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9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4)화(9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4)
“카밀라,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기는. 왠지 네가 여기 올 거 같아서 내가 먼저 와있었지이.”
“….”
“…라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너랑 같은 이유일 거야. 치안국장님 호출.”
배시시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깔깔거리는 카밀라.
유쾌한 성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치안국장 사무실에서 이토록 거리낌 없이 농담을 할 줄이야.
하여튼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참 대담한 아가씨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래, 본인이 말한 것처럼 카밀라 양 또한 내가 불렀다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이렇게 일찍 도착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만. 유리안 군이 ‘히히, 페이건에게 할 말이 잔뜩 있네! 아이 신난다.’라는 표정을 한 채 자네에게 달려가는 걸 본 터라 둘 사이의 대화 또한 길어질 것이라 생각했거든.”
“선배가 치안국장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을 해 준 덕에 대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서둘러 국장님을 번거롭게 했다면 저는 기다리는 것도….”
“아니야, 아니야. 생각해 보니 자네가 같이 있어도 대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리고 서둘러 방문해 준 점은 나 또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줄 게 있을 때는 빨리 줘 버리는 편이 나도 마음이 편하거든.”
요아힘은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 후 내 앞에 놓인 찻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럼 카밀라 양, 우리 하던 이야기부터 재빨리 마무리를 지어보도록 할까?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지.”
“어젯밤 있었던 결투의 여파로 페이건 클라디우스 군의 1학년 학년 대표 선발이 거의 유력해 졌다는 부분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능력을 놓고 보면 저 역시 학년 대표 선발 경쟁에 포함되는 게 마땅한 일이나 어쩌다 보니 선발 레이스가 너무 뻔해져 기회를 주지 못하는 점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요.”
“아, 그래! 그래, 네가 거기까지 얘기하고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한 바로 그때. 우리 비서 양께서 페이건 군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줬더랬지. 허허.”
“맞아요. 어쩜 그리 귀신같은 타이밍인지 호호!”
마치 사이좋은 부녀지간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허허호호 웃음을 터뜨리는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이 농담처럼 내뱉은 말 속에는 결코 흘려넘길 수 없는 정보가 가득했기에 나는 두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릴 수 없었다.
―페이건, 지금 카밀라가 말한 학년 대표 선발이라는 거 말이야. 그 지난번 네가 여기 온 첫날, 팩셰르 교수가 너랑 아스트라를 포함한 신입생들 불러 모아 놓고 ‘너희들은 이제부터 경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라며 꺼낸 그 이야기 맞지?
―그런데 그게 너로 거의 정해졌다고? 그럼 이제 그 대표 선발 시험이라는 거 더 안 봐? 아니면 페이건, 너 혹시 우리 몰래 시험이라도 치고 온 거야?
그리고 이 충격적인 소식에 의문을 표하는 건 라무테 님과 롤빵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딱히 욕심을 낸 적이 없지만, 폴리다고스의 학년 대표로 선발된다는 건 내로라 하는 대귀족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영예로 여겨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일을 이렇게 대충 정해도 돼?
“어머! 국장님, 페이건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기가 학년 대표로 내정될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나 본데요. 제가 말씀드렸죠? 지금까지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깜짝 놀랄 만큼 영민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자기 일에 관해서 터무니없이 둔감해질 때도 있다고.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지금은 둔감 모드였나 봐요.”
“하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그런데 사실 어느 정도의 둔감함은 출중한 학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네. 판단의 기준이 범인들과는 다르다 보니 자기가 해낸 일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머! 그런 거였나요? 페이건 너어, 아주 얄미워.”
찰싹하는 소리를 내며 내 손등 위를 후려치는 카밀라의 손바닥.
하지만 힘이라고는 실리지 않는 그 움직임을 보건대 카밀라는 내가 학년 대표로 내정되는 데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천공의 눈’ 출신에 ‘빙하의 여제’가 키워 낸 직전 제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 또한 얼마든지 학년 대표 자리를 욕심내 볼 법도 했건만, 카밀라의 미소에서는 자리를 향한 일말의 미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장님, 업무가 바쁘실 텐데 굳이 저를 불러 제가 학년 대표 선발 경쟁에 참가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고 제 의견까지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네에게는 정당한 기회의 박탈이라 생각될 수도 있는 일이니 당연히 이리해야지.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네 입장에서는 충분히 애석하게 느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국장님, 저는 전혀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쁠 따름이에요.”
“기쁠 따름이라니… 하하. 아무리 봐도 참으로 당찬 아가씨란 말이야.”
“기쁜 일일 수밖에요. 제 소중한 친구가 그 능력에 어울리는 합당한 대우를 받는 건 저에게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합당한 대우.
꽤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을 입에 담는 카밀라의 표정에서는 더 이상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그 발언, 자네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라고 받아들여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혹시 국장님께서 제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느 곳에서든 몇 번이고 똑같이 말할 수 있답니다.”
“고맙네. 자네가 그렇게 말해 준 덕분에 나도 일을 정리하기가 한결 더 수월해졌어. 페이건 군, 축하하네. 입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토록 좋은 친구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머! 지금 그 말씀은 페이건이 아니라 저한테 하셔야 하는 말씀 아닐까요?”
“그래. 두 사람 모두에게 축하할 일이지! 하하!”
세상 호탕한 요아힘의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를 끝으로 내가 학년 대표로 내정되는 일은(내 의사와는 별다른 상관없이) 마무리가 되어 버렸고, 카밀라는 우아한 동작으로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국장님,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오늘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벌써 가려고? 아직 페이건 군이랑은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했는데. 옆에 앉아서 좀 더 놀다 가지 그러나?”
“아니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 여기까지만 할게요. 페이건, 그럼 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국장님이랑 천천히 대화 나누고 나와.”
하지만 카밀라의 인사는 나와의 작별이 아닌 요아힘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내 어깨를 가벼이 두드리는 것으로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후 문을 향해 다가섰다.
“아 참, 로레인 장로님은 잘 계시나? 혹시 나한테 하신 말씀이 있지는 않으시고?”
“스승님이요? 아하하 그게….”
“표정을 보아하니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괜찮으니 기탄없이, 전해 들은 그대로 말해 보게나. 로레인 장로님의 화법이며 성정은 내 익히 알고 있으니 염려할 것 없네.”
“아하하하… 그게….”
“허허! 괜찮으니 말해 보래두.”
“사실은 스승님께서 ‘요아힘 그 사람이 언뜻 보기에는 멋대가리 없이 덩치만 큰 것 같지만 그 내면 또한 덩치만큼이나 넉넉한 인물이니 행여 그 친구 눈치 보지 말고 즐겁게 뛰어놀고 오려무나, 카밀라야.’라는 말씀을 해 주시기는 하셨어요.”
“하하! 우리 빙하의 여왕께서도 여전하시구만. 도무지 변하지를 않으셔.”
대화의 당사자들이 가진 영향력에 비하면 참으로 소탈한 전언(傳言)이 오가는 것을 끝으로 카밀라는 집무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모습으로 퇴장을 했지만, 그 소란스러움 속에 숨겨진 ‘나는 자리를 피해 줄 테니 두 분이서 허심탄회한 대화 나누세요.’라는 의도가 절절하게 전해져 왔다.
“흐음, 듣기만 했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참 좋은 아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자네 생각도 그렇지?”
“물론입니다.”
“뭐, 원래 좋은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모이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자네도 자부심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히죽하는 웃음을 지으며 본격적으로 내 앞에 마주 앉은 요아힘.
로브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온 그의 오른손에는 적갈색으로 물든 건틀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받게나. 이 녀석도 자네처럼 훌륭한 새 주인을 만났으니 아주 기쁠 거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여 절차는 이게 끝인가요?”
“아… 뭐 이래저래 삐까번쩍한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원체 그런 걸 싫어해서 말이지. 그리고 보아하니 자네도 그런 것 같아서, 약식으로 갈음하려 했는데. 왜, 필요하면 지금부터 뭐라도 좀 준비할까?”
“아닙니다. 저도 이편이 편합니다.”
또르르륵.
나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내밀었고 잠시 후 내 양손 위에는 건틀릿 하나와 구슬 네 개가 놓이게 되었다.
철컥.
언뜻 보기에는 나에게 다소 커 보이던 건틀릿이었지만 착용구에 주먹을 집어넣자마자 「베가스의 송곳니」는 내 팔목 맞춤으로 스스로의 크기를 변화해 갔다.
우우웅.
손등 덮개 부근, 음각으로 조각된 두 개의 눈동자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끝으로 베가스와의 조우 절차는 모두 끝.
―우왕, 멋있다!
―페이건, 착용감은 어떠니?
‘아주 좋습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맞춤복을 입은 느낌이에요.’
찰그락.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속성 마법까지 모두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속성 마법 사용을 가능케 해 주는 구슬을 건틀릿 측면에 수납한 바로 그때.
“역시 잘 어울리는 군. 그런데 이왕 받았으니 이 자리에서 마법도 써 보는 건 어떨까?”
―응? 이 아저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실내에서 마법을 쓰라고?
요아힘은 이 자리에서 베가스의 진짜 힘을 사용해 볼 것을 권유했고, 그 말을 들은 롤빵이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그러니 한번 얼마든지 사용해 보게.”
“국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나 역시 제안을 받은 직후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요아힘 벤제르센을 따라다니는 오래된 이명(異名)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화염의 기운을 머금은 붉은 구슬을 발동 장치에 집어넣었다.
화르르륵.
그리고 마나를 주입하자마자 족히 4서클은 되어 보이는 화염이 건틀릿 끝에서 넘실거렸다.
―어마나! 페이건, 여기 실내야. 지금 신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조심을….
―야! 너 왜 갑자기 왜 그래, 정신 차려!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어 나를 만류하는 둘.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건틀릿을 장착한 팔을 들어 올려 벽을 겨눴다.
화르륵.
“하아!”
건틀릿 끝에 맺힌 기운이 임계점까지 타오른 순간, 난 추가적으로 마나를 주입했고 곧 베가스를 빠져나온 불꽃은 그대로 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제아무리 치안국장실이 넓다 한들, 이토록 강력하게 넘실대는 불꽃의 파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이대로 요아힘의 집무실이 그대로 잿더미가 될 것만 같던 바로 그때.
따악.
후방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스르륵.
맹렬하게 타오르던 마법의 불꽃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진화(鎭火)나 소화(消火)라기보다는 ‘소멸’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법한, 그야말로 완벽한 불의 실종.
짝짝짝.
“마나의 주입부터 발화 및 격발까지. 첫 만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솜씨였어.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이토록 유능한 주인을 만났으니 「베가스의 송곳니」 그 녀석도 아주 신이 났겠는걸.”
내가 일으킨 마법 불꽃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린 장본인은 박수까지 쳐 가며 우리 둘의 첫 만남을 축하해 줬다.
―뭐야? 불꽃 어디 갔어? 분명히 내가 화르륵하고 타는 걸 봤는데.
‘소멸된 거야. 네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소멸했다고? 그냥 불꽃도 아니고 마법으로 불러일으킨 불꽃이 이렇게 완벽하게? 그게 가능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폴리다고스의 치안국장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내가 여러 번 말했지, 폴리다고스의 지상에서는 요아힘 벤제르센이 최강이라고. 조금 전의 불꽃을 지워 버린 그 귀신같은 솜씨 덕분에 저 사람은 교내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마법 도살자.
요아힘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명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귀신같은 솜씨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발현까지 완벽하게 끝낸 마법 주문을 이토록 완벽하게 지워 버릴 수 있다니.
빛이 들지 않는 그늘 속에서 암약하는 어둠의 마법사들이 왜 요아힘 벤제르센이라는 이름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왕! 난 그냥 덩치가 1등으로 커서 1등으로 쎄다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이런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 말 듣고 보니까 저 아저씨 확 달라 보인다.
‘너 같은 롤빵이 달리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야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네.’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했어! 앙!
정수리를 파고드는 북슬이의 송곳니를 애써 무시하며 난 고개를 숙였고, 요아힘은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이걸로 수여식은 끝났고 급한 일은 처리했으니 우리 이제 조금 더 진지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해 볼까?”
더 진지하고 중요한 이야기?
내가 학년 대표로 사실상 내정되었다는 것부터 「베가스의 송곳니」의 수령까지.
지금까지 있었던 일만 해도 충분히 중요한 것들 투성이었는데 여기서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페이건 군, 갑자기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무척이나 당황스럽겠지만 그래도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편하게 들어 줬으면 하네. 자네도 폴리다고스의 학생이니만큼 ‘이게’ 뭐 하는 장소인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요아힘의 손가락은 치안국장실의 천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비죽비죽하니 솟아난 지반 위에 버티고 선 채 공중을 부유하는 웅장한 고성’을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공중고성… 마고니아?”
요아힘의 말마따나 폴리다고스의 재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이름이 내 입에서 새어 나왔고, 폴리다고스의 치안국장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봤네. 그런데 말일세, 그곳에 계시는 분들이 자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