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5)화(8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5)
사자와 같은 기세로 따지고 드는 자기의 표정을 확인한 그 순간, 유리안의 매끈한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요. 요것 봐라.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기의 표정을 물들이고 있는 건 조급함.
그리고 그 조급함을 유발한 마법의 단어가 ‘좋은 분위기’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유리안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었던 것이다.
―왜 아무런 말이 없어? 대답 좀 해 봐. 로, 로레인 장로님께서 카밀라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잖아? 그런데 그렇게 아, 아무나 막 소개시켜 주고 그래도 돼?
“왜긴 왜야? 그리고 아무나라니? 자기가 페이건 군 얘기만 나오면 막 좋아서 죽을라 그러니까, ‘아 이 친구 믿어도 되겠구나.’하고 소개시켜 준 거란 말이야. 왜? 뭐 잘못됐어?”
―내가 어, 언제 좋아서 죽을라 그랬다고….
자기는 뒤늦게 태연한 척을 하려 들었지만, 조금 전 목격한 ‘그 다급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에 유리안의 말투는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맨날 말로는 관심도 없다고 하는 주제에 주기적으로 꼬치꼬치 캐묻고.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페이건 군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리고. 좋아 죽을라 그런 거 맞잖아?”
―얘, 얘 말하는 것 좀 봐.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
제 앞에서는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 그 표정 때문에 심술이 잔뜩 난 터라, 실은 자신도 페이건 군을 무척이나 좋게 보고 있다는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자기 말이야 설마 그렇게 고집쟁이처럼 생긴 남자가 취향이었어? 그럼 나도 앞으로 눈도 이렇게 좀 날카롭게 뜨고, 입술도 꾹 다물고 있고 그럴까? 그럼 날 더 좋아해 줄 거야?”
―고집쟁이?
“아, 맞다. 자기는 맨날 눈동자나 반짝거릴 줄 알지 아직 페이건 군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아이참, 고소하기도 하지. 이 일을 어째애? 나는 페이건 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주 자알 알고 있는뎅.”
―고집… 쟁이… 저기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으으으… 나랑 있을 때는 나한테만 집중하라고 했잖아!”
결국 유리안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놀릴 거리를 찾아 득의양양한 것도 잠시, 페이건이 고집쟁이처럼 생겼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꿈꾸는 소녀처럼 몽롱한 표정이 되어 해롱거리는 자기가 견딜 수 없이 얄미웠던 것이다.
“잠깐! 굳이 카밀라와의 결연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가만있어 봐, 내가 카밀라랑 결연을 맺으면 자기는 여유가 생기잖아. 자기 지난번에, 늦어도 다음 학기에는 이곳에 돌아올 거라 그랬지.”
돌연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에 유리안의 표정이 굳어졌고.
“자기 설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어제 잠 제대로 못 잤어? 그래서 자꾸 이렇게 헛소리를….
“헛소리가 아니잖아! 이 발칙한 아가씨 음흉한 것 좀 봐!”
결국 케이크 표면 위를 어지러이 노닐던 포크는 그대로 접시 바닥까지 다이빙을 하고 말았다.
“이 언니는 우리 자기를 이렇게 발칙하게 키운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언제 이렇게 음흉해진 거야!”
―네가 날 언제 키웠는데? 오히려 날 키운 걸로 따지면 너보다는…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나 이제 잘 거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너도 잠이나 자!
―미리 말해두는데 그런 발칙한 계획은 내가 용납 못 해요! 다시 한 번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자기한테는 내가 제일, 나한테는 자기가 제일. 이걸 잊으면 안 돼!
그 후, 유리안은 장장 10여 분에 걸쳐 ‘자기가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자기는 시큰둥한 표정을 한 채 잠을 잔다며 가 버렸고, 결국 혼자 남은 유리안은 케이크에 분풀이를 하며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가 있는 주제에 자꾸 한 눈이나 팔려고 들고. 이상해, 뭔가 있어! 말로는 아무 일도 없다고 하지만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구!”
자기의 표정에서 시작해 케이크로 전이된 방향 잃은 분노는 한층 더 엉뚱한 곳으로 번져 나갔다.
“페이건 군도 그래, 뭐가 ‘저는 외딴 섬에서 온 터라 인기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야! 하는 행동만 봐도 견적이 딱 나오는데… 이거 이거 알고 보면 이런 쪽에는 관심 없다는 얼굴로 이 여자 저 여자 다 후리고 다니는 난봉….”
마음 같아서는 꾼이라는 한 음절을 더 내뱉고 싶었지만, 유리안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꾸만 한눈을 파는 자기를 향한 야속함은 더없이 컸지만, 그렇다고 페이건 군을 상대로 나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쿡.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가 선배님을 막 대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벌써 몇 번이나 자신을 미소 짓게 만든 그 표정과 말을 떠올리자, 잔뜩 뿔이 난 상황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하긴, 뭐 여자들이 홀라당 넘어가도 어쩔 수 없기는 하지. 생긴 것도 그 정도면 빤질빤질하니 잘 생겼고 말도 재밌게 하니까. 눈매가 살짝 무섭기는 하다만 그건 취향에 따라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잠깐, 이게 아니지! 적한테 호의를 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침실에 들기 전 카밀라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는 바람에 유리안은 억지로 웃음을 지운 후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하루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정말 좋은 친구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빠.]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남자에게 철저히 선을 긋는 카밀라가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고?
더군다나 그것도 만난 지 고작 하루 만에.
“으아아아! 어쩌지! 어쩌면 좋아!”
경계해야 하는 게 맞지만 도무지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연하의 후배라니, 결국 유리안은 절반 이상 남은 케이크를 입안에 구겨 넣은 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갈팡질팡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아아, 몰라! 어려운 건 생각 안 할 거야!”
* * *
똑똑.
“교수님,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만 잠시, 괜찮으실까요?”
수업 종료를 20분 정도 남긴 시간, 강의실 앞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고.
“들어와요.”
원소학을 강의하던 교수는 들고 있던 교재를 내려놓은 후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걸 전달해 드리라고….”
“알겠습니다. 수업 종료 시점에 맞춰 전달하도록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실험국 소속 조교수가 건넨 전달 사항을 확인한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발신인이 예상치 못한 인물이기라도 한 걸까?
“자, 그럼 다시 강의 시작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원소학의 주된 흐름은 융합보다는 분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어왔으나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 아포드 경께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신 이래로….”
어라? 방금 저 교수의 눈빛이 나를 향했던 것 같은데.
스삭스삭.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싶어 옆자리 제라르를 바라봤지만 녀석은 언제나처럼 필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터라 교수의 눈빛 따위는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페이건, 교수님이 왜 널 쳐다본 거야?”
“몰라, 나도.”
강의에 열중하느라 필기 사항 외에는 알 바 아닌 제라르와 달리 나의 ‘또 다른 조력자’는 방금 전 눈빛에 적잖은 관심이 있는 듯했다.
“혹시, 저 전달 사항이 너와 관련된 건 아닐까?”
제라르를 사이에 둔 채 속삭임을 전달해 오는 카밀라.
그녀는 강의 내용보다 저 전달 사항에 관심이 있는 듯 눈동자를 반짝거렸고, 그녀의 직감이 들어맞았음이 증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딩동댕동.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그리고 페이건 클라디우스, 호출이다! 지금 즉시 실험국장님의 연구실로 가보도록.”
종료를 알리는 타종에 맞춰 정확히 수업을 종료한 교수는 전달 사항의 내용을 밝혔고 이내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 쏠렸다.
“또 페이건 클라디우스야? 혹시 저 녀석이 지난번에 신청했다던 그 아이템 때문에….”
“몰라. 영특하고 총명하신 클라디우스 공자님의 일을 나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알겠어. 쳇! 관심 같은 건 사양이라는 표정을 하고 다니는 주제에 아주 눈에 띄는 짓은 혼자 다 하고 다닌다니까. 그치만 다른 분도 아닌 실험국장님의 호출이라니, 이번 일은 좀 쌤통이네. 킥!”
“쉿! 카밀라가 여기를 쳐다보잖아. 카밀라가 페이건 클라디우스랑 붙어 다니는 거 잊었어? 말 함부로 했다가 밉보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카밀라도 그래, 하고많은 친구들을 냅두고 왜 저런 회색분자 같은 놈이랑….”
이제는 익숙해진 철부지들의 칭얼거림.
“너희 둘도 들었지?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너희들끼리 먹어야겠다.”
“괜찮아, 기다릴게! 어차피 점심시간은 두 시간이니까 천천히 먹어도 상관없어.”
“응! 나도 기다릴 수 있어. 안 그래도 빌린 책을 다 읽은 터라 제라르에게 새로운 추천을 받을 생각이었거든.”
내 권유에도 불구하고 오누이와 같은 표정으로 도리도리를 하는 두 사람.
“괜찮겠어? 워낙에 이상한 사람의 호출인지라 빨리 안 끝날 수도 있는데?”
“아하하하… 페이건, 나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 이상한… 같은 표현은 조금만 자제해 줄 수 없을까? 내가 불안해서 그래.”
“실험국장님은 어떤 분이셔? 소문을 듣자 하니 너 실험국장님과 독대를 하는 게 이번 처음이 아니라며? 부럽다아! 나 그분의 저서를 감명 깊게 읽은 터라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거든.”
“…그 바람,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걸 추천할게. 아니 이루어지는 편이 더 좋은 인연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결국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제라르와 카밀라는 나란히 선 채 도서관을 향했다.
“그런데 고향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약혼자 분께서도 책을 좋아하니?”
“아니, 에어릴은 책 읽는 것보다 맨발로 숲을 뛰어다니는 걸 더 좋아하거든. 그래도 내가 추천해 준 책은 꾹 참고 읽어 주고는 해. 헤헤.”
“어떤 분일까?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궁금하네. 혹시 기회가 생기거든 그 약혼자 분, 나 좀 꼭 소개시켜 줘. 알겠지?”
“응, 틀림없이 에어릴도 카밀라를 만나고 싶어할 거야. 에어릴은 한참 예전부터 로레인 경의 팬이었으니까.”
카밀라가 폴리다고스에 온 지 오늘로 나흘째.
이제 저 두 사람은 서로가 상당히 익숙해진 듯했다.
생일이 더 빠른 제라르가 동생처럼 보이고, 카밀라가 누나처럼 보인다는 점이 살짝 이상하기는 하다만 어쨌거나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사이가 좋아진 건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없는 틈을 타 시시껄렁한 놈들이 제라르에게 시비를 걸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 왔는데, 카밀라가 옆에 있어 준다면 그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으니까.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호출이라. 이 영감, 일부러 이런 거 아냐?’
사이좋은 남매 같은 두 사람이 멀어진 후 난 반대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슬슬 허기가 느껴지는 배를 움켜쥔 채 괴물이 기다리는 레어를 향했다.
* * *
“네놈은 왜 도무지 가만히 있으려 들지를 않는 거지?”
폴카산을 대신해 가야만 했던 장소가 그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걸까?
안 그래도 강퍅하던 팩셰르는, 한층 더 성마른 모습을 한 채 나를 맞이했다.
“대답해 보거라. 폴카산에 있었다는 그 아크 어스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냐? 그래서 이런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니는 거냐는 말이다.”
물론 양 뺨이 조금 홀쭉해졌다고 하여 그 맹금류와 같은 기세가 누그러지는 일 따위는 없었지만.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지요?”
“「베가스의 송곳니」에 욕심을 부리는 순간 그놈들이 발작을 일으킬 거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네놈, 그리도 도전 정신이 넘치는 성품이었더냐?”
마음 같아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나를 부른 용건을 묻고야 말았다.
괴물의 입술 사이에 위치한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점점 진해지는 터라, 이대로 있다가는 점심도 먹기 전에 담배 연기에 질식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금 전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다. 그런데 그 회의 말미에 「베가스의 송곳니」의 대여와 관련된 의제가 안건으로 올라왔더구나. 이 사실을 굳이 네놈에게까지 말해 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이대로 넘어가는 것도 영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러셨습니까?”
“왜 표정이 그따위인 거지? 혹시 이런 식으로 미리 정보를 챙기는 행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크크크.”
수정 재떨이가 둥실 떠올라 절반 이상 태운 담배를 받아 냈고, 담배와 성냥이 마찬가지로 허공을 날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치익.
다시 한 번 입술 사이로 빛이 번득였고, 한층 더 짙어진 연기를 뱉어 내며 괴물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 네놈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 해글러라는 놈은 자신의 빨대를 통해 회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 정보를 입수했을 테니.”
“잘못 짚으셨습니다. 제가 이런 표정을 지은 건 죄책감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뭣 때문에 그리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냐?”
“이곳에 오기 전, 어쩌면 국장님께서 일전에 드린 질문에 답을 주시기 위해 저를 호출하셨나 싶었습니다. 한데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자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실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질문이라… 그래, 네놈이 지난번에 물었지. 네놈과 티베리에게 이렇게 구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험국에 똬리를 틀고 앉은 이 초대형 능구렁이가 그토록 쉽게 자신의 속내를 보여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이 말을 꺼낸 건 ‘당신은 언젠가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 줘야 해.’라는 걸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답해 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한데, 팩셰르의 표정을 보아하니 예상외의 소득이 있을지도 모르지 싶었다.
꿈틀대는 미간과 좌우로 벌어지는 입술.
치익.
이제 겨우 그 끄트머리만 타들어 간 담배를 비벼 끈 괴물은 앙상한 오른쪽 팔목을 들어 텅 비어 있는 왼팔 소매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팩셰르 본인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광기에 가까운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 왼쪽 소매가 이토록 허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