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7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3)화(7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3)
“난, 폴카산에 기원을 올리기 위해 온 순례객이에요.”
아크 어스웜을 동반한 소년의 등장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걸까?
당황한 카밀라는 얼음 정령이 미쳐 날뛰는 이 가혹한 시기를 콕 집어 폴카산 정상으로 순례를 왔다는 얼토당토않은 답변을 하고야 말았다.
“마찬가지입니다.”
한데 재미있는 점은 카밀라의 엉성한 대답을, 까만 머리 소년이 의심하는 듯한 기색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순례를 위해 이곳에 왔던 어디가 살짝 맛이 가서 왔던 내 알 바는 아니지.’라는 표정이랄까?
“오늘 길이 제법 험했을 텐데 어디 다치거나 한 데는 없나요?”
“아 네, 다행히도 몸에 문제는 없어요. 초면인데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이군요. 어…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그곳에 계속 서 있을 예정입니까?”
낯선 장소에서 만난 순례자들 간 최소한의 예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이 의무를 다한 흑발 소년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톡톡톡.
워낙 눈발이 거센 탓에 본거지 밖으로 끌려 나온 아크 어스웜의 껍질에는 어느새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괴물의 더듬이와 소년의 흑검이 맞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소리가 유독 삭막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이놈을 해체할 생각인데 아무래도 껍데기가 워낙에 딱딱하다 보니 파편이 튈지도 몰라요. 여기 뻗어 있는 이놈의 이름은….”
“아크 어스웜, 대형 몬스터 중에서도 위험한 걸로 손꼽히는 어스웜이 강화된 종이죠. 일반 어스웜이 사막 등 건조한 지대에 서식하는 것과는 달리 아크 어스웜은 설산을 포함한 저온 지대에 둥지를 틀어요. 그리고 혹한의 기운이 지배하는 가혹한 환경에서 성장을 하다 보니 일반 어스웜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죠.”
“잘 알고 있네요. 그럼 요놈의 껍데기 안에 있는 살점이 워낙에 흐물흐물한 터라 해체 시에 그 살점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 십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요?”
따악.
눈발 속에서도 서늘한 빛을 발하는 소년의 흑검이 다시 한 번 괴물의 껍데기 위로 내리쳤다.
말을 마친 소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는데 그 일련의 동작에는 ‘잘 알고 있네. 그런데도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웬만하면 자리 좀 비켜주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서벅서벅.
펄럭.
카밀라가 파편의 영향 범위 바깥으로 걸음을 옮긴 걸 확인한 소년은 큼지막한 모포를 둘러 아크 어스웜의 파편 세례로부터 몸을 가렸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 뒤쪽에 볼일이 있다면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녀의 배려에 간단한 인사를 전한 후 곧장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콰득.
갑각류의 껍질을 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크 어스웜의 표피를 파고 들어간 흑검.
자신의 몸집보다 네다섯 배는 더 큰 괴물을 토막 내고 해체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무척이나 능숙하게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유독 날카로운 부분이 많아 거슬리는 대가리를 잘라낸 후 몸통을 껍질 마디별로 분리를 하고, 다시 몸통에 돋아난 잔가시와 다리를 쳐내고.
서걱서걱.
마치 솜씨 좋은 육고기 정형사가 고깃덩어리를 분할 하듯, 소년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모습으로 아크 어스웜을 토막 내 갔다.
“저… 그런데 이 시기에 폴카산에 오르는 건 위험하다는 말 못 들었어요?”
“네?”
“위험하잖아요. 이렇게 눈보라가 거센데, 일행도 없이 혼자. 혼자 올라온 거 맞죠?”
“하!”
그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보던 카밀라가 던진 질문.
카밀라의 염려 아닌 염려에 소년은 잠시 칼질을 멈춘 채 탄성을 터뜨렸고, 이내 소년의 입술 사이로 까만 머리카락과는 명백하게 대조되는 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미안합니다, 웃으려고 한 건 아닌데. 그리고 걱정해 준 것도 고마워요. 그런데 홀로 여기까지 도착했다는 점에서 나와 별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분한테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봐요! 나는 말이죠….”
“그나저나 참 예쁜 복장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성별의 역할을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남자. 그리고 귀하는 여자. 지금 상황에서 굳이 누군가가 걱정을 해야 한다면 그 역할은 내가 맡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흐, 흐음.”
합당한 지적에 카밀라는 헛기침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년의 말마따나 자신의 복장은 설산에 어울리지 않는 우아함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카밀라가 폴카산을 등정하는 건 출항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기에 마탑 소속 재단사들은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그녀의 방한복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카밀라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충족하는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방한복을 입은 채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눈보라 치는 산 정상’이라는 황량한 풍경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탓에 카밀라는 멋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제3자가 이 상황을 본다면 카밀라는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욕심이 앞서 주변 환경에 적절하지 않은 의복을 착용한 철부지로 보일 터.
반면 소년은 투박하고 거친 외투와 여러 겹으로 덧댄 방한용 셔츠라는, 그야말로 혹한에 안성맞춤인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카밀라의 걱정은 다소 주제넘은 지적이라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뭐지, 이건?’
카밀라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린 채 시선을 고정했지만 소년은 그녀의 관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앞의 작업에 몰두할 뿐이었다.
‘대륙에는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많은 걸까?’
아주 어릴 적부터 워낙에 대단한 장소에서 교육을 받아온 터라 카밀라는 내심 자신하고 있었다.
설령 폴리다고스에 가더라도 자신이 충격을 받을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서걱서걱.
쿵쿵쿵.
한데 그 자신이 무색하게도 폴카산 정상에서 만난, 정체 모를 소년의 칼질에서는 자신을 움찔하게 만들 정도의 박력이 느껴졌다.
“잠깐만요! 그 아크 어스웜, 수컷인가요 아니면 암컷인가요? 아크 어스웜은 대부분 암수 한 쌍으로 움직여요. 그러니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요. 언제 나머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요.”
잠시 후, 연속된 칼질의 압박감에서 겨우 벗어난 카밀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조언을 건넸다.
원래대로라면 아크 어스웜의 시체를 꿴 채 걸어 나오는 소년을 보자마자 해 주고 싶은 조언이었건만,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아 이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
“지하의 아크 어스웜이 한 마리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실 그 아래쪽에 한 마리가 더 있을 가능성이 커요. 한 쌍의 아크 어스웜은 12시간을 주기로 교대를 하는데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며 보초를 서는 동안 나머지 한 마리는 깊은 지하에 들어가 양분을 섭취하거나 휴식을 취하다가….”
“이상을 감지한 나머지 한 마리가 신호를 보내며 곧바로 지하에서 몸을 돌려 침입자를 협공하지요.”
“흐흐흠,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네, 어쨌거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방심한 적이 없으니 순례객께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거걱.
마침내 가해진 마지막 칼질, 소년은 덩그러니 남은 흉물스러운 대가리를 흑검으로 꿰어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놈은 수컷입니다. 그리고 이놈을 잡기 위해 저기 밑으로 내려갔을 때 확인했습니다. 이전번 교대가 이루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약 9시간 정도 전이라는 걸 말이죠.”
“그걸 어떻게….”
“흙이 파헤쳐진 정도와 냉기에 노출된 토사 표면의 변화를 확인하면 대충 각이 잡힙니다. 그리고 이놈이 암컷에게 위험 경보를 보내기 전에 사냥을 완료했으니 암컷은 지금쯤 자기 파트너가 이 꼴이 된 것도 모른 채 양분을 섭취하기 바쁠 거예요.”
“…!”
안 그래도 커다란 카밀라의 녹색 눈동자가 한층 더 커다래졌다.
아크 어스웜, 지하 구덩이에 몸을 숨긴 놈을 사냥하는 게, 그것도 경보를 발령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처리하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하, 하지만 어쨌거나 암컷 어스웜이 세 시간 후에는 지상으로 올라올 테니 그에 따른 대비를….”
후두둑.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소년이 어느새 머리카락 위에 쌓여 버린 얼음 조각을 털기 위해 고개를 내젓는 걸 본 순간 카밀라는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눈가루를 거칠게 털어 내는 소년의 손동작이 꼭.
‘알고 있어,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다 알고 있으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지켜보기나 해.’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세 시간. 뭐 그 정도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는 바입니다.”
경계심을 품은 채 마주한 첫 만남 이래 처음으로 소년의 눈동자가 카밀라를 향했다.
‘내 볼일을 다 마치고 나니 비로소 당신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라는 의도를 감추지 않은 채 소년은 그녀를 살폈고.
꿀꺽.
카밀라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이 정체 모를 소년이 무섭다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의외성을 머금은 사람들이 내뿜는 특유의 오러가 그녀를 움찔하게 만든 것이다.
달가닥.
소년은 동굴 입구에 기대어 놓은 큼지막한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뒤적거렸고, 잠시 후 그 손에 들려 모습을 드러 낸 물건을 확인한 카밀라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괭이랑… 호미?”
여러 번 봐 온 터라 익숙하지만, 작금의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
하지만 소년은 ‘이 정도 부조리야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표정을 한 채 괭이와 호미를 이용해 눈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 옆구리에는 큼지막한 채집망이 매달려 있었다.
“저기 세 시간 뒤에 잔뜩 화가 난 아크 어스웜 암컷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분명히 그랬죠. 아, 난 입구에서 볼일이 끝났으니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들어가도 됩니다. 물론 상황이 이 모양이니만큼 들어가지 않는 편을 추천하는 바이지만.”
‘세 시간의 여유’와 ‘잔뜩 뿔이 난 아크 어스웜’, 보통 사람이라면 후자에 더 집중을 하기 마련이겠지만 아무래도 저 괴상한 소년에게는 전자가 더 우선인 것 같았다.
세 시간이라는 여유를 그냥 놀릴 수 없다는 듯 소년은 꼼꼼한 손놀림으로 채집 작업에 들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밀라는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를 풍겨 놓고 이제 와서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재료를 채취한다고?’
토각토각.
‘흐음… 근데 잘할 수 있으려나. 보아하니 사냥에는 제법 능숙한 것 같지만 사냥과 채취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파샥파샥.
‘어! 저건 외눈살이 안개풀이잖아? 굉장히 예민한 약초라 채취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조금이라도 상하게 한다면 그 순간 안개풀의 효용성은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진데 잘할 수 있을까?’
투둑투둑.
‘흐, 흐응. 이 정도로 깔끔한 채취 및 보관이라니 제법이네. 하지만 지금 만지고 있는 두풀라 나무 열매는 더 취급이 까다로운데 잘할 수 있으려나?’
당황했던 것도 잠시, 약초를 채취하는 소년의 표정이며 움직임이 워낙에 진지했던 터라 카밀라는 자신도 모르게 작업 과정에 집중하고 말았다.
그리고 소년의 손길이 채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약초만 골라 향할 때는 나름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크 어스웜 사냥에서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부전패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초 채취 관련해서는 자신이 우위에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냥과 채취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고, 카밀라는 어릴 때부터 우수한 스승님으로부터 전 분야에 걸친 전인(全人)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재였으니까.
‘뭐야? 왜 저렇게 잘해?’
하지만 그녀의 다소 얄팍했던 자존감은 오래 지나지 않아 파사삭 부서지고 말았다.
약초의 탐색, 발견, 채취, 보관까지.
채집에 필요한 전 과정에 걸쳐 소년이 보여 주는 솜씨가 그야말로 완벽했던 것이다.
잔뿌리 하나하나, 잎사귀 한 올 한 올을 요령 좋게 다루는 손놀림을 보며 카밀라는 이 소년이 이론과 실전, 양 측 모두에 능한 인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스승님께서는 폴리다고스에 간다고 해도 나보다 뛰어난 인재는 좀처럼 찾기 힘들 거라고 하셨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저런 사람을 만난다고? 나… 어쩌면 뛰어난 인재도 뭣도 아닌 거 아닐까?’
그렇게 카밀라가 하늘 같은 스승님의 지엄하신 말씀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구심을 품게 된 그때.
“아까 말한 세 시간 경과하기 10분 전입니다.”
줄곧 쪼그려 앉아 채취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이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돌아봤다.
갈무리된 괭이와 호미, 그리고 단단하게 조여진 채집망까지.
아무래도 목표로 하던 작업을 모두 마친 듯했고, 두 사람이 마주한 이래 처음으로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은 채 소년은 말했다.
“거기에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요?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