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5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7)화(5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57)
박쥐 무덤 탐사를 마치고 자색 수림을 향하기 전 이런 생각을 했다.
오르페우스는 두 번째 과업이 수행되어야 할 장소로 박쥐 무덤과 자색 수림을 지목했고 그중 박쥐 무덤에서 이상 상황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원인은 자색 수림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까?
―엑! 으… 네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솔직히 믿기는 싫어. 이렇게 예쁜 나무 아래에 그렇게 끔찍한 놈들이 득시글거리다니.
―페이건, 넌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거니?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박쥐들에게서 그 생김새랑은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냄새가 났을 때부터요. 이 정도로 생명력이 충만한 내음이라면 황금목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 그렇게 빨리?
‘전 드루이드 오러 덕분에 라무테 님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느끼지 못하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와 같은 조건이었다면 저보다 빨리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리고 황금목 관측을 통해 도출된 결과로 박쥐 무덤에서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이 확인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들어맞았다는 표현도 우습지. 마법진이 있는 장소까지 인도한 것도 이상한 점을 느끼게 해준 드루이드 오러도 결국은 오르페우스의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니 지금까지는 그저 오르페우스가 깔아 준 카펫 위를 걸어왔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카아악.
약간의 자괴감에 젖어있으려니 그리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고 난 내가 찾아낸 또 하나의 정황 증거를 들려줬다.
‘그리폰이라는 종족은 그 생김새만 보면 마냥 성급하고 난폭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야. 지성을 갖춘 마수와 그렇지 못한 마수를 통틀어서 그리폰은 가장 온화하고 자비로운 심성의 마수야. 적과 싸워야 할 때는 누구보다도 용맹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쉽사리 흥분하는 일이 없는 친구들이지. 그런데 아까부터 굉장히 까칠해 보이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어.’
―음… 우리 말고 다른 이유로 몹시 화가 난 모양이네.
‘그래, 그리고 그리폰 일족이 폴리다고스에 머무르는 이유를 고려하면 저 친구들이 저렇게 화가 나 있을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
―황금목에 문제가 발생한 거구나?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금목 인근에 문제의 마법진 입구가 있는 게 맞다면 제아무리 황금목이라도 마냥 무사할 수만은 없을 테니.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 그리폰들이라면 이곳을 관리하는 학사 당국의 인원들보다 빨리 이상 징후를 포착했겠지요.’
―그래서 저렇게 슬픈 목소리로 울어 대는구나. 자신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나무가 아파하는 게 느껴지니까.
―그럼 그 나쁜 마법진은 어디 있는 건데? 그리고 이 예쁜 나무 고쳐 줄 수 있어?
황금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북슬이는 다급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일단 마법진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지 않을 거야. 만약 보였다면 그리폰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마법진을 소멸시켜 버렸을 테니까. 그렇다면 외부에서 관측이 가능한 나무의 줄기나 가지, 밑동은 아니라고 봐야겠지.’
―그럼 혹시?
‘눈에 보이지 않고 접근도 힘들지만 나무의 건강에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기관이라고 한다면 역시….’
―뿌리! 뿌리에 있구나!
대답 대신 몸을 굽혀 황금목 뿌리를 감싸고 있는 토양을 어루만졌다.
라무테 님은 추론 과정을 듣고 대단하다며 추켜세워 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황금목 뿌리에 숨어 박쥐 무덤을 마석 박쥐로 득시글하게 만드는 마법진을 깨부수고, 슬픔에 잠긴 그리폰 전사들을 상심의 늪에서 구해 줄 것.’
이라는 출제자의 의도를 겨우 파악했으니 지금부터는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자. 아직 첫날이니까 오늘은 목표를 확인한 걸로 만족해야지.’
―벌써? 아직 그 나쁜 마법진한테 나무를 구해줄 방법은 찾지도 못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안들이 몇 개 있기는 한데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들뿐이야. 추가적인 검증과 확인이 필요해. 오늘은 이쯤 하고 돌아가자.’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장장 30여 분에 걸친 생각에 잠긴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작전상 후퇴였다.
‘황금목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환자가 계시는데 마냥 여기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잖아?’
―환자? 아! 맞다! 오늘 그 안경 꼬맹이를 치료하는 첫날이지. 그 나른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사용해서, 나무야 아파도 조금만 참아. 우리가 금방 안 아프게 해 줄게.
첫 환자라는 말에 기운을 차린 북슬이는 언제나처럼 머리 위에 몸을 누였고, 묵직한 과제를 안겨 준 황금목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카아악.
기분 탓일까? 석양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그리폰의 울음소리가 유달리 구슬프게 들렸다.
* * *
“아플 거야, 참아.”
“응.”
“들어갈 때 특히나 따끔할 수 있다.”
“알았어.”
“화끈할 수도 있으니 준비해 둬.”
“저기…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치료가 시작된 지 30분.
별다른 말 없이 지시사항을 묵묵히 이행하던 제라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해 왔다.
“아프거나 한 건 정말로 문제가 아닌 데 보통 치료술사들은 생각보다 안 아프니 걱정하지 말하는 말을 자주 하잖아.”
“그런 경우도 있지.”
“그런데 페이건은 그런 말 안 하네? 되게 솔직한 것 같아.”
“치료가 시작되면 네가 아플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안 아플 거라는 말을 할 수 있겠어. 거짓말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는 있지. 그런데 그래봤자 따끔할 거라는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을걸?”
오른손을 까닥이자 검지와 연결되어 있던 침이 허공을 날아 제라르의 발목에 박혔다.
제라르는 온몸의 세부적인 마나 회로가 엉킨 채로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아왔고 그러다 보니 몸 곳곳에서 엉킨 회로는 각각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페이건, 아주 잘하고 있어. 그쪽은 아주 큰 덩어리가 져 있으니까 일단 몇 개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발목 쪽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요?’
―응, 첫날부터 안쪽에 있는 기관에 충격을 주면 거부반응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일단 심장에서 거리가 먼 부분부터 풀어 나가기로 해, 우리.
평범한, 아니 상당히 높은 수준의 치료술사를 데려다 놓아도 엉킨 마나 회로를 풀어내기는커녕 이상 여부를 감지해 내는 게 힘들 정도로 제라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제라르의 발목과 손목에 주저 없이 침을 박아 넣었다.
나에게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눈’에 한해서 대륙 제일이라 할 만한 라무테 님이 있었고, 고사(枯死)해버린 생명력의 싹을 되살리는 데 탁월한 힘을 가진 드루이드 오러가 있었으니까.
―좋아, 좋아! 이 드루이드 오러라는 거 되게 따뜻하다. 그리고 앙겔루스와 호흡도 좋아. 두 개의 기운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가고 있어.
그리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는 북슬북슬 스승님의 열띤 격려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드루이드 오러를 이용해 이 꼬맹이를 치료해 보겠다는 네 판단, 아주 좋았어! 두 개의 오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네 개째 마나 고리의 생성을 가속화 하고 있어. 내년이나 되어야 네 개째의 고리가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흐름이라면 조만간 하나의 고리를 더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 아! 지금 좋았어! 그런데 조금만 더 세게 당기자. 여기서는 더 격렬하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발전해 간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뻤던 걸까?
북슬이는 황금목 앞에서의 침울함은 까맣게 잊은 채 꼬리를 파닥거리며 잠시도 쉬지 않고 격려와 조언을 날려 댔고.
“사실 안 아프게 하려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랬다가는 차도의 발현 또한 늦어질 텐데 그건 네가 원하는 바가 아니잖아. 다소간의 고통은 있더라도 더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편이 너도 더 좋지?”
어깨와 머리 양쪽에서 들려오는 조언 덕분에 처음 목격하는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자신 있게 치료를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어! …그, 그게….”
“치료의 당사자가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뻔뻔한 것도 아니니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오히려 환자가 적당한 욕심을 부려 주는 편이 치료술사 입장에서는 훨씬 더 수월하거든.”
치료를 시작하기 전 제라르는.
‘차도가 없더라도 괜찮아, 내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난 페이건이 최선을 다해 주는 게 고마울 뿐이야.’
라는 말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 놓고서 사실은 차도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또 그 사실을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제라르는 벌게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나… 웃기지? 큰 기대 안 할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실컷 떠든 주제에 사실은 첫날부터 잔뜩 욕심이나 부리고. 미안, 마나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싶다는 내 욕심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 치료술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께서 몇 번이고 해 주신 말씀이 있어. 치료술사가 진료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다음의 두 가지이니 너는 행여라도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을 끊는 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줬다가는 안 그래도 딱히 높을 게 없는 제라르의 자존감이 바닥 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진료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그 첫 번째, 실력이 부족한 치료술사. 일단 이건 해당 사항 없고.”
“하하, 맞아. 난 치료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건 틀림없을 거야.”
“최악의 상황 그 두 번째, 나을 의지가 없는 환자.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이게 첫 번째보다 더 안 좋아.”
“….”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양쪽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잖아? 그러니 곧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아.”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페이건. 나, 나도 내가 할 수는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볼게.”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제라르.
숙였던 고개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치료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은 차린 듯하니, 평소의 나답지 않은 너스레를 떤 보람은 있는 셈이었다.
“후우….”
제라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환자의 육신을 다스리는 것보다 마음을 헤아리는 편이 훨씬 더 어렵다.
“아! 맞다, 나 할 말 있는데. 페이건, 오늘 오전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길에 선배님 한 분을 만났어.”
“선배? 누군데? 나도 아는 사람인가?”
“어…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 선배님 말로는 페이건이랑 잘 아는 사이라고. 그리고 되게 되게 예쁜 사람이었는데 그러니까 선배님 성함이….”
“…혹시 그 선배라는 사람 마법사인 주제에 무슨 무희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를 훌러덩 드러내고 다니는, 무척 민망한 차림을 하고 있지 않았어?”
“응응, 분명히 마법사치고는 꽤나 선정… 아니 대범한 복장이기는 했던 것 같아. 역시 아는 사이가 맞았구나?”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걸까?
“그 선배라는 사람 아마 이름이 아일리 바스티아였지. 어제 잠깐 만났는데 자기가 속해 있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하더라고.”
“그렇구나, 하긴 오늘 나한테도 학회 관련한 말을 했던 것 같아.”
“혹시 그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쓸데없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보통 자기가 먼저 말을 걸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그날 안으로 다시 연락이 오기 마련인데 페이건처럼 감감무소식인 경우는 처음이라는 말은 했어.”
“…그리고 또?”
“그래서 못 참고 1학년 교실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페이건이 보이지 않아서 나를 찾아왔다고, 그리고 이다음부터는 혼잣말을 한 거라 확실치 않기는 한데 ‘이렇게 쿨하게 나오는 상대는 난생처음이라서 더 안달이 난다.’라는 말도 들린 것 같아.”
별다른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건만 제라르는 안 그래도 똘똘한 눈동자를 한 층 더 똘망똘망하게 뜬 채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달해 줬다.
“그다음에 선배님이 밥을 사준다 그래서 같이 식사를 했거든. 그런데 바스티아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페이건이 푸른 달을 견학하러 오면….”
내가 제라르의 오른 팔목에 세 개의 침을 추가로 주입하는 동안 제라르는 식사 도중에 들었던 이야기와 자신이 조사를 통해 파악한 아일리 바스티아에 관한 정보를 부지런히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난 푸른 달이 어느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학회인지, 그리고 아일리 바스티아가 얼마나 빵빵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페이건, 푸른 달에는 언제쯤에 견학을 갈 예정이야?”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들려준 제라르는 내가 푸른 달을 견학하러 가는 게 기정사실 아니냐는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라봤고, 난 전령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준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을 줬다.
“내가 거길 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