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08)
689화 내가 갚아 줄 거니까 지켜봐 (1)
투두두둑! 퍼버버벅!
창틀 아래 벽이 터져 나간 직후였다.
치잇.
“적이 달려들지 않는 한 대응 사격 하지 마.”
석강호는 뒤편을 맡은 대원에게 무전을 넣었다. 그런 뒤에 반격하는 대신 거실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의사 양반!”
능숙한 아랍어였다.
“의사 양반! 잠깐 봅시다!”
고함을 지른 석강호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창밖을 힐끔 보았다. 적의 총구가 불쑥불쑥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놓고도 대응 사격조차 하지 않는 이쪽을 향해 달려들기는커녕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석강호가 쭉 찢어진 눈매를 뒤트는 순간이었다.
바닥을 기어서 움직인 것처럼 거실 벽 아래쪽에서 의사의 고개가 나왔다.
“뒤로 움직입니까?”
“그건 아니고.”
창틀 옆의 벽에 붙어선 석강호는 바닥에 엎드린 의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뭐요?”
“예? 뭐를 말하는 겁니까?”
뜬금없이 오간 대화의 끝에서였다.
“이 집 안에 있는 사람인지,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저놈들은 그게 망가질까 봐 염려하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아먹었소?”
“무슨 소리인지 나는….”
“아랍어요. 의사 양반인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아랍어. 그런데 못 알아먹겠다면 내 눈을 보쇼.”
겁먹은 얼굴로 의사가 석강호의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투두둑! 퍼서석! 투둑! 퍼석! 투두둑! 퍼서석!
침묵이 불편한 것처럼 적이 사격을 가했고, 의사가 팔로 감싼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내 눈을 보라고!”
총알이 박히는 바로 옆 벽에 붙은 석강호의 고함이 쩌렁 거실을 울렸고, 어쩌지 못하는 표정으로 의사가 다시금 시선을 들었다.
“이런 전투 징그럽게 치렀어! 그 전투마다 오만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걸 알아야 여기 있는 의사 양반 당신과 안에 있는 피난민들, 그리고 조금 전에 중상을 입은 우리 대원 둘이 살 수 있어!”
핏발이 곤두선 석강호의 눈빛이 의사의 얼굴을 움켜쥔 것처럼 붙들었다.
“체첸 용병들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 원하는 걸 손에 넣으면 여기 있는 나머지는 모조리 죽여! 나나 당신은 목을 잘리는 정도로 끝나기라도 하지! 여자들은 죽음이 신의 은총처럼 느껴질 정도로 수모를 당하다가 죽는다고! 그러니까 말해! 저놈들이 원하는 게 뭐야?”
독이 잔뜩 오른 맹수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듯한 석강호의 독촉이었다.
그래도 망설여? 그래?
엑셀멍의 알제리 가부장, 다예루 압둘 카림 아자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싶어서 그래?
번들거리는 석강호의 눈이 주는 독기에 눌린 모양이었다.
“이곳에 있는 남자아이 중 한 명이 놈들에게 잡혔다가 도망쳐 왔소.”
의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잡혀 있던 곳이 커피 농장이었어?”
“그렇소.”
“놈들이 이상한 실험도 했고?”
“창고 같은 사각형 틀에 가뒀다가 꺼낸 뒤에 약을 먹였다고 들었소.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죽은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었고,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도망 왔다고 들었소.”
“냄새가 지독한 약이라고 합디까?”
“맞소.”
히죽.
“이 씨발 새끼들!”
알아먹지 못할 웃음과 한국어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의아해하는 의사를 보며 만족한 듯 석강호는 다시 한번 잔인한 미소를 그려 냈다.
***
군용기를 졸업하나 했더니, 자가용 비행기를 승용차보다 더 오래 타는 삶이 됐다. 잠이라도 자면 다행이지. 지겹게 울어 대는 전화 탓에 강찬은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 차동균입니다. 석 선생이 체첸 용병들에게 포위돼서 지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강태산을 지휘관으로 해서 지원팀을 보냈습니다.
거기에 하나같이 숨 막히는 내용이다 보니 툭 끊어 버릴 수 있는 스팸 전화가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차동균과 통화를 마친 다음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간 놈이 체첸 놈들한테 포위나 당하고! 에이, 대머리독수리 같은 새끼!”
통화를 함께 듣던 제라르가 뜬금없는 비유를 내놓으며 분통을 터트렸고,
임무만 맡기면 순서처럼 포위되는 돌대가리!
강찬 역시 불편한 눈빛으로 탁자에 올려 둔 커피를 노려보았다.
그으으응.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비행기 특유의 흔들림을 이용해 커피잔에 담긴 커피가 항변하는 것처럼 출렁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또 울었다.
스마트폰을 슬쩍 본 제라르가 오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얼른 이 짓을 꾸민 놈의 머리통을 돌려 버리고 싶다는 독기가 놈의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강찬은 손을 뻗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잠시 통화되십니까?
“말씀하세요.”
– 조금 전에 석 선생이 체첸 용병에게 기습당해 포위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예. 저도 연락받았습니다.”
염병할, 멍청이!
다시금 상황이 떠오른 강찬은 걱정되는 만큼 튀어나오는 욕을 억지로 삼켰다.
– 놈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짧게 보고드리자면, 최근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가 모하마드 암만 압둘라 하지즈인데, 그 아들이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입니다.
다급하게 전하는 김형정의 보고에도 강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그랬다. 거기에 정보총국이 꼼꼼하게 살피는 인물이기도 했다.
– 아시겠지만,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는 세계 원두 시장을 장악한 커피 중개인입니다.
이것 역시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여섯 번째 부인이 동물 애호가여서 표범을 새로 샀다는 내용까지도.
– 체첸 용병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살폈는데,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커피 유통 경로를 말씀하는 겁니까? 그거라면 예멘의 커피 농장 사건 이후로 정보총국이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 알고 계셨군요.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이라 예멘과 에디오피아를 관통하는 커피의 유통 경로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난번에 있었던 지경그룹 직원 피격을 더하면 의외로 수상한 흔적이 나옵니다.
뭐에다 뭐를 더해?
정보총국도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이어서 강찬은 대번에 눈가를 좁혔다. 맞은편에 앉은 제라르도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비틀고 있었다.
– 당시에 지경 직원 두 명이 물품의 유통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조사 중이었습니다. 피격을 받은 장소는 세컨드 리보 비치 근교인데, 그곳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이슬람 사원이 있습니다.
지루한 설명이었다.
솔직하게는 툭 자르고 결론을 묻고 싶었으나 김형정 정도 되는 인물이 길게 설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렸다.
– 지경그룹 직원 두 명이 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살피던 건물이 데그마다 빌딩입니다. 그리고 그 빌딩에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의 유통 회사가 있습니다.
이거 봐?
시선을 든 강찬을 제라르가 마주 보고 있었다.
– 저와 함께 있는 신광선 팀장이 원래 중동 지역 전문가였습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퇴직한 이용우 요원이 구하러 갔던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이 커피를 수입했고, 그 커피에서 헬륨3가 나왔는데, 문제의 커피를 유통한 회사가 바로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의 유통 회사였습니다.
이런 개새끼!
강찬은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검게 기른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를 떠올렸다. 그러나 심증만 가지고 놈을 다그치는 건 곤란했다.
– 여보세요?
“워낙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 같으면 당장 놈의 머리통에 권총을 들이대고 싶은데 만약 끝까지 입을 다물고 버티면 방법이 없는 게 문제네요. 혹시 더 분명한 정황이 나오면 알려 주세요.”
– 부원장님.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의 부인 여섯 명 중 여섯 번째 부인이 생명공학 박사였습니다.
뭐야, 이건 또?
– 그녀가 애완동물에 각별한 관심을 두는 것도 장수에 관한 연구와 실험에 동물을 잔인하게 이용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편법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또 이렇게 연결되나?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김형정이 꿰뚫어 주면서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적의 몸통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 좀 더 조사해 보고 내용이 나오면 보고드리겠습니다. 지금 확인한 내용을 공유할까요?
“문바키와 통화할 테니 따로 올리지는 마세요. 그리고 정말 대단한 발견입니다. 고생하셨어요.”
– 그나마 밥값을 조금은 한 거 같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통화가 끊기고 액정이 반짝이는 것을 확인한 강찬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그렇다.”
“이제 조금은 더 가까이 간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피식.
강찬은 대답 대신 특유의 웃음을 보여 주었다.
***
천중명은 직원들이 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 임시로 만든 사무실이라고 해도 컨테이너 세 개를 연결해서 두 개의 집무실을 꾸며 놓았을 정도로 규모를 갖췄다.
마리그의 정리가 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천중명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 천 회장. 이전 통화에서 내가 성급하게 판단했던 점을 사과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왕세자님.”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걸려 온 우즈만 알하리 무라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전화였다. 그래 놓고는 또 대뜸 지난번에 더는 돕지 못할 거라 했던 말을 사과하고 나섰다.
이러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겠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 고맙소, 천 회장.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리다.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에 관한 전권을 천 회장께서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던 천중명은 바로 우즈만 왕세자의 아쉬움이 뭔지를 알아차렸다.
“개발에 관한 전권을 확보한 건 맞습니다.”
– 천 회장. 우리는 그 어떤 곳보다 물이 소중한 자원입니다. 게다가 최근 일어나는 감염에 유일하게 대응할 방법이 물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염치없지만, 천 회장에게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소식 참 빠르기도 하지.
하마터면 길게 내쉴 뻔한 숨소리를 천중명은 억지로 눌렀다.
천중명의 침묵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 천 회장?
간절한 우즈만의 음성이 천중명을 찾았다.
“아직 아무런 시설도 없어서 지원한다고 해도 오염이 심한 상태입니다.”
– 지원만 해 준다면 정화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그리고 천 회장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부룬디의 개발에 드는 비용을 내가 모두 부담하겠습니다. 선지급의 의미로 1조 달러를 보낼까 하는데 어떻소?
부룬디 대통령 피에르 디크루은자가 들었다면 피를 토할 제안이었다.
“자금보다는 운반 방법에 관해 의논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왕세자님께서 이토록 간절하게 바라시는 일을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 오오! 고맙소, 천 회장! 신께 맹세코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우즈만 왕세자가 오염된 물을 준다는 말에 감동하는 세상이라니, 누군들 이런 현실을 상상이나 했을까.
– 대한민국 정부가 감염 예방을 위해 러시아와 긴밀하게 협약한다는 발표 때문에 마음을 졸이던 참인데, 천 회장이 이렇게 약속해 주시니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듯싶소.
누가 누구와 협약을 해?
정보에 관해서는 뒤처지지 않는 천중명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왕세자님. 방금 대한민국 정부가 러시아와 협약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어디에서 들으셨습니까?”
– 국가정보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상의했다는 발표가 있었소. 그 직후에 속보 형태로 세계 언론에 퍼졌다오.
마리그를 지키느라 뉴스를 확인하지 못한 건 천중명의 잘못이었다. 그렇더라도 국가정보원 원장의 동선과 업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건 아예 미친 짓에 가까웠다.
설마 공명심 때문에 그랬나?
아니야. 아닐 거야.
기가 막힌 건 나중이고, 우즈만 같은 인물이 그런 멍청한 발표를 보고 얼마나 비웃을까를 생각하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가 일이 있어서 아직 보도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왕세자님과의 약속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실무진을 파견해 주십시오.”
– 고맙소, 천 회장.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면 나는 언제고 천 회장의 편에 서겠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뒤에야 우즈만이 전화를 끊었다.
“후-.”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이 시급하다더니, 일이 이렇게 급하게 달려갈 줄은 몰랐다. 정말 강찬은 이런 순간을 예상해서 부룬디 대통령에게 전화했던 건가?
창으로 시선을 돌린 천중명은 수백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던 강찬의 말을 떠올렸다.
가만?
그러고 보니 러시아로 간다고 하지 않았었나?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은 탓에 천중명은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 냈다. 그런 뒤에 책상 위에 놓인 물병에 손을 뻗었다.
움찔.
그 직후에 천중명은 뻗던 손을 멈춘 상태에서 물병을 향해 눈을 좁혔다.
왜?
고개를 갸웃했던 천중명은 물병을 향해 뻗고 있던 손을 힘껏 내밀었다.
움찔. 움찔.
그러나 팔이 혼자 판단한 것처럼 물병을 잡지 못했다.
설마 감염된 건가?
체첸 용병 놈들을 베고 묶는 과정에서?
“감염됐다는 거냐?”
혼잣말을 뱉은 천중명은 물병을 노려본 채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