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14)
695화 여기 적당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요 (1)
강찬은 사무실 안쪽에 만들어 놓았던 정보실 문을 열었다.
모니터를 세 개, 혹은 네 개씩 걸어 둔 책상이 엇갈려 있어서 마치 주식을 거래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한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의 정보국들이 보낸 기밀들과 위성에서 찍은 영상들을 받았고, 그것들을 제라르가 관리했었다.
빌어먹을.
이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도 가슴이 저릴 만큼 억울한 피를 흘렸는데, 개만도 못한 인간이 수장으로 앉아 수치스러운 발표나 해 대는 통에 피로 쌓은 신뢰를 잃었다.
강찬이 볼을 씰룩일 때였다.
사무실 바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모셔왔습니다.” 하는 제라르의 음성이 강찬을 찾았다.
“제라르.”
강찬은 나직하게 제라르를 불렀다. 잠시 뒤였다. 정보실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이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
수척해진 얼굴로 인사하는 이용우에게 강찬은 가벼운 대꾸로 답했다.
‘누군데 이렇게까지 고개 숙이냐?’
동료로 보이는 남자가 의아한 눈으로 이용우를 살피고 있었는데 당장 입을 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용우의 동료와 이라크인 부녀를 눈에 담았던 강찬은 하동선과 러시아에서 보았던 임원 두 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멍청하고 쓸모없는 것들.
러시아에서 권총을 발사해 대는 강찬에게 공손했던 임원 두 명이 이용우와 그의 동료가 보고 있다는 부담감, 한국이라는 장소가 주는 자신감을 믿어서인지 고개를 까딱하고는 하동선의 눈치를 살폈다.
“크흠. 직접 내려오지 않은 거야 이해한다 쳐도 사람을 불렀으면 먼저 인사 정도는 하는 게 도리 아닌가?”
피식.
살면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매를 버는 인간은 안드레이 이후로 처음이지 싶었다.
“제라르. 문바키에게 전화해서 정보총국의 자료를 이곳에서 볼 수 있도록 연결해.”
“위.”
내내 한국말을 잘도 떠들던 제라르가 나직하게 프랑스어로 답하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런 뒤에 부드럽지만, 위엄을 담은 음성으로 통화했다.
정보총국의 자료를 이곳에서 본다고?
하동선과 국가정보원 임원 두 명이 욕심이 덜컥 올라온 눈으로 꺼져 있는 컴퓨터를 보았고, 아직 강찬을 모르는 이용우의 동료는 ‘그런 게 가능해?’ 하는 표정이었다.
“연결하겠답니다.”
“컴퓨터 켜서 확인해. 이왕이면 전부 전원을 넣는 게 좋겠다.”
“위, 카피땐.”
강찬의 지시에 따라 제라르가 움직여 책상마다 버튼을 눌렀다. 그사이 강찬은 또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 바실리다.
하여간 징그러운 인간.
“한국에 도착했다. 전에 사용하던 사무실에서 러시아 정보국의 정보와 감시 위성의 영상을 사용하고 싶다.”
– 1분 뒤에 확인해.
정말이지 짧은 답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염병, 살면서 바실리와 안부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혹여 가족이 있더라도,
“바실리다. 살아 있지?”
“예.”
뚜뚜뚜뚜.
하는 식의 통화가 전부일 거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검은 배경만 보이던 모니터에 온갖 정보들이 빠르게 올라왔고, 그 옆 모니터에는 감시 위성들이 포착한 영상들이 줄줄이 피어났다.
이거 노다지 아냐?
하동선이 임원 두 명을 돌아볼 때였다.
“이용우. 동료와 거기 두 분 모시고 밖에 있어. 출입문을 지나치면 회의실 공간이 있다. 중간에 커피나 차를 준비해 뒀으니까 편하게 마시고, 잠시 기다려.”
“알겠습니다.”
강찬의 지시를 받은 이용우가 고개를 숙인 뒤에 동료와 이라크인 부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제라르.”
이어서 강찬은 제라르에게 고갯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챈 제라르가 조용하게 밖으로 움직였다.
“이게 그러니까 정보총국에서 보내 준 정보들인가?”
“이쪽이 프랑스 정보총국, 이쪽은 러시아 정보국.”
하동선이 답을 구하는 것처럼 또다시 임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짐작만 할 뿐, 당장 정보와 영상을 확인하지 못한 임원 두 사람이 답을 하지는 못했다.
“흠. 그러면 이 정보들, 그러니까 러시아와 프랑스가 보내온 정보들을 국가정보원에 연결할 건가?”
미친놈.
강찬이 피식 웃는 순간에 제라르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문을 조용하게 닫고서 강찬을 향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뒤를 돌아본 하동선이 시선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제라르.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입을 여는 인간이 있으면 먼저 다리, 두 번째는 팔, 마지막으로는 머리통을 터트려.”
“위, 카피땐.”
강찬의 지시를 받은 제라르가 재킷 안쪽에서 권총을 꺼냈다.
철커덕.
그런 뒤에 거칠게 노리쇠를 당기고는 양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바보라도 지금 제라르의 자세가 언제고 방아쇠를 당기기 위한 예비 동작이라는 걸 알아볼 정도로 확고한 태도였다.
“쉿.”
강찬은 무언가를 떠들려는 하동선을 향해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알려 줬는데도 움찔했던 하동선이 습관처럼 임원 두 사람을 돌아본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들었겠지만, 내 허락 없이 떠들면 이곳에서는 진짜 죽는다. 그러니까 알아서 행동해.”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나….”
피식.
강찬이 특유의 웃음과 함께 시선을 던졌고,
푸슈-웅. 퍼억.
제라르가 대뜸 하동선의 오른쪽 정강이를 뚫었다.
“끄아-.”
상체를 구부려 상처를 감싸려던 하동선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바닥에 퍼졌고, 그 직후에 감싸 쥔 그의 정강이에서 쏟아진 피가 바지를 흠뻑 적시고는 발목과 구두를 타고 바닥에 흘러내렸다.
하동선에게 달려가 그를 살핀 임원 두 명이 고개를 드는 순간, 강찬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너희같이 쓸모없는 것들 죽이는 데 망설일 정도면 부르지도 않았어. 여차하면 죄다 죽여서라도 국가정보원을 바로잡을 생각이니까 뒈지기 싫으면 입 열지 마.”
독이 올라 번들거리는 눈빛의 강찬, 그냥 대가리를 터트리고 끝내고 싶다는 투로 노려보는 제라르, 분위기에 눌린 것처럼 임원 두 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살폈다.
“이 정보들을 받기 위해 국가정보원 벽에 얼마나 많은 별이 새겨졌는지 알아? 그 외에도 대테러팀, 증평특수팀, 707 특임대대, 35여단, 해군특수전전단, 심지어 퇴역한 전직 특수부대원과 비무장지대 대원들까지.”
말을 하는 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인물들이 심장을 도려내듯 아프게 피어나서 강찬은 이를 지그시 물었다.
“장광택의 모가지를 따러 북한에 간 건 말할 것도 없고, 중국, 프랑스, 리비아, 몽골,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아프리카, 그렇게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많은 곳에서 젊은 심장이 피를 쏟아 내고 식어 갔다. 그 아까운 삶들이 한 조각 원망이라도 남겼다면 말도 안 해.”
앞으로 움직인 강찬은 죽어 가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하동선의 재킷 뒷덜미를 붙들었다.
콰악.
“끄으으-.”
“소리 계속 내 봐. 이번에 팔을 뚫어 줄 테니까.”
끅끅대며 인상을 구긴 하동선의 뒷덜미를 당긴 강찬은 정보들과 영상이 올라와 있는 책상에 그의 머리를 세차게 처박았다.
콰앙.
“커흑.”
“봐!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이 개 같은 인간아!”
말리려고 했었나 보다.
철컥.
다가오려던 임원 두 명을 향해 권총의 총구를 겨눈 제라르가 냉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국가정보원에 연결하라고? 젊은 심장을 대가로 얻은 정보를 관리할 능력이나 있어? 피눈물 담긴 정보들이 제대로 사용되기나 하냐고? 이….”
홰액.
뒷덜미를 잡아서 하동선을 당긴 강찬은 그의 눈을 향해 얼굴을 깊숙하게 들이밀었다.
죽여 버릴까?
그렇게라도 닥쳐올 위기에 대비할까?
강찬의 독기 가득한 망설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지 말라는 투로 하동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찬은 김미영의 당부를 떠올렸다.
이 새끼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게 맞나?
피식.
짧게 고민하던 강찬은 차갑게 웃었다.
이 개새끼한테는 이미 기회를 줬었다. 그리고 한 번 뒤통수친 새끼는 반드시 두 번 때린다.
마음을 결정한 강찬은 하동선을 툭 옆으로 던졌다.
콰드등!
바로 옆의 책상에 부딪혔던 하동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다음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고개를 돌린 강찬은 몸을 세운 임원 둘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왜 내가 지시한 게 이뤄지지 않았지?”
“무슨 말씀이신….”
푸슈-웅! 퍼억!
“끅.”
이번 총질은 질문에 답한 거라 좀 심한 감은 있지만, 아무튼 허락 없이 입을 열었으니까 제라르 잘못은 아닌 거다. 게다가 원장에게 붙어서 딸랑대는 놈들이니 좀 더 현실적인 공포를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제라르의 총질이 앞뒤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실감해서인지 정강이가 터진 임원은 구부리듯 무너지면서도 악착같이 나오는 비명을 삼켰다.
“오늘 공항에 입국하는데 물로 검사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고 지껄이지 마라.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할 시간은 있는데 정작 나라를 지킬 대책을 지시할 시간은 없었나?”
강찬의 질책이 끝나기 무섭게 홀로 남은 임원이 손을 들었다.
에라, 이….
“대답해 봐.”
“발표는 원장님께서 독자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입국 강화는 우리가 지시할 내용이 아니라서….”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이라도 파견했었어야지.”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은 이미 해체되었습니다.”
눈가를 좁힌 강찬은 독한 눈빛으로 하동선을 돌아보았다가 시선을 가져왔다.
“저 인간이 그렇게 했나?”
“예….”
“이유는?”
“평화로운 시기에 굳이 대테러팀을 유지하는 건 비용 낭비라고….”
답을 듣던 강찬의 머릿속이 후끈 달아올랐고, 이어서 저절로 몸이 하동선을 향해 움직였다.
퍼억! 퍽! 콰악! 콱! 콰작! 콰악!
강찬은 책상 앞에 주저앉은 자세로 정강이를 감싸고 있던 하동선을 두 번 걷어찼고, 쓰러진 그를 힘껏 짓밟았다.
차라리 죽인다. 이 개새끼는.
콰악! 콱! 콱! 콰악!
말도 안 되는 발표는 해도, 방역은 권한이 아니라며 미루는 개새끼!
개인적인 욕심을 강요하기 위해 주프랑스 한국 대사를 교체하고, 비용을 핑계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해체하는 개만도 못한 새끼!
콰윽! 콱! 콰으윽!
국제빌딩에 테러를 감행했던 아비부 놈도 자신의 나라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정보원 수장이라는 새끼가 오히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외면해?
콰아악! 콰악! 콰아악!
이미 의식을 잃은 것처럼 늘어진 하동선의 대가리와 목을 짓밟을 때였다.
“대장.”
나직한 음성과 함께 제라르가 강찬의 상체를 안았다.
“죽일 거면 깔끔하게 해결하시죠.”
고개를 돌린 앞에서 제라르가 단호한 표정으로 강찬에게 뜻을 전하고 있었다.
“저 두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염 예방을 위한 방법까지 알려 줬고, 원장이 핑계 대거나 막으면 아프리카로 연락하라는 지시까지 했는데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한, 국가정보원은 틀린 거 같습니다.”
만약 프랑스 정보총국의 요원 나부랭이가 지금 같은 말을 지껄였다면 대번에 이마로 콧잔등이를 들이받았을 만큼 자존심 상하는 소리였다.
그건 그거고.
차동균, 곽철호를 빤히 아는 제라르였다.
강철규와 심지어 밖에서 기다릴 이용우까지 아는 제라르가 국가정보원을 포기하고 버리자는 말을 한다고?
어디, 맞춰 줄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제라르.
“이것들을 여기에서 죽이자고?”
“정보총국 요원들이 건물 주변에 있습니다. 지시만 하시면 세 사람 모두 내일 오전에 예멘에 도착할 겁니다. 감염을 우습게 아니까 괴물들 틈에 던져 주면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피식 웃은 강찬은 만족한 표정으로 하동선과 임원 둘을 돌아보았다.
“부원장님?”
푸슈-웅! 퍼억!
결국, 혼자 서 있던 임원이 다급하게 강찬을 불렀고, 그 직후에 정강이에 총상을 입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효, 이 쓸모없는 인간들.
정보국 세상에서 병아리 같던 국가정보원을 생떼 같은 목숨 희생해 가며 중닭으로 만들었더니 뒤룩뒤룩 살만 쪄서 치킨에도 못 쓸 폐닭이 되고 말았다.
죽어 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빛나는 대한민국과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을 태극기가 이들에게는 그저 배 불리고 으스대는 수단으로 여겼다면 벌을 받는 게 옳지 않겠나?
제라르의 총구 앞에서 정강이가 터져 바닥에 주저앉은 세 사람이 마치 지금 국가정보원의 현실을 대변해 주는 느낌이어서 강찬은 볼을 씰룩였다.
“제라르.”
“위, 카피땐.”
“세 놈을 예멘으로 보내.”
분위기 잡으려고 했던 건데, 정말 보냅니까?
원장을요?
퍼뜩 날아든 제라르의 시선에 강찬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일단 보내. 그리고 러시아와 합동으로 감염을 조사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원장이 직접 임원 두 명과 예멘으로 움직였다고 발표해.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동시에 발표하면 앞에서 했던 멍청한 속보가 있어서 아마 받아들일 거다.”
“위, 카피땐.”
뒤늦게 강찬의 뜻을 알아들은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우그러트리며 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