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0)
591화 지휘관은 양동식 소령으로 하겠습니다 (1)
평화유지군의 사격이 도화선이었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타다당! 퍼버벅!
지켜보던 외인부대원들이 가세하며 HK416F와 파머스 소총이 불을 뿜었다.
“사격하지 마!”
강태산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손을 들어 막고 싶었으나 소총을 내려놓지 못해서 고함만 질렀다.
타다당! 퍼버벅!
“사격하지 말라고!”
두 번째 고함을 지른 직후에 이준호가 왼팔을 들어 외인부대원을 제지했고, 요란한 총성의 여운 뒤로 침묵이 달려들었다.
젠장! 염병할!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판단하고, 대원들을 지휘하라고 했으니 이준호는 잘못이 없었다. 강태산을 지키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 다음이라 돕기 위해 나선 외인부대를 탓할 이유도 없었다.
문제는 바닥을 기어오던 적들의 몸뚱이에서 튄 피가 강태산의 바지에 거칠게 튀었다는 점이었다.
뭐야, 이거?
피가 튀었을 뿐이었다. 염산을 뿌린 것처럼 연기가 나며 바지가 타들어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극물처럼 숨통을 막는 것도 아니었다.
찌릿. 찌리릿.
그런데도 전기에 감전된 것과 비슷한 고통이 강태산에게 달려들었다. 죽을 정도는 아닌, 대신 이를 악물 정도의 통증이었다.
자세를 오래 낮추고 있어서 허리가 나갔나?
징그럽다, 진짜.
여러 차례에 걸쳐 총알이 박힌 탓에 셔츠가 너덜너덜해진 적들이 꾸물꾸물 강태산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짜증이 올라올 정도였다.
몸을 뒤로 물린 강태산은 다시금 커피 물을 뒤집어쓴 놈을 살폈다. 확실히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다른 놈들의 반응을 확인할 차례였다.
방탄조끼 안에 넣어 두었던 팩을 꺼낸 강태산은 입으로 뚜껑을 물어서 열었다.
팩에 담긴 물이 성수는 아니지만, 원하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 더러운 고통에서 그만 벗어나.
쫘아악.
강태산은 가까이 다가온 두 놈의 머리와 목덜미, 상체를 향해 팩을 휘저었다. 길게 뿜어진 물이 두 놈의 머리와 목덜미, 상체를 적신 뒤였다.
“끄으으으!”
“끄아악!”
버둥대던 두 놈이 커피 물을 뒤집어썼던 놈들과 같은 반응을 보인 후에 축 늘어졌다.
말이 되나? 이게?
이마와 심장이 터져도,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도 꿈틀대던 놈들이 물을 맞고 죽는 게?
황당한 심정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평화유지군, 외인부대, 로일 박사 일행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경고했음에도 로일은 미어캣처럼 고개를 높게 든 채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강태산은 아직 꿈틀대며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팩의 물을 뿜었다.
반응은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버둥대는 모습이 감전된 것과 같이 잘게 떨다가 죽는다는 점, 아프리카에서 낡아 빠진 셔츠를 입은 두 놈은 확실히 아랍 계통이라는 사실이었다.
잠시 후였다.
강태산은 무전기의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치잇.
“이준호. 대원 셋을 데리고 숲을 다시 확인해.”
치잇.
– 이동하겠습니다.
강태산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싹 날이 선 이준호가 대원 셋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대원들이 숲으로 들어간 뒤 강태산은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죽어 버린 적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다. 거기에 엎드려 기어오던 참이었다. 외인부대원들이 연사로 갈긴 총알을 얻어맞은 놈들은 등과 허리 쪽이 터져 나가 너덜거렸고, 심한 놈은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로일을 비롯한 연구팀, 외인부대원들이 지켜보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평화유지군이 죽은 적에게 분풀이했다고 판단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강태산은 움직이지 않았다.
치잇.
– 숲은 이상 없습니다.
이준호의 무전이 들어온 다음이었다.
치잇.
“막사를 정리할 때까지 숲을 지켜.”
치잇.
– 알겠습니다, 대위님.
무전이 끝난 뒤에야 강태산은 로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짓을 한 놈들을 찾아만 준다면 아프리카를 위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횡단도 할 수 있다.’
강태산은 올라오는 분노를 지그시 눌렀다. 지금은 지시를 기다리는 외인부대원들을 지휘하는 게 우선이었다.
치잇.
“로일 박사를 이리 데려오고, 프란시스코, 본부 연결해.”
치잇.
– 위, 카피땐.
지시를 마친 강태산은 찢긴 채 걸려 있는 구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지금은 저릿저릿한 통증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
버스에서 내린 이춘섭은 정류장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옛날에는 주인의 이름을 딴 ‘복남상회’였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이 시골구석도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딸랑.
문에 걸어 둔 방울이 울린 다음이었다.
“어? 일찍 오셨네? 옆구리 결리는 거, 병원에서는 뭐 때문이래요?”
편의점 점주이자 과거 ‘복남상회’의 주인인 황복남이 아는 체를 하며 이춘섭을 맞았다.
“마시는 비타민 있지? 그거 한 병 줘.”
“오늘 용우 오나 보네요?”
이춘섭이 천 원짜리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는 사이, 입을 쉬지 않는 편의점 점주 황복남이 비타민 음료를 가져왔다.
“용우 못 봤는데? 언제 온대요?”
“그냥 내가 칼칼해서 사는 거야.”
“달아서 싫다면서요? 용우 올 때도 한 병만 사시던 양반이 별일이네요.”
편의점이라고 해도 간판과 진열만 바뀌었지, 이춘섭과 황복남은 과거와 다름없이 물건을 사고팔았다. 육백 원을 거슬러 받은 이춘섭은 쓰다, 달다 말없이 비타민 음료를 들고 몸을 돌렸다.
“아, 좀 앉았다가 가요!”
“일이 있어.”
황복남의 권유를 거절한 이춘섭은 편의점을 나서 터덜터덜 뒤편 길을 걸었다.
오늘따라 햇살은 왜 이리 화려한지, 거기에 일하러 간 아들 이용우는 왜 이다지도 보고 싶은지, 아들을 생각하며 산 비타민 음료를 손에 들고서 이춘섭은 논과 밭 사이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15분쯤 걸은 다음이었다.
누런 철문을 여는 대신 이춘섭은 그대로 집의 담을 따라 뒤편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산길은 힘에 부친다. 그 핑계로 자주 들르지 못했다.
무릎을 짚어 가며 산길을 올라간 이춘섭은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닥을 편평하게 다져 두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곳곳이 울퉁불퉁 올라왔고, 지난달에 싹 정리한 봉분에는 어느 틈에 잡초가 잔뜩 붙어 있었다.
“하우-.”
숨을 길게 내쉰 이춘섭은 봉분으로 다가가 잡초들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나, 6개월밖에 못 산대.”
오른손으로 잡초를 뜯어 버리면서도 이춘섭은 왼손에 든 비타민 음료를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당신 곁에 가게 돼서 다행인데…….”
말끝에서 이춘복은 입술을 떨었다.
“우리 아들 어떻게 하냐? 나는 용우 덕분에 견뎠는데. 애비도 없고, 처도 없고, 자식도 없는 우리 용우…. 그놈 불쌍해서 어떻게 하지?”
잡초를 뜯던 오른손을 봉분에 기댄 채 이춘섭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오늘따라 유독 화창한 햇살이 늙은 남자를 다독이듯 어깨와 등을 어루만졌으나, 이춘섭의 울음은 길었다.
“내가 참 나쁜 사람이더라고.”
겨우 울음을 누른 이춘섭이 봉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혼자 사는 내가 걱정돼서, 반찬 만들어 오다가 죽었는데…. 나는 우리 용우가 좋은 사람 다시 만났으면 싶어. 이제 죽어서 우리 새아가 보게 되면 내가 미안해서…. 흐으으. 흐으으. 그 예쁘고 미안한 새아기를 무슨 낯으로 볼지…. 흐으으으.”
병을 들었던 왼손마저 봉분에 얹은 채 이춘섭은 서러운 울음을 또다시 터트렸다.
***
날카롭게 바라보는 이용우가 돌아설까 두려운 것처럼 술라이만 니아지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내 아버지와 동생이 납치됐다. 구해 달라는 게 아니라 납치 사건들이 밖으로 알려지게만 도와줘.”
아, 그 새끼.
사람 마음 약해지게.
한숨을 짧게 내쉰 이용우는 ‘한동축산’이라 적힌 트럭에 앉았던 늙은 남자와 함께 한국에서 홀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 이춘섭을 떠올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은퇴했다. 혹시 아직 현역이라 하더라도 이라크 특수 경찰을 살해했다가는 외교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어.”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이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술라이만 니아지는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이라크 현지 코디네이터’고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그냥 현지 정보원이었다.
그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발을 걸쳤는지는 모르지만, 저런 정보원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했다. 협상으로 끝날 사건을 두고 양쪽 정보국의 요원들이 총질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그러니까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놈이 수니파 특수 경찰 셋을 죽여 달란다.
“그렇다면 미스터 리. 한국의 정보원만 구해 줘.”
이어진 술라이만의 요구에 이용우는 바로 눈가를 좁혔다.
분명 구하러 한 사람이 왔다고 했는데 굳이 이용우에게 이렇게 매달린다면…?
이용우의 의심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보가 샜어, 미스터 리. 한국에서 뒤늦게 온 남자가 더 블랙이라는 사실이 이미 수니파 특수 경찰에게 알려졌다고. 지금쯤 이라크 정보국 요원들이 수니파 경찰특공대와 함께 도착했을 텐데, 그들을 뚫고 탈출할 수 있을까?”
확실히 목적을 위해서라면 진짜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놈들다운 협박이었다.
“새로 온 요원이 더 블랙이라는 정보를 넘긴 건 술라이만 이븐 니아지, 바로 너겠구나?”
조금 전까지 비굴하게 매달리던 술라이만이 수염이 덥수룩한 아래 볼과 턱을 우그러트리며 묘한 웃음을 그려 냈다.
“커피 중개인의 위치는?”
“알-무타나비 코너에 황토색 2층 건물, 중앙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방. 차는 바로 아래 세워 뒀고.”
시선을 내린 이용우는 술라이만에게서 뺏은 권총을 내려다보았다.
철컥.
그런 뒤에 노리쇠를 당기고 시선을 들었다.
“미스터 리?”
술라이만이 놀라서 부르는 순간이었다.
타-앙! 타앙! 타아앙!
이용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술라이만의 양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끄윽.”
경련처럼 몸이 젖혀졌던 술라이만의 하얀 셔츠와 바지가 온통 피로 물들었고, 회백색 옥상에 검붉게 스며들었다.
“죽이지 않은 것에 감사해.”
차갑게 말을 던진 이용우는 몸을 돌려 뒤편 건물 옥상을 향해 달렸다.
휘익! 털써-억!
높다랗게 떠올랐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한 바퀴를 구른 이용우가 다시금 달리기 시작할 때, 뒤늦게 올라온 민병대 놈들이 술라이만을 부축하며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
김형정은 아예 혼이 쑥 빠질 지경이었다.
이라크를 비롯해 이전까지 서로서로 눈 감아 주던 블랙 요원들이 일제히 위험에 빠졌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 이라크 정보국과 특수 경찰이 직접 움직인다는 정보입니다.
블랙 요원을 체포하기 위해 정보국이 직접 나선 것도 이례적이지만, 특수 경찰에 경찰특공대를 보내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집트, 수단, 요르단, 심지어 이란까지 그쪽에 있는 블랙 요원들이 모조리 위태로웠다.
– 본부장님?
“구출해야죠! 다만,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면 공식적으로는 우리는 부인할 수밖에 없으니…. 아닙니다. 현장에서 임의로 판단하라고 지시하세요. 탈출이 가장 우선입니다.”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도청 방지가 된 휴대폰을 손에 쥐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블랙은 어느 나라든 알고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는 보편적인 정보원이었다. 정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생기면, 적당하게 통보해서 돌아가는 방식으로 마무리하지, 이렇게 대놓고 특수 경찰과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하지는 않는다.
이건 진짜 이상해.
창을 힐끔 보았던 김형정은 휴대폰을 들고서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신호음이 다섯 번쯤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급하게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 지금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집트, 수단, 요르단, 이란, 이라크에 있는 우리 정보원들이 일제히 쫓기고 있습니다. 특히, 이라크는 특수 경찰과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할 정도로 대놓고 나서고 있습니다.”
김형정이 급하게 상황을 설명한 다음이었다.
– 돌려줘야죠. 지금 말씀하신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파견한 정보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세요.
“그 정도까지 해도 되겠습니까?”
– 그 정도가 아니라 반항하면 현장에서 사살하세요.
누가 죽음의 신을 말리겠나?
어쩌면 김형정은 이렇게 통쾌한 지시를 바라서 강찬에게 전화했는지 모른다.
– 아프리카 군사학교에 있는 특수팀을 움직이겠습니다. 그들에게 아마 가장 위협이 될 겁니다. 지휘관은 양동식 소령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건너온 속 시원한 대응에 김형정은 반쯤 안도하는 심정으로 통화를 마쳤다. 독한 눈매를 한 김형정은 곧바로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신호음이 꼭 한 번 울렸다.
– 대외협력 3차장 박시원입니다.
“나 김형정입니다.”
– 네, 본부장님.
“지금부터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을 동원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집트, 수단, 요르단, 이란, 이라크의 정보원들을 모조리 체포하세요.”
– 본부장님.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사항이 워낙 심각해서인지 박시원이 지시를 다시 확인했다.
“비상 코드 3578. 암호, 피로 지킨 무궁화. 지시 내용.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집트, 수단, 요르단, 이란, 이라크의 정보원들을 모조리 체포. 반항하면 현장에서 사살해도 좋습니다.”
–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러게 왜 대한민국을 건드려?
예전처럼 누르면 고개 숙이는 게 아니라니까.
아차!
긴급한 상황에 따른 지시를 내렸으니, 한시라도 빨리 보고해야 할 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