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9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5)화(9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5)
마고니아.
5인의 영웅이 뜻을 한데 모아 배움의 전당을 건립한 이후, 줄곧 폴리다고스의 창공을 지켜 온 공중 고성.
그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지상에 몸을 누인 적이 없는, 폴리다고스가 보유하고 있는 최강의 요새이자 최고(最高)의 보물.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폴리다고스가 이룩한 영광과 영화(榮華)는 놀랍기 그지없지만 결국 그들이 일궈 낸 모든 성과는 마고니아에 기인한다. 만약 폴리다고스의 뿌리가 저토록 견고한 모습으로 하늘을 지켜 주고 있지 않다면, 그들의 영광 또한 엄동설한의 잡풀처럼 스러져 버리고 말 것.”
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폴리다고스의 영광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지상의 수많은 교직원들과 학생들 입장에서는 야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이 평가를 부정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폴리다고스의 정수(精髓)가 머무르는 곳은 지상이 아니라 저 드넓은 창공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공유하는 명백한 진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고귀한 공중의 요새에 머물면서 이 세상을 좌시하는 어마어마한 영감님들이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이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빠른걸?’
물론 어차피 폴리다고스에 왔고, 이곳에서 오르페우스의 유산을 모두 잇기로 마음먹은 이상 마고니아와의 접촉은 언젠가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오르페우스, 아니 오펜하이머가 그린 승계의 큰 그림에는 저 마고니아 또한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그 타이밍이었다.
아직 입학 후 1년은커녕 1학기도 제대로 지나지 않은 시기에 공중 고성의 눈길을 사게 되다니.
나름 선을 지키며 들쑤시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고니아의 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한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베가스의 송곳니」를 굳이 내가 자네에게 수여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건 이 사실을 전달해 주기 위한 핑계였다네. 저분들의 관심 자체가 나쁜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향후 자네에게 부담이 갈 수도 있는 사실이니만큼 최소한 자네도 알고 있는 편이 공평한 처사라 생각했거든.”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네 표정을 보니 말해 주지 않았더라도 별문제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보통 학생이라면 마고니아의 ‘ㅁ’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기 마련인데 이토록 태연한 표정이라니. 허허, 재미있어. 오늘 자네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위원장’님께서 왜 자네를 주목하고 계시는지도 알 것 같네그려.”
‘위원장.’
난 요아힘 몰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위원장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과 달리 마고니아를 구성하는 인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형국이었다.
‘은퇴한 국장들 중 특별히 성과가 우수했던 자’들이 마고니아에 합류한다거나 ‘죽음을 위장한 전 세대의 현인(賢人)’들이 마고니아의 운영을 도맡는다는 둥.
관련된 소문은 무성했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
마고니아에 대해 어떤 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 간부가 들려준 위원장이라는 명칭은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 단어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고민을 조금 했었다네.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해 주는 게 맞지만, 행여 긁어 부스럼이 되어 자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들었거든. 그런데 자네가 이토록 강건한 모습을 보이니 내 마음이 한결 놓여. 허허! 고맙네,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줘서.”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전혀 강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가 학년 대표로 내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마고니아의 관심까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두 다리가 후들거려 숙소까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염려될 정도입니다.”
“허허! 농담 따위는 할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이런 익살까지 부려 대는 걸 보니 정말로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는군.”
조금 답답한 일이었다.
유리안도 그렇고 카밀라도 그렇고 이제는 하다못해 요아힘 벤제르센까지.
난 분명히 진심을 담아서 말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왜 그걸 농담이라고 받아들이는 걸까?
“아무튼 마음 편히 먹고 기다리고 있게나. 오래지 않아 즐거운 소식과 조금 버거울 수도 있는 소식이 동시에 자네를 찾아갈 테지만, 너무 부담받지 말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만 하면 될 걸세.”
“조금 버거울 수 있는 소식이라면 역시 마고니아로부터의 하달 사항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허허! 물론 내가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겠지만 그 위에 계시는 영감님들의 성정이 괴팍한 데가 있어서 말이지. 일단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거든 호되게 시험을 하려 드는 게 저분들의 전통인지라… 아!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네. 자네의 실력이라면 그 또한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일단 시험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 역시 주어질 게야. 그 부분에 관해서는 기대를 해도 괜찮을 걸세.”
“알겠습니다, 국장님. 그리고 조언 또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 마고니아의 관심.
하지만 이 관심이 마냥 번거롭게 여겨지지 않는 건 역시 시험의 뒤를 따라올 ‘적절한 보상’ 덕분이었다.
‘그래. 어차피 언젠가는 입장해야 할 장소, 이참에 마고니아 입장권이나 확보해 둔다고 생각하지 뭐.’
「베가스의 송곳니」도 수령을 완료했고, 요아힘이 들려주고자 했던 비밀 아닌 비밀도 들은 이상 내가 치안국장실을 방문해야 했던 이유의 대부분은 해소된 상태.
“국장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국장님의 의지에는 감사드리나, 꽤나 많은 분들이 제가 학년 대표로 임명되는 걸 반대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그렇게 강행을 하셔도 괜찮을는지요?”
난 치안국장실을 떠나기 전, 이 방에 들어온 이래로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고.
“내 학생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기는 싫으니 솔직히 말하도록 하지.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하지만 그치들이라고 어쩌겠나? 짧은 시간 동안 자네가 이뤄 낸 성과가 이리도 탁월한 것을.”
요아힘은 더없이 분명한 표정으로 답을 줬다.
“부끄럽게도 폴리다고스를 운영하는 주체들 간 어느 정도의 알력 다툼이 있는 건 사실이네만 힘겨루기가 제아무리 격화된다 한들 ‘증명한 자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라는 대전제를 넘어서지는 못해. 자네는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학년 대표로 뽑혀야 할 이유를 차고 넘칠 만큼 증명했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학년 대표 임명에 관해서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이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는 요아힘의 얼굴은 ‘이 정도로 명분이 확실한 싸움은 질려야 질 수가 없다.’라는 확신으로 가득했고, 이내 그는 한껏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말일세. 어디 우리끼리니 한번 솔직히 말해 보게. 자네 방금 속으로 ‘학년 대표인지 뭔지 난 그냥 못 하게 되어도 상관없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품은 적이 없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어림없어. 능력이 있는 자는 그만한 무게를 버텨야 하는 법이거든, 크흐흐.”
깊은 동굴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과도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요아힘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무튼 오늘 찾아와 줘서 고마웠네. 덕분에 나도 즐거웠어. 그리고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것도 잊지 말고. 훌륭하게 키운 아들이 타지에서 가문의 영예를 드높였는데 당연히 자네의 부모님께서도 이 기쁜 소식을 아셔야 하지 않겠나? 흐흐.”
* * *
―흐흐흐허허허하하하.
‘뭔데? 갑자기.’
―아니, 그냥 저 아저씨 웃음소리가 워낙에 듣기 좋아서 따라 해 봤어. 나, 저 아저씨 좋아. 지난번 입학식에서 본 알크페인이라는 놈은 널 볼 때마다 인상만 쓰고 있어서 열 받았는데 저 아저씨는 친절한 데다 이상한 기술도 잘 쓰고 말도 예쁘게 하는데 웃음소리까지 호탕해!
‘그래서 요아힘 국장님이 아주 마음에 쏙 든다고?’
―응, 다음에 만날 때 맛있는 선물만 준비해 주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페이건, 학년 대표로 내정된 거 축하해! 비록 페이건이 이뤄 놓은 업적에 비하면 인정하는 게 조금 늦은 거 같지만 그 정도는 우리가 양해해 줘야지 뭐. 아무튼 여기 사람들이 뒤늦게나마 우리 페이건을 인정한다니까 기분이 참 좋네. 호호! 바보들, 너희들은 애초에 우리 아이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니. 호호호!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이럴 때, 그러니까 내가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라무테 님은 종종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여 주시고는 한다.
평소 나를 아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과격한 말투까지 사용하시다니.
내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그리도 흐뭇하신 걸까?
―그래서 페이건, 학년 대표로 선발되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혹시 사람들이 너를 볼 때마다 고개 숙여서 인사를 하고 그러는 거니?
‘아니요, 그러지는 않구요. 일단 교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에는 편해질 겁니다. 그리고 강의를 신청한다거나 교내 시설을 이용할 때 조금 편의를 봐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쨌거나 좋은 거네?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일단 대표로 선발된다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자치 회의 참석 등의 의무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교내에서 개최하는 여러 행사에 얼굴을 내비쳐야 되구요. 행동의 범위는 넓어지지만 그만큼의 의무 또한 수반된다고나 할까요.’
―어마나! 학년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는 페이건이라니. 나 그거 꼭 보고 싶어! 물론 우리 페이건, 보나 마나 엄청 멋있겠지만. 그래도 그 두근두근 한 광경 내 두 눈으로 꼭 보고 말 거야!
‘…라무테 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멋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회의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 지루한 요식 회의인 경우가 태반이라서요.’
머지않아 내 머리 위로 씌워질 것이 유력한 ‘감투’에 잔뜩 흥분한 두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치안국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으려니, 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카밀라의 모습이 보였다.
“페이건, 여기!”
금세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카밀라.
“치안국장님이랑은 이야기 잘 나눴어?”
“워낙에 배려를 잘 해 주신 덕분에.”
“잘 됐다. 그래서 무슨 얘기 했는데?”
“어, 그게 나도 말해 주고는 싶다만 국장님도 관련된 일이고 하니 좀 그러네. 미안.”
이쪽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오는 카밀라의 두 손에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용기 두 개가 나란히 들려 있었다.
“알았어. 국장님도 관련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말이야… 그 대신 어흠! 폴리다고스의 떠오르는 신흥 인기쟁이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님, 소녀에게 공자님과 커피 한잔 마실 기회를 주실 수 있겠는지요?”
“…뭔데 그건, 인기쟁이라니? 새로 나온 농담인 거야?”
“농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것뿐인데. 설마 양손을 그렇게 무겁게 하고 있으면서 ‘난 인기쟁이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셈?”
배시시 웃으며 내가 들고 있는 선물 꾸러미를 가리키는 카밀라.
처음 인사를 나눈 날부터 느낀 거지만 이 녀석, 생긴 건 어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성녀님처럼 생긴 주제에 의외로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습관이 있다.
“그래. 어쨌거나 내 주제에 이런 걸 받는 건 무척 드문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네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쯤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그런데 왜 새삼스레 호들갑을 떨고 그러실까?”
“그래. 물론 나도 지금껏 살면서 이런 식의 선물 공세를 받은 적이 있지.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일은 나 ‘카밀라 엘리시온’이 아닌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 발생한 거잖아. 그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한테 습관처럼 일어났던 일들과 나에게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 이걸 굳이 구분 지을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구분 지어야지. 내가 받은 선물들은 결국 내 배경이 가져다 준 것들이고 너한테 일어난 일은 배경이나 가문이 아닌 너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 낸 거잖아. 충분히 기쁠 만한 일이 분명한데 기적의 당사자인 넌 왜 그렇게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뚱한 표정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부러 뚱한 표정을 연출하는 게 아니라면 조금 더 기뻐하는 게 어떨까? 페이건,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그 선물 받으면서도 지금 같은 표정이었던 건 아니지?”
“어… 그게 말이지.”
“세상에! 불쌍하기도 하지. 너 말고 너한테 선물을 줬던 사람들 말하는 거야, 어휴.”
커피 용기를 내려놓은 채 한숨을 폭 하고 내쉬는 카밀라.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을 위아래로 살핀 후 말했다.
“이럴 때 보면 크리스틴 언니랑 닮은 거 같기도 하고.”
“크리스틴? 그 사람이 누군데? 이름을 보아하니 여자인 것 같은데 여자를 보고 나랑 닮았다고 하면 그 사람한테 너무 미안한 일 아닐까?”
“뭐? 너 크리스틴 언니가 누군지 몰라?”
“…유명한 사람이야?”
“세상에나, 자기한테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네.”
결국 카밀라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크리스틴 코델리아나. 유리안 오라버니의 약혼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