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3)화(8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3)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그치?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목격에 기반한 정론으로 몰아붙이는 카밀라의 질문 앞에 결국 제라르는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강철 심장의 위세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설산에서 아무런 지원도 없이 혼자 힘으로 아크 어스웜을 도륙하는 사냥꾼’에게 위협이 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 그럼 이 일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우리 도서관 구경하러 가도 되는 거지?”
“응, 그래도… 될 것 같아.”
“그럼 얼른 가자. 우리가 거기에 가 있으면 볼일을 끝낸 페이건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폴짝폴짝 앞서가며 손을 흔드는 카밀라, 허겁지겁 그녀와 보무를 맞추며 제라르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페이건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네.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카밀라도 페이건을 믿어 주는데 명색이 가장 친한 친구라는 내가 겁먹고 허둥지둥거리기나 하고. 으으, 페이건이 이 사실을 안다면 ‘넌 이번에도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구나.’라면서 한소리 할 거야.”
“제라르가 그만큼 페이건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니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앞으로 조심할 필요는 있을지도.”
“어떤 걸 조심해?”
“혹시 알아? 앞으로도 페이건을 안 믿어 주다가 그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자리 나한테 덜컥 뺏길지도?”
“아하하, 그건 안 돼.”
제라르는 고개를 돌려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는 소녀의 옆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자신에게는 이미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에 카밀라가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 녹색 눈동자의 쾌활한 소녀에게는 남녀 간의 관계를 떠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페이건도 그렇고, 카밀라도 그렇고.
평범하고 평범한 자신이 어쩌다 이런 괴짜들과 어울리게 된 걸까?
“도서관에 가면 무슨 책이 있을까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카밀라.
“카밀라는 참 대범하구나.”
그 제멋대로인 멜로디가 주는 경쾌함을 이기지 못한 제라르는 결국 느낀 바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고, 카밀라는 손을 들어 입가를 살짝 가리며 미소 지었다.
“다소곳한 외모랑 어울리지 않는 대범하고 대담한 성격이 내 매력 포인트거든, 호호.”
* * *
“데이빗! 여기 데려왔어!”
잡목림 사이를 누빈지 10여 분.
가지 사이로 틈틈이 스며들어 오던 햇살 자락이 희미해질 무렵,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엔토가 큰 목소리로 누군가를 외쳤다.
“이야, 고생했다. 그 자식 순순히 잡혀 오기는 하디?”
“어디, 어떻게 생긴 놈인지 낯짝 한번 볼까?”
숲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놈들.
왈패 같은 놈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겼다는 점.
그리고 가슴팍에 자랑스럽게 달려 있는 강철 심장의 배지였다.
‘꼬라지를 보니 이 엔토 프리마라는 놈은 포획조의 대장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네 명이나 더 있잖아?’
날 끌고 온 놈 셋에,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 넷.
도합 일곱 명의 떨거지가 나를 둘러싼 채 히죽거렸다.
신입생 한 명 끌고 오려고 따까리를 일곱 명씩이나 동원하다니, 만약 해글러 놈이 내 앞에 있다면.
‘뭐든지 아껴 쓸 생각을 해야지. 물론 이따위 놈들 써먹을 데라고는 이런 게 전부라는 건 알고 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인력 낭비가 너무 심하잖아?’
라고 호통을 쳐주고 싶은 정도로 심각한 가성비였다.
“꼬맹아, 네가 요즘 들어 1학년들 사이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그 페이건 클라디우스냐? 우리는 강철 심장 소속 선배님들이시거든.”
“이거 지체 높은 클라디우스의 도련님을 뵙게 돼서 아주 영광입니다. 그려.”
“지체 높기는? 변변한 작위 하나 받지 못한 박쥐 새끼들 가문이 무슨!”
저마다 낄낄대며 포위망을 구축하는 놈들.
능숙하게 스크럼을 짜는 솜씨를 보아하니, 놈들이 이런 짓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햇병아리들 사이에서 변변치 못한 재주로 대접을 좀 받았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지 주제를 모르고 깝치면 쓰나?”
‘햇병아리’라… 이런 표현을 입에 올린다는 건 본인 스스로 햇병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네가 지지리도 멍청한 짓을 하며 설치는 바람에 우리 입장이 얼마나 곤란하게 됐는지 알아? 앙?”
순간적으로 훅하고 낮아진 목소리.
유독 껑충하니 키가 큰, ‘데이빗’이라고 불린 놈이 내 어깨를 감싸며 대가리를 들이밀었고, 난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냄새나는 아가리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그딴 것까지 알아야 되냐?”
“…!”
“등신아. 그 멍청한 표정 집어치우고 용건이 있거든 그것만 얼른 말해.”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바쁜 사람 불러왔으면 개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용건을 밝히라고 했어. 보아하니 스무 살은 된 것 같은데 그 나이 처먹고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 처먹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이게 미쳤… 아… 아악!”
눈알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이려던 데이빗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데이빗, 왜 그래!”
“아… 아… 이 새끼가 내 팔목을… 아… 아아!”
데이빗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한 채 턱 끝으로 내 어깨를 가리켰는데.
“아, 아아, 아! 놔! 이거 놓으라고 이 새끼야!”
그곳에는 내 손에 붙잡힌 채 기괴한 각도로 꺾인 녀석의 팔목이 보였다.
이 팔뚝이 내 어깨를 타고 슥 넘어오는 그 순간 난 이미 이걸 꺾어 놓을 결심을 굳혔다는 걸.
데이빗을 비롯한 따까리들은 알고 있을까?
“명색이 격투가라는 놈이 그렇게 쉽게 주먹을 내밀어? 꼴을 보아하니 너 팔목부터 팔꿈치 사이에 제압점이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르나 보구나.”
“아… 아 이 새끼가 감히 하늘 같은 선배님 몸에 손을 대!”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반대 방향으로 꺾어 버릴 수 있는 손목이었기에 난 미련 없이 녀석을 놓아주었다.
이 자리에 해글러 나이투가 직접 있다면 또 모를까.
이런 피라미들을 제압하는 데는 암살류 체술만으로 충분.
아르카고, 앙겔루스고 일절 필요치 않았다.
“반말에 손찌검까지 너, 너! 이거 책임질 자신 있어? 폴리다고스의 학칙에 모든 하급생은 상급생에게 존중을 표할 것을….”
“그러니까 지금 일곱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협박이나 하는 양아치 놈들이 예의를 논하는 거 맞지?”
대장이 한 대 맞았다고 곧바로 규칙 뒤에 숨으려 들다니.
암살자의 길에 들어선 이래로 수없이 많은 쓰레기들을 만나 왔지만, 장담컨대 나약하기로는 이놈들이 단연 제일이었다.
“그야말로 지금껏 내가 들어본 것들 중에 최고로 천박한 예의고 예절이네. 폴리다고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싸구려가 돼 버린 걸까?”
“페이건 클라디우스! 네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잘 들어. 너에게 용건이 있는 건 우리가 아니야. 네가 화나게 만든 건….”
“알아, 해글러 나이투. 나한테 베가스의 송곳니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땀 냄새나게 생긴 떡대가 화났다는 거잖아. 설마 그것도 모르고 있을까 봐?”
“그… 그걸 알면서?”
삽시간에 굳어 버린 따까리들의 표정.
무리의 리더가 순식간에 제압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유지되고 있던 녀석들의 허세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해글러 나이투’라는 이름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리도 충격적인 걸까?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입만 놀리고 있을래?”
부우웅.
소매 끝에서 빠져나온 침이 푸른 기운을 머금은 채 허공에 떠올랐고, 일곱 명 중 가장 심약해 보이는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대장한테 가서 할 말이 있으려면 이렇게 그냥 갈 수는 없을 거 아냐? 기껏 일곱 명씩이나 보내 놨는데 ‘한 놈 팔목이 꺾이는 걸 보고 너무 겁이 나는 바람에 그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쳐 버렸습니다.’라고 보고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발끈한 표정으로 재차 포위망을 형성하는 덩어리들.
하지만 녀석들이 나에게 덤벼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만 알아 둬. 나는 사람 때릴 때 나이 같은 거 안 따져.”
“…!”
딱히 용맹할 것도 없는 병사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세.
이놈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타이밍에 데이빗의 팔목이 꺾인 그 순간, 놈들은 이미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네 대장한테 가서 전해. 난 바쁜 사람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본인이 직접 오라고.”
점점 느슨해지는 포위망, 이미 상황은 종료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미리 준비해 둔 최후통첩을 날렸다.
애초에 이런 번거로운 짓에 어울려 준 이유 또한 해글러 나이투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네가 무슨 짓을 하건 그걸 유리안 선배님께 이르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맘대로 하라고. 이것도 잊지 말고 꼭 전해.”
“여기서 유리안 선배님의 성함이 왜….”
“너희들이 조금 전 카밀라 앞에서 꼬리 내린 개 같은 표정을 지은 것도, 너네 대장이 직접 나서지 못한 것도, 이런 일을 꾸민 것도 전부 유리안 선배님이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
유리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급격히 겸손해진 녀석들의 표정.
이런 무뢰배들에게도 이렇게나 잘 통하나니, ‘유리안 알렉세예브’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너네한테는 참 다행스럽게도 쪼르르 달려가서 이상한 놈들이 날 괴롭히려 든다고 일러바칠 만큼 나와 유리안 선배님은 친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그쪽으로 일이 번지거나 하는 일도 없을 테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 보란 말이야, 알겠어?”
이 말을 끝으로 잡목림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저놈들은 피라미들.
통첩을 전한 이상 피라미 상대로 단 1초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흐에, 그래도 한 대씩은 때려 줄 줄 알았는데 안 때렸네. 웬일이야?
―얘! 벨제키엘, 페이건이 무슨 깡패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줄 알아? 그치 페이건.
‘그냥 전부 다 귀찮아서 때릴까 하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는데 꾹 참았습니다.’
―어머! 페이건, 그러면 안 돼!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참기를 잘한 것 같네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날개를 펴 뺨을 감싸 주는 라무테 님.
라무테 님의 체온이 느껴지자 잔뜩 곤두서 있던 날도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었고, 그 온기 덕분에 향후 계획을 덤덤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때릴 거면 나쁜 놈 대장을 때려야지, 따까리들을 때려 봤자 제 손만 피곤해지기밖에 더하겠어요?’
* * *
“역시 제라르와 같이 가 주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노을이 내려앉은 거리 위로 가을볕처럼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글러의 따까리들과 대화를 마친 후 난 도서관으로 이동해 두 사람과 합류하는데 성공했고 카밀라를 위한 폴리다고스 투어는 성공적으로 재개되었다.
“제라르는 나를 위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내줬는데, 하루의 마무리 일정을 혼자 보내게 하다니. 제라르가 괜찮다고 했어도 같이 갔어야 하는 건데.”
“괜찮아. 지금까지 지켜본 바, 제라르는 도구점에 혼자 가는 걸 제일 좋아해.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야 마음 놓고 물건도 둘러보고, 가격 비교도 꼼꼼히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도서관에서 재회한 후 늦은 점심을 먹고, 제라르가 발견해 낸 인적이 드문 풍경 명소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고서관과 박물관에 갔다가 석양빛으로 물드는 야외 호수를 구경하는 것으로 투어는 끝.
오늘 하루 성실히 일해 준 가이드, 제라르 군은 투어가 끝나자마자 오늘 오후에 입고된 신형 물약을 살펴보고 싶다며 도구점으로 뛰어갔다.
“그래도 피곤할 텐데, 혼자서 도구점까지 갔다가 오려면 지치지 않을까?”
“안 그럴걸? 너도 며칠 같이 지내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연구에 관한 열정이 정말 어마어마한 친구라 재밌는 연구거리만 있다면 밤도 샐 수 있을 거야.”
“음, 그 말을 듣고 나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첫날의 마지막은 조용히 걷고 싶다는 카밀라의 요청에, 우리 둘은 외곽으로 길게 뻗은 우회로를 통해 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인파에 치여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 주위는 조용했고, 카밀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페이건 군은 왜 안 물어봐? 사실 조용하게 걷고 싶다고 한 것도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 페이건을 위한 배려였는데.”
“배려라니?”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잖아. 지금껏 내가 만난 탑 외부의 사람들 모두 아닌 척해도 무척이나 궁금해하던걸. 슬쩍슬쩍 떠보는 사람들도 많고. 사실은 페이건도 물어보고 싶지?”
적어도 기숙사 건물이 보일 때까지는 깨지지 않으리라 믿었던 한적함은 카밀라가 당돌하게 꺼내 든 질문에 의해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글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거짓말. 사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다 알고 있으면서.”
지상과 하늘, 두 곳을 동시에 물들이는 석양의 채도(彩度)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무렵, 카밀라는 돌연 걸음을 멈췄다.
“좋아, 페이건이 끝내 모른 척하겠다고 하면 내가 물어보면 되지, 뭐.”
그리고 석양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고 있지? 내가 유리안 오빠를 좋아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