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5)화(5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5)
깜빡깜빡.
‘바닥까지 500미터, 400미터, 300미터….’
미궁 벽에 박혀있는 표시석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바닥까지 남은 거리를 말해 줬다.
끼에엑.
마석 박쥐들이 내지르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는 여전했지만 하강 과정에서 특별한 위해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타다닥.
조교수가 말한 심상찮은 일은 적어도 내가 하강을 마칠 때까지는 벌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난 순조롭게 바닥에 도착해 발광 수정구를 회수할 수 있었다.
‘들고 있어, 네가 그걸 놓치기라도 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거야.’
물론 수정구를 잃어버린다 해서 정말로 빛을 완전히 상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의 사명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난 짐짓 비장한 표정을 한 채 롤빵이의 다리 사이에 수정구를 끼워 줬다.
―응! 나한테 맡겨! 내가 꼭 잡고 있을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롤빵이.
하나같이 짤막하기만 한 팔다리를 이용해 수정구를 감싸 쥐고 있는 탓에 안 그래도 동그스름한 바디라인이 한층 더 둥글둥글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제법 안정적인 자세였다.
―저기 페이건, 이거 잘 잡고 있으면 나 케이크 0.5개 정도는 확보하는 거지? 그치?
저런, 이 말만 하지 않았다면 조금 전 보여 준 그 비장함이 약간은 더 오래 갔을 텐데.
‘어디 보자… 일단 여기서는 직진 그다음 갈림길에서 우회전이군요.’
북슬이의 간절한 눈망울을 외면한 채 소매를 걷어 올렸고 연구실에서 지급받은 팔찌가 천장에 박혀 있는 보석들과 공명하며 방향을 가리켜 줬다.
지하 미궁과 지도, 얼핏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지만 이곳 박쥐 무덤이 중반부까지 공략이 완료된 미궁인걸 감안하면 마냥 어색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학사 당국이 박쥐 무덤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은 것은 일정 이상의 자격을 획득한 학생들의 수련처로 사용하기 위함이었고, 무릇 모든 수련처에는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편의 기능이 있기 마련이니까.
―페이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던전과 미궁은 고대왕국의 유산이라는 말을 오르페우스한테 들은 적이 있거든. 그 말이 사실이니?
‘네, 선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물론 이름 높은 마탑이나 길드에서 인공 던전을 제작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던전은 고대왕국 시절에 만들어진 게 맞아요.’
―으음, 그렇구나. 그토록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직까지도 작동하다니, 신기하기도 하지.
무척 오랜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궁이나 던전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 라무테 님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여기저기 박혀 있는 야광석이나 비상 연락 장치 등을 보면 확실히 이 미궁, 사람 손을 많이 타기는 탄 모양이야. 아직 작동하는 걸 보면 핵은 무사한 것 같다만.
‘던전의 핵을 파괴했다가는 더 이상 몬스터들의 충원이 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수련처로써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해 버릴 테니까요. 아마 학사 당국은 50% 정도의 공략률을 유지하는 게 수련처의 기능을 보전하면서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요?’
박쥐 무덤 초입부 이곳저곳에 설치된 폴리다고스의 흔적.
다소 거칠고 투박하기는 하다만 학사 당국은 ‘폴리다고스의 고학년이라면 이 정도 도움만으로 박쥐 무덤 중반부까지 공략이 가능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내 미궁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 건 7, 8학년이 대부분이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해봤자 6학년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7, 8학년이 미궁에 도전할 권리를 얻는 것도 아니다.
졸업을 목전에 둔 학생들이라 해도 미궁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교수들로 결성된 심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했는데, 지원자들 중 심사를 통과하는 비율은 채 3할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팩셰르가 고작 신입생인 나에게 덜컥 출입 허가를 내준 게 참 파격적인 일이기는 하단 말이지.’
쉬릭.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5분여 남짓 걸었을 무렵 왼쪽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바늘이 허공을 날았고.
끼에엑.
바늘에 관통된 마석 박쥐가 내지르는 구슬픈 비명이 들려왔다.
푸슈슈.
비명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 시체는 탁한 연기가 되어 흩날렸고, 내 목을 노리며 날아오던 마석 박쥐의 자리에는 최하등급의 마석이 덩그러니 굴러다닐 뿐이었다.
―어! 뭐야? 조금 전까지 날아다니던 박쥐가 돌땡이가 됐어!
‘이게 본모습이야, 조금 전 봤던 박쥐는 미궁의 핵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 핵인지 뭐시긴지가 무슨 여왕 박쥐라도 되는 거야? 박쥐들을 찍어 내게?
‘…그래도 라무테 님은 미궁의 구조에 대해서 대강 아는 것 같은데,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수정구를 품에 안은 북슬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면을 비춰야 할 빛이 사방으로 흔들렸고 난 녀석의 자세를 고쳐 잡아 준 후 설명을 했다.
‘던전에서 나오는 괴물들은 거의 대부분 최심부에 위치한 핵이 마법을 통해 만들어 내는 일종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던전 근방에 서식하던 몬스터들이 내부로 들어와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던전의 괴물들은 핵이 생성하는 부산물이라고 보는 게 옳아.’
―그럼 그 핵이라는 건 왜 몬스터를 만드는 건데? 그게 재밌나?
‘던전의 핵이 몬스터를 생산하는 이유가 뭔지 아직 뚜렷하게 알려진 바가 없어. 애초에 던전이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고대왕국의 유산인지라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거든. 다만 분명한 건 던전의 핵은 그 제반 환경이 유지되는 한 반영구적인 마력을 뿜어낼 수 있으며 그 마력을 이용해 저런 식의 환상 괴물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지.’
툭.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박쥐의 모양을 하고 있던 마석을 걷어차자 회백색의 돌멩이는 한참을 굴러 갈림길 앞에서 멈춰 섰다.
‘핵은 던전 내부의 물질, 이를테면 돌이나 나무를 이용해 끊임없이 괴물들을 만들어 내고 일정한 시간 간격 동안 괴물들이 반복 생산되는 이 과정을 인류는 ‘충원’이라 부르기로 합의했어.’
―음, 그럼 그냥 그 핵인지 뭔지를 깨 버리면 던전 안에 있는 괴물들도 전부 사라지는 거네? 그럼 왜 사람들은 핵을 부수지 않고 내비두는 거야? 괴물들이 계속 생겨나면 위험하잖아?
‘말했잖아, 던전의 핵이라는 건 일정 조건이 갖춰 지는 전제하에 쉬지 않고 마력을 뿜어내는 일종의 반영구기관이라고. 안전 따위를 위해 반영구적인 마력 생산이라는 고대 문명의 이기를 포기할 만큼 인간은 탐욕에서 자유롭지 못해.’
―탐욕?
‘환상 괴물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이곳 박쥐 무덤에 있는 마석은 워낙에 하급이라 상품 가치가 없지만 던전들 중에는 정말이지 희귀한 마석을 품은 괴물들을 주기적으로 배출해 내는 곳도 있거든.’
―으… 하지만 마석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래봤자 괴물인데?
‘괴물이든 인간이든 그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 정말 중요한 건 괴물이 고가의 마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해당 던전을 소유한 국가 입장에서는 핵을 파괴할 수 없어.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할 배짱만 있다면 주기적으로 막대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황금알을 낳아 주는 거위의 배를 가를 이유가 뭐가 있겠어?’
어느새 이야기는 다소 냉소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북슬이는 안 그래도 빵빵한 뺨을 한층 더 부풀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탐욕을 위해 안전을 외면하다니 인간은 나빠, 그리고 어리석어. 아 물론 페이건 너는 빼고, 그리고 티베리랑 멜리사랑 라나랑 에밀도 빼 줄게.
‘글쎄, 물론 탐욕을 숭상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경시할 필요는 없어. 인간이 이뤄 낸 진보의 대부분은 사실상 탐욕의 부산물들이었으니까.’
―그치만….
‘이를테면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우유와 계란을 이용해 더 높은 수준의 미각적 쾌락을 얻고자 하는 탐욕이 없었다면 우리 북슬이가 좋아하는 그 다크 초코 케이크가 세상에 나오는 일도 없었겠지?’
―그런 건 안 돼! 그럼 나 탐욕 만세로 바꿀래!
‘뭐 그렇다고 만세까지 부를 일은 아니고, 뭐든지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야.’
―페이건, 그럼 혹시 이곳 폴리다고스에도 그런 식의 이유로 유지되는 던전이 있는 거니?
‘아니요, 제가 알기로 폴리다고스 내에 상업적인 가치를 위해 존속되는 던전은 없습니다. 단지 이곳 박쥐 무덤처럼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폐쇄되지 않고 유지되는 미궁이 있을 뿐이에요.’
확실히 마냥 순진하기만 한 북슬이와 달리 라무테 님은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던전을 바라봤다.
‘물론 미궁 곳곳에 아직 회수되지 않은 고대의 아이템이 존재하고, 한데 뭉쳐 가치가 높아진 마석 덩어리가 나오기는 합니다. 학생들이 기를 쓰고 미궁에 들어오려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구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성과일 뿐, 대놓고 마석 회수를 위해 유지되는 던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폴리다고스 운영진 측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의 핵을 파괴하고 던전을 영구 폐쇄하는 것도 가능은 할까?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공중 고성이나 운영진 전원이 나설 필요도 없이 팩셰르 수준의 마법사라면 단신으로도 박쥐 무덤을 영구 폐쇄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물론 핵을 완전히 분해하기 위해서는 최심부를 일정 기간 점거해야만 하니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갈림길을 건너다 보니 미궁에 들어온 지 수십 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손목의 팔찌가 박쥐 무덤 10분의 1지점에 도달했음을 알려 온 바로 그때.
―우와… 이게 뭐야? 여기에 부화장이라도 차린 거야?
―세상에나 이렇게나 다닥다닥 빼곡하게… 어머나, 천장을 완전히 가득 메웠네.
‘심상찮은 일이라는 게 뭔가 했더니… 확실히 이 정도 수라면 평범한 수준은 훌쩍 넘어섰다고 봐야겠군요.’
조교수가 말한 바 있는 예사롭지 않은 사태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번째 갈림길의 위태위태한 돌다리를 지나 도착한 지하 공동, 그 공동의 천장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마석 박쥐들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 십, 백… 우엑 나는 세는 거 포기, 포기할래. 너무 많아서 안 되겠어.
―음… 페이건, 저 많은 수의 박쥐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곳을 돌파할 수 있겠니?
‘돌파 여부는 해 봐야 알겠지만 저놈들에게 들키지 않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머릿수가… 너무 많네요.’
마석 박쥐들은 날개에서 발산하는 고유 음파를 이용해 적이나 먹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데, 한데 모인 무리의 머릿수가 많을수록 음파의 파장은 확대되고 그 감지 능력 또한 예민해진다.
‘전생의 나라면 감지되는 일 없이 통과하는 게 가능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무리야. 놈들의 음파 영역은 전방에 있는 석조 기둥까지, 그 기둥을 한 발자국이라도 넘어서는 순간 놈들은 지랄발광을 하며 달려들겠지.’
입구에서 마주친 5인방이 왜 마석 박쥐의 체액 범벅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졸업을 앞둔 고학생들이 아니라 고학생 할아버지가 와도 이 정도 수의 마석 박쥐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페이건, 이 미궁 안에는 원래 괴물들이 이렇게 많았던 거야?
‘아니, 그럴 리 있나. 평시 기준대로라면 이 위치에서 만날 수 있는 박쥐의 수는 저기 보이는 양의 10분의 1 이하여야 하는 게 맞아.’
―그런데 왜 그래?
‘놈들의 머릿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었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겠지. 원래대로 저 안쪽에 도사리고 있어야 할 놈들이 무언가에 쫓겨나는 바람에 이곳까지 밀려왔거나, 아니면 박쥐들을 공급해 주는 별도의 보급고가 생겼거나.’
작금의 비정상적인 사태를 초래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진상에 다가서기 위해 전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우웅.
물러서자니 진전이 없고, 나아가자니 번거로운 일이 가득한 상황 앞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생각지 못한 곳에서 돌파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목걸이! 목걸이에서 그 나른하게 만드는 거랑 똑같은 빛이 나온다!
―페이건, 오르페우스가!
‘네, 참 감사하게도 선조께서 이곳에도 안배를 해 주신 모양이네요.’
마즈다에서 쏟아져 나온 녹색 빛이 박쥐들로 가득 찬 동공을 가르는 길을 만들었고, 신기하게도 박쥐들은 빛이 뿜어내는 진동음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툭.
혹시 몰라 빛의 길 안쪽으로 돌멩이를 던져 시험을 해 봤으나 역시 박쥐들이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박쥐들은 녹색 빛이 지켜 주는 영역에 한해서는 감지가 불가능한 것이다.
―가자! 응! 혹시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얼른 가자! 우리.
‘그래, 가야지.’
―응? 그런데 너 표정이 왜 그래? 공짜로 돌파구가 생겼으니 조금 더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갑자기 내 머리는 왜 만져?
‘아니, 공짜를 좋아하면 훌러덩이 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데 네가 아직 풍성한 걸 보니 거짓말이었나 보네.’
―이게! 감히 스승님을 상대로 건방지게!
‘농담이야, 그리고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뭐랄까, 이 과정은 전체가 오르페우스 님이 나에게 내리는 시험이잖아.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덜컥 인심 좋게도 돌파구를 주셨다는 건 이다음에 박쥐 무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윽, 네가 그러니까 나까지 괜히 불안해지잖아.
‘뭐 불안한 건 불안한 거고, 일단은 가 봐야겠지.’
그렇게 난 빛의 인도를 따라 동공을 통과했고, 녹색 빛은 동공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더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허락된 영역의 끝부분에 도달했을 무렵.
또옥또옥.
지저 호수 위로 허름하게 놓인 돌다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빛의 길은 돌다리 중턱에서 끝.
―어머, 여기서 길이 끊겼네. 그럼 어떡하지?
―뭐야? 여기서 대뜸 끊겨버리면 어떡해. 호수 바닥으로 뛰어들기라도 하라는 거야?
갑작스러운 이정표의 상실에 북슬이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고, 라무테 님 역시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호수 바닥을 살피기는 해야겠지만 뛰어들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에이, 페이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호수 바닥에 뛰어들라는 건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잖아.
‘해 본 말?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저기 저 호수 바닥에 있는 마법진을 보고 한 소리 아니었어?’
―바닥? 호수 바닥에 뭐가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털 뭉치. 설마 이 녀석 눈에는 저렇게 선명한 마법진이 보이지 않는 건가?
‘라무테 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겁니까?’
―응,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무것도 안 보여.
라무테 님 역시 호수 바닥의 마법진이 보이지 않는 건 매한가지인 듯했다.
‘북슬이는 그렇다 쳐도 라무테 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시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건데, 설마?’
비록 빛의 인도는 멈췄지만 여전히 녹빛을 내뿜고 있는 마즈다를 호수 표면으로 향했고.
―어! 보인다. 이제 보여! 호수 바닥에 마법진이 있네. 으악! 그런데 저게 뭐야!
―세상에나! 이러니 박쥐가 그토록 드글드글할 수밖에….
호수 표면이 생명력의 오러로 물들고 난 후에야 둘은 탄성을 내질렀다. 내가 돌다리에 오르자마자 목격한 광경을 이 둘은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번쩍.
끼에에엑.
칙칙한 물빛으로 가득해야 할 호수 바닥은 거대 마법진이 뿜어내는 빛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적색 광채가 번득일 때마다, 미지의 장소에서 소환된 마석 박쥐가 마법진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