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1)화(8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1)
‘베가스’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타마칸 협곡에 서식하던 초대형 와이번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실은 와이번이 아니라 드래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베가스는 꼬박 수십 년간을 타마칸 협곡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여타의 몬스터들을 압도하는 그 체구도 위협적이었지만 놈이 타마칸의 폭군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마법이었다.
미련하다고 알려진 여타의 와이번과는 달리 베가스는 불, 물, 바람, 대지까지 무려 네 가지 속성의 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고, 이 초월적인 능력을 이용해 장기 통치를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베가스의 시대.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결국 베가스의 철권통치도 허물어지고 말았는데 놈의 시대를 끝낸 장본인의 이름은 푸에르토, 훗날 ‘산악의 용병왕’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용병이었다.
자신의 용병단을 이끌고 베가스에게 도전장을 내던진 푸에르토는 일주일이 넘게 지속되는 혈투 끝에 마침내 베가스의 목을 취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과 용병단이 이뤄 낸 거룩한 승리를 기념하고자 했던 푸에르토는 절친한 친우이자 세기의 명공(名工)으로 손꼽히던 ‘안토나스’에게 이번 전투의 가장 큰 전리품인 베가스의 마나 하트를 맡겼다.
친우의 찬란한 업적을 영원토록 기억되게 만들고 싶었던 안토나스는 베가스의 마나 하트를 재료로 하여 승리의 증거물을 만들기 위한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꼬박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착용자의 마나를 연료로 하여 마법을 뿜어내는 기적 같은 건틀릿이 완성되었으니 그 보물을 일컫는 이름이 바로 「베가스의 송곳니」였던 것이다.
푸에르토 용병단의 긍지가 고스란히 깃든 건틀릿은 푸에르토 사후, 그 용맹한 의지를 고스란히 품은 채 한동안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꼬박 150년을 떠돌던 「베가스의 송곳니」는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마침내 폴리다고스로 거처를 정했고, 그 후 폴리다고스의 수많은 유망주들과 함께하며 위용을 떨쳐 왔다.
25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베가스의 송곳니」는 그 대여인의 강함과 장래성을 증명해 주는, 일종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감히 「베가스의 송곳니」에 욕심을 부리는 그 주제넘은 신입생이 누구라고?”
“페, 페이건 클라디우스라고 합니다. 선배님.”
“클라디우스? 입학식에서 유리안 선배님을 상대로 재롱을 부렸다는 그놈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들어본 이름이야. 그리폰인지 뭔지를 이용해 마르커스 막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클라디우스라면 몇 번 들은 기억이 있어.”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 정신 나간 놈이 이런 미친 짓을 할 줄 알았다면 지, 진즉에 단속을 했을 터인데 저희도 예, 예상치 못한 일인지라 사태가 이리되고 말았습니다.”
한데 그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마력이 정도를 넘어서기라도 한 걸까?
창틈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오는 수련실, 거구의 사내를 마주하고 선 3학년 남학생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튼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신청서를 제출한 이상 학사 당국은 검토에 들어가겠군. 그러니까 이 내가 아직 입학 한 달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와 경쟁을 벌이게 된 건가?”
“죄송합니다. 미리 살피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죄드리겠습니다.”
햇살을 등지고 앉은 거구의 사내는 4학년,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3학년.
두 사람 간 학년 차이는 1단계밖에 나지 않았지만 거구를 대하는 3학년의 태도는 정중하다 못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래, 그런 놈들이 가끔 있기 마련이지.”
거구가 고개를 까닥일 때마다 언덕처럼 솟아오른 승모근이 웅장한 움직임을 보이며 좌우로 불룩거렸다.
4학년이라는 나이대는 여러모로 미묘한 평가를 받는 시기였다.
17, 18살에 입학을 한다고 가정할 시 4학년에 도달할 무렵 학생들의 나이는 20, 21살 정도.
이제 막 성년의 문턱을 넘어 스스로가 대단하고 뭔가 큰 걸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나이대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4학년쯤 되면 총 8학년으로 구성된 폴리다고스 학제의 절반 정도를 등정하는 데 성공한 셈이기에 안 그래도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던 허파가 한층 더 부풀기 마련.
거구는 자신의 성숙함과 어른스러움이 스스로 대견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꼬마 아이들 사이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좀 듣다 보면 정말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이 세상의 법칙이며 규율을 우습게 보는 천둥벌거숭이들.”
만약 페이건이 이 자리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지금 자기소개를 하는 거야?’라는 반문을 했을 법한 발언이었건만, 거구의 4학년은 부끄러움 따위는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크크크.”
위압감을 가장한 웃음소리가 쩍쩍 갈라진 근육의 틈 사이로 내려앉았다.
“내가 막 입학했을 때 「베가스의 송곳니」는 ‘타르크 선배님’께서 사용하고 계셨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녀석을 내 곁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무릇 가치가 있는 물건에는 그에 합당한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속을 태우며 꼬박 3년을 기다렸어.”
자신들끼리 정한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규칙.
물론 폴리다고스는 이 철부지들의 돼먹지 못한 규칙을 공인해 준 적이 없었다.
“「베가스의 송곳니」를 내 곁에 두기 위해 난 지난 3년간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둬 지난겨울, 회의를 통해 다음 사용인으로 내정을 받았지. 그렇게, 그렇게 봄이 오기만을 꼬박 기다렸는데 별 거렁뱅이 같은 놈이 감히 내 보물에 눈독을 들여!”
콰앙.
독백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차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거구가 바닥을 굴렀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집기들이 넘어지며 결국 수련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거기, 너랑 너.”
“네! 선배님!”
“내일 정오에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내 앞으로 데려와.”
거구가 몸을 일으키자 상반신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고, 청동상을 연상케 하는 근육질 몸매가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교하게 발달된 인간의 것이라기보다 난폭한 영장류 유인원을 닮은, 거대한 근육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거구의 사내.
폴리다고스 4학년 소속의 격투가 ‘해글러 나이투’는 송곳니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어디 우리, 건방진 신입생 새끼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낯짝이나 한번 볼까?”
* * *
“저기, 들어온다.”
“으, 응.”
“마차라… 생각보다는 고전적인 방법을 선택했네. 이 정도 관심 속의 등장이라면 조금 더 떠들썩한 선택도 할 법한데.”
“그러게, 아무래도 엘리시온 양은 검소한 성품인가 봐.”
“그런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아까부터 통 집중을 못 하고 있잖아.”
“역시… 그렇게 보여?”
평소답지 않은 산만함을 견디지 못한 내가 던진 질문에 제라르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고 내 얼굴만 흘끔흘끔 쳐다보는 이유, 내가 어제 제출한 그 신청서 때문인가?”
“으, 응.”
“너는 밥값까지 아껴 가며 도구점을 들락날락하면서 내가 남아도는 건틀릿 하나 빌리겠다는데 왜 그렇게 놀라고 그러냐? 나도 좋은 도구빨 좀 받고 싶을 수 있는 거잖아?”
“그, 그치만 페이건의 선택에 놀란 건 나 혼자만이 아닐걸. 봐, 주변 사람들도 다 안 보는 척하면서 페이건을 쳐다보고 있잖아.”
“진짜?”
“어, 어흠!”
제라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네.”
“거봐, 물론 페이건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설마 내정자가 정해져 있는 「베가스의 송곳니」의 대여를 신청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을걸. 난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이 널 계속 쳐다보는 것도 이해돼.”
“내정자라니? 너답지 않게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래. 너 게시판 잘 보잖아? 공지 올라온 거 못 봤어? 「베가스의 송곳니」를 빌리고 싶은 사람은 신청서 양식에 맞춰서 신청서 제출하라고 쓰여 있잖아. 물건 주인이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데 왜 엉뚱한 사람들이 내정자니 뭐니 하는지, 원.”
“그 말이 맞기는 맞는데… 페이건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인데 너 ‘해글러 나이투’ 선배가 누군지는 알지?”
“당연히 알지.”
난 왼쪽 손바닥을 활짝 편 후 그 위에 오른쪽 손가락으로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갔다.
“인간… 고… 릴… 라? 페이건!”
“진정해, 진정. 농담 한마디 한 거 가지고 왜 그래.”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선배님한테… 고… 고….”
“제라르 네가 그렇게 큰 목소리로 떠들지만 않으면 너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당황한 표정인 제라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후, 난 가도를 지나 교무실 건물로 달려가는 마차에 다시금 시선을 고정했다.
제라르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능청을 떨었지만 사실은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귀족 카르텔이 내정한 「베가스의 송곳니」의 주인 이름이 올해 4학년이 된 ‘해글러 나이투’라는 것.
그리고 인간과 고릴라의 혼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이 덩치가 4학년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라는 것도 말이다.
―있잖아. 페이건, 너랑 경쟁을 하게 된 그 고릴라 청년 성격이 되게 나쁘다고 그랬지?
‘나쁘다기보다는 졸렬한 데다 지랄 맞기까지 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기분이 상할 때마다 격투술 연구회 후배들을 불러다 놓고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구타를 해 대는 인간 말종 쓰레기를 단순히 나쁜 놈이라고 정의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응, 그러니까 아무튼 그 지랄 맞은 격투가 놈. 그놈 집안이 그렇게 대단해?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네가 아주 큰 실수를 했다고 그러는데?
‘누가 실수를 한 건지는 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나이투 가문의 위세가 제법인 건 사실이야. 나이투 가문의 시조가 아펜스 왕국 건국조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자였거든.’
―우하하! 고릴라 할아버지가 건국왕의 오른팔이라니 되게 웃긴다!
‘뭐, 지금 저 마차를 타고 교무실로 가고 있는 카밀라 엘리시온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해글러 나이투의 위세가 제법 당당한 건 사실이야. 시조가 세운 공훈 덕분에 나이투 가문은 지금도 아펜스 왕국 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세를 유지하고 있거든.’
―우왕! 제법이네.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인간 고릴라가 성격적인 결함은 있지만 4학년을 통틀어도 5등 안에 드는 강자라고 하던데? 그리고 4학년 중 5등 안에 드는 거면 사실상 저학년 전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걸로 봐야 한다고도 말했어.
동글동글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첩보 실력으로 주변 정보를 물어다 주는 북슬이.
나를 둘러싼 소문의 파도에 북슬이가 잔뜩 흥분한 것처럼, 내 표정을 살피는 사람들 역시 예상치 못한 풍파에 적잖게 달아오른 듯했다.
아마 지금쯤 저 사람들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두 개밖에 없는 눈동자를 부지런히 움직여 카밀라 엘리시온을 태운 마차의 동선을 확인함과 동시에 ‘감히 귀족 카르텔에 정면으로 도전을 한 건방진 신입생’의 표정 또한 관찰해야 할 테니.
‘한두 명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거 보면 그게 맞나보지.’
―그래서 저학년 전체를 통틀어 5등 안에 들어가는, ‘인간말종 랭커’와 경쟁을 벌이게 된 페이건 클라디우스 군의 현재 소감은 어떤가요?
라무테 님이 평소답지 않은 짓궂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 왔다.
‘딱히 대수로울 건 없습니다. 차라리 전교를 통틀어 5등 안에 들어가는 강자라면 조금은 긴장이 될 텐데. 고학년을 제외한 수준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뻐기는 고릴라라니. 개구리도 되지 못한 올챙이 무리에서 5등을 하던 1등을 하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대단한 자신감이네, 호호.
‘그리고 저 사람들이 속 편하게 떠드는 다섯 개라는 손가락 숫자. 조만간 수정을 해야 할 겁니다. 올해부로 아스트라 페르디난드가 입학을 했으니까요.’
―아스트라? 아! 그 하얀 머리카락의 잘생긴 남자아이. 그치만 그 아이는 지난번 입학식에서 유리안에게 한 번에 깨지지 않았니?
‘어… 있잖아요, 라무테 님. 이곳에 재학 중인 학생들 간 강함의 우열을 논할 때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 선배는 애초에 다른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정말? 페이건을 만나러 올 때마다 마냥 방긋거리기만 하니까 난 그냥 깜짝 놀랄 만큼 예쁘게 생긴 남자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유리안 선배니까 한 번에 당한 거지. 다른 사람과의 승부였다면 설령 상대가 7, 8학년이라 해도 아스트라가 그렇게 깔끔하게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럼 너랑 경쟁을 하게 될 쓰레기 격투가랑 하얀 머리 꼬마를 비교하면?
‘글쎄. 나도 직접 싸워 본 적이 없어서 장담을 못 하겠다만 4학년 올챙이 놈들이 백룡가문의 천재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도저히 안 드는데?’
이렇게 흘끔흘끔 쏟아지는 시선을 맞아 가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으려니, 교무실 건물 안쪽으로 사라졌던 마차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가 다시 나왔어! 입학 면담이 끝났나 보네. 어디로 가는 거지?”
“북쪽이다! 1학년 여자 기숙사가 있는 방향이야. 우리도 얼른 그쪽으로 가야지.”
“응, 여자 기숙사야. 카밀라 양은 북쪽으로 갔어.”
또 한 번 풍파를 일으킨 나를 관찰하는 건 어디까지 부업.
몰려나온 사람들의 주목적은 카밀라 엘리시온이었기에 사람들은 허겁지겁 마차가 향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준비한 선물 전달하는 거 잊지 마!”
“우리가 카밀라 양을 위해 완벽하게 맞춤 준비된 조라는 사실 어필하는 거 잊지 말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채 마차를 따라가는 1학년 학생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탐욕이 가득한 눈동자를 한 채 내달리는 소년, 소녀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카밀라 엘리시온에게 성공적인 눈도장을 찍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성공적인 첫 만남 – 열렬한 사바사바를 통한 교우 관계 확립 – 은근슬쩍 이동수업 조에 카밀라 엘리시온 투입 – 결과적으로 천공의 눈과의 인연 획득, 뭐 이런 걸 노리고 있는 거겠지?’
순식간에 휑해진 사람들.
처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나와 제라르뿐이었고, 난 제라르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선배님도 슬슬 나오고 있을 테니까 우리도 가자.”
“으, 응.”
나와 제라르의 발걸음은 마차가 향한 방향과 정확히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시종을 통해 전해진 유리안 선배의 전언.
마차는 미끼야. 아무래도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인데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우면 좀 그렇잖아? 마차를 먼저 내보내고 5분 뒤에 후문으로 나갈 테니까 시간 맞춰서 뒤쪽으로 와. 알았지?
언제나처럼 전공 서적을 품에 안은 제라르와 뒤통수에 손깍지를 낀 나는 천천히 교무동 뒤편을 향했고.
“여기야! 제라르 군, 안녕. 우리 오랜만이네!”
“서, 선배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열린 후문 사이로 선남선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왔다.
“후훗.”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는 갈빛 소녀.
유달리 하얀 유리안의 피부와 갈색으로 물든 카밀라, 얼핏 보기에는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 한 폭의 그림이 될 정도로 잘 어울렸다.
폴짝.
거리가 십여 미터 안쪽으로 줄어들었을 무렵, 카밀라는 사뿐한 동작으로 계단을 뛰어내려 우리 앞에 섰다.
“만나서 반가워요. 천공의 눈에서 온 카밀라 엘리시온이라고 해요. 제라르 마페이언 공자 맞죠? 이렇게 귀한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 저야말로… 감사할 따름이죠. 아무튼 반갑습니다!”
제라르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카밀라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난 그제야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장난꾸러기의 것을 닮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라르를 향했던 것보다 조금 더 경쾌한 목소리로 카밀라는 말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