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1)
592화 지휘관은 양동식 소령으로 하겠습니다 (2)
김형정에게 보고를 마친 신광선은 이어진 정보에 고개를 쑥 내밀었다.
[바그다드 시내 총격 발생, 현지 코디네이터 술라이만 이븐 니아지의 오른쪽 어깨, 양쪽 무릎에 세 발의 권총 사격, 생명에는 지장 없음. 현지 경찰에서는 한국인을 범인으로 추정. 지사에서는 바그다드의 별로 추정함. 현재 잠적.]“이 미친 새끼!”
정보를 확인한 신광선은 어쩐지 울음이 왈칵 올라온 듯한 표정으로 욕을 뱉었다. 그런 뒤에 급하게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메아리처럼 울린 신호음이 두 번 들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바그다드의 별이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세 발의 권총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세 발입니까?
“그래.”
– 그 새끼 미친 거 아닙니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알아서 판단해.”
신광선의 지시가 건너간 뒤로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타고 넘나들었다.
– 그럼 저도 꽃이나 심겠습니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신광선은 방금 통화했던 휴대폰을 가라앉은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꽃을 심는다’라는 은어는 더 블랙 박중상이 정보원을 빼내기 위해 미끼로 죽음을 택한다는 의미였다.
박중상이 미끼가 되어 죽음을 각오한 상황이라니.
이렇게 되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박중상까지 탈출하는 건 어렵다. 또한, 박중상이 희생되더라도 정보원을 빼낸다는 보장도 없다.
‘도대체 무슨 정보기에 이라크 특수 경찰까지 튀어나오지?’
상황을 분석하던 신광선은 또다시 휴대폰에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연락하겠습니다.]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 빤히 아는 김형정이 이런 문자를 보냈다면 그쪽은 더 급한 일이 있다는 의미였다.
***
옥상을 달리는 이용우의 그림자가 여기에서 멈추라는 듯 꼬리를 길게 늘어트렸다.
“이익!”
가쁜 숨을 토해 내던 이용우는 또다시 허공으로 떠올라 팔다리를 휘저었다. 아래로 건물 사이의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순간이었다.
‘오늘 당신에게 갈 거 같아.’
눈으로 달려드는 오후의 햇살을 향해 이용우는 엉뚱한 뜻을 전했다.
터억. 털써-억.
반대편 옥상에 떨어지기 무섭게 한 바퀴를 구른 이용우는 마침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세 발을 쐈다.
‘이쪽에서 사건을 만들 테니 그 기회를 노려!’
이용우가 당긴 세 번의 방아쇠는 그런 의미였다.
“허억. 헉.”
알-무타나비 코너에 황토색 2층 건물의 왼쪽으로 두 번째 방이라고 했었다. 바로 아래 세워 둔 차에 폭탄을 설치했고.
계단은 길지 않아서 곧바로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돌이키지 못한다.
‘중상아. 우리 아버지…. 홀로 남을 우리 아버지 한 번만 찾아가 주라.’
콰앙.
거칠게 문을 여는 이용우를 제법 넓은 도로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술라이만이 말했던 알-무타나비 코너였다.
‘이 씨발 놈들아!’
방향을 틀어 달리는 이용우의 이마에 솟아난 땀방울이 흙먼지를 잔뜩 안아서 얼굴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가 어떤 훈련을 했는지 상상이나 하냐?’
포기하면 안 된다.
눈물 없인 피지 않는다.
의지다. 하면 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중상아! 세 발이다! 세 발!’
거칠게 달리는 이용우를 피해 옆으로 비켜서는 사람들 틈으로 황토색 건물이 보였다. 코너를 따라 기역 자 형태로 꺾인 건물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는 건 이 말을 전하려 핀단다.
참으면 이긴다.
목숨을 버리면 얻는다.
이를 악문 이용우는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권총을 꺼냈다.
철커덕.
총구를 아래로 내린 이용우가 노리쇠를 당긴 직후였다. 놀란 사람들이 골목과 상점으로 뛰어들었고, 부르카를 입은 여자들이 아이를 안고 뛰었다.
왼쪽 두 번째 방, 그 아래 승용차.
골목에 서 있는 건 검은색 낡은 승용차 하나였다.
타앙! 타아-앙! 타앙!
승용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알-무타나비 골목에 요란한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그와 동시에,
콰으-으응!
거친 불길을 뿜어낸 승용차가 높다랗게 떴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불길과 함께 검은 연기에 휩싸인 승용차의 파편이 사방으로 떨어질 때, 이용우는 황토색 건물로 뛰어들었다.
와락.
‘기다렸다. 이 개새끼들아.’
안쪽에 숨어 있던 것처럼 문도 없는 안쪽 복도에서 두 명의 남자가 달려들었다.
콰윽. 콰작. 퍼윽.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턱을 왼손바닥 안쪽으로 올려친 이용우는 오른쪽 놈의 콧잔등을 팔꿈치로 찍었다.
이라크 특수 경찰?
콰으윽!
“커흑!”
왼편 놈의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걷어찬 이용우는 놈의 목을 휘감았다. 먼저 꺽꺽대는 놈을 방패처럼 앞에 세운 이용우는 작은 상점들이 줄줄이 연결된 1층 복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술라이만 이븐 니아지의 복수다!”
타아앙! 타앙!
유창한 아랍어를 지르며 두 발의 권총을 갈긴 뒤였다.
불쑥 상점 안쪽에서 권총을 든 팔이 튀어나왔다.
이 미친 새끼들이!
이용우는 상점의 유리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콰장창!
이용우와 특수 경찰 놈이 바닥을 구를 때,
타아앙! 타앙! 타아앙! 타앙!
상점들 사이 복도로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끄응.’
몸을 세운 이용우는 함께 뛰어든 놈의 허리에 꽂힌 권총을 왼손으로 꺼냈다. 그리고는 벽에 붙어서 새롭게 얻은 권총의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씨발. 바그다드에 온 이유가 이런 건 아니었는데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겠다.
피로 물든 무궁화라면…….
아내를 보러 갈 명분은 충분하잖아.
벽에 붙어 선 이용우는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픽 웃었다.
***
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시누크 안을 폭풍처럼 휘감을 때였다.
“이번 작전은 수니파 수뇌부와 목록에 있는 국가의 정보국 수장 사살이다. 팀별로 타깃을 확인해.”
작전 설명을 할 틈은 없었다. 그래서 우선 시누크로 움직이는 사이에 급한 대로 양동식이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면 중동으로 향하는 팀은 대기 중인 수송기로 이동하고, 표적이 아프리카에 있는 팀은 계속 이 헬기에 남는다. 질문?”
고개를 돌리는 양동식의 왼쪽 어깨에 걸린 대검이 그의 시선에 따라 좌우로 몸을 비틀었다. 말이 아프리카 군사학교의 특수팀이지, 이곳에 있는 대원들은 모두 증평의 특수팀 훈련소에서 위탁 교육까지 받았다.
그뿐이냐.
아프리카 군사학교의 학장이 강철규였다.
그가 만든 과정을 통해 훈련한 대원들이며, 마지막 과정을 완벽하게 통과한 대원에 한해 왼편 어깨에 대검을 걸어 주었다.
한국에서는 제약이 많았다.
당장 지금처럼 보복해야 할 순간에 승인이니, 절차니, 다른 나라의 시선까지 의식해서는 프랑스 외인부대나 미국의 델타포스처럼 즉각 출동이 어려웠다.
두두두두두두두.
시누크의 소음과 진동 속에서 양동식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알고 있나 모르겠지만, 양동식과 그의 대원들은 반대편에 선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GPNVG-18 4안 야간 투시경, 헬멧, MP5SD, 소총에 달린 액세서리, 방탄조끼, 허리와 발목에 걸린 권총, 대검, 그런 장비들을 갖춘 대원들이 소총의 총구가 아래로 향하게 걸고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요란하게 출발했다. 타깃을 사살하라는 지시 외에 노리는 게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말이다. 양동식은 작전 지시에 담긴 깊은 속내를 궁금해하거나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죽이라면 죽이고, 빼내 오라면 데려오는 거지!
대원들을 돌아본 양동식은 열린 시누크의 문을 통해 빠르게 흘러가는 아프리카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아프리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이었다.
쭉쭉 뻗어 나가는 도로를 따라 높은 건물이 솟아나고, 바닷물을 끌어 올려 정수한 뒤, 거대한 관을 통해 공급하는 급수 시설 덕분에 대규모 농장까지 생겨났다.
그 아프리카 대륙 중간쯤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반둔두에는 아프리카군사종합학교라는 이름 더럽게 긴 군사학교도 생겼다.
멀리 세워진 위령탑의 아래로 작은 공원이 조성되었고, 그곳에서부터 도보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아프리카군사종합학교에서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이 정식 군사훈련을 받는다.
반둔두의 처참하고 참혹했던 전투사에는 영웅이 몇 명 등장한다.
그중 강철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차동균, 곽철호, 심지어 북한군 출신 안철호까지 존경하는 인물이어서 더 그런지 몰랐다.
산을 가로질러 아군의 진입로를 확보했던 활약과 바위산 중간에서 있었던 매킨지와의 혈투는 이곳 훈련생들이 가장 열광하는 전설이었다.
습도가 높아져 태양이 더욱 붉어지는 날이면 학장인 강철규는 일과를 마치고 반둔두의 위령탑에 나와 주변을 청소했다. 아침저녁으로 피부가 검은 훈련생들이 치우긴 하지만, 속없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들과 먹다 흘린 음식 찌꺼기들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리 주십시오.”
양동식이 벌린 검은 봉지에 강철규는 말없이 주워 들었던 쓰레기들을 담았다.
지금의 양동식은 안다.
강철규가 왜 양동식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그렇게 아픈 눈으로 웃었는지 말이다.
“잘 지내냐?”
물론, 시누크 안에 있는 양동식은 피처럼 붉어진 하늘을 향해 강철규가 턱없이 던지는 질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
지시를 막다니?
김형정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원장을 내려다보았다.
“본부장의 지시는 내가 막았으니까 그렇게 알고, 다른 할 말이 없으면 그만 가 봐요.”
“원장님?”
“전쟁할 게 아닌데 국내에 있는 정보원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반항하면 사살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테러 담당인 부원장의 지시입니다.”
김형정이 당차게 대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원장이야! 내가! 내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원장이라고!”
얼굴마저 붉어진 하동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후-.”
그 직후에 하동선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는 것처럼 대놓고 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부원장을 교체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가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 정보원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지켜보시기만 하겠다는 겁니까?”
“하아, 그 양반 참. 정 그렇게 내 지시가 불편하면 사직하세요.”
물러서지 않는 김형정이 어지간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동선은 의자에 상체를 기울인 자세로 마치 잡상인을 대하듯 김형정을 바라보았다.
사표를 쓰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김형정이 여기에서 덜컥 물러나면 새로운 본부장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정보원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간 더 블랙 요원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나가 보라니까 왜 그러고 있어요?”
빈정대는 원장을 향해 고개 숙인 김형정은 이를 질끈 깨물며 몸을 돌렸다.
***
나이가 많아진 만큼 라노크는 주로 일찍 잠들었고, 새벽에 일어났다.
빼흑슈의 2층 베란다에 앉은 강찬은 하릴없이 삼촌 집에 죽치는 조카처럼 앞쪽의 풍광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홍차를 더 드릴까요, 무슈 강?”
조심스럽게 다가온 라파엘을 향해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 탄력을 잃어 길게 늘어진 눈 아래 자글자글한 주름, 꼿꼿함을 잃어 휘어져 보이는 콧대, 하얗게 변한 머리칼, 그런데도 라파엘은 꼿꼿함만큼은 잃지 않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라파엘.”
시선을 돌린 강찬의 말이 뜬금없었을 텐데도 라파엘은 충직한 심복처럼 다음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고.”
“위원장님께서 무척 기뻐하셨겠습니다.”
이런 대꾸도 해?
힐끔 돌아본 강찬을 향해 라파엘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지금껏 위원장님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위원장님이 늘 긴장 속에서 지내신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올려다보는 강찬을 향해 라파엘은 서서히 깔리는 어둠처럼 나직한 프랑스어로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슈 강과 함께 지내실 때만은 긴장을 푸신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프랑스인은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지금의 라파엘처럼. 여태 한 번도 나서지 않던 그가 엉뚱한 대화를 핑계로 라노크를 지켜 달라며 강찬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보기에도 라노크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내가 좀 특이하다는 건 알지?”
“누구보다 강한 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무슈 강.”
“그래서 말인데, 내게는 아버지가 세 분이나 있어.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특별한 홍차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무슈 강.”
늙어 버린 라파엘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겠나?
피식 웃은 강찬은 이제는 완연하게 어둠이 내린 앞쪽 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강찬이 몇몇 얼굴을 떠올릴 때였다.
궁금함에 답을 주는 것처럼 구둣발 소리가 뒤편에서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