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7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7)화(7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77)
또각또각.
힐긋힐긋.
매끄럽게 깔린 대리석 복도 위로 굽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학년의 고하를 불문하고 폴리다고스 재학생들은 굽이 높은 신발을 착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창 꾸미기를 좋아할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이 수두룩하게 기숙하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학생들 대부분은 전투와 관련이 있는 배움에 몰입하고 있었기에 굽이 높은 신발은 선호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 그래도 매끄러운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 주는 힐은 한층 더 시선을 잡아끌기 마련.
“안녕, 오늘도 열심히네.”
“어? 아일리, 여기는 어쩐 일이야?”
물론 힐을 신지 않았다 하여 발소리의 주인공이 이목을 끌지 못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굽이 높은 구두는 여인의 화사함을 아주 조금 북돋아 주는 향신료에 불과할 뿐, 구두 따위의 조력 없이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혹시 나한테 온 연락이나, 접견 요청이 없을까 해서. 한번 확인해 줄 수 있을까?”
“면회 요청? 내가 금방 찾아볼게. 그런데 갑자기 연락은 왜? 선배님들이나 하급생들이랑 만날 일 있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헤헤.”
은근슬쩍 개인사를 캐물어 오는 동기를 향해, 아일리 바스티아는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기 혼자 친해졌다고 생각해 선을 넘는 동기 남자애가 고깝기는 했지만, 이 정도 일로 불쾌함을 드러내기에는 그녀의 가슴속에 도사린 능구렁이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잠깐만, 어디 보자. 어… 아일리, 이틀 전에 와서 확인한 걸로 되어 있는데 맞아?”
“응. 아마 그쯤에 왔다 갔을 거야. 그때는 네플 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난주부터는 나랑 네플이 교대로 오후를 담당하고 있거든. 아깝다, 그때도 아일리를 맞이한 게 나였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호호.”
사무 데스크를 담당하는 동기와 마주한 아일리는 예의 그 웃음을 흩뿌렸다.
폴리다고스 6학년쯤 되다 보면 준성인 대우를 받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 개인사와 관련이 있는 업무는 교직원 측이 아닌 학생 자치회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타 학년 측에서 들어오는 접견 요청은 대표적인 개인 사무에 해당했기에 자치회 소속 학생들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 새로 들어온 접견 요청이나 서신은 없는데.”
“…그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아일리, 혹시 새로운 소식이 있다면 내가 알려 주러 가도 될까?”
“아니야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안 그래도 바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번거로운 부탁을 해.”
“난 정말 괜찮은데… 헤에.”
아일리의 손사래에 따라 움직이는 흉부 반동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터라 남학생은 ‘그래?’와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사이, 그녀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내며 번득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웅, 아직 온 소식이 없구나.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수고오.”
“응! 아일리, 내가 아일리 앞으로 들어오는 서신은 특히 집중해서 살피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나! 자상하기도 하지. 내가 이래서 톰슨 군을 좋아하는 거야.”
“조, 좋아한다니. 아일리도 농담을 잘한다니까.”
그렇게 자치회의 순진한 청년 격투가를 한바탕 홀려 버린 후 그 하늘하늘한 자태를 뽐내며 자신의 방으로 복귀한 그 순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일리의 분홍빛 입술 사이로 하늘하늘과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으르렁이 터져 나왔다.
부우욱.
“후우….”
드레스의 단추를 거칠게 뜯어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람의 숨결에서 직접적으로 한 번, 그 마페이언인지 뭔지 하는 안경잡이 꼬마를 시켜 또 한 번.
무려 두 번씩이나 싸인을 보냈는데 무반응이라니.
당초 예상했던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은커녕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이토록 건방지고 되바라진 꼬맹이를 보는 건 처음인지라 그녀 역시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듣자 하니 그리폰을 타고 아주 난리도 아니라던데. 그렇게 잘나가고 계시니 이 아일리 바스티아는 눈에도 안 들어 온다, 뭐 그런 거니?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으드득.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채 삭히지 못한 감정이 어금니의 떨림을 타고 새어 나왔다.
며칠 전 무스카 앞에서는 내심 대담한 척을 했지만 사실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반응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던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 정성을 기울여 추파를 던졌는데, 그것도 이제 막 1학년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의 반응이 이리도 초연하다니.
지금껏 교직원, 선배, 동급생, 후배 등 그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매혹의 포로(혹은 노예)를 만들어 왔던 그녀로서는 작금의 상황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그래, 우리 콧대 높은 클라디우스의 자제께서 이렇게 나오시겠다면 내가 한 번 더 발품을 팔아드리는 수밖에.”
머리끝까지 올라온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아일리 바스티아는 한 층 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충 걸치고 있던 드레스를 벗어 던진 후,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눈부신 나신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이번에는 이걸로 할까?”
꼼꼼한 동작으로 확인을 끝낸 후, 아일리 바스티아는 일전에 페이건을 만났을 때보다 한층 더 과감해진 드레스를 집어 들었다.
파아앗.
드레스를 입은 후 가벼운 바람을 일으켜 드레스 자락을 흩날렸다.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영역까지 파인 슬릿.
‘좋아.’
단 한 번도 자신의 기대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육신을 칭찬한 후 아일리는 1학년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 사람이 아일리 바스티아 선배 맞지?”
“응. 와아… 뭐 기분 좋은 일 있나? 오늘따라 유독 더 화사하시네.”
거리로 나서는 순간 습관처럼 따라붙는 수군거림.
이제는 대수로울 것도 없는, 질시와 찬사가 뒤섞인 말의 파도를 뚫고 도착한 1학년 기숙사 접견 신청실.
“어머! 이게 누구야!”
도도한 발걸음으로 들어선 아일리가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설마 이 인물을 여기서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폴리다고스 내의 유명세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눈앞의 이 ‘남자’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유리안, 그동안 잘 지냈니? 우리 제법 오랜만이지?”
살가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서는, 6학년 최고의 미녀를 향한 유리안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차가움이 맺혀 있었고.
“바스티아 선배, 선배가 이곳에는 어쩐 일이죠?”
유리안이 아일리 바스티아를 부르는 선배라는 호칭의 끝에는 ‘님’자가 붙어있지 않았다.
* * *
“으윽!”
“어디야?”
“뭐가?”
“네 입에서 으윽 하는 비명을 나오게 만든 부위가 구체적으로 어디냐고?”
“저기, 그게 지금 막 찔린 그 장소에서 한 뼘 정도 아래.”
“그래? 좋아,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야. 아프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
“아! 그런 거야? 으윽, 조금 따갑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라니 참 다행이네. 으으윽.”
통증을 호소하는 장본인을 앞에 두고 긍정 어쩌구 하는 친구가 야속할 법도 한데 제라르는 일말의 불평 없이 치료를 받아들였다.
괴사해 버린 제라르의 마나 회로를 되살리기 위한 진료도 오늘로 다섯 번째.
별다른 통증이 없었던 초기 진료와 달리 4회째 진료를 기한 제라르의 치료 과정에서는 상당한 고통이 수반되고 있었다.
“으, 으읍!”
나에게 부담을 주기가 어지간히 싫었는지 제라르는 이를 꽉 깨문 채 통증을 참아 보았지만, 완전히 억누르지 못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새어 나왔다.
“참지 마. 침으로 찌르면 아픈 게 당연한 건데 왜 억지로 비명을 참고 그래? 그렇게 끅끅거리면서 미련하게 굴면 칭찬이라도 해 줄까 봐?”
“아니, 으윽. 난 그냥 혹시 내가 소리를 지르면 페이건이 곤란할지도 모르니까….”
“그 마음은 고맙다만 비명 정도에 방해를 받을 만큼 내 공부는 얕지 않아. 그러니까 소리 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질러.”
쿡.
“아악!”
“그래. 차라리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편이 나도 구체적인 경과를 확인하기 더 쉽거든.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찌르면 여기가 이렇게 확 하고 땡기면서 욱신거린다는 거지?”
“응! 응! 거기, 거기.”
한차례 당부가 더 있고 나서야 제라르는 팔딱거리며 통증 부위를 상세히 진술했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좋은 현상이야. 네가 보기에 이 침이 근육이나 뼈를 자극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이 녀석,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터라 통상적인 통점이나 통각 세포는 전혀 자극하지 않고 있거든.”
땀이 송골송골 맺힌 제라르의 이마를 마냥 지켜보고 있기에는 미안했던 터라 난 제라르가 통증을 느끼는 이유를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럼… 나는 왜 아픈 걸까?”
“말했듯이 이 침도, 침을 통해 주입되는 마나도 네 근육이나 뼈를 전혀 자극하지 않고 있어. 마나가 자극하는 게 있다면 그건 네 마나 회로. 치료를 시작한 첫날 말해 줬지? 네 마나 회로는 너무 오랜 기간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한 탓에 사실상 괴사 상태에 있다고.”
“으응, 기억나. 으읍!”
“그런데 괴사 상태에 빠져있던 네 회로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회로가 어느 정도 그 기능을 회복했다는 방증이거든.”
“진짜! 페이건, 그럼 아악!”
마나 회로의 기능이 부활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쭉 편 제라르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자세 유지해. 네 맘대로 자세를 바꾼다 해서 치료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겠지만 네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으으… 알겠어. 함부로 움직여서 미안.”
“나한테 미안할 건 아니고. 아무튼, 한 두어 달간은 꽤 아플 수밖에 없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참아. 이것도 내가 첫날에 말해 준 건데 기억나?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제라르 마페이언 간의 상호 치료 협정 조약 제 1조 1항,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으윽!”
“좋아. 그럼 잘 기억하고 있는 걸 축하하는 의미로 단숨에 세 방 더 간다.”
“얼마든지… 흐으윽…!”
그로부터 30분 후, 제라르의 이마가 송골송골하다 못해 땀으로 흥건해지고 나서야 5회차 치료는 끝이 났다.
“너만 괜찮다면 다음 치료는 이번 주 주말에 했으면 하는데. 어때?”
“나… 난 아무 때고 괜찮아. 페이건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도 오케이.”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엄지를 척 하니 들어 올리는 제라르.
부우웅.
제라르의 손에는 마나의 방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측정 도구가 들려 있었는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동도 하지 않던 측정구의 표면에서 미약한 떨림이 감지되고 있었다.
인간은 희망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강해질 수 있는 동물.
설령 지금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 해도 저 마도구의 떨림이 유지되는 한 제라르가 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헤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꿈만 같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빠도 엄마도 동생들도, 그리고 에어릴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
“에어릴? 아! 고향에 계신다는 네 약혼자?”
“응!”
“그래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소중한 사람들이 기뻐할 일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가야지.”
그리고 상황의 흐름에 만족을 느끼고 있는 건 제라르뿐만이 아니었다.
―웬일이야? 너 처음에는 저 나아른하게 만드는 힘을 조금만 써도 힘들다고 헉헉거렸잖아. 그런데 오늘은 꽤나 오랫동안 힘을 사용하고도 멀쩡하네?
‘얼마 전 먹은 황금 나무 열매 덕분에 고리가 하나 더 늘어났잖아. 그리고 힘이라는 건 자꾸 사용하다 보면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거든. 제라르의 회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드루이드 오러를 여러 번 사용하다 보니 확실히 그 운용법이 섬세해졌어.’
여전히 목에 걸린 채 반짝거리는 마즈다.
마즈다의 중심에 머무르는 녹빛은 최근 들어 한층 더 선명해져 있었다.
물론 드루이드 오러를 전투에서 사용하는 건 별개의 일이겠지만 적어도 오러를 다루는 방식 자체는 처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게 사실.
‘아버님께서 종종 말씀하셨지. 현명한 치료술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기 마련이라고. 아직 성찰까지는 아니지만 얻어 가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니 나도 절반 정도는 현명해진 셈인가?’
사용한 치료 도구를 정리하고 제라르가 당분간 챙겨 먹으면 좋은 식재료 목록을 작성하고 있으려니 제라르가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참! 페이건, 우리 신입생 이동수업 일정 다시 잡힌 거 알아?”
“그거, 지난번에 잠정 연기됐다면서?”
“응! 연기됐었는데 오늘 오후에 수정된 일정이 포함된 공지가 다시 내려왔거든. 페이건은 그 내용 확인했어?”
“아니, 아직.”
기본적인 학사 일정만 파악한 채 마이웨이를 즐기고 있는 나와 달리 제라르는 학사 일정이며 공지 사항 파악이 굉장히 빨랐다.
만약 이 녀석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학점 관리는 벌써 몇 차례나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을지도.
“날짜 확정됐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그리고 세부 일정이나 장소는….”
암기력이 뛰어난 제라르답다고나 할까?
녀석은 새로 하달된 공지 사항을 통째로 읊어 줄 듯한 기세로 설명을 이어 나갔고 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한 채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녀석의 설명이 마무리에 들어갔을 무렵.
“잠깐! 최소 3인 1조라니? 그 이동수업인지 뭔지 원래는 개별 활동 아니었어?”
“응. 그게 지난번까지는 분명히 그랬는데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신입생 전원은 이동수업 일주일 전까지 최소 3인에서 최대 5인으로 구성된 수업조를 구성한 후 그 명단을 제출해야 해.”
도무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조별 활동이라니?
어떻게든 극복이 가능한 다른 난관들과 달리 이건 내 능력만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였기에 사태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쩐다. 그룹을 짜고 같이 몰려다니고, 이런 건 정말 약한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고민해 봐도 나 혼자의 능력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난관.
“그런데, 너랑 나. 우리는 딸랑 두 명뿐이잖아?”
“그, 그렇지.”
“저기, 이 질문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제라르 너, 혹시 나 말고 다른 친구 있어?”
“아니 없는데, 아하하.”
난 유일한 기댈 구석에게 손을 내밀어 봤지만 녀석 역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
폴리다고스에 입학한 이래 처음으로 봉착하게 된 최대 난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네, 나도 마찬가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