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6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64)화(6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64)
짜아악.
“정말,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화창한 봄날, 따스한 햇살과 어울리지 않는 뾰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폴리다고스 외곽에 위치한 야외 공터.
아직 이른 시각임에도 공터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말 들어! 말 좀 들으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인형처럼 귀여운 이목구비를 한 소녀였는데 그녀의 손놀림은 그 깜찍한 외모와는 달리 매섭기 짝이 없었다.
짜악.
소녀의 손에 들린 마편이 춤을 출 때마다 날개 달린 비마(飛馬), 페가수스의 등이 움찔거리며 침울한 곡선을 그렸다.
“날개 펴! 날개를 펴란 말이야!”
찰싹.
“아가씨, 소인이 손을 써 볼 터이니 마편을 주시고 잠시만 물러서 계시겠습니까?”
페가수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견디다 못한 집사가 한걸음 나섰고 마편을 쥔 소녀, 오벨리언 마르커스는 씩씩거리는 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마방(馬房)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말들 상태가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어떻게 일곱 마리나 되는 놈들 중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들이 하나도 없냐고!”
“…죄송합니다 아가씨. 하지만 마방 관리자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아가씨께서도 어제 저녁에 확인하셨잖습니까? 일곱 마리의 페가수스가 아무런 문제 없이 활동하는 걸….”
“듣기 싫어! 아무튼 저 멍청한 놈들이 지금처럼 빌빌거리면 저놈들을 관리한 담당자는 호된 꼴을 보게 될 거야. 날 이렇게 망신시키고 그 치들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마편을 넘겨주는 와중에도 그녀는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잊지 않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어깨와 표독스러운 빛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눈동자.
극심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앙칼진 외침을 토해 버린 오벨리언은 팔짱을 낀 채 무능한 사용인들과 한심한 말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뭐야? 왜 저래? 페가수스는 나는 걸 정말 좋아하는 마수라 그러지 않았어? 그래서 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지면 곧바로 하늘을 난다며? 그런데 쟤네들은 아까부터 왜 바들바들 떨기만 하고 날 생각도 안 하는 건데?”
“나도 페가수스가 나는 모습이 그렇게나 멋지다는 말을 듣고 구경이나 한번 할까 하고 왔는데. 이래서야 어디 날개를 편 모습이나 볼 수 있겠어? 아씨, 나 시간 낭비한 거야.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저 덜떨어진 페가수스들 때문에?”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잠이나 잘걸. 괜히 귀한 시간만 낭비했네.”
페가수스의 예상치 못한 일탈 행위에 실망을 느끼는 건 마르커스 가문 사람들뿐만이 아니었고 그 사실이 오벨리언 마르커스를 더욱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빨리, 최대한 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들 하늘을 날게 만들어.”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아가씨, 저희가 여러 번 진단을 해 봐도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한 듯한데 이런 건 단기간에 교정 가능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등록 일정을 뒤로 미루시는 편이….”
“닥쳐.”
“아가씨!”
“닥. 치. 라. 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이런 추한 모습만 보인 채 등록을 미루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방법이….”
“일이 그렇게 꼴사납게 끝난다면 그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르커스 가문 전체가 망신을 당하는 거야. 이렇게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일 처리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도 당신들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벨리언은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마방 관리자에게 협박을 속삭였다.
문제의 발단은 그녀의 허영심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끝날 시 마르커스 전체의 망신이 될 거라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안 돼, 이래서는 절대로 안 돼. 안 그래도 입학식 날 망신을 당했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추한 꼴로 물러서라고? 절대로 안 돼!’
오벨리언은 핏물이 새어 나오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등록을 마친 일곱 마리의 페가수스가 하늘을 누비는 광경을 보기 위해 찾아든 수많은 관객들.
그녀의 시중을 드는 사용인들이 이틀 전부터 기숙사 곳곳을 누비며 ‘마르커스 가(家)에서 보낸 페가수스가 곧 등록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문만 내지 않았어도 관객들이 이곳에 모일 이유는 없었을 터.
즉 이곳에 모인 인파들은 사실상 오벨리언이 초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추태를 벌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움직여! 제발 좀 움직이란 말이야! 이 멍청한 말들아!’
사실 페가수스 등록을 위해 공터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오벨리언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려 일곱 마리나 되는 페가수스를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마르커스 가문의 막대한 재력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근 몇 번의 일로 사정없이 구겨진 자존심 또한 깔끔히 펴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터를 가득 메운 구경꾼들 중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늘 붙어 다니는 ‘제라르 마페이언’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다다랐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이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찰싹.
히이이히이잉.
하지만 그녀의 얄팍한 고양감은 페가수스들이 보여 주는 얼간이 같은 모습 앞에 사정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페가수스들이 날개를 펴게 만들기 위해 마방의 관리자와 집사가 달라붙어 최선을 다했으나 말들은 머리를 바닥에 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르커스 양, 준비가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거의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마르커스 양, 벌써 약속된 등록 시간에서 30분이 지났습니다. 준비가 이렇게 지연된다면 심사 또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페가수스들을 등록하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던 직원들의 재촉, 오벨리언은 곧 준비가 끝날 것이라 말했지만 준비상태가 영 미덥지 않아 보였던 직원들은 경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마르커스 양의 마수들이 실험국에서 요구하는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해당 대상은 교내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마르커스 양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서류심사가 통과되었다 한들 저 페가수스들이 마르커스 양의 지휘하에 완벽하게 통제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등록 허가 또한….”
“알아요! 다 알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란 말이에요!”
결국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오벨리언은 고함을 빽 내지르고 말았다.
“허허, 거참….”
그리고 철부지 아가씨가 보여 주는 치기 어린 행동에 직원들이 혀를 차고 있을 바로 그때.
삐이이이익.
공터에 모인 모두의 귀를 울리게 만들 높고도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늘? 저쪽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날개를 접은 채 빌빌거리는 페가수스는 평범한 준마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인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일말의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펄럭.
“…저건 또 뭐야? 무슨 새가 저렇게 커?”
“새가 아니잖아. 저거 혹시 설마 그, 그리폰? 아악 진짜네! 진짜 그리폰이야!”
“그리폰이 나타났다! 당장 실험국 교수님들께 연락드려!”
한데 유려한 선회비행을 하며 공터로 접근하는 검은 점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사람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실망감은 한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그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리폰이라는 존재는 실망감이라는 단어와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으아! 이쪽으로 날아온다!”
높게 솟아오른 그리폰이 태양을 가리며 그 커다란 날개를 한껏 펴자 사람들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고, 그 순간 ‘페가수스 구경을 위해 모인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있는 힘이나 위험도, 조련의 난이도나 희소가치 등등 무엇을 따져 봐도 그리폰은 애초에 페가수스 따위와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다소 거칠게 평가하자면 페가수스는 비행이 가능하고 일반 종들에 비해 강한 체력과 지구력을 가진,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말에 불과.
그에 반해 그리폰은 결전 병기라 칭할 만한 힘과 현인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그야말로 하늘의 제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최고위 마수였다.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괴물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마수도 당해 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위 마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관객들은 물론 직원들마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그리폰 움직임이 야생의 움직임이 아닌 것 같은데, 통제를 받고 있는 것 같아!”
“통제? 설마? 물론 폴리다고스 부지 내부에 그리폰이 서식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 그리폰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로 알고 있는데….”
“그럼 팩셰르 국장님께서?”
“바보야! 실험국장님이 이 시간에 여기에 왜 오시겠냐! 그리고 실험국장님은 마수에 탑승하시는 것 자체를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거 몰라?”
그리폰의 등장 배경을 놓고 벌어지는 갑론을박.
“잠깐! 저 그리폰의 등 뒤에 누가 타고 있는 것 같은데?”
숨 가쁘게 벌어지는 토론의 장 한복판에서 유독 눈이 좋은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고.
“저, 정말이네. 진짜 뒤에 사람이 타고 있잖아?”
“저 등에 탄 남자가 입고 있는 옷, 저거 학생복 아니야? 색깔은… 그러니까… 뭐야, 1학년?”
최고 고도까지 치솟아 올랐던 그리폰이 고도를 낮추며 접근을 함에 따라 그리폰 기수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단서가 늘어났다 하여 놀란 가슴이 진정을 찾거나 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리폰이, 그 도도한 창공의 제왕이 누군가를 등에 태운 채 학사 구역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리폰 기수의 정체가 1학년이라니.
관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리폰의 비행을 멍하니 바라봤고.
펄럭.
카아악.
마침내 그리폰은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착륙을 성공했다.
“그래 그래, 수고했어.”
그리폰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기수의 손.
그리폰의 턱을 쓰다듬어 주기 위해 잠시 아래로 향했던 손은 다시금 위로 향했고, 그리폰 기수는 경쾌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제라르.”
“…!”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그때.
그리폰이 모습을 보인 이래로 줄곧 창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오벨리언이 멍청한 목소리로 기수의 이름을 불렀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 * *
“어… 그러니까 지금 이 그리폰을… 그러니까….”
“아카이드.”
“아, 네 그러니까 이 아카이드라는 그, 그리폰을 등록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실험국 사무실에 문의를 했더니 서류심사는 약식으로 진행해 줄 테니 우선 이곳으로 이동해 교내 진입 허가 등록을 받으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에 마주한 터라 아직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등록 담당 직원은 고개를 돌려 오벨리언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
그곳에는 그가 기대했던 그대로의, 그러니까 열이 받아 까무러치기 직전이라는 표정의 아가씨가 있었고.
‘킥킥.’
그 모습에 직원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페가수스 등록을 위한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오벨리언 마르커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생떼를 썼다는 건 실험국 직원들 사이에서 이미 짜한 소문이었다.
심사 과정 내내 자신의 가문을 들먹이며 정당한 절차를 밟는 직원들을 쪼고 또 쪼아대던, 정말이지 오만방자한 오벨리언.
서류심사를 약식으로 끝내 주고, 지금 이 자리에서 등록이 진행되는 중이니 서둘러 가보라는 조언까지 해 준 조교수의 친절에는 오벨리언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키킥, 샐리 조교수는 어지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까지 나온 걸 보면 그 친구도 저 되바라진 아가씨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어지간히 망치고 싶었던 모양이네.’
그리고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샐리 조교수의 계략은 그야말로 멋지게 먹혀들어 갔다.
“세상에… 1학년이 그리폰 라이더라니….”
“그리폰 라이더 엄청 어려운 거 맞지?”
“당연하지. 테이밍을 전공으로 하는 선배님들은 물론 수십 년간 실전을 뛴 테이머들도 길들일 엄두를 못 내는 게 그리폰이야. 저 덩치들, 자존심은 더럽게 높은 데다 머리는 또 장난 아니게 똑똑해서 테이밍 기술이 아예 안 먹힌다고. 또 마나를 다루는 능력까지 있어서 강제 각인도 거의 불가능해.”
“그럼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대체 무슨 수로 저 괴물의 등에 올라탄 거야? 수십 년 경력의 전문 테이머도 못 하는 거라며? 그런데 쟤는 전문 테이머도 아니잖아.”
“그, 그건 나도 잘 몰라. 이, 이제부터 알아 봐야지.”
“무슨 수로 알아볼 건데?”
“페, 페이건 클라디우스한테 물어봐야지 뭐. 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저 괴물을 함락시킨 건지.”
공터에 모인 구름 인파의 시선은 이미 페이건과 그가 타고 온 그리폰에 고정된 지 오래.
“그런데… 우리 오늘 여기 왜 모였지? 원래 여기 와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내용이….”
“아 씨! 뭐기는 뭐야, 마르커스 가문의 페가수스였잖아.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진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 그리폰 움직임이나 잘 봐 둬. 그리폰은 애초에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마수야. 이 정도 지근거리에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건 엄청난 기회라고!”
대(大) 마르커스 가문에서 찬란한 부(富)를 뽐내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하면서까지 보내 준 일곱 마리의 페가수스는 아카이드의 위풍당당한 모습 앞에서 먼지처럼 하찮아져 있었다.
“험험!”
웃음을 참기 위해 직원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마르커스 양, 아무래도 심사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군요. 마르커스 양께서는 아직 심사를 받을 준비가 덜 된 것 같으니, 클라디우스 군이 요청한 심사를 우선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
“대답이 없다는 건 동의하겠다는 걸로 간주하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직원은 정말이지 경쾌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클라디우스 군의 파트너 등록 심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시지요, 클라디우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