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93)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3)화(93/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3)
“네?”
“어제는 아주 쪼오끔 멋있었다고 했잖아. 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우, 우쭐하거나 그러면 곤란해. 어제의 페이건은 멋지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입생 레벨에서나 통하는 멋짐이었거든. 폴리다고스 상급생 레벨의 멋짐에 다다르려면 아직 한 참 멀었어. 그러니 어제의 모습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도 꾸준히 멋짐을 갈고닦도록 해.”
“멋짐을 측정하는 척도에도 상급생용, 하급생용 기준이 따로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멋짐이라는 게 연마가 가능한 일이었던가요?”
“그, 그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모습에 취해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은 그게 다야? 뭐야, 기껏 칭찬해 줬더니. 오늘도 언제나처럼 참 재미없는 반응이네. 에이, 괘, 괜히 얘기했다.”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의젓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선배의 귓불이 ‘그’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를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남자들끼리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멋지다는 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리 얼굴까지 붉혀 가면서 쭈뼛거리는지.’
왕자님이라는 별명과 도통 어울리지 않는 그 순진한 모습에 새삼 감탄하며 나는 유리안 선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우쭐할 생각은 없지만 제가 봐도 어제의 따귀는 제법 호쾌하기는 했지요.”
“응? 따귀라니?”
“해글러 나이트의 뺨을 묵사발로 만든 과정이 보기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려던 거 아니었나요?”
“아니야! 물론 해글러 그놈이 밉상이기는 했지만 내가 변태도 아니고 사람 맞는 걸 보면서 왜 좋아해! 페이건 군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
발끈한 표정으로 왈칵 소리를 내지르는 유리안 선배.
아무래도 선배가 말한 ‘멋짐 포인트’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볼만했던 장면’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듯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그놈의 뺨을 두들기면서 꽤나 행복했는데 선배님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저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셈이군요.”
“윽! 그건 아니, 그래도 페이건 군은 당사자니까 이상한 사람이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아니 아무튼 해글러의 뺨 이야기는 여기서 끝! 애초에 내가 멋지다고 한 건 선언이었다구! ‘너희들이 앞으로도 내 친구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다 죽여 버리겠어!’라고 한 선언 말이야.”
“정황상 그렇게도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이니 살리니 하는 말을 직접 입에 올린 적은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표현이라는 게 꼭 음성언어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 그런 분위기에서 그런 눈빛으로 말하면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의미로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거든. 그래, 안 그래?”
“선배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하죠. 뭐, 여기서 아니라고 벅벅 우긴다 해서 저에게 뭔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흠흠, 그래 맞아. 페이건 군은 어젯밤 내 친구를 건드리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선언을 한 게 틀림없다는 말이야.”
선배는 어쩐지 득의양양한 표정을 한 채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젯밤의 내가 보여 준 어떤 모습이 폴리다고스의 왕자님을 이토록 우쭐하게 만들 수 있었던 걸까?
답을 알고 있다면 다음번에 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방심 같은 거 하지 말고 쭉 정진하란 말이야.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그리고 오늘 내로 치안국장님 찾아뵙는 거 잊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선배는 요아힘 벤제르센발(發) 호출령을 다시금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멋짐이란 무엇인가?’로 흘렀지만 사실 선배가 나를 찾은 진짜 이유는 이 명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의외이군요. 이런 류의 아이템 수여는 실험국이나 유물국에서 전담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치안국장님께서 「베가스의 송곳니」를 수여해 주신다니….”
“사실 나도 처음에는 놀랐어. 치안국장님은 대외 업무가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이런 식의 교내 수여식에 적극 나서시는 일이 드물거든.”
폴리다고스의 치안국장이 유리안 선배를 통해 전달한 명령의 내용은 간결했다.
‘「베가스의 송곳니」 수여식이 치안국장실에서 약식으로 시행될 예정이니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일주일 내로 치안국장실을 방문할 것.’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호출령은, 일곱 명의 국장 중 가장 탈권위적인 것으로 알려진 요아힘의 평소 성품을 닮아 있었다.
“혹시 치안국장님과 대화를 나눠 본 적 있니?”
“아니요. 선배와의 결투가 있을 때 먼발치에서 한 번 바라본 게 전부입니다.”
“잘됐네. 이번 기회에 치안국장님과 인연을 맺어 두는 것도 좋을 거야. 다른 국장님들도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치안국장님은… 푸훗! 엄청 재미있고 친절하신 분이거든. 물론 그 능력적으로도 완벽하시지만.”
“선배님은 평소 국장급 정도 되는 초고위 간부님들과도 직접 소통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응? 아, 아니야! 그냥 스승님과 국장님들께서 협업하시는 일이 많은 터라 내가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을 뿐이야. 대단하기는 무슨!”
나한테는 멋짐이 터져 나오니 뭐니 했던 주제에 자신에 대한 칭찬이 나오자마자 선배는 고개를 내젓기에 바빴다.
“그리고… 자기야말로나는인기같은게있어본적없어요라고말해놓고이여자저여자죄다후리고다니는거짓말쟁이주제에누가누구보고대단하다는거야정말….”
“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니야, 아무것도.”
이상하다… 방금 거짓말쟁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나 일이 있어서 이제는 정말 가 봐야 돼. 페이건 군, 우리 또 보자. 네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와.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그렇게 유리안 선배는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방을 빠져나갔고, 홀로 남은 나는 곧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우물우물 웬일로 예복을 다 꺼내 입어? 아! 그 치안국장인지 뭔지 하는 빨강머리 아저씨 만나러 가는 거구나?
“응. 일주일 안에만 오면 된다고 말했지만, 괜히 오래 끌 필요 없으니까.”
―함냐함냐, 그 빨강머리 아저씨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싸움으로 1등이라 그랬지? 함냐, 그 아저씨도 유리안처럼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
―응 유리안은 좋은 사람. 그리고 그 팩셰르라는 영감은 나쁜 사람. 꿀꺽!
거의 자기 얼굴만 한 크래커를, 그야말로 삽시간에 해치워 버린 북슬이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안 선배를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오늘 올 때 과자 사 왔잖아. 그것도 전부 다 비싼 걸로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누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 막 따라가고 그러면 안 된다.”
―응! 알았어. 안 따라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북슬이는 기운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이내 선배가 가져온 선물용 과자 상자를 마저 분해하는(물론 내 허락 따위는 애초에 득하지 않은) 작업에 몰입했다.
―찾았다. 슈크림! 그러엄, 이 구성에 슈크림이 없으면 말이 안 되지. 만세! 이거는 차갑게 해 놨다가 내일 아침 디저트로 먹어야징! 엉, 뭐야? 벌써 준비 끝났어? 히잉, 아직 초콜릿은 못 먹었는데.
외출 준비를 끝낸 나는 그대로 북슬이의 꼬리를 잡아들었고, 녀석은 미련이 진하게 남은 눈동자를 한 채 내 정수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준비 끝! 그럼 어디 폴리다고스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아저씨를 만나러 가 볼까!
언제나처럼 부지런한 라무테 님이 포롱포롱 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끝으로 외출 준비는 완료됐고 난 치안국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거기 학생분들 타실 예정이라면 얼른 올라오세요. 탑승 안 하시면 그냥 출발합니다!”
“아, 네. 그, 그냥 출발하세요. 저희는 일행이 아직 다 안 와서….”
“네… 네, 저희는 다음 꺼 탈게요.”
“그럼 바로 출발합니다! 히랴!”
히이힝!
학생들의 의사를 확인한 마부는 고삐를 당겼고 다인승 마차를 끌던 여덟 마리의 말은 치안국으로 향하는 가도를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기운찬 말발굽 소리 사이로 진하게 느껴지는 마부의 시선.
당장이라도 올라탈 것처럼 줄을 서 있던 승강장의 학생들이 그대로 마차를 떠나보낸 게 이걸로 세 번째.
마차를 운행하는 마부의 입장에, 자신이 이끄는 대중교통 기관을 이토록 한산하게 만든 장본인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흐흐흐. 라무테, 방금 그 꼬마들 표정 봤어? 자기들끼리 좋다고 떠들면서 타려고 했다가 페이건이 보이자마자 표정이 싹 변한 거? ‘다음 꺼 탈게요!’라고 하는 꼬라지 좀 봐! 우헤헤, 신난다!
―그러엄 봤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보려고 안달이난 녀셕들이 허겁지겁 도망가는 꼴이라니. 역시 보여 줄 때는 아주 시원하게 보여 줘야 해. 그렇지, 페이건?
달라진 학생들의 반응에 만족감을 표하는 둘.
두 사람의 말마따나 결투 이후로 학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물론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결투 이전까지 나를 대하는 학생들의 감정이 적개심이었다면 결투 이후 감정의 기저에는 공포가 자리 잡게 되었달까?
대놓고 시비를 걸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주위를 지나가며 들으라는 듯이 거슬리는 발언을 늘어놓던 녀석들은 나를 보면 몸을 내빼기에 바빴다.
날파리 같은 놈들이 알아서 몸을 사려 준 덕분에 나는 무척이나 쾌적한 환경 속에서 치안국을 향할 수 있었고 마차를 탑승하는 길에 얻은 ‘전리품’ 또한 양호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킁킁! 그나저나 이거 뭘까? 만져 보니까 말랑말랑한데… 먹는 거였으면 좋겠다.
어느새 머리 위에서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북슬이는 가득 담긴 선물 바구니 사이를 누비며 내용물을 추측하기에 바빴다.
얼핏 보기에도 열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저 상자들은 이름 모를(추상성을 부여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같은 수업을 듣는 누구누구라고는 하는데 통 알 수가 있어야지.) 동기들이 건네준 선물들이었다.
기숙사에 있는 내 방에서 마차를 타는 승강장까지 거리는 도보로 10분.
그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열 팀이 조금 넘는 여학우 무리를 마주해야만 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결투 승리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준비한 선물들을 내밀었다.
물론 사용인이나 수행 인원을 시켜 선물을 전달했다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모든 선물들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직접, 그것도 내가 나오기만을 꼬박 기다렸다는 말까지 하면서 준비한 물건들을 내미는데 그것까지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었고.
결국 선물의 양은 저렇게 늘어나 버리고 말았다.
―페이건 우리 이거 얼른 뜯어보자. 그리고 먹을 거면 나 줘! 응?
―얘도 참! 그 아이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페이건이 가져야 할 것들인데 왜 네가 욕심을 부리니. 그럼 못 써!
북슬이는 들뜬 표정을 한 채 선물 꾸러미 위를 뒹굴거리고 있었고 짐짓 엄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고는 있었지만 라무테 님의 표정 역시 즐거워 보였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소나기와도 같은 호의가 이 둘을 즐겁게 만들었나 보다.
‘…이런 건 익숙하지 않은데.’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 공포가 그 방향을 달리하는 순간 경외감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작금의 상황은 나로서도 낯설 수밖에 없었고.
―페이건, 뭐라고 말 좀 해봐, 응? 이거 먹을 거면 나 줄 거지? 그치?
롤빵이에게 지금의 감정을 숨기고 싶었던 난, 결국 무심한 표정을 가장한 채 마차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해야만 했다.
* * *
20여 분 정도 마차를 달려 도착한 치안국 건물.
“치안국장님을 방문하러 오셨다구요? 혹시 예약을 하셨을까요? 네, 아! 학생이 바로 그 페이건 클라디우스. 어마나, 미안해요. 내가 또 유명인을 몰라봤네. 혹시 기분 상하거나 한 건 아니죠? 호호.”
“사실은 국장님께서 이번 주 안으로 클라디우스 공자가 알현을 신청해 올 테니 그때는 지체 없이 집무실로 들이라는 말씀을 남겨 놓으셨거든요. 그런데 지금 국장님이 먼저 온 손님을 만나 뵙고 있어서… 잠깐만요!”
“네. 국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손님을 만나 뵙고 계시는 때에 말씀을 올리는 게 실례인 줄은 알지만, 국장님께서 미리 당부를 주셨던 일인지라. 네, 다름이 아니오라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가 방문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대기실로 안내를 해 드릴… 어머! 지금 바로요? 그치만 선객이… 아, 선객께서 괜찮으시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안쪽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아힘 벤제르센의 스케줄 관리를 맡고 있는 수석 비서는 싹싹한 태도로 나를 맞이해 줬고, 내 이름을 밝히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일정을 조율해 나갔다.
“국장님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공자.”
“…국장님께서 먼저 처리하셔야 하는 일정이 있으시다면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으응, 아니에요.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요. 국장님께서 먼저 오신 손님을 맞이하고 계시지만 클라디우스 공자를 들이는 게 정말로 곤란했다면 기다려 달라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손님과도 양해가 된 일이니 바로 안내하라고 하시네요. 자,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를 따라오시면 돼요.”
치안국장의 지휘를 받는 직원들은 ‘치안’이라는 부서명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활달하고 친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조직 분위기 역시 요아힘 벤제르센이라는 사람을 닮아 있는 거겠지?
‘그나저나 손님이라니 누구지? 나도 제법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머리 위에는 북슬이를, 어깨에는 라무테 님을 얹은 채 난 비서를 따라갔고 길게 뻗은 복도를 뒤따른 지 수십 초.
똑똑.
“국장님,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를 모셔왔습니다.”
“응, 안으로 모시게. 허허!”
삐걱.
마침내 난 폴리다고스의 안전을 책임지는 초고위 간부가 지배하는 영역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잘 와 줬네. 입학식을 할 때 멀리서 한번 봤지 우리? 하하, 그 이후로 자네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만 이야기는 꾸준히 듣고 있었다네. 어젯밤, 아주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지?”
짝짝짝.
호쾌하기 그지없는 박수 소리와 시원한 웃음.
폴리다고스의 치안국장은 ‘쾌남’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을 한 채 나를 반겨 줬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폴리다고스를 수호하는 가장 견고한 성벽을 찾아뵙사옵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위명을 갖추신 분을 이리 찾아뵙게 되니 참으로 영광스러울 따름이옵니다.”
“폴리다고스에 입학한 이상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야. 영광은 무슨, 하하!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거기 앉게나.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아.”
굳이 내 앞까지 다가와 나를 일으켜 주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하는 요아힘.
어깨를 움켜잡은 그의 두 손에서는 그 새빨간 머리카락보다 더 후끈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머, 페이건은 좋겠다. 국장님이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셨는데.”
“그야 자네는 아리따운 아가씨고 여기 이 친구는 든든한 사나이니까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이래 봬도 내가 신사를 자처하는 사람인데 비록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라 한들 아가씨의 몸에 덜컥 손을 올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귓가에 와 닿는, 곡옥(曲玉)처럼 매끈하고 옹달샘처럼 시원한 목소리.
이제는 완연히 익숙해진 그 목소리를 통해 난 나보다 빨리 치안국장실을 찾은 선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석처럼 눈부신 녹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동기는 방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야, 페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