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4)화(5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4)
―원주민?
―어마나, 이곳에는 학생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편의시설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어? 여기에 그 사람들 말고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고?
‘네 있습니다, 그것도 제법 많이. 그리고 원주민은 13구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폴리다고스는 일개 아카데미의 부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광활하고 그렇다 보니 곳곳에 이런저런 생명체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한 번도 못 봤을까? 숨어 있기라도 하나?
‘정답,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워낙에 쑥스러움이 많아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 이번처럼 실험국의 특별 출입 허가를 받거나 한 게 아닌 이상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과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돼.’
최강의 무력을 보유한 요아힘과 고귀한 혈통의 소유자 알크페인.
괴팍하고 변덕스럽기만 한 팩셰르가 이 두 사람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교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이들 원주민에게 있었다.
폴리다고스의 원주민들은 하나같이 그 존재 자체가 희귀했고 개중에는 성품이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난 종(種)들 또한 여럿 있었다.
이런 원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해박한 지식이 필요했는데 천재들로 넘쳐나는 폴리다고스 교직원들 중에서도 그 정도로 탁월한 성취를 이룬 마법학자는 팩셰르가 유일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 관리 업무 대부분은 실험국에서 전담하고 있었고 원주민들 관리, 소통 측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팩셰르의 교내 영향력은 자연스레 지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나게 될 13구역의 원주민은 기대해도 좋아. 괴짜들로 넘쳐나는 원주민들 중에서 특히 유명하신 분들이거든.’
―뭘로 유명한데?
‘강한 걸로.’
―강해? 얼만큼? 나만큼?
콧김을 씩씩 뿜으며 솜방망이를 닮은 앞발을 휘두르는 털 뭉치. 저 짤막하고 통통한 앞발이 아주 조금만 더 길었어도 지금처럼 앙증맞기만 한 광경으로 보이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빨라.’
―힝! 그래도 설마 나만큼이나 빠르려고! 흐읍!
한껏 숨을 들이마셔 몸을 부풀린 북슬이.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몸통이 워낙 둥글둥글한 탓에 효모균을 잔뜩 때려 박은 롤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과정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그래, 그러니까 어디 너보다 빠른지 느린지는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밀가루 반죽 같은 뺨을 조물조물하자 녀석의 뺨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기가 푸슈슈 하는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고, 난 반대쪽 손을 뻗어 망토를 들며 말했다.
“가자, 일단 팩셰르의 연구실로 가서 출입증을 받아든 후 곧바로 13구역으로 갈 거야.”
* * *
“출입 허가 절차에 필요한 도구입니다.”
팩셰르는 그 드높은 위상에 걸맞게끔 여러 개의 연구실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번에 내가 방문한 곳은 일전의 그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한 연구실이었다.
“혹시 하기 까다롭다면 내가 해 줄까요? 페이건 학생이 말만 하면 내가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데, 후훗.”
“아니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죠.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어머나! 아쉬워라. 이번 기회를 이용해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든 유명인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볼까 했더니.”
생글거리는 미소의 조교수가 내민 꾸러미 안에는 옥색 보석이 박힌 팔찌 하나와 순은으로 만들어진 소형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서걱.
무척이나 예리하게 갈린 나이프를 손가락 끝에 찌르자 곧바로 피가 새어 나왔고, 난 상처 부위를 보석에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진동음을 내며 청색으로 색상을 바꾼 보석.
“이걸로 출입 허가 절차는 끝! 상처에 바를 약 줄까요?”
“아니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아! 나도 참 멍청한 소리를 했네. 평범한 마법사도 아닌 치료술사에게 약이라니… 이게 무슨 웃기는 배려람. 호호!”
내 피를 팔찌에 각인시키고 그 피가 묻은 순은 나이프를 보안 시스템에 등록하는 것으로 출입 허가 절차는 모두 끝이 났다.
“최초 등록의 유효 기간은 3개월이니까 그 후에도 해당 지역을 출입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와서 허가를 갱신해야 해요. 그리고 갱신 때는 이렇게 피를 보지 않아도 괜찮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해당 지역에 갔는데 출입증의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실험국의 수장인 팩셰르가 나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준 덕일까?
짧게 자른 단발머리와 은테 안경이 인상적인 조교수는 출입증 사용 방법 과 주의 사항을 무척이나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나저나 흥미롭네요. 페이건 학생이 가고자 하는 장소가 13구역과 북극단 미궁이라니… 뭐 아주 가성비가 나쁜 지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문이 자자한 슈퍼 루키가 가기에는 조금 많이 험한 곳인데….”
“뭐 운이 좋아 약간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결국 소문이라는 건 거품 같은 거니까요. 아마 제가 13구역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다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죠.”
“어머! 지금 그거 농담한 거예요? 정말 농담이라고는 안 할 것 같은 얼굴로. 호호 좋아, 내가 한 번 웃게 해 줬으니까 인심 쓴다. 학생, 북극단 미궁에 들어가기 전 마음 든든히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요즘 거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요.”
은밀한 목소리로 미궁 근황을 털어놓는 조교수.
자기 딴에는 호의를 베푼다고 들려주는 정보겠지만 이야기를 듣는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북극단 미궁이 심상치 않다고? 최심층부까지 완전 공략이 되지 않았을 뿐, 박쥐 무덤은 이미 중반부까지는 파훼 작업이 끝난 미궁이야. 그런데 거기서 심상치 않을 게 뭐가 있다는 거지?’
학사 본부는 교내에 위치한 모든 미궁과 유적에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았고, 미궁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철저하게 그 가이드라인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통상적인 경우, 미궁에 도전하는 게 허락되는 건 최소 6학년 이상. 그 정도 고학년들쯤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처럼 공략이 되지 않은 지점까지 함부로 발을 내딛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텐데….’
현재 박쥐 무덤은 절반 정도 공략이 완료된 상태였고, 학생들의 진입이 허가된 영역은 초반 3할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공략 영역을 확장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교수들이 미궁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심상치 않은 일’은 초반 3할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7, 8학년쯤 되는 고학생들이 초반 3할 영역에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 하지만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뭘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교수는 그간 발생한 일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략 보름 전쯤이었나? 사고가 처음 발생한 게. 음, 이름을 말해 주기는 그렇고 마법학과 소속 학생 5명이 논문 준비를 위해 북극단 미궁에 들어갔는데….”
그리고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나의 반응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북극단 미궁이 뒤숭숭해진 게 보름 전쯤이라는 말씀이시죠?”
“음… 맞아요. 최초 신고를 접수한 당직 직원이 북극단 미궁으로 향하는 와중에 올해 처음으로 포르넬라 별자리가 뜨는 걸 목격했다고 했으니까 보름 전이 맞아요.”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걸 가지고 뭘요, 호호!”
상큼한 미소의 조교수를 뒤로 한 채 그대로 연구실을 빠져나온 나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야! 어디 가! 13구역인지 뭔지부터 가서 그 원주민들 보여 준다고 그랬잖아?
‘계획변경, 아무래도 자색 수림보다는 박쥐 무덤을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
―왜?
‘왜기는 너도 들었잖아, 보름 전부터 박쥐 무덤에서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마 벌써 잊은 건 아니지?“
―우우웅… 보름 전에, 보름 전에 내가 뭘 먹었지?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딸기 타르트랑 스무디를 먹었고 또….
세상에나, 그날 먹은 메뉴로 날짜를 헤아리다니.
털 뭉치의 음식 기억력에 의존했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곧바로 녀석을 집어 든 후 솜뭉치를 잔뜩 채워 놓은 듯한 말랑말랑 배에 마즈다를 가져다 대었다.
―하으으으응….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는 좀 기억이 나? 보름 전이라면 내가 오르페우스 님이 남기신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하고 고대왕국 드루이드의 힘을 얻은 날이야. 그리고 그날 자정을 기해 일기장에 다음 과제가 등장한 날이기도 하고.’
―맞아아앙, 그랬지이잉.
―그럼 오르페우스의 두 번째 과업이 주어진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박쥐 무덤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는 거네?
드루이드의 오러를 받자마자 엿가락처럼 축 늘어진 털 뭉치.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녀석 대신 라무테 님이 질문을 던졌다.
‘맞습니다. 박쥐 무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그 소동, 아무래도 오르페우스 님의 안배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이게 제가 행선지를 바꾼 이유입니다.’
―흐으응… 그랬구나앙….
생명력 세례를 받고 축 늘어진 롤빵이를 어깨에 걸친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빠르고 강한 13구역의 원주민을 보는 건 조금 뒤로 미뤄야만 할 것 같았다.
* * *
―여기가 그 북극단의 미궁… 세상에, 여기까지 오던 길과는 완전히 딴판이네.
‘네, 아무래도 녹음으로 가득한 야영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이렇게 보니 미궁보다는 무덤이라는 과거 명칭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참을 이동한 끝에 도착한 북극단의 미궁, 박쥐 무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량했다.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로질러야만 했던 야영지는 사시사철 내내 녹음이 가득한 천연의 수림이었건만 그 북단에 위치한 이곳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는 폐허와 모래가 전부였다.
―으… 이래서야 유적이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깝잖아. 사람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장소도 아니라면서 뭐 이렇게 을씨년스럽지.
‘유적도 폐허도 이곳의 본질이 아니야. 저기 저 구멍 보이지, 저게 미궁이라는 이곳의 본질을 유지하게 해 주는 생명줄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손가락을 뻗어 간간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미궁의 숨구멍을 가리켰다.
절반 이상 깨져 나간 성곽 아래로 흩뿌려져 있는 잔해들.
그리고 그 사이로 숭숭 뚫린 수십 개의 구멍들.
‘저 구멍을 통해서 지하 미궁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리고 개중에 반짝거리는 입구가 있다면 그 구멍으로 미궁에 도전하고 있는 팀이 있다는 소리야.’
―그랭? 어! 저기 저쪽에 구멍 주위가 반짝거리고 있어. 누가 먼저 왔나 보다!
―그러게, 우리보다 발 빠른 손님들이 계셨네?
북슬이와 라무테 님의 시선이 푸른색 야광석으로 빛나는 입구를 향했다.
쾅쾅.
모락모락.
입구 바깥쪽으로 뿜어져 나오는 유황 연기와 급격하게 증가하는 소음.
‘곧 뛰쳐나오겠군.’
아무래도 걸음이 빠른 손님의 미궁 도전은 실패로 끝난 듯했고, 잠시 후.
“우웩! 퉤퉤!”
“저 지랄 같은 마석 박쥐 새끼들! 내가 다음에는 절대 가만 안 놔둔다.”
내 추측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는 5인조가 구멍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는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체액으로 범벅이 된 의복들과 꾀죄죄해진 몰골.
“논문 자료 구하러 왔다가 체액 범벅이라니… 이게 무슨 개 같은 꼴이야.”
“우리 대조 자료 수집처 바꾸자. 따지고 보면 그 자료를 꼭 여기서만 모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주고받는 대화 속에 등장하는 논문이라는 단어와 의복에 달려 있는 휘장으로 이들이 졸업 준비 중인 고학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 얘들아 잠깐만, 저기 좀 봐 봐. 저거… 걔 맞지?”
“어… 맞아, 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어. 저 꼬마가 팩셰르 교수님에게 출입허가를 요청한 바 있다고, 그런데… 진짜로 여기에 온 거야? 그것도 1학년 혼자서?”
내가 그들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 역시 나를 발견했고 난 가벼이 목례를 했지만 5인조들 중 그 누구도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
“쳇… 그래, 이런 미궁쯤은 혼자서도 도전할 만큼 잘나셨다 이거지. 아주 대단한 신입생 나셨네.”
“잘난 클리디우스의 도련님이 보시기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한심해 보이겠어? 얘들아 가자, 우리 천재 신입생 나리께서 이런 모습을 보고 불쾌해하실라.”
클라디우스에 대한 해묵은 적개심과 스스로들의 모습에 대한 수치심.
짜증이 잔뜩 묻어 나오는 표정을 한 채 고학년 5인방은 사라졌고, 난 적당한 구멍을 골라잡은 후 그 앞에 섰다.
‘저 꼬라지를 보아하니 박쥐 무덤이 염병을 하고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저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짤각짤각.
뚝딱뚝딱.
챙겨 온 등반 도구를 미궁 입구에 설치한 후 광원(光源) 역할을 할 발광 수정구를 로프에 묶어 먼저 흘려보냈다.
입구 근방에 설치해 놓은 고정쇠를 마법적 장치로 재고정한 후 연결된 로프를 허리에 감는 것으로 박쥐 무덤에 도전할 준비가 끝났다.
―우왕! 너 이런 거 되게 잘한다. 혹시 해 본 적 있어?
‘아니, 평생을 섬에서만 있다가 이제 겨우 바깥세상에 나온 촌놈이 이런 걸 해 볼 기회가 언제 있었겠어?’
―그런데 왜 그렇게 잘해?
‘책에서 많이 봤거든, 기회가 생기면 꼭 해 보고 싶었던 일인지라 머릿속에서 연습을 많이 했지.’
물론 거짓말이었고 머릿속 연습 따위는 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연습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고정쇠를 설치하고 로프를 연결하고 그 연결된 로프를 목숨 줄 삼아 낙하 및 등반을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으니까.
‘북슬아 그리고 라무테 님, 바로 내려갈 거니까 준비하세요. 수정구를 먼저 내려보내 놓기는 했지만 갑자기 어두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케이!
―페이건, 언제라도 좋아.
‘그럼 갑니다!’
휘리릭.
입구에 걸치던 발을 떼자마자 감겨 있던 로프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풀리기 시작했고.
끼에엑.
무덤의 터줏대감들이 내지르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