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8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7)화(8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87)
“…무슨 소리지?”
“국장님과 저 사이에 성립된 계약이 통상적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만큼, 상환의 시기를 정할 때도 ‘채무자의 조기 상환 의지를 최우선한다.’라는 세간의 방식이 일방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지워 놓은 빚을 이번에 사용할 생각이 없다. 이 말을 하는 것이냐?”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하!”
돌출된 팩셰르의 광대뼈 아래로, 용이 뱉어 낸 숨결을 연상케 하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 표정이며 반응을 보건대 아무래도 팩셰르는 내 대답을 ‘같잖은 만용’쯤으로 간주한 듯싶었다.
“규율국의 허수아비들과 나이투의 찌꺼기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참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겠군.”
다시 한 번 지어지는 도발적인 미소.
이 미소를 끝으로 팩셰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 *
지긋지긋한 노괴물의 레어를 탈출한 뒤 기다리고 있을 제라르와 카밀라에게로 향하는 길.
펙셰르는 여타의 교수였다면 틀림없이 물어봤음직한.
“너, 4학년을 우습게 보는 거냐? 네가 상대해야 하는 건 보통 4학년도 아니고 저학년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야. 그런데 아무런 도움 없이 그대로 정면 승부를 하겠다고? 더군다나 승부를 결정짓는 방식도 너에게는 불리할 가능성이 매우 큰데?”
라는 말이나.
“혹시 유리안을 상대로 조금 버텼다고 자만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네가 상대한 건 유리안이라고 볼 수도 없어. 만약 그때의 유리안을 기준으로 상급생들을 우습게 보는 거라면 호된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같은 식의 엄포를 늘어놓는 일도 없었다.
[나가 보거라. 경쟁자가 두 명밖에 없는 이상 물건의 주인을 가리는 방법 역시 번거로울 필요는 없겠지. ‘단둘이서 번거롭지 않게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기다리고 있거라. 방식이며 일정이 정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을 테니.]찝찝하고도 도발적인 미소 이후로 한 말이라고는 일방적인 축객령이 전부.
물론 팩셰르의 평소 인품을 생각하면 이 정도 힌트를 주는 것도 어마어마한 특혜로 생각해야겠지만 딱히 고맙지는 않았다.
―나, 지난번에 저 사람 싫다고 했잖아. 오늘부로 더 싫어졌어. 우에엑, 뭐가 태풍이고 뭐가 개돼지투성이야! 꼭 그렇게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말을 해야 하나? 지는 생긴 건 꼭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 같은 주제에.
‘앞으로 팩셰르가 좋아지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품고 있는 신념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자리는 아니었어,’
―신념? 저런 괴팍쟁이한테 무슨 신념? 저 미치광이 영감은 그냥 자기 고집대로 심술을 부리고 있을 뿐이잖아?
‘꼭 올곧고 정상적인 사람만 신념을 품을 수 있는 건 아니야. 하다못해 살인범도 나름의 신념은 있을 수 있어. 신념이라는 건 애초에 가치중립적인 것이라 그 자체로 흑백을 말해 주는 게 아니니까.’
팩셰르의 독기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연신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북슬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준 후, 서둘러 도서관을 향했다.
점심시간은 두 시간, 팩셰르와의 대화에 23분을 소비했으니 1시간 하고도 37분이 남은 셈이었다.
―있잖아, 페이건. 팩셰르라는 사람이 말한 물건의 주인을 가릴 수 있는, 번거롭지 않은 방법이라는 건 역시 결투를 말하는 걸까?
‘그렇겠죠. 그리고 팩셰르가 이 정도까지 정보를 흘려 준 걸 보면 방식은 거의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팩셰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결투라는 방법이 선택되는데 그 해… 그러니까.
―고릴라! 페이건이 고릴라처럼 생겼다 그랬어!
―흠흠 그래, 그러니까 그 대형 영장류를 닮았다는 상급생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가 결투라는 거잖아? 다른 사람도 아닌 페이건 너를 상대해야 하면서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결투라는 방식을 고른 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격투가는 기사와 더불어 1대1 승부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클래스거든요. 더군다나 애초에 1학년 치료술사를 상대로 질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자신감의 정도를 논하는 건 무의미할 겁니다. 지금쯤 고릴, 아니 해글러 나이투는 판이 깔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을걸요.’
―으으 화나! 멍청한 덩어리 주제에 감히 우리 페이건을 뭘로 보고!
‘라무테 님이 알고 있는 저와 그놈들이 알고 있는 제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너무 화를 내지는 마세요. 뭣도 모르는 바보들을 상대할 때는 뭐가 정답인지 알려 주면 그만 아닐까요?’
저마다의 불만을 털어놓는 둘을 달래 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고, 난 제라르의 지정석이라 할 수 있는 3층 우측에서 두 번째 창가로 향했다.
‘뭐야? 둘 다 어디 갔어?’
하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 제라르의 공책이며 읽다 만 책이 있는 걸 보면 두 사람이 여기에 온 건 맞는데….’
흔적만을 남겨 놓은 채 자취를 감춘 제라르와 카밀라.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도서관 직원들에게 두 사람의 행방을 물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진 그때.
“공자님!”
도서를 정리하는 척하며 내 옆을 스쳐 가는 직원이 꼬깃꼬깃 적힌 쪽지를 슬쩍 건넸다.
엘리시온 영애께서 잠시 방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우자마자 3학년 학생들이 안경 쓴 1학년 학생을 끌고 갔어요. 움직인 방향을 보면 옥상 쪽으로 간 것 같아요. 옥상에는 인적이 드문 장소가 많고 벌써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서두르세요.
해글러 패거리가 벌일지도 모르는 패악질이 두려웠던 직원은, 은밀한 정보를 넘겨준 후 총총한 걸음으로 사라졌고.
꾸깃.
‘이 개새끼들이….’
단숨에 쪽지를 구겨 버린 나는 서둘러 옥상을 향했다.
강철 심장 놈들이 아무리 쓰레기 같이 군다고 해도 카밀라가 같이 있는 이상 허튼짓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곧바로 제라르를 노리다니.
이 절묘한 타이밍을 보건대 놈들은 줄곧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나쁜 놈들! 우리 안경 꼬마를 끌고 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혹시 그놈들 그 꼬마를 인질 삼아 너를….
‘인질은 무슨. 쓰레기 같은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폴리다고스가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야. 그리고 지난번에 그놈들 봤잖아? 애초에 인질을 잡고 뭘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똑똑한 놈들도 아니고.’
―그럼 제라르를 왜?
‘그냥 분풀이 상대가 필요했던 거야. 해글러 없이 자기들끼리 날 어떻게 해보기에는 겁이 나고, 카밀라는 엄두가 안 나니까 가장 만만한 제라르로 정한 거지.’
―우와! 나쁜 놈들! 그럼 뭐 따로 생각이 있어서도 아니고 화가 났다고 꼬맹이를 끌고 갔다는 거야! 페이건, 빨리 움직여! 그 나쁜 놈들이 우리 ‘안경이’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잠시 후 옥상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거의 모든 면에서 함량 미달이지만 ‘저열함’이라는 부문만큼은 기준치를 한참 초월한 놈들이 제라르에게 험한 짓을 하기 전에 쓰레기들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짜악.
―페이건, 오른쪽 구석!
인적 드문 옥상에서 인간의 살갗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쪽을 향해 내달렸다.
으득.
‘너희들이 감히 내 친구에게 손을 댔단 말이지? 좋아. 열 배, 스무 배로 갚아 주지.’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 채 도착한 모퉁이.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저희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너… 네가 감히, 감히 선배에게 손을 대!”
한데 그곳에서는 내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 네가 제아무리 페르디난드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은 거야! 이런 잔챙이 새끼 하나를 감싸려고 감히 우리와 척을 져?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너 진짜 죽고 싶어?”
“선을 넘은 건 내가 아니라 선배님들입니다. 무려 3년씩이나 폴리다고스에 재학을 하고서 한다는 짓이 고작 이따위 저열한 행동입니까?”
원형을 이룬 채 포위진을 형성한 강철 심장 소속의 3학년들과 그 안에 갇힌 제라르.
“선배의 몸에 손을 댄 제 무례함을 탓하기 전에 잘못이 없는 후배를 끌고 와서 집단 폭행을 가하려 한 그 저열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라르 앞을 막아선 채 쓰레기들과 대치를 하고 있는 하얀 머리카락의 소년.
“이 새끼가…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너부터 먼저 쓰… 히, 히힉!”
“페이건!”
내 등장을 알아차린 쓰레기 무리 리더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나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그래 봤자 본판이 워낙에 순둥순둥한 탓에 딱히 무섭게 보이지 않았지만) 제라르가 내 이름을 외쳤다.
“이 새끼가,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어딜 그런 건방진 표정을….”
콰앙.
“어억!”
“괜찮아?”
“으, 응. 페르디난드 공자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어.”
나를 막아선 쓰레기 중 한 명을 반사적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린 후 제라르의 몸 상태를 살폈는데 다행히 얼굴이나 몸 어디에서도 손찌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 페이건, 오랜만이네.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쓰레기들의 횡포로부터 제라르를 지켜 준 백룡가문의 천재 기사는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런 씨… 이래서 저 새끼가 오기 전에 일찍 처리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표정의 제라르와 달리 쓰레기 무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녀석들의 망토며 휘장은 몸싸움을 벌인 것처럼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너, 저놈들 때린 거야?”
“저놈들? 넌 여전하구나. 하긴 이 정도 배짱이 있으니까 그리폰을 길들일 수 있었겠지. 사실은 이 옥상, 내 비밀 휴식 장소거든. 오늘도 잠깐 쉬고 있었는데 저 선배들이 네 친구를 끌고 왔더라고. 그다음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상황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한 덕에 금방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던 아스트라의 시야에 제라르와 쓰레기 무리가 포착됐고, 쓰레기들의 만행을 목격한 아스트라가 참지 못하고 개입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쓰레기 무리와 아스트라가 대치하는 중에 어느 정도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쓰레기 무리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만 것이다.
“음, 잠깐만.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데 일단 여기 좀 정리하고.”
제라르와 아스트라, 두 사람 모두에게 할 말은 많았지만 일단 상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난 두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후 이 사태의 원흉, 아니 원흉의 따까리들을 향해 다가섰다.
“뭐, 뭐? 네가 그렇게 꼬라보면 뭐 어쩔 건데? 야! 너 잘 알아 둬. 우리가 여기 온 건 다 해글러 선배님의 뜻이 있었기에… 켁!”
“마, 맞아!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함부로 굴었다가는 해글러 선배님을 포함해서 선배님과 친한 다른 분들이 너를… 커걱!”
고장난 장난감처럼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뒷배를 털어놓던 녀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케, 케켁… 모, 목!”
“너… 너, 얼른 이거 풀어! …이거 안 풀면.”
내 소매 끝에서 빠져나간 마나의 끈이 그대로 녀석들의 목을 휘감아 버린 것이다.
물론 이 끈이 100%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침의 인도가 필요했지만, 이런 쓰레기들의 주둥이를 막아 놓는 데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길어봐야 일주일 안쪽으로 결착이 지어질 일이었는데, 너희들도 어지간히 인내심이 부족하구나.”
“야… 커컥! 이거 풀어… 풀라고!”
“케켁!”
덫에 걸린 쥐새끼 같은 표정을 한 채 목을 감싸 쥔 쓰레기들.
저항할 기력을 상실한 놈들은 발버둥을 치며 죽는소리를 냈지만, 끈의 속박은 더욱더 기세를 더할 뿐이었다.
“페, 페이건! 이러다 큰일 나겠어. 얼른 그거 풀자. 응?”
“괜찮아. 이 끈도, 인간의 몸도 내가 여러 번 다뤄 봐서 잘 아는데 이 정도 가지고는 큰일 안나.”
“그, 그래도! 자, 봐!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이만하자. 응?”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제라르는 발까지 굴러 가며 나를 말렸고.
“끄르륵!”
쓰레기들의 입에서 게거품이 터져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난 속박을 풀어 줬다.
“헤헥, 허헉!”
“하악하악, 너… 쿨룩… 너, 쿨룩!”
“선배님들, 얼른 가세요. 여기서 더 있다가는 정말 큰일나요. 얼른요!”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토해 내는 쓰레기들의 등을 두드리며 서둘러 이 자리에서 사라질 것을 종용하는 제라르.
참 우습게도 옥상 한구석에 멀쩡히 서 있는 우리 3인 중에 쓰레기들의 안위를 걱정해 주고 있는 건 제라르가 유일했다.
아스트라는 ‘내가 할 일은 다 끝났지 뭐.’라는 표정을 한 채 나와 쓰레기들을 번갈아 볼 뿐 딱히 나를 말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 모범생처럼 생겨서 소심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대담한 구석이 있네.’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여 주는 백룡기사님의 표정을 슬쩍 살핀 후, 난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 쓰레기 리더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말했다.
“야, 이 길로 곧장 너네 대장한테 달려가서 전해.”
“히, 히익!”
“지난번, 너희들이 나를 불러 헛소리할 때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번 건 조금 화가 나네.”
일전에 난 해글러의 부하들을 시켜 내가 보고 싶거든 직접 오라는 말을 전한 바 있었다.
하지만 해글러 패거리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쓰레기력을 보여 줬고 나로 하여금 계획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아… 아악….”
난 녀석의 미간을 힘줄이 돋아나도록 움켜잡았다.
아직 호흡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 쓰레기 리더는 죽는다는 소리를 내질렀고, 난 그 비명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언을 남겼다.
“붕어 똥같이 멍청한 부하를 둔 쓰레기가 어떻게 될지 내가 직접 가르쳐 주러 갈게. 장담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