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2)화(8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2)
“이쪽 대리석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면 학생 식당이 나와. 그것보다 더 고급스러운 걸 먹고 싶다면 상업지구로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제라르랑 나는 거의 대부분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편이야.”
“상업지구는 이곳에서 꽤 멀지 않아? 그런데 점심 한 끼 먹으려고 거기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응, 그것도 꽤 많아. 내가 보기에 1학년들 중 절반 이상은 점심시간마다 상업지구로 가는 것 같던데….”
“이유가 뭘까? 혹시 학생 식당이 맛이 없나?”
“아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단이야. 메뉴도 매일 바뀌고 배식 담당 골렘이 종류별로 골고루 떠 주니까 뭐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제라르, 네 생각은?”
“나도 물론 만족하고 있어. 사실 나는 페이건 덕분에 학생 식당 맛을 보는 거긴 하지만 헤헤.”
“흐음, 그래애?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대되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니까 오늘은 잔뜩 먹어야지.”
교내 안내가 시작된 지 30분.
학생 식당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선 카밀라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그럼 나도 오늘부터 제라르가 만든 수제 반찬 맛을 볼 수 있는 건가?”
“어? 카밀라가 원한다면 당연히 나눠 줄 수 있지만, 그냥 평범한 가정식 반찬이야. 자랑스럽게 내놓기에는 조금 많이 부끄러운데.”
“아니야, 나 그런 가정식 되게 좋아해. 사실 탑에 있을 때도 스승님이 기름진 식단을 싫어하셔서 매끼마다 절임이나 생야채 위주의 반찬을 곁들였거든. 아무튼 그 상큼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수제 피클, 기대하고 있을게?”
“으, 아니야. 너무 기대는 하지 마. 페이건이 워낙에 아무거나 잘 먹는 데다 성격이 착하니까 매번 맛있다면서 먹어 주는 거지. 사실은 진짜 별거 없는 반찬인데….”
“그래? 페이건, 제라르 생각은 이렇다는데?”
“조금 있다가 네가 먹어보면 알겠지만 진짜 맛있어. 양념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 덕분에 깔끔하고, 재료 본연의 맛도 그대로 살아있고. 무엇보다 내 혀는 솔직해서 나는 맛없는 건 맛있다고 말 못 해.”
“거봐, 맛있대잖아? 그건 그렇고 페이건, 사실은 ‘착한 사람’이었구나. 난 또 그건 몰랐네에.”
“뭐 눈에만 뭐만 보인다고, 제라르 쟤가 워낙에 순둥이니까 날 그렇게 봐주는 것뿐이야. 나도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은 늘 하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아니야! 페이건은 착한 사람이 맞아! 가끔 이상한 소문이 돌거나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페이건은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맞아. 응응, 그건 내가 보장할게.”
처음에는 카밀라를 대하기 어려워하던 제라르의 표정도 어느새 많이 편해져 있었다.
카밀라는 ‘남국의 공주님’ 같은 외모와는 달리 무척이나 소탈하고 쾌활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물처럼 자연스레 우리 둘 사이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말은 편하게 하는 게 어때? 이제 수업 시간마다 얼굴 봐야 할 텐데 호칭이 어색하면 서로가 불편하잖아?] [그럼,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 카밀라, 아카데미 구경 재미있게 하고 제라르, 페이건 부디 우리 카밀라 잘 부탁한다!]사실 유리안이 저런 말만 덜컥 남겨놓은 후 사라져 버렸을 때만 해도 불안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예상치 못한 친화력을 보여 주며 방긋방긋 미소를 지었고, 덕분에 우리는 불편함 없이 그녀를 위한 가이드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어쩌나? 마음 같아서는 더 안내를 해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되었네.”
하나 식당 건물을 빠져나와 중앙 도서관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섰을 무렵,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순조롭게 이어질 것 같았던 안내 활동에 차질이 생겼다.
“페이건, 저 선배들….”
“응, 아까 너랑 얘기한 그거 있잖아.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나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 같은데?”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험악한 표정을 한 채 다가오는 3인조 남학생.
그들의 가슴에는 ‘해글러 나이투’가 속해 있는 격투술 연구회 ‘강철 심장’의 문양이 형상화된 배지가 달려 있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맞지? 이 건방진 새끼, 너 때문에 우리가….”
“야, 잠깐!”
“왜? 당장 이 새끼를 끌고 가지 않으면 해글러 선배가 우리를….”
“바보야, 옆을 보라고 옆!”
당장이라도 내 어깨를 움켜잡은 채 끌고 갈듯한 기세로 접근한 3인조.
하지만 그들의 도발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한 채 이 광경을 지켜보는 카밀라’의 모습이 확인된 순간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
카밀라가 나와 같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놈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해졌다.
“저 머리카락 색이며 생김새며… 맞잖아?”
“이런, 젠장. 왜 그 아가씨가 저 건방진 새끼 옆에.”
“여기서 실수했다가는 저 아가씨를 통해 유리안 선배님에게 이야기가 들어가겠지? 제길, 일이 그렇게 되면 해글러 선배님이 또 화를 내실 텐데….”
자기들 딴에는 숨죽여 말한다고 용을 쓰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저놈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내 멱살을 움켜잡은 채 해글러 앞으로 끌고 가고 싶겠지만 그러기에는 옆에 있는 카밀라가 걸리겠지.
카밀라 자체도 껄끄럽기는 하겠지만 저놈들이 궁극적으로 겁내는 상대는 아마도 유리안 알렉세예브.
“저… 나는 강철 심장이라는 격투술 연구회에 속해 있는 ‘엔토 프리마’라고 하는데, 혹시 ‘카밀라 엘리시온’ 양이 맞을까?”
“네, 선배님께서 제 이름을 묻는 거라면 맞아요.”
“아하하, 만나서 반가워. 오늘이 첫 등교라는 소식을 들었어. 어떻게 불편하거나 한 점은 없고?”
“네, 새로 사귄 친구들이 워낙에 친. 절. 하. 게. 대해 주는 바람에 재미있게 안내를 받고 있답니다.”
“그것참, 다행이네. 그런데 말이지 사실은 우리가 연구회 일 문제로 이 새, 아니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잠깐 할 말이 있거든. 그래서 잠깐 괜찮을까?”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와 표정.
정중하고 상냥하다 못해 비굴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으며, 강철 심장 소속 엔토 프리마는 나를 내주길 요청했다.
“그런가요? 페이건, 이 선배님들이 너와 할 말이 있다는데 그런 거야?”
“글쎄, 뭐 약속을 한 적은 없는데 선배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게 맞겠지.”
“그으래? 알겠습니다. 선배님, 페이건과 하실 말씀이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저랑 제라르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페, 페이건… 괜찮겠어?”
해글러의 끄나풀들이 보여 줄 ‘난폭과 비굴을 오가는 행동’쯤은 이미 예상했던 바, 재미있는 건 카밀라가 짓는 표정이었다.
그 분위기를 보면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것 같기는 한데, 그럼에도 카밀라는 불한당 3인조에게 너무나도 순순히 나를 내주었다.
“페이건, 그럼 나랑 같이 가! 카밀라, 넌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나는 페이건이랑 선배님들을 따라갔다 올 테니까….”
“무슨 소리야? 선배들이 용건이 있는 건 난데, 네가 왜 따라와? 더군다나 오늘 첫 등교인 카밀라를 혼자 두고 따라오겠다고?”
“그래 페이건 말이 맞아, 참 너무하네. 아무것도 모르는 나 혼자 여기에 덩그러니 있으라고? 세상에나 제라르,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페이건을 혼자 보내면….”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카밀라의 반응 앞에 다급해진 건 제라르뿐이었다.
강철 심장 소속 선배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제라르는 어떻게 해서든 날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시죠. 카밀라,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도서관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게 어때? 도서관은 제라르가 전문가니까 아주 상세한 안내를 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럴까 그럼? 사실, 나 기다리는 거 잘 못 하거든. 제라르, 페이건이 우리끼리 먼저 가 있으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래? 기다리고 있으면 선배님들이랑 볼일 다 본 페이건도 거기로 오겠지.”
하지만 나와 카밀라가 보여 주는 발군의 호흡 앞에 제라르의 노력은 무위에 그칠 뿐이었다.
“가시죠. 아무래도 선배님들이 하고 싶은 말씀을 제대로 하시려면 조용한 데로 가는 게 좋겠죠.”
덥석.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양쪽 어깨를 짓눌러 오는 놈들의 손.
“그럼, 가 볼까? 페이건 클라디우스.”
내 양옆으로 두 명이 서고 엔토 프리마가 등 뒤에서 퇴로를 막는 것으로 포위를 끝낸 녀석들은 인적이 없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페이건!”
난 다급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제라르에게 가벼이 손을 흔들어 줬다.
손동작에 담긴 의미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난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고, 오래 지나지 않아 산책로를 벗어난 곳에 위치한 울창한 잡목림이 나를 반겼다.
* * *
“조금 전에 페이건을 끌고 간 그 선배들, 나쁜 사람들이지?”
페이건의 모습이 사라진 직후, 카밀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고.
“응.”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에 잠시 고민을 했던 제라르는 이내 분명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나쁜 사람들은 그 표정이나 행동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나쁜 사람,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여러 가지 함의를 머금은 대답에도 불구하고 카밀라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저기 카밀라, 초면에 이런 부탁을 하는 건 미안하지만 페이건을 도와줄 수 없을까? 네가 중재를 한다면 선배들도 심한 행동을 하지는 못할 거야.”
“내가?”
“응, 할 수 있다면 나라도 당장 달려가 선배들을 말리고 싶어. 하지만 너도 봤잖아. 나한테 불이익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페이건이 기를 쓰고 혼자 가겠다고 하는걸.”
“아아, 그러니까 제라르는 페이건의 혼자 가겠다는 말을 ‘너에 대한 걱정의 발현’이라고 이해한 거구나. 내 생각이랑은 조금 다르네.”
여전히 다급한 건 제라르뿐.
어느새 카밀라의 얼굴에는 방긋거리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선배들을 말리고 싶어. 하지만 나는 짐만 될 뿐이야. 하지만 카밀라 네가 조금만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내 생각에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것보다 제라르, 우리 도서관 구경이나 마저 하러 가자. 응? 대륙에서 가장 유서 깊은 아카데미의 도서관이라니, 사실 나 기대가 크단 말이야.”
“카밀라! 제발!”
“제라르, 탑을 나서는 그날, 스승님께서 나한테 해 주신 말씀이 있거든. 그게 뭔지 알아?”
결국 카밀라는 제라르의 손등을 두드리고야 말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이 순진하고 착한 동기가 페이건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무작정 달려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걸 페이건이 절대로 원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약자를 돕고 보살피며 살아가라는 거였어.”
“로레인 경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더더욱….”
“어머! 아니지. 제자로서 스승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면 나는 이 타이밍에는 더더욱 가만히 있어야지.”
“뭐?”
도저히 뜻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제라르.
제라르의 하얀 얼굴을 마주한 카밀라의 눈동자가 고혹적인 선을 그리며 이지러졌다.
“후훗, 이런 말 하는 건 미안하지만 조금 전, 내가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제라르, 넌 이런 부분에 한해서는 아직은 나보다도 페이건을 잘 모르는구나.”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미안, 농담이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마. 사과의 의미로 재미있는 얘기 하나 들려줄게. 사실 이건 당분간은 나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뭐 너한테는 말해 줘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카밀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페이건과의 첫 만남을 설명해 줬고.
“그게… 지, 진짜야? 페이건이 혼자서 아크 어스웜을 두 마리나 사냥했다고? 더, 더군다나 아크 어스웜의 홈그라운드인 설산에서?”
“응,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실이야.”
믿을 수 없는 무용담 앞에 제라르의 입은 다시 한 번 떡하니 벌어지고 말았다.
“내, 내가 혹시 폴카산에서 무슨 일 없었냐고 물어봤더니 분명히 별일 없었다 그랬는데.”
“아크 어스웜을 사냥한 게 페이건한테는 별일 아니었나 보지.”
도저히 믿기 힘든 목격담에 제라르의 머릿속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말았다.
세상에나, 유별나게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혼자서 아크 어스웜을 사냥했다고?
이건 거인 풍뎅이 무리 사이를 헤집고 다닌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규모의 일이었기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 하나,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약자를 도우라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제라르 네 생각은 어때?”
아직도 어지럽기만 한 머릿속을 파고드는 음성.
카밀라는 장미꽃 향기가 묻어날 것만 같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 왔다.
“아직도 페이건이 내 도움이 필요한 ‘약자’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