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
582-1화 저 새끼, 오늘 운 좋았네! (1)
이 개새끼가?
바그다드 외곽의 허름한 2층 방이었다.
“김 미 더 텐 달러.”
철컥.
기껏 문을 열어 줬더니, 대뜸 이마에 권총의 총구가 달려들었다.
총구로 이마를 밀어 대는 놈을 보며 이용우는 기가 막힌 웃음을 지그시 삼켰다. 손질을 얼마나 안 했는지 스테츠킨 APS 러시아제 권총에서 오래 묵은 화약 냄새가 역하게 달려들었다.
“헤이! 텐 달라!”
권총의 총구를 이용우의 이마에 밀어붙인 나씨르가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10달러짜리 지폐를 강조했다.
가뜩이나 짜증이 올라오던 상황인데, 진짜…….
그래도 죽이지는 않으마.
마음을 굳힌 이용우는 양손을 앞으로 홱, 뻗었다.
터억. 차칵.
이용우가 권총을 뒤로 꺾어 비트는 것과 동시에,
짜가락.
“아흐흑!”
방아쇠 고리에 검지가 젖혀진 놈이 비명을 토해 내며 상체를 비틀었다.
권총을 비트는 이용우의 능력에 놀라고, 이어서 차가운 눈빛에 질린 나씨르가 그만하라는 투로, 절대 반항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신해 왼팔을 휘저었다.
“쏘리! 아임 쏘리!”
총구를 이마에 대놓고 쏘리?
이용우는 총구가 놈의 손목에 닿을 정도로 권총을 빙글 돌린 뒤에 확실하게 빼냈다.
“끄아악-.”
놈의 검지가 완전히 부러질 정도로 뒤틀렸으니까 권총을 겨눈 죄는 이 정도에서 끝내고.
철컥. 철커덕.
이어서 이용우는 능숙한 동작으로 탄창을 뽑아낸 뒤에 노리쇠를 당겼다. 정말 이 정도에서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탄창에 빼곡하게 담긴 탄알을 보자 느닷없이 눌러 둔 화가 치솟았다.
“아, 이 미친 새끼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나 있냐?
지금은 얌전하게 탄창에 담겨 있지만, 총구를 통해 튀어 나간 뒤의 결과에 관해 생각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있냐고?
불쑥 시선을 든 이용우는 손가락을 감싸 쥐고 낑낑대는 나씨르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결심한 게 있고, 무엇보다 신분을 감추지 않아도 되니까 죽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용서할 마음도 없어!
짜악! 짜아악! 짜아악!
뺨 세 대였다. 그러나 이용우의 손질이 워낙 매서워서 곧바로 놈의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곧바로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انت محظوظ اليوم(오늘 운 좋았다.)”
이용우가 아랍어를 건넨 직후였다.
끙끙대던 나씨르의 눈이 바로 달려들었다.
“هل تستطيع التحدث بالعربية(아랍어를 할 줄 압니까)?”
목에 수건을 걸고도 굳이 손바닥으로 코피를 닦아 낸 나씨르가 세상 억울한 표정과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놓고는 이용우의 반응이 두려운지 물러났는데, 죄책감이라고는 수염에 달라붙은 흙먼지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았을 때 말이다.
바그다드에서 듣기 어려운 “안녕하세요? 한국?”이라는 우리말을 지껄이기에 이름을 주고받으며 몇 마디 받아 준 게 화근이었다.
“정체가 뭐예요?”
“귀찮다. 가라.”
“권총은….”
에라, 이 한심한 새끼야.
그래도 이놈에게는 비싼 물건일 테니까.
왼손으로 탄창을 세운 이용우는 엄지를 빠르게 움직였다.
툭. 툭. 툭. 툭.
마치 기계로 뽑아내는 것처럼 일정하게 튀어나온 탄알이 모두 바닥에 떨어진 다음이었다.
철컥.
노리쇠를 한 번 더 확인한 이용우는 권총과 탄창을 놈에게 건넸다.
“손가락을 다쳐서 일을 못 합니다.”
이걸 그냥 죽여 버릴 걸 그랬나?
어차피 독하게 마음먹은 거 한번 시끄럽게 해 봐?
이용우의 눈빛에 질린 모양이었다.
“미스터 코리안. 스마일. 스마일.”
기가 막혀서, 한편으로는 지독할 만큼 뻔뻔한 나씨르의 태도가 징그러워서 이용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뒷걸음질 친 나씨르가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에이, 씨.”
짜증을 털어 낸 이용우는 기껏 나서려던 마음을 접고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염병할, 햇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빤히 보았을 텐데도 아까부터 흙먼지와 함께 방을 차지한 채 식사라도 하라며 이용우를 재촉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
회백색 벽, 오랜 세월 켜켜이 품어 온 먼지를 풀풀 날리는 침대, 성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탁자와 때가 덕지덕지 배인 세면대를 보며 이용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인마! 미쳤어?”
“예.”
“뭐?”
이용우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신광선의 표정과 눈빛이 방금 보았던 나씨르보다 선명하게 떠올랐다.
“안 그러면 그 개새끼를 내 손으로 죽일 거 같은데 어떻게 합니까?”
“야! 이용우?”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 태극기! 그 두 가지를 위해 살았습니다! 이런 내가 있어서 우리나라가! 그 안에서 사는 우리 국민이 편안할 거라고 믿어서요! 그런데요!”
붉게 물든 눈으로 이용우는 고함을 꽥꽥 질러 댔었다.
“무궁화라면서요? 그런 심정으로 해외에서 목숨 내놓고 돌아다니는 나를 외롭게 기다리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술 처먹었고! 신호 무시했고!”
신광선은 또 볼을 씰룩일 뿐,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후! 그런 새끼가 돈 있다고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그만두지 못한다면 그 개새끼하고, 옆자리에 탔던 마누라 죽이고 자수하겠습니다.”
할 말이 없었겠지?
진짜로 죽일 수도,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잘 알 테니까.
띠르르르. 띠르르르.
과거를 떠올리던 이용우를 더러운 탁자에 누워 있던 접이식 휴대전화기가 깨웠다.
누구야?
폴더폰을 열어 이름을 확인한 이용우는 입맛을 다셨다.
“여보세요?”
– 뭐 하냐?
이 양반은 실망이라는 걸 안 하나?
게다가 어쩌면 막 생각하는 순간에 전화하는 건지, 전에도 그렇지만 타이밍 하나는 진짜 죽인다.
– 여보세요? 용우야?
“듣고 있어요.”
–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 뭐 하고 있어?
“강도가 들어와서 따귀 몇 대 때려서 보냈습니다.”
– 강도?
“예. 권총 든 강도요.”
–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어지간히 재수 없는 놈이었구나.
사람 말을 제대로 듣기는 했나?
“권총을 들었다니까요.”
– 때려서 보냈다며?
말을 말아야지.
“어쩐 일이십니까?”
– 멕시코에 신도시 건설한다는 소식은 알지? 혹시 그쪽에서 일해 볼래?
“아, 진짜.”
– 그게 싫으면 아프리카 평화유지군도 있어. 네 경력이면 감사합니다, 할 거다. 거기 태산이도 있으니까 마음 잡기도 좋잖냐?
강태산?
이용우가 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 야, 인마. 너, 더 블랙이야. 더 블랙. 네가 바그다드 들어가는 순간 연락 오더라. 어차피 조용하게 살기 틀렸으니까 며칠 머리 식히고, 아프리카든, 멕시코든 가자.
바로 답을 듣기는 어렵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 어렵겠지만, 우선 쉬고 있어.
빠르게 말을 전한 신광선이 냉큼 전화를 끊었다.
“아프리카라…….”
창을 향해 시선을 둔 이용우는 흙먼지 가득한 아프리카와, 함께 훈련받을 때 누구보다 뛰어나던 강태산을 떠올렸다.
***
선입견은 무섭다.
소말리아는 내전의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했고, 나라 전체가 황량하지만, 수도인 모가디슈는 확실히 그림이 좀 달랐다.
언덕에서 아래로 길게 뻗은 도로를 타고 좌우로 지은 조립식 2층 주택, 소말리아국립대학, 상점과 식당까지, 모가디슈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게 정말 내가 알고 있던 소말리아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바닷가를 끌어안은 모가디슈 항은 풍광이 죽여준다.
에티오피아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사각형 건물들이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에 강인함을 더한 느낌이었다.
“이 멍청한 놈들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수니파 책임자 모하메드 카슐라 모히드는 주변에 늘어선 남자들에게 있는 대로 분통을 터트렸다.
“대한민국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그의 고함이 AK 소총을 든 남자들을 휘갈겼는데, 누구도 반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건너편 건물에서 나온 허름한 이슬람 복장의 남자 한 명이 씩씩대는 모하메드 카슐라에게 곧장 다가왔다.
“사업차 방문한 지경그룹 직원 두 명인데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중 한 명이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통역은?”
“준비했습니다.”
주변을 매섭게 노려본 모하메드 카슐라가 건물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고, 상황을 보고한 남자가 그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그 직후에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젠장!”
건물의 앞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하메드 카슐라는 누군가 콕 볼을 찍으면 울음이 터질 것처럼 막막한 얼굴이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는 우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각진 내부의 바닥에 카펫을 깔았고, 그 안쪽으로 두 개의 침대에 한국 남자가 각각 누워 있었다.
“이곳 책임자 모하메드 카슐라 모히드입니다.”
침대 곁에서 기다리던 통역이 그의 말을 전달하자 한국 남자 두 명이 겁에 질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거즈를 붙인 것 말고는 없는데, 다른 남자는 허벅지에 감아 놓은 붕대가 피에 흠뻑 젖었을 정도로 중상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할 말이 있으면 도착하기 전에 하라는 것처럼 헬리콥터 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렸다.
“시아파 반군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서 달려왔고, 내가 도착하기 전에 총격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신께 맹세코 여기 두 분을 노리지 않았습니다.”
두크두크두크두크.
헬리콥터가 내려앉는지 프로펠러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렸고, 먼지가 가득 앉았던 창을 또 다른 흙먼지가 훅 덮쳤다.
마음이 급한 모하메드 카슐라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간절하게 흔들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존중하며, 평화유지군이 만든 질서를 인정합니다. 부디, 우리의 잘못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모하메드 카슐라의 애원이 끝난 직후였다.
콰아-앙!
문짝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고,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소총을 겨눈 자세로 뛰어들었다.
“엎드려!”
한국말이다. 그런데 저 정도 말은 아프리카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은 다 알아듣는다.
철컥! 철컥! 철컥!
MP5SD 소총을 겨누기 무섭게 방 안에 있던 통역까지 모조리 바닥에 엎드려 팔을 앞으로 뻗었다.
베레모, 회색 군복, 왼쪽 팔뚝과 등에 아치 형태로 ‘APKO’라는 붉은색 글자를 써 넣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대원들이었다.
반군이고, 해적이고, 저들에게 걸리거나 찍히면 죽는다.
쩔걱쩔걱.
까불면 죽인다.
마치 그렇게 경고하는 것처럼 몸에 걸린 무기들과 함께 평화유지군 대원이 침대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대위 강태산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예. 사고가 있기 무섭게 이쪽으로 데려와 치료해 주었고, 저기 지휘자가 와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한국말은 솔직히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강태산의 이름을 알아들은 모하메드 카슐라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심정이었다.
오! 신이시여!
하필! 왜! 저 검은 땅의 지배자가! 이 소말리아에!
그것도 모가디슈에 있었을까요!
“헬리콥터로 이송하겠습니다. 짐이나 혹시 함께 가야 할 다른 동행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남자의 답을 듣고서 강태산이 고개로 문을 가리켰다. 대원 셋이 움직여 허벅지 부상이 심한 한 명을 들었고, 걸을 수 있는 한 명을 지키듯 방을 나섰다.
“여기 책임자?”
강태산이 짧게 던진 한국말이 있었고, 이어서 대원 한 명이 전하는 능숙한 아랍어가 나왔다. 모하메드 카슐라는 하늘을 나는 슈퍼맨처럼 엎드린 상태에서 왼쪽 팔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두크두크두크두크!
환자를 태운 헬리콥터가 먼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밖에서는 강태산 일행을 기다리는 헬리콥터 소리가 창문을 두드리고 흙바닥을 울리며 들려왔다.
“일어서! 천천히!”
대원이 전해 준 아랍어의 지시에 모하메드 카슐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철컥! 철컥! 철컥!
그와 동시에 총구가 몰려드는 바람에 모하메드는 신의 숨결을 코앞에서 느낀 듯한 심정이었다.
“한국인을 공격한 이유.”
질문이 짧기도 하다.
“오해였습니다! 시아파 반군이 들어왔다는 정보에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안에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께 맹세코 모르고 일어났던 일입니다.”
짧은 질문에 답이 길게 나왔다.
“이름?”
“모가디슈 책임자 모하메드 카슐라 모히드입니다.”
“모하메드 카슐라. 몰랐다면 일반인에게 총격을 가해도 되나?”
“보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신과 제 가족의 명예를 걸고 이번 사건에 연루된 범인들을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 출석시키겠습니다.”
손을 뒤통수에 붙인 채 모하메드 카슐라가 다급하고 절박하게 말을 쏟아 냈고, 대원 중 한 명이 그 아랍어를 한국말로 바꿔서 전했다.
강태산이다, 강태산.
대원 다섯과 수색에 나서 시아파 반군 76명을 사살하고 돌아온 검은 땅의 지배자, 그 강태산.
“내일까지 총격을 가한 사람을 보내.”
“약속합니다.”
강태산이 고개로 가리키자 문에 있던 대원들이 자세를 잡았다. 대원들이 모두 나간 뒤였다. 마지막으로 안을 둘러본 강태산이 몸을 돌렸다.
그의 왼쪽 어깨에 걸린 대검이 ‘아, 저 새끼, 오늘 운 좋았네!’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며 모하메드 카슐라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크두크두크두크.
그리고 그의 생명이 연장됐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처럼 헬리콥터 이륙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