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02)
683화 이건 악몽이야! (1)
창백한 얼굴에 불편한 움직임으로 강철규가 활주로로 나섰다.
“학장님?”
반가움과 걱정, 안쓰러운 감정을 모두 담은 강태산을 보며 강철규는 피식 웃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이제 정말 나이 먹었나 보다. 전 같지 않아.”
“인사하러 가면 되는데 왜 나오셨습니까?”
“네가 왔다니까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적들을 공포에 몰아넣던 전설 강철규가 외손자를 대하는 외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눈빛으로 강태산을 대했다. 그런 뒤에 차동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 장군. 석 선생이 특이한 시체를 여섯 구 발견했다는데….”
조용한 장소에서 이 말을 전하려고 억지로 움직인 거구나.
강철규의 의도를 짐작한 차동균과 강태산이 이어질 내용에 집중했다.
“부원장은 그 시체가 한국에서 이용우 요원이 구한 커피콩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예방약이나 치료제를 발견한 건지 모른다고, 가능하면 빠르게 로일 박사 일행이 확인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연락을 왜 직접 하지 않았을까?
차동균이 슬며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데 차 장군의 전화기는 한국에서 그대로 들고 온 걸 거라고. 그래서 내게 연락했다고 하더군.”
“아!”
강찬이 이 정도로 경계할 정도라면 가능성이 꽤 크다는 의미였다.
“연구팀이 움직여야 합니까?”
“석 선생이 헬리콥터로 온다니까 연구팀에게만 조용하게 말하고, 필요하면 연구팀의 경계를 내가 서겠다.”
“학장님. 보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제가 믿는 대원에게 맡기겠습니다.”
시선을 돌린 강철규가 잠시 뒤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주마.
이제부터는 네가 활약해야 할 세상이니까.
강철규의 시선에 담긴 의지는 분명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대원을 배정하는 건, 차 장군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강철규는 또 차동균의 지휘권을 존중해 한 걸음 물러난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예방약이나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적들이 로일 박사 일행을 제거하려고 들 거다. 보안도 중요하지만, 최악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조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본 차동균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죽을 맛이던 상황에서 두 사람이 주는 든든함이 고마웠고, 이어서 돌파구가 생기나 싶은 희망을 엿본 얼굴이었다.
“괜찮으시면 저는 이만 연구팀에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지원 나가겠습니다.”
이런 걸 말릴 이유가 있을까.
차동균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통화하던 김형정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이용우가 확보한 커피콩이 치료제나 예방약이라면 경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다만, 국가정보원 요원이나 한국에 있는 평화유지군 지원팀이 움직이면 반드시 눈에 띕니다. 사적으로 움직일 만한 요원이 있을까요? 비밀을 유지하는 조건입니다.
치료제나 예방약일지 모른단다.
어두운 터널의 저 끝에서 희미한 빛줄기를 본 것처럼 김형정은 숨을 내쉬었다.
“생각나는 요원이 한 명 있습니다. 보안 등급 1급이라 다른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이번 해임 사태와 관련해서 국내 복귀한 상태라 당장 임무도 없습니다. 확인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 내가 지금 하동선 원장을 만나야 하거든요.
누굴 만난다고?
김형정은 고개를 돌려 궁금한 얼굴로 있는 신광선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가 아는 건 없다.
– 생각하는 요원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이용우의 경호를 부탁하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통화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원장님.”
적당히 다루라는 말을 하려던 김형정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청을 얼른 삼켰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애꿎은 인사말을 전한 다음이었다.
김형정의 속을 알겠다는 것처럼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 뒤에 통화가 끝났다.
“잠시 커피 한잔할까?”
“예? 아, 예.”
김형정의 눈짓을 본 신광선이 빠르게 구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종이컵을 뽑아 봉지 커피를 만들었다.
“이왕 쉬는 건데 담배라도 하나 피우고 오지?”
“그러시죠.”
속은 급한데 신광선은 또 태연하게 움직여서 김형정의 뒤를 따랐다.
상황실 앞에 놓인 벤치였다.
김형정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했다.
“박중상 요원을 생각했는데 신 팀장 생각은 어때?”
“그 친구라면 믿으셔도 됩니다.”
“내가 하는 거보다 신 팀장이 연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제가 하겠습니다.”
종이컵을 내려놓은 신광선이 전화기를 꺼내고는 시선을 가져왔다.
“어느 수준까지 오픈할까요?”
“적이 정보를 알게 되면 이라크 부녀, 이용우, 박중상 모두 위험해.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돼도 요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 정도면 더 블랙 요원으로 나서야 할 임무잖나.”
“그렇군요.”
다부지게 답한 신광선이 전화기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신광선이 해직되고, 이용우가 사표 던지면서 박중상은 중요 임무에서 밀려났다. 실제로 이라크에서 오는 오마르와 자밀라의 입국을 도우라는 지시 이후로 어떤 연락도 없었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박중상도 해직 통보서를 받을 수 있었다. 어쩌겠나. 더는 필요 없다는데 물러나야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국가정보원에서 잘린다고 밥 굶는 것도 아니고.
오마르와 자밀라가 묵는 호텔 근교에 있던 박중상은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침은 늦고, 점심으로는 꽤 이른 시간이었다.
“내장탕 하나요.”
“편한 데 앉으세요.”
2차선 도로에 단층 짜리 상가가 주르륵 붙어 있는 소도시였다.
자리에 앉은 박중상은 아주머니가 가져다주는 물통을 들어 컵에 부었다.
신광선을 해임하거나 박중상에게 임무를 주지 않는 데 대한 개인적인 불만은 없다. 다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블랙 요원들이 염려되는 건 있었다.
“씨발.”
파벌과 체면 때문에 해당 지역의 전문가인 팀장을 날려 버리면 그 지역에서 목숨 내건 블랙 요원들은 누가 살피냐.
창밖을 향해 시선을 준 박중상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박중상은 처음 보는 번호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뒤에 일단 받아 보자는 심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박중상? 나다, 신광선.
신광선의 음성을 듣는 순간, 박중상은 주변으로 시선을 뿌렸다.
한가한 시간이라서 테이블은 텅 비었다.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내장탕을 만드느라 아예 이쪽에 관심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에서도 수상한 점은 없었다.
– 통화 괜찮아? 불편하면 잘못 걸었다고 하고 끊어.
“혼자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 개인적으로 부탁할 임무가 있다.
떼인 돈을 받아 달랄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부탁할 임무는 또 뭐야?
– 혹시 평화유지군이 일반인을 상대하는 영상 봤냐?
“그건, 예. 봤습니다.”
– 예멘과 아프리카에서 희한한 증상이 번지고 있어.
이어서 신광선은 눈가를 좁히는 박중상에게 감염이 일어나는 상황과 이용우가 얻은 커피콩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을 전했다.
“그놈이 그거 때문에 한국에 왔던 겁니까?”
– 원래는 신동철 대원의 이송을 담당했던 건데 이라크인 부녀가 연락하면서 일이 연결된 거로 안다.
“하여간 일복은 있는 놈이네요.”
– 만약 감염을 조장하는 적이 커피콩의 존재를 알게 되면 이라크인 부녀와 이용우를 제거하려고 들 거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이용우에게 연락해 둘 테니까 이라크인 부녀를 경호해 줄 수 있겠나?
“회사에서 임무가 내려오면 달려가야 합니다. 그 전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 병점에 있는 장례식장이다. 나머지는 용우와 통화해서 처리해.
위치를 알려 준 신광선은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알려 주었다.
– 상황이 생기거나 지원, 혹은 도움이 필요하면 이 번호로 연락해. 디지털 변환으로 음성을 전하기 때문에 중간에 도청당할 염려는 없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 고맙다. 그리고 부탁한다.
통화를 마친 박중상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쟁반에 내장탕과 반찬을 올린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내장탕을 내려 주는 순간이었다.
물통을 든 박중상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내장탕에 찬물을 대뜸 부었다.
“아니, 뭐 하는 거예요?”
“내가 뜨거운 걸 못 먹어서요.”
반찬을 내리던 아주머니가 불편하게 던진 질문에 박중상은 시원하게 답했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이용해 들이마시다시피 내장탕을 욱여넣었다.
“아후-.”
놀란 아주머니 앞에서 박중상은 1분 안쪽 컷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뭐 하세요? 계산하셔야죠.”
“젊은 분이…. 국물하고 공깃밥 드릴 테니까 좀 더 먹어요. 아니면 물에 말아서 반찬하고 먹든가.”
“다음에요.”
자리에서 일어선 박중상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
병점으로 돌아온 이용우는 먼저 근처의 호텔을 잡아서 오마르와 자밀라를 쉬게 했다. 그런 뒤에 다시금 장례식장을 지켰다.
마지막 가는 길, 신동철의 수습을 지켜보기 위해 김옥자가 자리를 비운 틈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여보세요?”
– 나다, 신광선. 듣기만 해.
이용우는 한가한 바깥쪽 공간을 본 뒤에 폴더폰에 집중했다.
– 예멘의 커피 농장에서 특이한 시체가 여섯 구 발견되었는데, 조만간 검사해서 결과가 나올 거다. 어쩌면 네가 구한 커피콩이 감염의 예방약이나 치료제인지 몰라.
신광선의 말을 듣던 이용우는 입술에 힘을 꾹 주고서 신동철을 돌아보았다.
정말 커피콩을 놓치지 말라고 굳이 나를 데려온 거냐?
나 대신 죽은 건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억울하지도 않아?
밝게 웃고 있는 신동철을 보며 이용우는 볼을 씰룩였다.
– 적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테니 주의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박중상을 보냈으니까 이라크인 부녀에게 한 명은 반드시 붙어.
“그놈은 임무를 받으면 가야 하잖습니까?”
– 물 먹은 거 몰라서 그러냐?
김형정, 신광선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모두 물을 먹은 거야 이용우도 잘 알고 있었다.
– 너도 마찬가지야. 프랑스 국적으로 입국한 거라 회사에서 네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 생긴다. 알지?
“조심하겠습니다.”
– 용우야. 어쩌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네가 구하는 건지 몰라.
“내가 아니라 동철이가 그렇게 한 겁니다.”
– 알았다. 부원장님 도착하실 때까지 긴장 풀지 마.
통화를 마친 이용우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시간 반이 얼마나 지루하게 흘렀는지 모른다.
“내가 갈 때까지 절대 문 열지 마. 불이 났다고 해도 그냥 안에 있어. 호텔 직원이 오더라도 나한테 전화하고 문 열지 말고.”
– 알았어요.
그사이, 30분 간격으로 자밀라를 쪼아 대는 바람에 마지막 통화는 불편하게 마쳤다.
이걸 어디에 일단 감출까?
이용우가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 둔 커피콩을 만질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용우의 폴더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병점 장례식장 주차장이다.
진지한 박중상의 음성은 참 오랜만이었다.
얼른 오마르와 자밀라의 위치를 알려 주고 전화를 끊으려는 참이었다.
– 주차장에 수상한 놈들이 있어.
이용우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박중상의 음성이 폴더폰을 통해 나왔다.
– 승용차 두 대에 둘, 셋 해서 다섯 놈인데, 올라오는 길에 있던 승합차도 수상해.
더 블랙에서 이용우 다음이라 평가받던 박중상이다. 이용우가 그만둔 지금은 원탑일 테고. 그런 놈이 수상하다고 말할 정도면 위험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중상아. 여기 동철이 장례식장이다. 이곳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혼자 남은 동철이 어머니는 물론이고, 도우러 오신 교구 분들이 위험해져.”
– 다른 곳으로 유도하려고?
“도와주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른다. 알았다고 치더라도 이렇게나 빨리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걸 떠나서 장례식장이 지하에 있어서 놈들이 달려들면 이용우는 물론이고, 애꿎은 김옥자와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진다.
– 오마르와 자밀라는?
“여기서 5분 거리 호텔.”
– 그쪽도 급하네. 물건은 누가 가지고 있냐?
“내가 가지고 있다. 마음 같으면 여기 어디에 숨겨 두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단 가지고 움직일게.”
– 내가 차를 가져왔으니까 잠시만 끊지 말고 기다려.
박중상의 말끝에서 창문을 내렸는지 승용차의 엔진음과 주차장 바닥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폴더폰을 통해 들어왔다.
– 내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쪽에 차 세웠다. 담배 피우는 곳 옆. 지금 차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처럼 시간 버는 중이니까 계단으로 움직여.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알려 주면 승용차를 바로 앞에 댈게.
냅다 달리기 시작한 승용차를 멈춰 서 있던 승용차가 따라잡기는 어렵다. 전화로 사인을 주면 박중상이 천천히 계단 입구로 승용차를 움직이고, 이용우가 올라타면 바로 달린다는 계획이었다.
“알았다. 지금 움직인다.”
몸을 돌리기 전에 이용우는 신동철을 돌아보았다.
뭐가 이러냐?
미안한 심정을 마른침 삼키듯 꿀꺽 삼킨 이용우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 야, 잠깐!
다급한 박중상의 음성이 폴더폰을 통해 달려왔다.
– 뭐야? 어디에서 저렇게 많은 숫자가…?
“뭔데? 왜 그래?”
– 숨어! 내가 내려갈 테니까 일단 어디라도 숨어! 숫자가 얼추 오십이 넘는…, 씨발! 백은 되겠다!
이어진 질문에 박중상은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상황을 연달아 전해 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