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7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0)화(7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0)
빠각.
빠가각.
빠가가각.
줄줄이 늘어선 십여 개의 수련용 인형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렸다.
수련용 인형 입장에서는 비극임에 분명한 이 참사를 연출한 건 한 자루의 기형검.
우우우웅.
그 휘어짐의 각도며 손잡이를 잡는 방식까지 도무지 낯설기만 한 푸른 빛깔의 검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다.
“…이 시각에 무슨 일이지? 내가 수련을 방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아직 성이 차지 않은 건 검의 주인도 마찬가지.
꽤나 오랫동안 격하게 움직인 듯 어깨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음에도 남자는 만족하기는커녕 수련장에 모습을 드러낸 불청객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바빴고.
“네가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곳에 오는 일도 없었겠지.”
아찔하리만치 관능적인 디자인의 로브를 걸친 불청객 또한 흉부를 한층 강조하는 자세로 팔짱을 끼며 답했다.
“무스카, 너 오늘 페이건을 만났다며?”
“그래.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내가 별도의 지시 사항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거 잊었어?”
“기다렸어, 그것도 충분히. 하지만 네가 엉큼한 수작을 부릴 준비에만 몰두할 뿐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으니까 나선 거야.”
아일리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건대 대화가 길어질 것을 직감한 무스카는 벗어 놓은 상의를 걸쳤다.
그 출신 성분상 육신을 노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무스카였지만, 웃통을 깐 채 이 음흉한 계집을 상대할 마음은 도무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그냥 인사만 나눴을 뿐,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나! 대체 언제부터 우리 멍멍이 군에게 걱정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한이 생겼지? 잊었어? 현장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건 네가 아니라 나라는 걸?”
시시각각으로 각도를 바꾸는 도톰한 입술이나 손동작은 여성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아일리의 눈동자는 어느새 싸늘해져 있었다.
“현장 지휘관씩이나 되니까 지금껏 너의 미적지근한 방식을 참아 준 거야. 지휘권이 나에게 있었다면 한참 전에 내 방식대로 승부를 봤어. 너야말로 잊은 모양인데 ‘만월의 늑대’는 자신보다 약한, 비루한 자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아.”
하지만 그녀의 싸늘한 눈동자에도 불구하고 무스카의 기세는 움츠러들 줄 몰랐다.
“나를 수족처럼 부리고 싶다면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돼. 물론 그 과정에서 네 하얀 모가지에 내 송곳니가 쑤셔 박힐 수 있다는 각오 정도는 해야겠지만.”
“여기서 내가 발끈한다면 그거야말로 우리 멍멍이 군이 노리는 바겠지?”
무스카는 나름 회심의 일격을 날렸지만 아일리는 코웃음 한 번으로 늑대의 송곳니를 받아넘겼다.
“그나저나 오늘도 수행 중이었나 보네. 맛있는 것도 안 먹어 술도 안 마셔,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아이들도 마다한 채 수행 삼매경이라니. 무스카 군은 일족의 후계자보다 차라리 수도승이 되는 게 나을 뻔했어.”
날카로운 파편이 된 채 굴러다니는 수련용 인형을 집어 들며 아일리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참 신기해. 이렇게 열심히 단련하는데 도대체 왜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이기지 못하는 걸까?”
으득.
이 건방진 계집에게 모처럼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무스카의 낯빛이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끔찍한 괴물인 요아힘 벤제르센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졸업 전까지 같은 학생 신분인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상대로는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 봐야 할 텐데.”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스카 벨타지온을 가장 강력하게 자극하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유리안 알렉세예브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는 아일리는 무스카의 폐부를 헤집어 놓는 날카로운 공격을 이어 나갔다.
“뭐, 그래도 아직 졸업까지는 3년이나 남았으니까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을지도. 무스카 군, 내가 그 열정을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걸 부디 잊지 말아줘.”
“아일리 바스티아, 네년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똑똑히 기억해 둬….”
“지금부터 하는 말은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마지막 경고야. 그러니까 그 쫑긋한 귓구멍을 활짝 열고 똑똑히 새겨듣도록 해. 알겠어? 무스카 벨타지온.”
대륙 곳곳에 몸을 숨긴 채 암약하는 ‘원’의 구성원들.
원의 뿌리가 워낙에 깊고 은밀했기에, 원 안쪽에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후계자들이 제법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후계자들을 제치고 두 사람이 폴리다고스에 ‘잠입’한다는 중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두 사람이 지략과 무력이라는 각각의 장기 부분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지시 없이 무단으로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 접근한다면 그 즉시 상부에 항명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고를 할 거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전시 상태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감히 지휘관의 판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장수가 있다면 그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
“….”
“네가 늑대 무리 사이에서 무슨 대접을 받았는지 몰라도 이곳 폴리다고스에서는 내 장기말에 불과해. 그러니 주제를 모르고 깝치는 건 이쯤에서 그만 둬.”
하지만 두 사람을 선발한 상층부 입장에서는 참으로 애석할 것이다.
공동 임무를 부여받은 지 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원에 속해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물과 기름과도 같은 ‘마녀 – 라이칸슬로프’ 사이의 반목을 극복해 내기에는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했던 것이다.
“자, 서로 간에 상처를 주는 말은 여기서 끝. 그런데 이게 보니까 우리 무스카 군 가슴 근육이 참 예쁘네.”
자기만의 승리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아일리는 무스카의 곁에 다가와 상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자신을 씹어먹고 싶다는 표정을 한 무스카와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말했다.
“아이참, 이런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이 늠름한 근육에 키스라도 찐하게 해 줬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워.”
“….”
무스카는 당장이라도 아일리를 찢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원통하다는 눈빛을 했지만 아일리는 기어코 손을 뻗어 조각상과도 같은 가슴 근육을 어루만졌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내일도 할 일이 많으니 무스카 군도 너무 늦게까지 무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당부 아닌 조롱을 남겨 놓은 채 아일리 바스티아는 예의 그 살랑거리는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고.
콰아아앙.
‘마녀’가 모습을 감춘 지하 수련장에서는 ‘늑대의 기형검’이 토해 내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질 뿐이었다.
* * *
펄럭.
아카이드의 웅장한 날개가 펴지는 소리를 들으며 녀석의 등에 탑승을 마쳤다.
눈 아래로 보이는 건 아직 푸르스름하기만 한 새벽 풍경.
―후계자님, 후계자님! 그럼 우리들 지금부터 눈보라 치는 산속을 날아다녀야 하는 건가요! 와, 너무 기대돼요. 저 눈을 엄청 좋아하는데 요 몇 년간 자색 수림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눈놀이를 통 못 했거든요. 히히! 설산에 가면 눈 속에 머리도 파묻어 보고 떨어지는 눈도 냠냠하고 받아먹어야지. 아 참! 후계자님,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뭔지 알아요? 두구두구두구두구… 짜잔! 바로 설원의 눈표범 아카이드랍니다.
‘어… 결과적으로는 눈보라 속을 날아다녀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평시 비행이니까 흥분을 조금만 가라앉혀줘. 그리고 그리폰인데 눈표범이라니, 그 별명 그대로 괜찮은 걸까? 어딜 어떻게 봐도 그리폰이 눈표범보다는 훨씬 더 상위종 마수잖아.’
―히힛! 그만큼 내가 눈 속에서도 날렵하고 믿음직스럽다는 뜻이죠. 아무튼, 설령 눈 폭풍이 몰아쳐도 내가 씩씩하게 나아갈 거니까 후계자님은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우리 그리폰은 눈과 추위에 모두 강하거든요.
‘그럼 그럼, 네가 믿음직스럽다는 건 나도 잘 알지.’
아카이드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나는 이번 모험의 일정표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목적지인 폴카산은 폴리다고스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가야 하는 지점에 위치했다.
도보로 이동한다면 두 달, 마차를 타고 밤새 내달리면 일주일, 그리폰을 타고 날아가면 한 시간.
다행히도 아카이드라는 든든한 조력자 덕분에 일정이 촉박해질 일은 없었다.
‘일단 폴카산 인근 마을로 가서 설산 노숙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과 식료품을 현지조달 한 후 다시 아카이드의 등에 올라 산 정상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상이 붉게 물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미치광이 노인네가 채집해 오라고 한 약재를 채취하면 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설산을 들쑤시고 다녀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딱히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는 일정.
“그럼 가 볼까!”
“페이건, 이거 가져가서 먹어.”
마지막 점검까지 마친 내가 아카이드에게 출발 신호를 내리려던 그때, 나를 배웅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옥상에 올라 있던 제라르가 꾸러미를 건넸다.
“레몬 꿀 절임이랑 따뜻한 홍차야. 꿀 절임은 어젯밤에 급하게 만드느라 아직 맛이 조금 덜 들었어. 페이건이 폴카산에 가야 한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미리미리 준비했을 텐데.”
“어쩔 수 없었어. 이게 어제 오후에 갑자기 생긴 일정이라서. 그런데 너도 참 부지런하다. 저녁 먹을 때 말해 줬는데 고작 하룻밤 사이에 이걸 다 준비했다고?”
어젯밤 난 지나가는 말처럼 내일부터 며칠간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줬다.
그래도 명색이 폴리다고스에 와서 사귄 1호 친구인데 이 정도 소식은 전하는 게 예의일 듯싶어 말을 했을 뿐인데 이 녀석은 길 떠나는 나를 위해 밤사이에 또 부지런을 떨어 준 것이다.
“별것도 아닌데 뭐.”
“별것도 아니긴, 레몬도 꿀도 홍차도 다 목감기에 좋은 거잖아. 이런 선물을 기대하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고맙다 잘 먹을게. 사실 나 레몬 꿀 절임 되게 좋아해.”
제라르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보온병과 절임 용기가 담긴 보따리를 소중히 갈무리했다.
제라르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물건들을 만지고 있으려니 마음까지 후끈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간다. 늦어도 일요일 저녁에는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밥 잘 먹고 다녀와.”
“응! 페이건도 몸조심하고 잘 갔다 와.”
“아카이드, 출발!”
―네 후계자님, 그럼 비행 시작합니다아!
펄럭.
아카이드가 본격적인 날갯짓을 시작하자마자 외벽 사이를 파고드는 새벽바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치 강력한 상승기류가 휘몰아쳤다.
둥실하고 떠오르는 아찔하고도 황홀한 이 감각.
순식간에 높아진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뜬 그 순간, 아카이드는 다시 한 번 허공을 박찼고.
슈아아앙.
“자아알 다녀와아아!”
양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제라르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타닥타닥.
“아가씨, 이제 내일이면 폴카산 인근 마을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어머! 그래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도가 빠르네요. 전부 다 아저씨들이 부지런히 달려 준 덕분이에요.”
방벽처럼 배치해 놓은 마차들과 그 안쪽 공간을 지키며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눈제비 호’ 일행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마주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실 저 기대가 커요. 출발 전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폴카산은 빙결 마법을 주특기로 하는 마법사라면 꼭 가봐야 하는 장소라고.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산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내일이면 드디어 폴카산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저… 그런데 말입니다. 아가씨,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무슨 문제요?”
“당초 저희가 일정을 잡을 때만 해도 눈 폭풍을 정면으로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냉기 폭주의 주기가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찾아오는 바람에 내일을 기해서 이삼일간 정말이지 살인적인 눈 폭풍이 몰아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누구의 잘못인지와는 상관없이 아가씨의 기대가 흐트러질지도 모른다는 점이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가씨께서 당초 예정대로 폴카산 정상에 오르신다면 준비를 정말이지 단단히 하셔야 할 것만 같습니다.”
“괜찮아요. 오히려 폭풍이 절정이라면 산정상의 붉은빛 또한 진해질 테니 난 오히려 반가운걸요?”
하지만 선장의 우려와는 달리 아가씨는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아가씨는 가냘프기만 할 것 같은 외관과는 달리 잔근육이 탄탄하게 붙은 왼팔을 굽혀 보이며 말했다.
“전 다른 사람도 아닌 ‘빙하의 여왕 로레인’의 비전을 이어받은 ‘카밀라 엘리시온’인걸요. 냉기는 저의 가장 친구나 마찬가지니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러니 아저씨들도 걱정하실 필요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