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6)화(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6)
현재 시각은 오후 3시 30분.
볕이 가장 좋은 때는 지났으니 지금쯤 볕바라기를 끝낸 녀석은 창문을 스르륵 열고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나 책상 어디쯤에서 몸을 비비고 있겠지.
‘뭐야? 왜 또 방에 없어! 나 심심한데!’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시끄러웠고 작년 겨울에는 소란스러웠고 지난달에도 부산스러웠으며 지난주 역시 떠들썩했고, 어젯밤까지도 재잘거리기를 멈추지 않은, 그 녀석을 떠올리자 미간에 절로 미세한 주름이 생겨버렸다.
‘시끄러운 녀석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니까.’
물론 그 녀석 앞에서 이 사실을 굳이 내 입으로 꺼내거나 한 적은 없었다.
혹시라도 그 녀석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안 그래도 허세가 심한 녀석이 더욱더 기고만장해서 날뛸 테니까.
달그락.
유모의 손에 들린 채 맛있는 소리를 튕겨 내는 과자 상자에 시선이 가닿았다.
‘여기서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서 가져다줘야겠다. 어차피 내가 해주는 몇 마디 말보다는 맛있는 과자 몇 개가 녀석에게는 더 충실한 보답으로 느껴지겠지’.
철썩.
‘그나저나 오늘은 해무(海霧)가 많이 짙네?’
돌연 들려온 파도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시야에 담을 수 없는 먼바다의 안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르카.
7년 전부터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시작한 또 하나의 무기.
이제는 새로운 육신에 완전히 적응한 아르카가 선사한 은총 덕분에 난 인간의 육신이 가진 제약을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지난 6년간 완성도를 높여 간 건 앙겔루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진척도로만 따지면 아르카가 더 위에 있다고 봐야지. 어쨌거나 내가 최우선 순위로 삼은 건 앙겔루스가 아니라 아르카였으니까.’
오늘도 내가 최선을 다해 앙겔루스를 수련하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 아버지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에게 있어 앙겔루스는 언제나 두 번째였다.
전생에 걸쳐 날카롭게 갈아놓은 나의 직감이 지금은 ‘클라디우스의 갑옷’보다는 ‘베일 속의 칼’을 연마하는데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여 왔고, 지난 6년간 난 그 속삭임의 의견에 충실하게 응해왔으니까.
만약 내가 아르카를 익히는 여력까지도 모조리 앙겔루스의 단련에 투자했다면 나의 성취도는 역대급을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단연코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아버님과 가신들은 나의 비교군으로 선대 가주들이 아닌 클라디우스의 초대 가주인 ‘오르페우스 클라디우스’를 소환했겠지.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생각에 잠긴 내 뺨을 대담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포동포동한 손가락.
그 깜찍한 위력 앞에 난 상념을 멈추고 우리 귀여운 삐약이와 시선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제가 한번 맞춰 볼까요?”
“글쎄, 과연 우리 라나가 맞출 수 있을까?”
“당연히 맞출 수 있죠! 다른 사람도 아닌 오라버니의 일인데!”
라나는 내 목을 감은 손에 한층 더 힘을 준 채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께서는 지금 다음 주에 만나게 될 영수(靈獸)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죠?”
“영수? 우리 쪼꼬미가 영수가 뭔지도 알아?”
“흥! 그야 당연히 알죠. 제가 가장 존경하는 페이건 오라버니에 관련된 일인데 이 라나 클라디우스가 모를 리 없잖아요.”
“풉!”
가슴을 쫙 펴며 뿌듯한 표정을 지는 내 동생,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는지 앞서 걷던 유모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흠! 도련님, 아가씨 이쪽에 앉으세요. 제가 차를 따라 올리겠습니다.”
꽃이 만발한 정원에 준비된 아담한 티 테이블과 그 위로 깔끔하게 준비된 티 세트.
“흥흥흥♪, 오라버니랑 즐거운 티타임♫. 오라버니, 소녀는 무릎 위가 좋사와요. 유모도 얼른 와요!”
여유 있게 준비된 의자를 외면한 채 내 무릎을 차지하고 앉은 라나가 과자를 붕붕 휘두르며 우리를 재촉했다.
“짠!”
어른들이 술잔을 부딪치는 것처럼 그 끝이 살짝 닿았다 흩어진 쿠키들.
다과회 개시를 알리는 의식을 마친 쿠키는 각자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삽시간에 입속을 가득 메운 달달함을 만끽하는 와중에도 라나는 재잘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어떤 영수를 만날 것 같으세요? 소녀의 생각에는 ‘프로테다스’ 아니면 ‘아글라’가 오라버니 앞에 나타날 거 같아요.”
“프로테다스?”
“네. 프로테다스는 기품있는 하얀 호랑이를 닮았고 아글라는 멋있고 커다란 독수리처럼 생겼잖아요! 오라버니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니까 오라버니와 짝을 이룰 영수도 오라버니처럼 멋있어야 해요! 그래서 프로테다스 아니면 아글라예요!”
다음 주 ‘영원의 숲’에서 내가 어떤 영수를 만나게 될지가 신경 쓰였는지 라나는 눈동자까지 반짝이며 후보군 영수들을 입에 담았다.
“흐음… 프로테다스나 아글라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에상티’도 괜찮은데. 에상티는 털이 유달리 복슬복슬하니까 그 위에 누워서 낮잠을 자면 엄청 기분 좋을 것 같지 않아?”
“안돼요! 에상티는 뚱뚱하고 엉덩이가 너무 크잖아요! 오라버니랑은 안 어울려요!”
에상티는 기다란 털이 온몸에 가득 한 코끼리를 닮은 영수. 그 듬직한 모습을 떠올린 라나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무조건 프로테다스 아니면 아글라예요! 에상티는 안 돼요. 에상티는 아버님이랑 닮았잖아요! 그러니까 오라버니 말고 아버님이랑 친구하라 그래요!”
“하하. 라나야. 아버지에게는 이미 ‘벨도루시’가 있잖아.”
“그러니까요. 벨도루시도, 에상티도 아버님이랑은 아주 잘 어울려요.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클라디우스의 사람은 자신과 꼭 닮은 영수를 파트너로 얻기 마련이라고. 그러니까 오라버님은 무조건 멋있는 영수여야만 해요. 아셨죠? 오라버님, 프로테다스 아니면 아글라예요!”
“하하, 라나야. 나를 좋게 봐주는 건 고마운데 혹시라도 아버지 앞에서는 그런 말하면 안 돼. 무척이나… 슬퍼하실 거야.”
벨도루시는 무척이나 예쁜 눈망울이 인상적인, ‘흑곰’을 닮은 집채만 한 크기의 영수였다.
목숨처럼 아끼는 딸의 입에서 흑곰, 코끼리랑 잘 어울린다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버님은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뭐, 내가 생각해도 잘 어울리기는 하다만. 덩치도 크고 온몸에 털(?)도 많고.’
말할 수 없는 생각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초코 쿠키를 입에 던져 넣었고, 라나의 뺨처럼 말랑말랑한 초콜릿은 입안에 달콤한 향기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도련님! 서재에 계시지 않길래 한참을 찾아다녔더니 이곳에 계셨군요.”
준비된 과자가 절반 정도 비워졌을 무렵 홀쭉하니 큰 키를 한 청년, ‘한스’가 나를 찾았다.
“그… 일전에 가주님께서 명하셨잖습니까? 침을 사용하는 게 적합한 경증 환자가 나오거든 도련님에게 알리라고. 사실 지금 외부 진료소에 환자가 한 명 와 있는데 말입지요. 앨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환자의 환부는 약이나 마법이 아닌 침으로 다스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속히 도련님을 모셔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보도록 하지요.”
입안에서 살살 녹아가던 버터 쿠키를 꿀꺽 삼킨 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먼은 저택 외부에 위치한 일반 진료소를 총괄하는 담당자였고, 그의 명을 받아 나를 찾아온 한스는 일반 진료소의 경호를 담당하는 경비병이었다.
“어머! 어머! 오라버님께서 환자를 살피시는 건가요. 꺄아! 어떡해! 너무 멋지실 것 같아요. 오라버니! 치료 도구는 지참하셨나요? 혹시 방에 있다면 제가 가져올까요?”
“아니. 괜찮아.”
내가 외부 환자를 맡게 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던 걸까? 라나는 고사리손으로 통통한 뺨을 감싸며 꺅 소리를 질렀다.
“치료 도구는 항상 지참하고 다니거든.”
“역시 오라버님! 빈틈이 없으셔!”
셔츠 안쪽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비단 주머니를 보여 주자 라나는 다시 한번 환호를 내질렀다.
“이거 몇 개만 가져갈게. 혹시 이따가 저녁 늦게 배가 고플지도 모르니까.”
방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거인, 아니 동거수(同居獸)를 위한 간식을 챙기는 걸로 진료소를 향할 준비는 모두 끝.
나는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라나와 나를 바라보는 한스를 향해 말했다.
“가죠. 환자가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 * *
“진료실에 들어오시기 전 환자의 인적 사항 및 병명은 다 파악하셨을 테니 제가 따로 말씀을 드리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도련님, 시작하시지요.”
“네.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잰걸음을 놀려 도달한 진료실.
난 진료실 특유의 기운을 한껏 느끼며 숨을 들이마셨다.
저택 내부 인사들을 치료해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외부 인사를 진료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만약 여느 때와 같이 저택 내부 인사를 치료하는 시간이었다면 앨먼을 향해 ‘혹여 부족한 점이 보이거든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저… 선생님, 여기에 계시는 꼬마 의원님께서 우리 아이를 봐주시는 것입니까?”
“왜? 불안한가?”
“아니, 불안하기보다는 우리 아이랑 몇 살 차이도 안 나 보이는 의원님이 치료를 하신다고 하시니….”
눈앞에 있는 젊은 부부는 아직 어린 티를 풀풀 풍기는 내가 자신들의 아들을 치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불안해 보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가 지도편달이 어쩌니저쩌니했다가는 이들의 불안함을 더욱더 증폭시킬 뿐이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네. 여기 계시는 이분은 현 가주님의 맏아들인 페이건 공자님이시니까.”
“에! 가주님의 아드님께서 직접 진료를 하신다구요?”
앨먼의 홀쭉한 뺨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에 젊은 부부의 눈동자는 화등잔만 해졌다.
에스페타라에서는 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버지와는 달리 섬사람들 대부분은 내 얼굴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래. 불안해 할 것 없으니 눈 크게 뜨고 지켜보기나 하세나. 우리 도련님께서 요 개구쟁이 꼬마를 어떻게 치료하시는지 말이야.”
“세상에나… 가주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아이를 직접… 아이쿠 이거 참 감사합니다요.”
“도련님, 아니 공자님. 부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앨먼은 강퍅한 생김새와는 달리 세심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설명에 부부의 얼굴에 가득했던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클라디우스 가주의 맏아들’이라는 직책에는 열두 살짜리 꼬마가 치료를 담당한다는 사실 정도는 가뿐히 눌러 버릴 수 있는 무게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어디 보자. 우리 꼬마 이름이 댄이라고? 그래. 몇 살?”
“이, 일곱 살이요. 의, 의사 선생님, 아니… 고, 공자님.”
“부르기 어려우면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없어.”
나를 향해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부부에게 가벼이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오늘의 진료 대상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너 개구쟁이구나? 나무를 타다 떨어졌다며?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아무 나무나 막 기어오르고 그러면 어떡해? 함부로 나무 같은 걸 타니까 이렇게 팔이 부러지는 거잖아?”
“도, 동생이 가지에 핀 꽃이 가지고 싶다고 해서. 그 꽃을 머리에 꽂아주면 예쁠 것 같아서 그런 건데… 우우….”
“동생? 여동생이 있어?”
“네. 우욱….”
클라디우스의 공자님에게 야단을 맞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안 그래도 울상이던 댄의 표정은 한층 더 침울해졌다.
“좋아. 원래대로라면 엄마 말을 안 듣고 위험한 곳을 기어 올라간 죄를 물어 아주 따끔한 맛을 보여줄까 했는데 어린 여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니 특별히 이번에는 정상 참작 하도록 하지.”
“정상… 참작이요?”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게 예뻐서 이번에는 특별히 하나도 안 아프게 치료해주겠다는 뜻이야.”
“정말요? 감사합니다. 도련님! 엄마! 아빠! 들었어? 도련님이 하나도 안 아프게 치료해 주신대요!”
‘하나도 안 아프게’라는 말에 댄의 동그란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난 그 틈을 이용해 꼬마의 부러진 팔뚝과 그 언저리를 꼼꼼히 어루만졌다.
‘다행히 뼈가 크게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네. 근육이 조금 찢어지고 혈관이 약간의 손상을 입은 정도니 별로 어려울 건 없겠어.’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 읽은 기록을 통해 부상을 입은 경위는 뻔히 알고 있음에도 구태여 다시 물은 건 댄이 지금 같은 표정을 짓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본격적인 치료를 수월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한 채 겁을 잔뜩 먹은 이 꼬마의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럼 치료를 시작해 볼까? 형이 하나도 안 아프게 금방 해줄 거니까 씩씩하게 참아야 돼. 알겠지?”
“네!”
호기롭게 대답을 한, 댄.
“우… 우우욱….”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댄의 표정은 다시금 울상이 되고 말았다.
샤라락.
고운 소리를 내며 펼쳐진 침 주머니, 그리고 그 안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무쇠 바늘이 동그란 눈에 확연히 들어온 것이다.
우우웅.
시선은 여전히 댄의 얼굴에 고정한 채 오른팔을 뻗었고 그러자 주머니 안에 잠들어 있던 바늘들이 공명음을 발하며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늘씬한 바늘을 타고 흐르는 황금빛 광채.
“호오.”
내가 앙겔루스를 운용하는 건 처음 본 앨먼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난 그 탄성을 귓가에 새겨넣으며 침울해진 댄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자, 팔뚝 한번 보자. 쭉 내밀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