄훼하는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웅? 뭘 알아?”
“교내 분위기상 저를 받아들이는 게 푸른 달에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닐 거라는 거.”
“아, 난 또 무슨 소리를 한다고.”
아일리가 목소리를 높여 깔깔대자 드러내 놓고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매혹적인 그녀의 쇄골이 관능적인 곡선을 그리며 꿈틀거렸다.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이런 식의 ‘연출’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듭하면 이런 식의 ‘연기’가 가능한 걸까?
“괜찮아, 이 불초 아일리 바스티아 이래 봬도 사람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 그런 내 눈이 말하고 있어, 그런 뜬소문에 귀 기울이다 놓치기에는 페이건 군이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라고.”
“…감사합니다. 한데 말씀드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일어나 봐야 할 것 같군요.”
“아! 그럴래? 그래 그럼 페이건 군, 바쁠 텐데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다음에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게, 알고 있지? 언제라도 찾아와도 돼!”
다소 무례하게 여겨질 수 있는 헤어짐의 통보였음에도 아일리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선 내가 막 그녀의 옆을 지나 나가려는 순간.
“페이건 군, 나 하나만 더.”
그 찰나의 순간에 아일리는 내 팔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고 자연스레 그녀와 나의 몸은 부자연스러울 만큼 밀착하게 되었다.
“…!”
폭발적으로 증가해 버린 남자들의 시선.
“혹시나 해서 말해 주는 건데… 우리 푸른 달에는 거의 다 여자 회원밖에 없다? 그리고 전부 다 나처럼 예에뻐.”
자칫하다가는 귓불이 닿을 법한 거리까지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댄 채 시작된 속삭임.
“우리들이 페이건 군처럼 귀엽고 멋진 후배를 예뻐할 준비가 끝났다는 걸 부디 알아줬으면 해.”
조금 전에 먹은 다크 초코 케이크보다 훨씬 더 달큼한 목소리.
“그럼 잘가아.”
아일리는 내 상박을 살짝 터치하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고했고, 나는 곧바로 바람의 숨결을 빠져나왔다.
또각또각.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상업지구를 걸은 지 십 여분. 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결국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라무테 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페이건 조금 전에 만난 그 아이, 아니 아가씨 어떻게 생각해?
‘라무테 님 생각은 어떠세요?’
―음… 참 예쁜 아가씨였다고 생각해. 아마 내가 여기 와서 본 사람들 중 가장 예쁜 사람이 아니었을까? 말하는 것도 싹싹하고 배려심도 있고 애교도 철철 넘치고. 물론 옷차림이 좀 많이 남사스럽기는 했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멋진 아가씨가 아닐까?
‘북슬이, 넌?’
―예뻐, 그것도 겁나 예뻐. 그리고 의상도 참 뭐랄까… 그 청순하고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도발적인 면모가 흐흐.
‘변태 롤빵이네. 이런 호색한 털 뭉치 같으니라고.’
―야! 어뜨게 새각하냐고 네가 먼저 무러봤자나.
―그래서 페이건, 네 생각은 뭔데?
발칙한 소리를 하는 북슬이의 뺨따귀를 한차례 당겨준 후 조금 전의 대화를 다시금 되새겼다.
강렬했던 등장부터 매혹적인 향기로 남은 마지막까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으신다면 가급적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대답하겠습니다.’
―어머! 왜? 내가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았는데?
―맞아, 야! 6학년이면 성인이잖아. 다 큰 아가씨가 옷 좀 마음대로 입을 수도 있지. 그거 그아지고 사라믈 시러하고 그러므은 안돼애.
‘누가 옷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털 뭉치의 뺨을 조금 더 세게 잡아당겨 줬다.
‘그 아일리 바스티아라는 여자, 아닌 척 모르는 척 연기를 했지만 본인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이 그 매력적인 얼굴과 몸을 어떻게 이용하면 남자를 동요시킬 수 있는 지 또한 굉장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 법이지요.’
아일리 바스티아와 대화를 나눌 당시, 난 그녀의 입술을 주의해서 살폈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유용한 기술이 하나 있다면 입술을 이용해서 사람의 진심을 읽어 내는 것이었으니까.
대화를 나누는 내내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며 현혹의 페로몬을 사방으로 흩뿌리던, 하지만 진심은 담겨 있지 않은 그 입술.
‘제 생각이 맞다면 저 여자는 단 한 번도 저에게 진심을 털어놓은 적이 없어요.’
―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좀 의심스러워지네. 페이건 넌 워낙 의심이 많은 쫌생이라서 이런 눈썰미는 되게 좋은 편이잖아.
‘원래 쫌생이 눈에는 쫌생이만 보이는 법이야. 그리고 아일리 바스티아가 뭘 바라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지.’
기분 탓일까? 아일리가 준 안내 책자에서도 찐득한 유혹의 기운이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 그 푸른 달이라는 학회에 견학도 안 갈 거야?
‘응, 안 그래도 이제부터 바빠질 텐데 이런 쓸데없는 곳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
북슬이 몫으로 포장해 온 케이크를 반대편 손으로 옮겨 잡은 뒤 오른손을 목으로 가져가 빈틈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즈다를 잡았다.
‘내일 아침, 팩셰르 교수의 연구실로 가 출입증을 받아 올 거야. 슬슬 선조께서 남기신 다음 과제를 수행해야지.’
* * *
“흐흥흥♬.”
어둠이 내려앉은 고학년 전용 기숙사.
유달리 화사한 풍경을 한 복도 끄트머리 방에서 감미로운 콧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귀여운 멍멍씨는♪ 언제쯔음 오려나?”
허밍의 높낮이가 달라질 때마다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뽀얀 목덜미 또한 연신 흐느적거렸다.
촉촉한 피부를 가리고 있는 거라고는 헐렁한 셔츠 한 장이 전부.
셔츠 아래로 뻗은 눈부신 허벅지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일리는 콧노래를 부르기 바빴다.
똑똑.
“나야.”
“응, 열렸으니까 들어와.”
잠시 후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고 아일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했다.
자정을 약간 넘긴 시간.
규칙대로라면 학생들이 서로의 숙소를 오가는 게 허락되지 않은 일.
하지만 6학년쯤 되면 사실상 성인 대접을 받았고 학사 당국 또한, 이 정도의 규율 위반은 묵인해 주고 있었기에 이런 식의 야심한 방문이 가능했던 것이다.
달칵.
“….”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껑충한 키와 다부진 체구가 인상적인 청발의 청년이었다.
직각으로 벌어진 어깨와 쭉쭉 뻗은 팔다리.
그리고 강인해 보이는 턱선과 용맹한 기운으로 가득 찬 눈빛까지.
온몸으로 용맹을 뿜어내는 청년은 아일리의 방에 들어선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주위를 살필 뿐이었다.
“위스키랑 와인 중에 뭘로 할래?”
묘한 기대감을 품게 하는 운율이 담긴 아일리의 목소리.
한데 박자를 맞춰 요동을 치는 건 그녀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찬장에 기대 몸을 숙인 그녀가 허리를 이용해 리듬을 타고 있던 탓에 탄력 넘치는 종아리 또한 교대로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멎을 듯한 아찔한 뒤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광경을 연출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아일리의 행동.
“이런 저급한 장난은 집어치우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이 아찔한 풍경을 앞에 둔 청발 남자가 보인 최초의 반응은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어머 미안, 최근에 기운이 영 없는 것 같아서 불끈불끈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 건데. 좀 지나쳤나?”
위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세로 율동을 반복하는 종아리.
청발 남자는 아일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열정’이 서린 눈동자로 질문을 던졌고.
“대답해,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어떤 놈이었지?”
질문을 마친 남자의 입 안쪽에서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늑대’의 그것을 닮은 송곳니가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