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9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6)화(9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96)
“아, 유리안 선배님의 약혼자분 성함이 ‘크리스틴 코델리아나’였어? 그건 몰랐네.”
“저기 너, 오라버니한테 약혼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던 거 맞지?”
“그야 당연하지. 폴리다고스 학생으로서 그건 기초 소양이잖아?”
“30초 전까지는 그 약혼자분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 당당한 표정으로 할 말이야 그게? 아주 웃겨.”
“난 선배님한테 관심이 있는 거지 선배의 주변 사람한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오라버니한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됐다. 같은 말의 반복인 것 같으니까 관둘래. 아무튼 오라버니의 약혼녀분 성함은 ‘크리스틴 코델리아나’니까 지금부터라도 기억해 둬. 그리고 내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크리스틴 언니랑 페이건 너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
한숨을 폭 내쉬며 고개를 내젓는 카밀라.
그녀의 한숨에 동조할 생각은 없었지만, 선배의 약혼녀가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거… 굉장히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나랑 닮은 구석이 있는 여자라니. 그건 그 약혼자분 본인과 선배, 양측 모두에게 비극이잖아?”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비극이 맞지. 하지만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랑 닮은 구석이 있기야 하지만 크리스틴 언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고달프기 짝이 없는 애정 전선 관계도를 생각하면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카밀라의 표정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다.
“참 신기해. 크리스틴 언니가 스스로의 매력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볼 때면, ‘어머 이 언니는 참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흐뭇해지는데. 네가 엉뚱한 소리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왜 자꾸 짜증이 나지?”
“유리안 알렉세예브라는 약혼자가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라… 그건 좀 심각한데?”
“그래!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을 말하는 거야. 자기도 똑같은 주제에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한 저 표정 좀 봐! 아우, 얄미워. 내 동생이었으면 한 대 쥐어박아 줬을 텐데. 아무튼 너랑 크리스틴 언니는 남들 일에 온갖 눈치 빠른 척은 다 하면서 본인 일은 둔감하다는 점이 똑 닮았어.”
“네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랑 닮은 사람이라니까 궁금하기는 하네. 크리스틴 선배님, 도대체 어떤 사람인데?”
“음… 그러니까 언니가 어떤 사람이냐면….”
크리스틴 코델리아나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려웠던 걸까?
카밀라는 잠시간 생각에 잠긴 듯했으나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참 예쁜 사람이야. 얼굴도 마음도 전부 다.”
“예쁘다라… 조금 더 자세한 설명 가능할까?”
“그러니까 말이지, 나보다 훨씬 더 예뻐.”
위 대답을 끝으로 ‘이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라는 표정을 한 채 눈을 치켜뜨는 카밀라.
“…그래?”
그 시선을 마주하기 거북했던 나는 결국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고야 말았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너보다 예쁘다는 증언 한마디면 꽤나 많은 설명을 갈음할 수 있기야 하겠지. 그런데 그 증언의 신뢰성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 입에서 그런 말이 덜커덕 나와 버리니 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야.”
“내 양심에 맹세코 사실만을 얘기하고 있는 건데 뭘 당황을 하고 그래?”
“고마워. 네 덕분에 대화의 내용이 아닌 태도가 사람을 당황시킬 수 있다는 걸 새삼 배웠지 뭐야.”
이런 류의 대화를 더 이상 이어 나갔다는 내 집중력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난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카밀라는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며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아무튼 난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 너한테 박수를 쳐 줄 생각이야. 짝짝짝! 본인을 향해 쏟아지는 질시의 시선을 호쾌한 손놀림 한방에 경외로 바꾸어 놓다니. 참 잘했어요! 특히 ‘내 친구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둬!’라는 선언 부분이 되게 멋졌어.”
“오늘 아침의 유리안 선배도 그거랑 비슷한 말을 하셨던 것 같은데.”
“어머 그랬어? 어쩔 수 없어. 원래 사람을 많이 좋아하다 보면 그 사람을 닮아 가기 마련이니까.”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닮아 가는 카밀라 엘리시온이라니… 그거 폴리다고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축복이려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아 참, 지금부터 뭐 할 거야? 나 제라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페이건, 너도 같이 갈래?”
“제안은 고맙지만 미안. 지금부터 장서관에 갈 예정이라서.”
“에에!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응? 따지고 보면 네가 금화 300개 스폰서인 셈인데 축하 파티에 물주가 빠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카밀라가 어제부터 계속 이야기하는 금화 300개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기는 하다만, 결국 다시 한 번 고개를 내젓기로 결심한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뜻을 전달했다.
“시끌벅적한 한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는 좀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가 볼 생각이야. 네가 말한 그 300개짜리 축하 파티는 평온한 일상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한 이후에 즐기는 걸로 하면 안 될까?”
“알았어,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 그럼 난 진짜 가봐야겠다. 제라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중에 우리끼리 맛있는 거 먹었다고 삐지거나 하면 안 돼!”
“예예, 그렇게 하시지요.”
“그럼, 안뇨오옹.”
카밀라는 방긋한 미소를 남긴 채 멀어져 갔고, 치안국 건물과 일반 가도의 경계선 어디쯤에서 멈춰 선 나는 이번 결투 최대 전리품의 표면을 두드렸다.
톡톡톡.
손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불벼락을 토해 내는 괴물이 자아내는 기분 좋은 한기를 느끼며 나 혼자만의 마침표를 찍었다.
‘광대놀음은 이걸로 잠시간 안녕.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 * *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경탄으로 가득 찬 비일상을 떠나 일상으로 조속히 복귀하려던 나의 계획은 곧바로 암초를 맞이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거대한 폭풍이 그대로 1학년 강의실을 덮쳐 버린 것이다.
“너 얘기 들었어? 이번 학기에 있을 예정이었던 이동수업 장소가 또 한 번 바뀌었대!”
“응! 들었어. 그런데 확정된 장소가 교내가 아닌 외부라면서? 이거 정말일까?”
1학년 강의실을 덮친 태풍의 이름은 ‘이동수업’.
이미 이번 학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조금씩 그 존재감을 키워 나가던 태풍은 그 개시가 임박한 시점에 와서는 한층 더 몸집을 부풀려 1학년 학생 대부분을 흥분과 기대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야 말았다.
“외부 장소로 결정된 게 맞아! 이틀 전 통합 교무 위원회 의결 사항으로 정해졌대. 그나저나 우리 같은 1학년들의 이동수업 장소가 ‘고대왕국의 유적’이라니. 폴리다고스의 힘이 정말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이야.”
“그러게. 사실 우리 가문에서도 후계자들의 견문을 넓혀 준다고 고대왕국 견학을 여러 차례 추진한 적이 있거든. 하지만 유적 관리 본부 측의 거부 의사가 워낙에 완강해서 도저히 접근이 불가했어. 그런데 이런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고대왕국 유적에 입장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우리가 정말 끝내주는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건 맞나 봐. 히히.”
안 그래도 호들갑 떠는 것과 뽐내기를 특히나 좋아하던 1학년 철부지 놈들은 이동수업 장소가 공개된 순간 흥분하다 못해 까무러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1학년에게는 금지되다시피 했던 외부 일정이 잡혔다는 것만으로 좋아서 날뛸 일이었는데, 그 장소가 고대왕국의 유적이라는 사실이 애송이들을 더욱더 흥분시킨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동수업 장소가 고대왕국 유적으로 정해졌다는 공지를 들었을 때만큼은 나 역시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탑이며, 왕국 연합으로 이루어진 연구회며, 고대왕국 관련된 기관 놈들이 어지간히도 까탈스럽게 굴었을 텐데. 그 난관을 뚫고 이걸 성사시켰다고? 아무래도 폴리다고스의 행정, 외교 능력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모양이야.’
고대 룬어로 ‘엘 페오레’, 통칭 ‘고대왕국 유적’이라 불리는 장소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미지’와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고대왕국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현생인류는 수십, 수백 대(代)에 걸쳐 연구에 매진했지만 아직까지도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한 답보상태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세대를 대표하는 천재 마도학자들이 있어 준 덕분에 겨우겨우 실마리가 잡히는 분야도 있지만, 그것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실정.
하지만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고대왕국이 남겨 놓은 신비를 풀어헤치기 위한 도전은 지금도 가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이 험난하기 그지없으나, 험난함을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유적이 품고 있는 고대왕국의 유산이 너무나도 강력하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고대의 보고(寶庫)에 날파리 같은 애송이들을. 그것도 떼거리로 풀어놓는다니… 교무 위원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뭐가 어찌 되었든 시끄러워지는 건 기정사실이겠어.’
다행히도 나는 일반인들에 비해 고대왕국에 꽤나 해박한 편이었고 덕분에 이동수업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별일이 없다 해도 난장판이겠고 혹여라도 수업 기간 중에 유적이 반응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난장판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아사리판이 벌어지겠지.’
벌써부터 훤히 보이는 광경.
그리고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확실하게 도래할 아사리판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
화르르륵.
난 베가스에 마나를 한층 더 거세게 주입했고 이내 송곳니에 맺힌 불길은 한 층 더 격렬하게 불타올랐다.
「베가스의 송곳니」와 첫 만남을 가진 지 오늘로 열흘.
그간 난 이 녀석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고, 덕분에 서로는 제법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마나를 어떤 간격으로 주입해야 이 녀석이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이며, 또 어느 타이밍에 수정을 바꿔야 이 녀석이 가장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할 수 있는지.
“하아!”
왼손으로는 푸른 빛 수정구를 투입구에 집어넣으면서 베가스가 장착된 오른손으로는 목표를 겨냥.
저저저적.
베가스는 이번에도 나의 부름에 기민하게 응해 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넘실거리는 불꽃으로 가득했던 수련장 벽면은 순식간에 빙하 천지가 되어 있었다.
내 노력 그리고 베가스와 같은 ‘마법 아이템’에 더없이 익숙한 ‘누구 씨의 도움’ 덕분에 난 마법 건틀릿 운용이 일정 수준 이상 궤도에 올랐음을 확신할 수 있었고.
“후우… 역시 갑작스럽게 기어를 바꾸면 그 효과는 확실하지만 마나 소모가 제법 크네요. 실전에서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해야겠어요.”
열흘간의 특훈 동안 익숙해진 습관대로 ‘마치 누군가에게 동의를 얻기 위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
“선배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자연상의 불, 얼음과는 달리 마법의 불은 때때로 충돌하기보다 서로 융화하려 들 때가 있으며 베가스의 수정구처럼 애초에 기원이 같은 마법 아이템은 그런 경향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고. 며칠간 직접 운용해 보니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아요.”
“…흥!”
“선배님의 시의적절한 조언과 지도가 없었다면 이토록 빨리 이 녀석과 친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하든지 말든지, 내가 알 게 뭐야.”
“…선배님?”
“왜!”
한두 번은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으나 평소의 선배답지 않은, 이토록 이질적인 반응이 이어지니 예의상이라도 물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혹시 이곳에 오기 전에 뭐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을까요?”
“왜? 있다 그러면 네가 상담이라도 해 주게? 하긴 넌 치료술사, 그것도 유서 깊은 치료술 명가 출신의 유능한 치료술사시니까 상담 정도는 해 줄 수 있겠다. 어휴, 아주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저… 선배님, 그게 말이지요. 상담이라는 건, 더군다나 저처럼 경험이 일천한 사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되….”
“아하! 나 따위 이상한 사람한테는 상담도 해 주기 싫으시다? 하긴 우리는 그렇게 친. 한. 사. 이. 도 아니니까 네가 나 같은 거한테 시간을 쓰는 게 아깝다고 해도 할 말 없지 뭐!”
한껏 인상을 쓴 채 툴툴거리기를 멈추지 않는 유리안 알렉세예브.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선의(善意)로만 똘똘 뭉쳐있을 것 같은 왕자님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 뭘까?
결국 난 한창 흥이 오른 수련을 멈춘 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땀을 닦아낼 수밖에 없었고, 최대한 예의 바른 목소리로 폴리다고스의 왕자님에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라도 제가 선배님께 뭐 잘못한 게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