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15)
696화 여기 적당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요 (2)
원장과 임원 둘을 남모르게 예멘으로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보총국의 협조를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하던 제라르가 강찬을 돌아보았다.
“문바키가 대장과 통화하고 싶답니다.”
하동선과 임원 두 놈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프랑스어를 사용한 제라르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어렵다고 한 건가?
시선을 주었던 강찬은 스마트폰을 받아 귀로 가져갔다.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세 명을 남몰래 출국시키는 건 힘겹다.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이전처럼 오산 공항을 사용하기도 어렵고.
“알로?”
– 문바키입니다, 대장. 정말 국가정보원 원장과 임원 두 명을 예멘으로 보내려는 겁니까?
“곤란하면 그렇다고 편하게 말해.”
강찬의 프랑스 말을 알아들은 제라르가 보이지도 않는 문바키를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 대장이 구해 줘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뇌돼서 죽을 목숨을 살려 주신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항을 통과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곤란하면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문바키.”
– 프랑스의 영광에 해가 되지 않는 명령은 무조건 실행합니다. 다만, 이번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앞으로 오랫동안 대장이 한국을 방문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건 대장의 운신이지, 정보총국 총국장 자리나 제 안전은 아닙니다.
염병할.
문바키도 프랑스의 영광을 염려하는데, 도대체 어떤 개 같은 방식으로 선발해야 이런 매국노 새끼들이 국가정보원에 처 앉을 수 있는 거지?
강찬의 침묵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 대장. 언짢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지시를 주시면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문바키. 국가정보원 원장과 임원 둘을 예멘으로 보내. 그리고 러시아와 협동으로 예멘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움직인 거라 발표해.”
– 위, 카피땐.
지시를 확인한 문바키가 다부진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이 새끼들은 이제 보내면 되는 거고.
“제라르. 이 세 인간 스마트폰 압수하고, 소리 못 내게 묶어. 만약 책상을 차든, 신음을 토하든 어떤 식으로든 바깥에서 들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면 내가 다른 곳에 있더라도 바로 사살하고.”
“예, 대장.”
제라르에게 스마트폰과 지시를 건넨 강찬은 하동선과 차장 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것들이 뭔가 믿는 게 있는데?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분위기와 권총이 두려워 고개를 처박고는 있는데 주머니에 숨겨 둔 열쇠처럼 마지막 희망을 쥐고 있는 듯한 표정이 묘하게 강찬의 신경을 긁었다.
***
안쪽 회의실에 들어간 이용우와 박중상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내부와 창을 둘러보았다. 문을 열 때는 몰랐다. 그러나 닫는 순간, 마치 이중 접합 유리가 겹치는 것처럼 모든 소리가 뚝 잘렸다. 이 정도 시설이라면 이용우와 박중상이 아는 수준에서는 국가정보원에 설치된 도청 방지 회의실이 전부였다.
어디?
슬며시 폴더폰을 꺼내 확인한 액정에 ‘통화 불능’ 표시가 또렷하게 떠 있었다.
역시!
이용우가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원탁 테이블에 앉아 입구 방향을 살피던 박중상이 은근하게 상체를 기울였다.
“뭐냐?”
“뭐가?”
“누구냐고?”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말로 아는 체를 하는 제라르, 예상하지 못했던 국가정보원장과 차장 둘, 거기에 이제 이십 대 중반으로나 보일까 싶은 강찬까지. 궁금하기도 하겠다.
“전설의 부원장님.”
“뭐?”
상체를 세운 박중상이 고개를 갸웃했다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이용우를 다시 보았다.
“야, 이 씨…. 나이가 안 맞잖아?”
“보이는 것만 믿으면 죽어 자빠지는 게 정보국 세상 아니냐? 그냥 사연이 있다고 생각해. 그럼 편하다.”
“그럼 우리말 잘하는 외국인은?”
“전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을 거쳐 외인부대 사령관을 지낸 분.”
“지랄.”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워낙 거물급이라는 점에서 놀라 튀어나온 욕처럼 들렸다.
그 직후였다.
절반 위쪽의 투명한 유리창으로 강찬과 제라르의 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일어난 다음이었다.
문을 열고 강찬과 제라르가 들어섰다.
뭐지?
박중상이 힐끔 이용우를 보았다.
분명 원장 하동선과 임원 두 명을 만나고 온 걸 텐데, 두 사람이 들어서면서 옅게나마 화약 냄새가 풍기고 있어서였다. 물론, 이용우도 화약 냄새는 맡았다.
설마 원장을?
이용우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강찬은 소개를 바란다는 투로 박중상에게 시선을 주었다.
“국가정보원 소속 더 블랙 요원 박중상입니다. 중상아. 전 국가정보원 부원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국가정보원 요원 박중상입니다.”
“반갑다.”
봐, 이 새끼야.
나이고 지랄이고, 막상 마주하면 저절로 자세가 꼬부라지지.
공손하게 상체를 기울여 강찬의 손을 잡는 박중상을 보며 이용우는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제라르도 소개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강찬이 먼저 고개를 돌린 뒤에 제라르를 가리켰다.
“이쪽은 제라르 전 외인부대 사령관.”
“박중상입니다.”
“반가워요.”
박중상이 제라르와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이용우가 오마르와 자밀라를 소개하느라 잠시 틈이 있었다.
“앉을까?”
“예.”
강찬이 시선을 돌리자 제라르가 바깥으로 나섰다.
뭘 하려고?
고개를 빼다시피 들었던 이용우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바깥으로 나섰다. 아무리 뻔뻔한 성격이라고 해도 제라르가 커피를 타는 걸 빤히 알면서도 자리에 앉아 있기 어려워서였다.
“문 열어 둬.”
“예.”
달려간 이용우가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다가섰고, “같이 하자.”라며 웃은 제라르가 종이컵을 꺼내 달달한 봉지 커피를 인원수대로 만들었다.
나가자니 처음 자리라 어렵고, 지켜보자니 위아래 모르는 인간이 된 느낌이고. 박중상이 어쩌지 못하는 옆에서 자밀라가 조심스럽게 강찬을 살폈다.
정체가 뭔데 저 능글맞은 사람이 공손하게 커피를 타지?
나이보다 꽤 높은 사람인가?
알 길 없는 의문을 품은 자밀라가 다시금 열린 입구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양손에 종이컵을 나눠 든 제라르와 이용우가 돌아왔다.
“마시지?”
이상하게 강찬이 권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회식에 처음 낀 신입 직원처럼 다들 종이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지?
원장과 차장 두 명은 왜 안 나오는 거고?
온갖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이용우는 아무 생각 없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랑 마셨다.
“아! 뜨…!”
입에 든 커피를 탁자에 쏟은 이용우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자밀라가 내려놓은 종이컵을 엎었다. 분주하게 일어선 자밀라와 박중상이 티슈를 찾아 테이블을 닦을 때였다.
피식.
강찬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하는 게 영….”
제라르가 어쩐지 부정적으로 들리는 평가를 내놓았다.
***
돈의 힘은 무섭다.
강성태의 한마디는 그보다 더 큰 힘을 지녔고.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던 아르윈은 필리핀에서 출발한 조직원 열 명을 데리고 신월동 사거리의 가게로 돌아왔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무대, 악기들, 복도를 따라 좌우로 만들어진 방, 낯선 풍경을 살필 만도 한데 새롭게 온 조직원들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보스가 말씀하신 놈들이 이곳에 있습니까?”
더는 시간 허비하기 싫다는 투로 책임자인 조직원이 따갈어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는 우리 영업장이고, 작업할 놈들은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장소에 있다.”
“저희는 괜찮으니까 바로 출발하셨으면 합니다.”
“공항에서 바로 왔는데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는 게 좋지 않겠어?”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필리핀 보스께서 연락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계실 텐데 차 마시며 시간 보냈다고 하면 필리핀 보스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아르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태에게 고개 숙여서 그렇지, 필리핀 보스는 절대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특히, 지시한 일이 뚝딱 이뤄지지 않으면 느닷없이 불을 쏟아 내는데 그 바람에 죽은 인간도 여럿이었다.
“여수라는 지역이 있다. 여수.”
“여수-우.”
아르윈의 따갈어에서 나온 지역 이름을 외우려는 것처럼 책임자가 입에 담았다.
“그곳에서 마약을 푼 이유. 다음으로 한국에서 뭘 하려고 했는지, 이곳의 보스께서 원하는 건 그 두 가지다.”
“오늘 중으로 알게 되실 겁니다.”
아르윈의 설명을 들은 조직원이 다부지게 답을 하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성이나 감정이 전혀 없는 눈빛, 앞으로 볼 피와 비명을 기대하는 미소, 그를 마주 본 아르윈이 만족한 것처럼 픽 웃었다.
***
부상자들을 옮기고 난 뒤였다.
핏물이 검게 말라붙은 강태산이 연구실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뭐예요? 감염되면 어쩌려고요?”
고글에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로일이 날카롭게 지적하고는 들고 있던 스포일러를 내려놓았다.
“미안해요. 중요한 테스트 중이어서 날카로웠어요.”
그래 놓고는 피로 검게 물든 강태산의 모습에 눌린 것처럼 변명을 쏟아 냈다. 하기는, 독기 어린 눈매, 몸에 걸친 무기들, 상처, 온몸에 말라붙은 시커먼 핏물, 누군들 지금 강태산 앞에서 공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한 명 살펴봐 줬으면 싶습니다.”
“치료라면 의무실이 낫지 않아요?”
“붉은색이 피어나는 의자에 앉았다가 그 뒤에 역겨운 냄새가 나는 약을 먹였답니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죽은 사람 틈에 있어서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강태산을 향해 눈가를 좁히던 로일이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시선을 가져왔다.
“역겨운 약이라고 했어요? 구토나 발열은요?”
“내가 들은 건 그게 전부입니다.”
“지금 어디 있는데요?”
당장에라도 달려갈 것처럼 로일이 라텍스 장갑을 벗을 때였다.
“연구 대상이 아니라 감염의 위험이 없는지 검사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강태산이 냉정한 지적을 쏟아 냈다.
“감염을 막을 방법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성급했네요. 물은 뿌려 봤어요?”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선 혈액 검사부터 하죠. 나머지는 천천히 살피고요.”
“실험으로 인해 죽을 뻔했고, 죽은 사람들 틈에서 도망쳤고, 죽이려 드는 체첸 용병들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난 아이입니다. 강요하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형식으로 다가가 주는 게 좋습니다.”
“알았어요.”
답을 한 로일은 주사기와 앰풀들이 담긴 작은 가방을 확인하고서 닫았다.
“가요.”
그리고는 강태산을 재촉했다.
***
감시 위성을 통해 확보한 영상, 정보총국에서 넘어오는 자료들, 지경그룹 황성규가 보내는 정보들에 파묻힌 김형정은 마지막 남은 승진 시험 준비에 지친 직장인처럼 피폐한 몰골이었다.
“본부장님.”
구겨진 셔츠 차림의 신광선이 달달한 봉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책상에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밤을 하얗게 새운 탓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김형정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 시간으로 오전 여섯 시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을 확인한 김형정이 허탈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어디로 숨었을까?”
“시아파의 도움을 받으면 미국과 프랑스, 영국의 정보국이 모두 합세해도 찾는 데 1년은 걸릴 겁니다.”
“그런가?”
중동 지역 전문가인 신광선의 의견이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김형정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예멘 상황도 급하고, 마리그의 일도 있는데 지금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를 그렇게 찾으실 필요가 있습니까?”
“뭐?”
잠시라도 쉬게 하려고, 혹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건넨 말에 김형정이 기댔던 상체를 바로 세웠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그게 아니고 지금 뭐라고 했지? 예멘하고 마리그가 급하다고 했었지?”
“예, 그야 뭐….”
미친 말이 날뛰는 수준으로 질문이 이리저리 튀고 있어서 신광선은 당장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지! 공격당한 지경그룹 직원들이 살피던 데그마다 빌딩에 모하마드 암만 하릴 하지즈의 유통 회사가 있었지.”
그사이에도 혼잣말처럼 내용을 풀어 내던 김형정이 책상 한쪽에 쌓아 두었던 서류들을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는 사진 두 장과 빼곡하게 내용이 채워진 서류를 앞에 펼쳤다.
“여기! 이게 데그마다 빌딩에 출입한 사람들 명단이거든. 모가디슈치고는 출입자가 많았지. 여자와 아이들도 있고.”
“그곳에 하릴 하지즈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직 신광선은 김형정의 추측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해적들이야 물품을 노렸다고 쳐도 왜 체첸 용병들까지 마리그를 공격했는지에 관한 이유가 석연치 않았거든. 만약 데그마다 빌딩에 뭔가 시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지경그룹을 소말리아에서 쫓아낼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라면…?”
“등잔불 밑이 어둡다더니…! 너무 빤한 장소라 하릴 하지즈가 거기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일단 보고부터 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신광선 앞에서 김형정은 스마트폰을 당겨서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모가디슈에 있는 데그마다 빌딩 기억하십니까? 그곳을 조사하던 지경그룹 직원이 공격받았다고 보고했었습니다.”
– 빌딩 이름은 몰라도 내용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강찬의 대답이 돌아온 다음이었다.
김형정은 신광선과 나누었던 추측들을 빠르게 전했다.
“그 건물에 뭔가 중요한 시설이 있거나 하릴 하지즈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당장 들이닥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숨기고 있는 게 뭔지 알아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급하게 쏟아 낸 김형정의 의견에 강찬의 대꾸는 없었다.
너무 성급했나?
침묵이 부담스러운 것처럼 김형정이 앞에 서 있는 신광선을 바라볼 때였다.
– 그곳을 감시하자는 거죠?
“그렇습니다.”
잠시 후 건너온 강찬의 질문에 김형정이 바로 답을 내놓았다.
– 훈련된 요원이어야 하고, 아랍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 데다, 눈썰미도 있어야겠군요.
석강호를 말하는 건가?
김형정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 여기 적당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요.
“예?”
– 의논해 보고 전화 드리죠.
강찬의 짧은 답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