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화(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
물론 내가 페이건 클라디우스로 태어난 그 순간, 나와 녀석 사이에는 접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접점은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었기에 난 녀석과 첫 만남의 순간을 6년 전의 그날로 규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4년 전, 그러니까 녀석을 만난 지 2년째 될 무렵이라고 생각한다. 녀석이 불꽃의 형상이 아닌 지금 같은 모습을 한 채 날 찾아온 게 말이다.
[영광인 줄 알아. 이 몸께서 너한테는 내 본 모습을 보여 줘도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으니까.]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날, 녀석은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하는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고, 그날 이후로 나를 찾아오는 빈도 또한 현격히 잦아졌다.
그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오던 게 3일에 한 번이 되었고, 3일은 또 이틀이, 이틀은 어느새 일일 방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6년이 경과한 지금, 녀석은 숫제 주인 없는 방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형국에 이르렀다. 그것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아아! 이제 세 개 밖에 안 남았네. 일단 부스러기부터 핥아먹어야지.
비단 꾸러미 위를 부드럽게 누비는 녀석의 연분홍 혓바닥.
지겹다면 지겨울 수도 있는 6년간의 반 동거.
그동안 같이 보낸 시간과 무척이나 잦아진 만남을 통해 난, 이 미니어처 호랑이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와작와작, 으으… 이제 두 개 밖에….
첫째, 녀석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황금빛 털을 가지고 있었다. 장담컨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비단도 녀석의 털만큼 고운 빛을 내며 반짝이지는 못할 것이다.
보고 있으면 눈부시고 손을 가져다 대면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는 북슬북슬 황금 털.
더군다나 그 털이 빠지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었기에 녀석의 잔재가 침실을 더럽히거나 하는 경우 또한 전무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와자작, 흐윽… 이제 마지막.
둘째, 수다스럽고 군것질을 좋아하며 허세가 심하다.
녀석이 종종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로 짐작건대 녀석은 제법 오랜 세월 동안 이곳 에스페타라에서 살아온 것 같았다.
굳이 시간을 따지자면 아마 전생의 내가 암살의 신으로 이름을 날릴 때도 녀석은 이곳을 지키고 있었겠지.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녀석의 행동거지에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거나 하는 경우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입을 열어 투덜거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하고는 한다.
네가 지금처럼 귀여운 외관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봐줄 만한 거지 만약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외향을 하고도 지금처럼 투정을 부린다면 그때는 정말이지 최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꿀꺽, 아 아쉽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기분이다! 오늘은 맛있는 것도 먹었으니까 내가 제대로 한번 봐줄게.
포식을 마친 녀석이 한껏 통통해진 배를 한 채 날개를 퍼덕이며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난 귀여움으로 가득한, 도무지 위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녀석의 머리통 위로 손을 올렸다.
그동안 알게 된 사실 세 번째, 그건 바로.
―시작해. 오늘 공부한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 줄 테니까!
이 녀석이 그 누구보다 앙겔루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클라디우스의 시조 ‘오르페우스 클라디우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흠, 흠. 흐름을 보니 그동안 아주 놀고만 있던 건 아닌 모양이네. 확실히 최근 들어 마나의 흐름이 한결 자연스러워졌어.
동그란 코 옆으로 뻗은 녀석의 수염이 쫑긋거릴 때마다 차갑고 청명한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녀석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극소량의 마나를 내 몸속에 주입한 것이다.
6년 전 처음 만난 이래로 녀석은 주기적으로 나의 몸 상태, 그리고 앙겔루스의 진척도를 살펴 주고는 했다.
―마나의 통행로가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건 너도 느끼고 있지? 이건 네가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서라도 균형을 잡아야 돼. 지금은 통행로를 타고 흐르는 마나의 양이 많지 않은 탓에 별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흐름이 고르지 못한 걸 방치했다가는 추후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원이야. 기본적으로 원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 그리고 완성된 흐름이 어떻게든 원의 형태를 이루고는 있는 이상 너무 겁을 낼 필요는 없어. 원이 유지되고 있는 한 큰 그림은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투정이나 부리고, 과자 타령이나 하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내 몸 상태를 확인할 때 녀석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고, 건네주는 조언 또한 더없이 효율적이었다.
장담컨대 이 녀석의 꾸준한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이토록 빠른 속도로 앙겔루스를 습득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와 만난 첫날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탓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내가 남다른 습득 속도를 보인다는 사실을 녀석이 알게 된 이후로는 조언이 빗나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흐음… 그런데 참 이상하다는 말이지.
“뭐가?”
―분명히 흐름도 순조롭고 문제가 보이거나 하지도 않는데. 자꾸 느껴지는 이 서늘한 기운은 뭐지?
“서늘한 기운?”
검진을 마친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고 난 시치미를 뚝 뗀 채 반문을 했다.
녀석이 감지한 서늘한 느낌의 정체는 틀림없이 아르카일 것이다.
통상적인 마나 수련법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타인이 감지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아르카.
그런데 녀석의 날카로운 감각은 앙겔루스의 마나 고리를 스쳐 가는 피에서 느껴지는 그 미세한 한기를 포착해 내고 만 것이다.
‘생긴 건 동글동글한 롤빵같이 생긴 주제에 눈썰미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상해, 이상해를 연발하며 연신 수염을 쫑긋거리는 녀석. 난 그 시선을 슬쩍 외면한 채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체온이 많이 낮은가 보지.”
―그런가? 뭐, 아무렴 어때. 그것 때문에 딱히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네가 좀 많이 매몰찬 구석이 있는 꼬맹이기는 하지. 크크크.
다행히도 녀석은 날카로운 감각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더없이 무사태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녀석이 추궁을 해 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 배불러. 먹었더니 또 졸리네.
식사와 검진, 할 일을 마친 녀석은 그대로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운 채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 쌍의 날개로 쓰다듬어 가며 포만감을 만끽했다.
‘…역시 이 섬에 살고 있는 영수 중에 하나라고 봐야겠지?’
여느 때 같았으면 녀석이 이불 대용으로 쓸 실크 손수건을 하나 던져 주고 내 일을 했겠지만, 오늘 낮에 라나와 영수에 관한 이야기를 한 탓인지 녀석에 관한 궁금증이 불쑥 솟아올랐다.
녀석과 반 동거를 시작한 지도 벌써 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난 녀석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녀석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캐묻는 게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떠벌리기를 좋아하고 허세 부리는 걸 선호하는 녀석의 성격상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 정체를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러 번 한 바 있었다.
―아… 배부른데 등 따습고 푹신푹신하니까 좋다 헤헤.
하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기로 했다. 손수건으로 몸을 돌돌 만 채 침대 위를 뒹굴거리기에 여념이 없는 저 황금빛 털 뭉치를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정체를 물어봤다가는.
―흐흐, 흐흐흐, 흐흐흐흐. 이럴 줄 알았지. 안 궁금한 척하더니 결국은 궁금한 거지?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좋아! 까짓거 네가 그렇게 어떻게든 내 정체를 알고 싶다고 하니까 내 특별히 가르쳐 주도록 할게.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한껏 콧대를 세운 털 뭉치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느니 약간의 궁금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백 배는 더 현명한 일.
그리고 사실 녀석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네가 간청하기 전까지 자신의 정체는 절대 알려주지 않겠다며 되지도 않는 신비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녀석의 말버릇 곳곳에서는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건 오르페우스 그 녀석도 인정한 사실이야. 진짜야! 네 대장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니까!] [이건 그 오르페우스도 까다로워했던 일인데 네가? 크크크, 과연 할 수 있을까?]예컨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녀석의 입에서는 우리 가문의 시조인 오르페우스의 이름이 자주 나왔고 그 말버릇을 통해 난 녀석의 정체를 어렴풋이는 짐작할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가 이 섬을 클라디우스의 땅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그의 곁에 있어 온 에스페타라의 영수겠지. 문제는 저 녀석은 다른 영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에스페타라에는 제법 많은 수의 영수들이 존재했지만 개중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 눈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영수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리고 영수들 중 가문의 후계자 후보생을 상대로 과외 선생을 자처할 정도로 앙겔루스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것 역시 이 녀석뿐.
―아 참, 그리고 너, 다음 주에 ‘영원의 날’이 있을 예정이라며?
내가 녀석의 정체에 대한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녀석이 대뜸 질문을 던져 왔다.
“하루 종일 먹는 생각만 하는 녀석이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야 당연히 알지. 이 섬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보다 하루 종일 먹는 생각이라니 너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뭘로 생각하기는? 날개 달린 멍멍이라고 생각하지.”
―뭐! 멍멍이!
“멍멍이가 싫으면 날아다니는 롤빵으로 해줄까?”
―헛소리 그만하고 진지하게 대답해. 너 영원의 숲이 무슨 농담 따먹기나 하는 장소인 줄 알아!
“영원의 숲이 어떤 장소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한 손으로는 발끈해서 날아오른 녀석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 주며 반대쪽 손으로는 서랍에 들어있던 일정표를 꺼내 들었다.
이달 일정표 중앙에 커다란 글자로 써 있는 ‘영원의 날’이라는 네 글자.
발끈하는 표정을 보는 게 재미있어 농담 따먹기처럼 대답을 했지만 다음 주에 있을 영원의 숲 방문이 에스페타라 주민 전원의 시선이 집중되는, 최고 중요 행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영원의 날.’
후계자 후보생이 에스페타라 최심처의 성지 ‘영원의 숲’에 입장해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 영수의 선택을 받는 클라디우스 최대의 행사.
에스페타라에 거주하는 영수들이 섬의 안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면 왜 사람들이 영원의 날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벨도루시의 등에 올라탄 채 영원의 숲에서 나오던 그 날, 해안 지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고 그랬던가? 아버지가 가주가 되신다면 한동안 파도로 인한 피해는 걱정할 필요 없겠다고 말이야.’
에스페타라 곳곳에 거주하는 영수들은 저마다 가진 특별한 능력을 사용해 섬을 지켜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버님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대한 흑곰을 연상시키는 생김새를 한)벨도루시는 방파제를 쌓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섬으로 몰아닥치는 태풍과 싸워 섬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리고 내가 오후의 티타임에서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는 (그리고 라나가 절대 안 된다며 울상을 지었던)에상티는 불시에 발생하는 대형 화재로부터 주민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아 왔다.
그래서 에스페타라 숲에 거센 불길이 피어났다고 해도 주민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에상티가 그 길고도 굵직한 코에 한가득 바닷물을 채운 후 좍좍 뿌려대기를 몇 번만 반복하면 제아무리 큰 화재라도 순식간에 진압되고 말 테니까.
이렇듯 영수들은 저마다의 힘을 사용해 에스페타라의 평온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에스페타라를 지켜주는 영수들과 인간들이 오래전에 맺어 온 맹약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의식이 바로 ‘영원의 날’이었다.
과거 인간을 대표하여 영수들과 맹약을 맺은 당사자인 오르페우스의 후손이 성지에 입장하면 해당 후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성품을 가진 영수가 모습을 드러낸 후 그와 영혼의 동지가 될 것을 맹세한다.
이 맹세는 계약자가 생명을 다하거나 클라디우스로서의 명예를 저버릴 때까지 유효하며, 계약 당사자가 가주에 등극할 경우 그와 맹세를 맺은 영수는 재위 기간 동안 다른 영수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즉 가주 후보생이 어떤 영수와 계약을 맺느냐, 그리고 후보생들 중 누가 가주로 최종 선발되느냐에 따라서 에스페타라의 운영 방침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영원의 날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넌 어떤 영수랑 계약을 맺고 싶은데?
“아직 자세하게는 생각 안 했어.”
―야! 계약이 다음 주인데 아직도 생각을 안 했다고?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벌써 마음 졸여 봤자 뭐하겠어? 지금으로서는 어떤 영수가 나오더라도 그냥 감사히 받아들인다는 생각뿐이야. 그리고 무조건 다 계약이 되는 건 아니잖아. 가끔씩이지만 어떤 영수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퇴짜 맞는 경우도 있다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안 될 리… 험험. 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한 표정.
이 녀석 또한 영수 중에 하나일 거라는 내 추측이 사실이라는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 셈이었고, 난 털 뭉치와 눈을 맞춘 후 말했다.
“그냥 고민할 것 없이 네가 해주면 안 돼? 나도 이제 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는 익숙한 사람, 아니 멍멍이랑 쭉 같이하는 게 좋은데.”
―난 안 돼.
“진짜?”
―응.
멍멍이라는 말에 발끈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돌려 버리는 털 뭉치. 나는 녀석을 미련 없이 힘껏 던져 버렸고.
“거봐.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기다리는 수밖에.”
천장에 닿을 듯이 떠올랐던 녀석이 유려한 선회 비행으로 방향을 튼 후 내 머리맡에 착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
“까짓거 될 대로 되라지 뭐.”
눈을 감자 코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털 뭉치의 보드라움이 한결 더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영수와의 만남을 일주일 앞둔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