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00)
681화 뭐가 나왔어? (2)
착륙 10분 전이었다.
– 마리그를 지켰습니다. 지경에서 선발한 대원 다섯 명, 구르카 용병 두 명, 그리고 감성원 선배가 전사했습니다. 민간인과 주민의 피해는 없습니다.
밀대로 힘껏 누른 반죽처럼 낮게 깔린 음성으로 천중명이 마리그의 결과를 전해 주었다. 지친 음성 아래로 은은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이 열세 명 있었습니다. 체첸 용병들로 보이는데, 그놈들을 감성원 선배가 혼자 상대했습니다. 그 탓에 선배께서 희생되셨던 겁니다.
왜 그 사람들은 힘겨운 삶을 살다 가는 거지?
괴물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과 감성원의 사망 소식을 들은 강찬은 나오려는 욕을 삼켰다.
“그래서 체첸 용병들은?”
– 내가 모조리 팔을 잘랐습니다. 그 뒤에 묶어 뒀고요.
“증상이 감염된다는 건 들었지? 혹시 모르니까 물을 뿌려서 확인해. 이왕이면 마시는 물로 해서 근처에 있었던 대원, 회장과 접촉한 사람 모두 한 시간 간격으로 물을 뿌려.”
– 그렇게 하겠습니다.
“평화유지군은?”
– 선발대가 1시간 안으로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하겠습니다. 이 일을 꾸민 놈을 알아내면 그때는 독자적으로 움직입니다.
“내가 먼저 찾더라도 의논할 테니까 우선 좀 가라앉혀.”
–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통화하시죠.
통화를 마친 강찬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둔 스마트폰이 또다시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커피콩을 확보했습니다. 지금 두 사람과 함께 병점의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말이 절대 나오지 않게 조심해.”
– 다행히 두 사람 모두 한국말을 몰라서 그나마 말이 새 나갈 위험이 적습니다.
“그래도 모르니까 방심해서 당하는 일 없도록 해. 하루면 도착한다. 그때까지 두 사람을 데리고 있고, 커피콩도 잘 보관해.”
– 알겠습니다.
이용우의 답을 끝으로 액정이 반짝이며 통화가 종료됐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정말 그 커피콩에 뭔가 숨겨져 있을까요?”
제라르가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또다시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착륙 좀 하자!
비행기의 기장이 아닌 게 다행일 정도로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 대장. 나요. 어디쯤이오?
“그렇지 않아도 착륙하려던 참이다. 농장 쪽 주변은 어때?”
– 대장. 이쪽 지역을 수색하기 전에 말이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헬륨3를 커피콩에 숨겨 보낸 것부터 체첸 용병 놈들이 죽쳤다는 게 수상한 거요. 그래서 말이오. 바로 커피 농장에 내려서 수색했다는 거 아뇨.
이 정도야 다예가 얼마든지 알아서 판단할 문제였다.
솔직히 강찬 역시 찜찜하던 곳이어서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가 나왔어?”
– 농장 안쪽 커피나무 아래에서 시체 여섯 구를 찾았소.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체가 나온 건 안된 일이다. 그러나 총질을 해 대서 신동철이 죽은 장소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괴물로 변했던 곳이고, 심지어 체첸 용병 놈들이 죽쳤었다. 그런 곳에서 시체가 나온 게 특별한 일인가?
대꾸 없는 강찬의 생각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 대장? 시체를 어떻게 찾았는지 아쇼?
“다예. 착륙해야 하니까 내용이 길면 내가 다시 전화할게.”
– 냄새가 독하우. 우리가 아는 냄새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독한 냄새를 풍겨서 찾았다는 거요. 거기에 전부 목이 잘렸소.
“체첸 놈들 수법 정도는 알잖아?”
– 수상하다니까요.
다른 인간이 아니고, 온갖 못 볼 꼴을 다 겪은 다예가 이 정도로 강하게 말한다면 뭔가 있다고 봐야 했다.
“알았다. 차 장군에게 연락해서 닥터 로일이 확인하게 해. 아! 혹시 모르니까 대원들 감염되지 않게 신경 써.”
– 알았소.
통화를 마친 강찬이 종료 버튼을 눌렀을 때 비행기가 커다랗게 돌았다.
돔바롭스키 공항이었다.
군사 공항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일정 숫자의 민간 항공기도 뜨고 내리는 다목적 공항이었다.
기이이이-잉!
착륙은 언제나, 늘, 지랄 맞다.
드드드드드드-.
내려앉은 비행기가 거칠게 활주로를 달리며 속도를 줄인 다음이었다.
띵. 띵. 띵. 띵.
– 유도 차량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오라는 무전입니다. 우선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기장의 짧은 안내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힐끔 밖을 내다봤을 때, 방향을 트는 비행기의 앞에서 노란색 등을 반짝이는 유도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격납고에 들어갈 모양인데요?”
함께 시선을 주었던 제라르가 멀리 떨어진 거대한 규모의 격납고를 보며 예상을 내놓았다.
잠시 후였다.
실제로 격납고 앞까지 움직인 유도 차량이 옆으로 비켜섰고, 비행기가 안으로 들어갔다.
전 같으면 활주로에서 대놓고 차를 마시던 바실리가 지금은 격납고를 택했다. 이런다고 감시 위성을 피하지는 못한다. 대신, 위성을 이용해서는 만나는 장면을 감시하지 못한다.
‘하여간, 독사.’
누군가 지켜본다면 속 좀 타겠다는 생각에 강찬은 피식 웃었다.
격납고 안으로 들어선 비행기가 움찔하며 멈춘 다음이었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런 뒤에 비행기 한 대를 더 세울 정도로 널따란 공간에 달랑 놓인 테이블을 향해 움직였다.
늙어 버린 바실리, 이마가 M자로 벗어진 중년 안드레이가 강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찬과 제라르를 본 바실리와 안드레이가 몸을 세웠다.
“이렇게 보니까 내가 너무 손해를 보는 거 같군.”
“원하면 블랙헤드의 폭발에 휘말려 보든가.”
“그보다야 세월을 얻어맞는 쪽이 낫겠지.”
강찬에게 대꾸한 바실리가 제라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주연이야 원래 그렇다 치지만, 자네도 참 안 죽는군.”
“두 번째 조연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는 버텨 볼 생각입니다.”
뾰족하게 들리는 인사말이 오간 다음이었다.
“오랜만이오. 여전히 하나도 안 변했소.”
순서를 기다렸던 안드레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내게 인사할 때는 반드시 호칭을 붙여.”
놈의 손을 마주 잡은 강찬이 요구를 내놓았다.
시선도 딱 마주친 상태여서 안드레이는 피할 길이 없었다.
가뜩이나 벼르고 있던 새끼가 눈알에 힘을 줘?
그것도 뒤에서 장난질을 친 주제에?
피식.
강찬이 웃는 순간이었다.
“위, 무슈 강.”
불곰 같은 체격을 지닌 안드레이가 뱉듯이 답을 하고는 제라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저기 따라다니느라 바쁘네.”
“불곰 사냥이 있을지 모르는데 빠질 수가 있어야지.”
인사들 참.
곧장 주먹을 날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눈빛과 인사말을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앉지.”
팽팽해지는 분위기를 바실리가 저 멀리 밀쳐 냈다.
강찬은 바실리와 마주했고, 제라르가 안드레이의 정면에 앉았다. 나이 들어서 쪼글쪼글해진 느낌의 바실리, 앞머리가 벗어진 중년에 덩치가 불곰을 연상시키는 안드레이, 오랜만에 마주한 두 사람이 세월의 변화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강찬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격납고 안쪽을 보았다.
노타이 셔츠에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열 명가량 있었다.
“차가 괜찮아.”
시선을 가져오려는 것처럼 바실리가 직접 도자기로 된 주전자를 들어 강찬과 제라르 앞에 놓인 잔에 홍차를 따라 주었다.
“국가정보원장은?”
“많이도 끌고 왔더구만. 뒤편 격납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알아서 해.”
도자기 잔을 내려놓은 바실리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투로 강찬을 보았다. 긴 비행을 마쳤으니 우선 담배를 하나 피워 주는 게 도리 아니겠나. 강찬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후-.”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강찬은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상체를 기울였다.
“안드레이. 짧게 끝내자. 칼튼 숀을 만나서 지껄인 이야기, 그리고 체첸 용병 놈들의 위치와 놈들을 지휘하는 대가리의 위치. 두 가지만 내놔.”
프랑스어로 건넨 요구를 받은 안드레이가 바실리를 돌아보았다.
이런 걸 요구해도 됩니까?
놈의 표정에 담긴 의미가 선명하게 보였는데, 바실리는 의외로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을 주었다.
“크흠.”
뭔가 엄청난 비밀을 홀로 알아낸 사람처럼 안드레이가 큰기침을 먼저 뱉었다.
“칼튼 숀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었소. 이틀 뒤에 뉴욕에서 만났는데 함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보자고 권유하기에 거절한 게 전부요.”
피식.
무게 잡는 안드레이를 향해 웃은 강찬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바실리. 내가 내 사람을 건드리면 어떤 놈이 되는지는 알지?”
“그야 뭐.”
바실리가 굳이 대답이 필요하겠냐는 느낌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답을 들은 직후였다.
강찬은 대놓고 담배를 재떨이에 눌렀다.
“제라르. 권총.”
뭐라는 거야?
중년이 된 안드레이의 눈매가 달려들 때, 제라르가 권총을 꺼내 내밀었다.
어둑한 격납고, 옆에 세워 둔 비행기, 멀리 있는 요원,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탁자, 강찬은 거무튀튀한 색의 권총을 홍차 잔 옆에 눕혀 놓았다.
멀찍이 있는 요원 놈들이 이쪽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당장 움직임은 없었다.
“적의 대가리를 찾는 중이다. 놈들도 멍청하지 않아서 열심히 계획을 수행하고 있지. 그 계획에 제거 대상이 몇 명 있는데, 라노크 대사님과 여기 바실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걸 짐작하고서도 칼튼 숀과 속닥거린 거냐?”
“무슨 소리요? 나는 그저….”
안드레이가 뻔뻔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철컥. 타아-앙!
권총을 집어 든 강찬은 곧바로 안드레이의 정강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끄윽!”
안드레이가 상체를 숙이며 비명을 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바실리가 손을 들어 달려들던 요원들을 세웠다.
‘적당히 좀 하자!’
그러면서도 안드레이와 요원들이 보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나는 내 사람 건드리는 꼴을 못 봐. 문바키를 구하기 위해 예멘까지 날아가서 죽을 뻔했던 것도 그런 이유고. 다시 묻는다. 적들의 제거 대상에 라노크 대사님과 바실리가 포함된 걸 알고도 칼튼 숀과 속닥거렸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철컥! 타아-앙!
“커흑!”
이번은 왼쪽 어깨였다.
왼쪽 어깨를 감싼 놈의 오른손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속이 시커먼 프랑스인은 대사님인데 왜 나는 그냥 바실리지?”
다음번은 안드레이의 이마가 뚫린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바실리가 상황을 바꾸려는 것처럼 엉뚱한 질문으로 강찬의 시선을 당겼다.
늙었다. 바실리도.
주름 가득해 늘어진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에서 총명함이 보이지 않았고, 세상이 무너져도 밀리지 않을 것 같던 강단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튀김처럼 눅눅하게 뭉개져 있었다.
“감염이 번지고 있어, 바실리. 이미 예멘은 포기해야 할 정도고, 미국에서도 번지기 시작했으니 러시아도 조만간 감염에 휩싸일 거다.”
왼쪽 어깨를 감싼 안드레이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서 강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무서운 놈이 바로 등 뒤에서 속닥대며 총질할 놈이라는 건 잘 알잖아?”
“그게 나라는 거요?”
철컥! 홱!
강찬이 다시 돌린 총구의 앞으로 바실리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뻗어 막은 바실리, 움찔해서 목을 움츠린 안드레이, 볼을 우그러트리며 지켜보는 제라르, 모두 알았다. 지금 강찬의 총구가 안드레이의 이마를 겨눴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놈은 미련해서 잔머리를 못 굴려. 그러니 칼튼 숀, 그 교활한 놈에게 이용당하고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지.”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꺼낸 바실리가 손을 내렸다. 그런 뒤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보드카!”
“다(да)!”
그의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원 한 명이 보드카와 잔을 들고 다가왔다. 쟁반이라는 좋은 물건도 있는데 왼손에 보드카 병의 목을, 오른손에는 잔을 겹겹이 포개서 들었다.
“놔둬.”
포개 놓은 잔을 뽑으려는 요원을 제지한 바실리가 직접 손을 움직였다.
달랑 잔 하나만 뽑았다. 그렇게 본인 앞에만 잔을 꺼내 놓은 바실리가 보드카 병을 들어서 시원하게 따랐다. 그리고는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것처럼 단숨에 들이켰다.
“이봐 주연. 다시 말하지만, 이놈은 원래 멍청해.”
억울한 표정으로 안드레이가 눈을 끔뻑였으나, 바실리의 평가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주연과 만난 것만으로도 적의 제거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 그러니 주연이 왜 정강이와 어깨를 뚫었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지.”
이게 뭔 소리야?
안드레이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갑갑한 표정이었다.
“바실리,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저놈이 죽고 끝나면 다행이지, 엉뚱하게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이 되면 저 미련한 놈 손에 당신이 죽어.”
“그래서 이렇게 불러들여서 곁에 두는 거잖나.”
강찬의 뜻을 바실리가 받은 직후였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소!”
안드레이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강찬에게 외쳤다. 심지어 눈빛에 자신만만한 감정마저 가득 담았다.
이놈 봐?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네?
강찬은 눈가를 좁히며, 안드레이를 보았다.
지금 물어본다고 해도 저 곰 같은 놈에게서는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 뒈지도록 때리면 신나게 맞으며 버틸 테고, 이마를 뚫으면 그건 그거대로 입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