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01)
682화 뭐가 나왔어? (3)
보드카를 따르던 바실리마저 병의 주둥이를 세우고서 의아한 표정으로 안드레이를 돌아보았다. 미련하고 단순한 불곰 놈이 저토록 자신만만하게 나온 데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느끼는 눈치였다.
‘이 미련한 놈이 뭘 믿고 이러는지 아나?’
바실리가 궁금한 시선을 던질 때, 강찬은 안드레이를 날카롭게 살폈다.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이 돼서 바실리를 죽일지 모른다는 소리에 흥분했었다. 자신만만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본인이 절대 괴물이 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게 분명했다.
칼튼 숀을 만나고 온 뒤에 큰소리를 친 거니까?
이 불곰 놈이 혼자 살겠다며 잔머리를 굴렸던 건가?
강찬은 안드레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칼튼 숀이 제안을 했다면 반드시 보상이 있었겠지. 그게 혹시 너는 절대 괴물이 되지 않는 방법이나 약이었냐?”
에라, 이 단순하기가 갓 바른 시멘트 바닥 같은 놈!
어쩌면 정강이와 어깨에 방아쇠를 당길 정도로 강찬이 뭔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쳐도 갓 바른 시멘트 바닥에 찍힌 발자국처럼 당황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낼 줄은 몰랐다.
“칼튼 숀에게서 괴물로 변하지 않는 약을 받았나? 그걸 처먹었고?”
“그게….”
확실히 이런 순간에 제라르는 안드레이와 급이 달랐다.
강찬의 말을 듣고서야 상황을 알아챘을 텐데도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투로 볼을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그리고 제라르의 그런 미소가 더욱 안드레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멍청하지만, 우직한 면 하나 믿고 키워 준 놈이 혼자 살겠다며 약을 처먹었다고?’
거기에 배신감이 가득 올라온 바실리의 눈빛과 표정이 또 한몫해 주었다. 배신감에 볼을 씰룩이는 바실리의 맞은편에서 강찬은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괴물이 되지 않는 약을 처먹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약이 있다는 거다.
놈들이 만든 약.
이라크에서 보낸 커피콩에 섞인 헬륨3, 그리고 이용우가 확보했다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커피콩, 목이 잘린 채 역한 냄새를 풍긴다는 시체까지, 어쩌면 커피 농장에서 괴물을 만들어 치료제나 예방약의 효과를 시험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건 바로 확인해 보면 된다.
“안드레이. 처먹은 약에서 역한 냄새가 났었나?”
“끄으.”
강찬의 질문을 받은 안드레이가 갑자기 통증이 올라온 것처럼 어깨를 감싼 채 답을 피했다.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냄새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바실리의 독촉에 얼른 답을 내놓았다.
“이이….”
바실리가 배신감에 볼을 씰룩였다.
멍청한 만큼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은 모양인데, 그의 눈가와 입가에 묻은 배신감이 그만큼 선명했다.
어쩌면 멍청한 놈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건데?
강찬은 안드레이를 향해 눈가를 좁혔다.
“혹시 약을 먹을 때 뭔가 다른 조치도 있었냐?”
“끄으.”
이런 개새끼가!
아직도 잔머리를 굴려?
철컥.
강찬이 권총을 드는 순간이었다.
“특별한 에너지를 몸에 넣어야 한다고! 그래서 잠시 붉은색 빛을 받았소.”
강찬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안드레이가 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바실리. 저놈은 엉뚱한 약을 괴물이 되지 않는 약이라고 믿고 처먹었는지 몰라.”
“이놈이라면 그런 수작에도 얼마든지 넘어갔겠지.”
특유의 냉정함을 되찾은 눈빛으로 바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바키의 일을 알지? 어쩌면 이놈은 다른 방식으로 괴물이 됐을지 몰라. 특정한 단어를 듣거나 상황을 마주하면 방아쇠를 당기도록 말이지.”
“나는….”
“입 다물어!”
으르렁대는 것처럼 안드레이의 입을 막은 바실리가 홱 고개를 돌렸다.
“생수를 가져와!”
“다(да)!”
다음번에 만날 때는 쟁반을 선물하든가, 원.
요원 한 놈이 생수병의 목과 컵 하나를 달랑 들고서 다가왔다.
“요원들을 전부 불러. 그리고 이놈을 겨눠.”
“다(да)!”
철컥.
물을 가져왔던 요원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권총을 꺼내 안드레이의 뒤통수를 겨누고서 고갯짓을 던졌다. 그의 신호에 따라 우르르 달려온 요원 놈들 또한 피를 흘리는 안드레이를 겨눴다.
아무리 안드레이가 러시아의 대외정보국 국장이라며 설치더라도 실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의장님….”
“입 다물라고 했다.”
급하게 매달리는 안드레이의 입을 바실리가 다시 막았다. 그런 뒤에 물병의 뚜껑을 거칠게 열었다.
쫘아악!
물을 끼얹은 다음이었다.
기대했던 비명이나 몸부림은 없었다. 대신 고개를 든 안드레이가 바실리를 멍하니 보았다.
이건 또 뭐지?
강찬과 제라르, 바실리가 눈가를 좁히며 지켜볼 때였다.
“바실리를 죽인다.”
와락!
혼잣말을 지껄인 안드레이가 어깨와 정강이의 통증을 잊은 놈처럼 요원의 총을 뺏기 위해 달려들었다.
콰득! 콰드득!
안드레이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함부로 놈을 쏘지 못하는 위치인지 요원들이 안드레이의 팔과 목덜미를 붙잡고 누르는 순간이었다.
홱! 철컥!
권총을 잡은 요원의 손아귀를 양손으로 움켜쥔 안드레이가 총구를 바실리에게 비틀었다.
철컥!
강찬이 총구를 돌리는 순간,
휘익! 콰자작!
대뜸 의자를 밟고서 테이블을 건너 날아간 제라르가 무릎으로 안드레이의 턱을 찍었다.
콰윽! 콰자작! 퍼어억!
잘 막았다. 거기에 워낙 시원하게 두들기고 있어서 러시아 요원들마저 한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감정이 너무 들어갔는데?
“제라르. 그 정도만 하자.”
강찬이 말린 다음이었다.
불곰을 떡으로 만들다시피 짓밟은 제라르가 세상 개운한 표정으로 재킷의 앞을 당기면서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무서운 새끼들!
강찬부터 석강호, 강철규까지 수시로 물을 뿌려 감염을 확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감염이 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을 뿌렸다면, 바실리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세상 시원한 제라르와 달리 바실리는 분통이 제대로 터진 모양이었다.
“이런 개자식이…!”
배신감에 이를 갈아 댄 바실리가 요원의 손에 들렸던 권총을 낚아챘다.
“바실리.”
강찬이 나직하게 불러서 바실리의 시선을 붙들었다.
“문바키를 조종했을 때보다 발전한 방식이다. 심지어 이놈은 태연하게 행동했어. 놈들도 새롭게 얻은 게 있는 거지. 그러니 당장 머리통을 뚫기보다는 놈들의 방식을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해.”
“감염된 놈이라면 머리통을 뚫어도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나?”
“감염이 아니라 세뇌라고 봐야지. 특정 단어나 상황을 만나면 바실리를 제거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거.”
“그렇다면 더욱 죽여야지.”
“죽이는 게 아니라 죽인 거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저놈을 통해 얻어 낼 게 있을 테니까.”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강찬의 말을 들은 바실리가 시선을 돌렸다.
퍼억. 콰다당!
그런 뒤에 발로 옆구리를 밀어서 바닥으로 쓰러트렸다.
타앙! 탕!
두 발이었다.
하나는 오른쪽 어깨, 나머지 하나는 정강이, 놈의 어깨와 정강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몸뚱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끌고 가서 뒤편에 처박아 놔. 한마디라도 하거나, 반항하는 기색이 있으면 목과 팔, 다리를 잘라.”
지이이이이-익.
끌려가는 안드레이의 아래로 핏물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 영락없이 사냥에서 잡힌 불곰이 끌려가는 장면처럼 보였다.
털썩.
자리에 앉은 바실리가 보드카 병을 들고 잔을 채웠다.
“이제는 주연을 시켜 줘도 힘이 부쳐서 못 해 먹겠군. 더구나 믿었던 놈이 저 모양이니.”
혼잣말을 뱉은 바실리가 단숨에 보드카를 털어 넣었다.
“이제 뭘 하면 되지?”
“체첸 용병 놈들의 위치와 놈들을 지휘하는 대가리의 위치. 이동 경로까지 주면 더 좋고.”
심술쟁이처럼 입술을 내밀었던 바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 더 있나?”
“우리 요원이 구한 게 예방이나 치료 약이라면 하나 보내 줄 테니 먹어.”
“국가정보원장이 저 모양인데 어떻게 한국의 요원이 약을 구했지?”
“의심스러우면 안 보내고.”
“그런 뜻이 아니잖나! 어떻게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비무장왕, 주연, 그리고 그렇게나 악착스러운 요원들이 나오는 건지, 그걸 좀 말해 봐.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시도해 볼 테니까.”
피식.
핏대가 올라온 바실리를 보며 강찬은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내가 아는 바실리는 벌집 통에 던져도 벌을 비웃을 냉정함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강찬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바실리가 픽 웃었다.
“잠시 보드카를 즐기고 있을 테니 기다리는 국가정보원 원장을 먼저 처리해. 남은 이야기는 그 뒤에 하자.”
그런 뒤에 고갯짓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
수송기에서 내린 강태산은 곧장 활주로에서 기다리던 차동균을 향해 손을 올렸다. 증평의 훈련을 거친 특수팀 대원이 차동균을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거기에 강태산은 특별한 대원이어서 오히려 반가운 인물이기도 했다.
강태산이 올린 경례를 차동균이 단단하게 받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연구팀과 대원들을 위해 청사 1층에 따로 공간을 만들었으니까 우선 조금이라도 쉬게 해.”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리고 괜찮으시면 연구팀을 소개하겠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따로 하고, 대원들부터 챙기지?”
뭔가 급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서 강태산은 더 권유하지 않았다. 몸을 돌린 강태산은 공항을 지키던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지원 온 병력과 로일 박사 일행을 청사로 보냈다.
가장 뒤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상황이 몹시 안 좋다. 먼 길 온 대원들에게는 미안하다만, 잠시 쉬고 바로 지원을 나갔으면 한다.”
“어느 정도입니까?”
혹시 듣는 사람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처럼 주변을 돌아본 차동균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감염된 사람들의 숫자가 워낙 빨리 불어나서 우리 대원들이 오히려 포위되는 모양새다.”
“감염이 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겁니까?”
“우리가 처음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도로 중간에 검문소를 설치해 감염자를 가려냈는데, 지금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지키는 것만도 벅찬 상황이다.”
그사이 병력 앞쪽은 이미 공항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공항만 해도 예멘의 부통령이 일반 여객기의 이착륙을 금지해서 사실상 폐쇄된 것과 같다. 예멘에서 조금이나마 소식 빨리 듣고, 힘 있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서라도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이고.”
“현장으로 이동하려면 차량이 필요합니다. 차량 지원은 있습니까?”
“예멘 정부에서 헬리콥터를 긁어 오다시피 가져다 놓았으니까 이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뭐지?
헬리콥터를 긁다시피 지원했다면 예멘 정부도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일 텐데, 이상스레 차동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병력이다. 예멘 정부가 정부군의 대부분을 대통령 궁과 관련자들의 집 근처에 배치해서 실제로 감염자들을 상대하는 게 우리밖에 없다.”
“정부군의 병력 지원이 아예 없는 겁니까?”
공항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 차동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다마르 주변을 틀어막고 있는데, 우리 병력으로는 어림없어.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조만간 국경을 넘으려는 행렬이 이어지겠지. 그때가 문제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해한다는 투로 차동균이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 곽철호 대령, 윤상기 중령도 이렇게나 빠르게 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괜찮으시면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제안을 들은 차동균이 공항 건물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강태산은 몰라도 먼 비행을 견딘 대원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이 필요할 거라는 의미로 보였다.
“지원에 나서기 전에 한 가지 더 알아 둬야 할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소말리아 마리그에 있는 지경그룹 기지 공격, 예멘에서의 교전, 아프리카 전역에 깔린 시아파의 움직임까지, 이상하게 우리 평화유지군을 흩트려 놓는 느낌이다.”
“평화유지군을 분산시켜 놓고, 다른 곳을 노릴 수 있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공격을 준비하는 건지도 모르지.”
답을 한 차동균이 그나마 든든하다는 표정으로 강태산을 보았다.
“괴물을 만들 수 있는 놈들이다. 어느 지역이고 놈들이 괴물을 만들고 나면, 바로 감염이 일어난다. 그러니 감염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보는 게 현명해.”
설마 지원을 포기하라는 건 아닐 테고?
더 이어질 말이 있을 거 같아서 강태산은 잠자코 차동균에게 집중했다.
세월 참 무섭다.
증평에서 보았을 때는 마치 호랑이처럼 느껴지던 차동균이 성격 강한 옆집 아저씨처럼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은 감염을 막는 것보다 예방약이나 치료제가 급해. 그 외에 이런 짓을 꾸민 적의 위치를 알아냈을 때 달려갈 대원이 필요하지. 네게 거는 기대가 크고.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강태산이 단단하게 답을 한 직후였다.
공항 건물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