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18)
699화 혹시 이 사람이? (2)
뭐 하는 짓이지?
날카롭게 아르윈이 시선을 던진 직후였다.
“아직 셋 남았습니다. 이놈에게 계속 질문하느라 시간이 늘어지면 남은 놈들이 상황을 냉정하게 볼 여유가 생깁니다.”
축 늘어진 놈을 나름 곱게 눕혀 주며 필리핀 조직원이 따갈어로 답을 내놓았다.
“다른 놈이 입을 열지 않으면?”
“이미 털어놓은 놈이 나왔고, 편하게 죽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진짜 질문은 마지막 놈에게 하십시오.”
묶여서 순서를 기다리는 셋을 향해 아르윈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남은 놈들과 시선 마주치지 마십시오.”
나직한 따갈어가 아르윈의 고개를 붙들었다.
“고개를 돌리셨으니까 뭐라도 하나 지시하십시오. 담배라든가, 커피처럼 여유롭게 보이는 걸 가져오라고 하시는 게 효과적입니다.”
어떤 일에든 전문가가 있다지만, 한편으로는 징그럽게 느껴지는 조직원들이었다. 하기야 이런 면 때문에 조직원부터 파견 근로자들까지 보스의 지시에 벌벌 떠는 게 아니겠나.
“커피 있냐?”
“준비하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조직원이 움직인 다음이었다. 아르윈은 느긋하게 움직여 의자에 앉았다.
셋만 남아서 그럴까?
의자에 앉은 아르윈이 지켜보는 앞에서 잔인한 작업을 이어 오던 조직원들이 연장을 챙겨서 물러났다.
그 직후였다.
아르윈에게 시선을 마주치지 말라던 조직원이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셋 중 한 놈에게 손을 뻗었다.
꽈악.
조직원이 멱살을 움켜쥐고 당기는 순간이었다.
“말하겠습니다! 말합니다!”
중국 놈이 정보원치고는 워낙 능숙한 우리말로 절규를 쏟아 냈다.
말한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
더럽게 궁금한데도 아르윈은 관심 없다는 듯 조직원이 가져온 종이컵을 받았다. 그사이 허리춤에 칼을 닦은 조직원이 헝겊을 집어서 중국 놈의 입으로 가져갔다.
“말한다니…! 읍! 우욱! 우우욱!”
저놈은 작업하나 보네.
커피를 마신 아르윈은 더러운 헝겊을 마지막까지 욱여넣는 작업자와 고개를 돌려 가며 애원하는 중국 놈을 최대한 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주르륵.
그 끝에서 버둥대던 중국 놈의 눈에서 눈물이 길게 흘러내렸다.
‘미친 새끼.’
잠시나마 안됐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아르윈은 눈물을 보는 순간 올라오는 욕을 지그시 삼켰다.
잊고 있었다.
저놈들이 풀어 댄 값싼 약에 죽어 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을 위해서는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던 놈들이 급하니까 우는 꼴이라니.
욕을 삼킨 아르윈이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마실 때였다.
코가 닿을 정도로 중국 놈의 멱살을 바싹 당긴 조직원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한 번, 딱 한 번 기회를 준다고 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고 버티면 가슴을 열어서 심장이 뛰는 채로 둘 거고, 지혈만 잘하면 세 시간은 버틴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마터면 진짜 그러냐고 물을 뻔했다. 그랬다면 개망신인 거고. 엉뚱한 생각에 차갑게 웃은 아르윈은 조직원에게 가려져 얼굴도 보이지 않는 놈을 향해 지금 들은 내용을 전했다.
“우우욱! 욱욱!”
헝겊을 가득 입에 담은 채 매달리는 중국 놈의 눈을 조직원이 제법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런 뒤에 뒤로 밀쳐냈고, 이어서 입에 처박혔던 헝겊을 꺼냈다.
“커헉! 컥!”
헝겊에 배여 있던 더러운 핏물과 역겨운 냄새를 토해 내는 중국 놈의 뒷덜미를 잡은 작업자가 아르윈 앞으로 끌고 왔다.
질문하라는 뜻은 눈짓으로 알았다.
“개인이 혼자 벌어먹겠다면 몰라도 천 원, 이천 원짜리 약을 풀어서는 조직이고, 정보국이고 돈이 안 돼. 그런데도 굳이 여수에 약을 푼 이유?”
“자세한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천에서 대대적으로 생산한 마약을 공급받아 풀기만 했습니다!”
다급하게 나온 답이었다.
급하면 당황하고, 당황하면 실수가 나오는데 이놈은 수상할 만치 우리 말에 능숙해서 아르윈은 눈가를 좁혔다. 그런 아르윈의 반응을 답이 못마땅해서라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미국에도 마찬가지로 공급하고, 멕시코에는 조직을 통해 수출합니다. 중국은 그렇게 경쟁이 되는 나라에 마약을 풀어 기반을 흔들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습니다.”
이 새끼 봐?
“그러니까 한국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서 싼 약을 풀었다는 거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 놈이 급하게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이제 됐다는 것처럼 작업자가 놈의 뒷덜미를 당겼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요!”
“잠깐.”
아르윈은 손을 들어 작업자를 말렸다.
“어디에서 우리말을 배웠지?”
“동포입니다! 어릴 적에 한국에서 학교에 다녔고, 졸업 후에 건너갔습니다!”
아르윈은 상체를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놈의 얼굴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 같은 놈들이 한국에 더 있겠지? 없다면 뒈지는 거고,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면 살려 준다. 내가 상체를 세울 때까지 답이 없으면…. 알지?”
아르윈이 몸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안산! 안중! 수원!”
급한 답이 주르륵 튀어나왔다.
***
자가용 비행기를 준비해 주었다. 한 시간 뒤면 출발이다. 그런데도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강성태를 대했다.
“자네를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럴 때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돼.”
“저는 늘 같았습니다.”
“멕시코에서 조직을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나? 못 할 말로 전투 중에 사망한 용병의 복수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생각만으로도 갑갑하다는 것처럼 숨을 내쉰 그가 커피 테이블로 움직였다.
“커피?”
“감사합니다.”
아마도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이 직접 커피를 따라 주는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익숙한 일이었다. 그가 건네는 커피잔을 받은 다음이었다.
“회장님.”
강성태는 나직하게 이두안을 불렀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회장님이나 로라에게 일이 생겨도 저는 지금처럼 달려갈 겁니다.”
“상대가 누구든 달려갈 건가?”
“예?”
“나나 우리 딸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정말 상대가 누구든 달려갈 거냐고?”
“지금 제 모습을 보고 판단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
표정으로 속을 보인 곤잘레스 회장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다. 그래 놓고는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는 투로 다시 잔을 내렸다.
“말했던 용병이 아버지와 스승 같은 분이면 나는 뭔가? 우리 딸은? 어떻게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달려갈 거라고 확답하는 거지?”
“가족입니다.”
“가족?”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을 건드린 놈들을 모른 척하며 살지 못합니다.”
“자네가 갱단 보스가 된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거 같군.”
툴툴대는 말투와 달리 커피를 마시는 곤잘레스 회장은 그다지 불만스럽지 않은 얼굴이었다.
두어 모금쯤 커피를 마신 다음이었다.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이군. 조심해서 다녀오게.”
“가능한 한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이두안 회장에게 인사한 강성태는 방을 나섰고, 그길로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강성태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철탑으로 기둥을 세운 주차장 안쪽에서 움직인 승용차가 강성태 앞에 멈췄다.
철컥.
“뭐야? 뒤로 타!”
“시끄럽고. 얼른 가자.”
“하여간 말 더럽게 안 들어.”
느긋하게 승용차를 운전한 최치곤이 도로에 합류한 다음이었다.
“아르윈 형님이 전화했었다. 곤잘레스 회장 만나고 있다니까 끝나는 대로 전화 좀 부탁한다고 하던데?”
“그래?”
조수석에 앉은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아르윈의 번호를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형님?
“무슨 일이야?”
– 잡아 온 놈 중 한 놈이 입을 열었습니다. 들어 보니까 이 새끼들 아예 작정하고 약을 돌린 모양입니다. 거기에 지금 잡은 놈들 말고도 안산과 수원, 안중에 다른 놈들이 또 있답니다.
운전하는 최치곤을 슬쩍 돌아본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마약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온갖 싸움을 감당했는데, 하다 하다 이제는 정보국 놈들이 직접 나서는 단계라는 생각에서였다.
“병렬이 근처에 있지?”
– 공장 뒤편 승용차에 계십니다, 형님.
“그럼 병렬이와 의논해서 놈들을 찾아봐. 장례식장과는 다르게 놈들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절대 달려들지 말고, 움직임만 확인해.”
– 예, 형님.
“장소를 바꿨을지 모르니까 그런 경우에는 묵었던 곳 주소나 숙박업소 이름을 확인해서 알려 주고. 동선이 어떻게 되나 내가 찾아볼 테니까.”
–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뭐냐?”
“한 놈이 입을 열었는데 안산하고 안중, 수원에 다른 놈들이 있다고 했단다.”
“씨발 새끼들이 남의 땅에 와서 염병을 떨었네!”
핸들에 오른손을 얹은 최치곤을 보며 강성태는 픽 웃었다.
“왜? 뭐 묻었어?”
“이렇게 둘이 가니까 좋아서.”
“서방님이 오랜만에 그런 말씀을 하니까 소녀가 부끄럽사와요.”
“야, 이 씨…!”
징그럽게 들리는 최치곤의 대꾸 뒤에서 속없는 사람들처럼 둘이 킬킬대며 웃었다.
“멕시코와 아프리카 일이 끝나고 나면 그때는 이모네 포장마차라도 마음 놓고 다니면서 살자.”
“아효! 너는 일을 몰고 다녀서 안 돼. 거기에 멕시코만 해도 10년 넘게 걸린다는데, 아프리카까지 더하면 언제 포차에 가냐?”
“너무 현실적인 거 아니냐?”
“현실을 보면 더하지. 이쪽으로 고개 돌리면 곤잘레스 회장, 저쪽은 지경그룹 총수, 나랑 술 마실 시간이 어디 있냐?”
지극히 현실적인 최치곤의 대꾸가 나온 뒤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병렬의 이름을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다시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어디야?
“공항 가는 길. 이제 막 올림픽 도로 들어섰어. 아르윈한테 얘기 들었지?”
– 그렇지 않아도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건데, 지켜보기만 하다가 바퀴벌레처럼 퍼지면 그때는 더 잡기 힘들어져. 그러지 말고, 이 건은 그냥 나한테 맡겨 주라.
장례식장에서 너무 쉽게 잡았다. 놈들이 짐작조차 못 하는 상태에서 달려든 데다, 워낙 많은 숫자여서 반항할 틈도 없었다. 반대로 놈들이 예상하는 상황이라면 펜타닐 분말을 뿌리는 경우부터 우리 쪽이 예상하지 못하는 반격까지, 함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 이봐요, 보스님. 이 정도는 맡겨 줘야 나도 동생들 앞에서 힘을 쓰지.
“병렬아. 그놈들 그냥 조직원이 아냐.”
– 맡겨 주라.
올림픽 도로 중앙에 세워 놓은 가로등의 불빛이 승용차의 앞 유리를 타고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 있지?”
– 돌아오기 전에 끝내 놓을 테니까 보스나 무사히 돌아와.
더는 이병렬을 말리지 못한 강성태는 조용하게 스마트폰을 내렸다.
***
불평이 터질 만도 한데 제라르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옮길까요?”
피식 웃은 강찬은 먼저 하동선의 재킷 양쪽 어깨 부위를 잡아 뒤로 길게 당겼다.
“우읍! 읍!”
못 할 줄 알았지?
어쩌냐?
우리는 이보다 더 징그럽게도 살아왔는데.
“우우우-읍!”
버둥대는 하동선의 어깨를 잡은 강찬은 자루를 끌 듯이 정보실을 나섰고, 문을 거쳐 엘리베이터 앞까지 움직였다. 하동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려 주는 것처럼 핏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읍! 읍읍!”
강찬은 버둥대는 하동선의 얼굴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으읍! 읍!”
“대원들 사기를 생각해 달라는 말에 참고 있는 거니까 자꾸 방아쇠 당기게 하지 마. 그리고 말이야. 국가정보원 원장이라면 조국을 위해 한 번쯤 나서 줘야지. 안 그래?”
조용히 하자니 이대로 죽게 될 거 같고, 소리치자니 당장에라도 제라르에게 팔을 쏘라고 시킬 거 같고.
하동선의 눈알이 강찬을 향해 애처롭게 흔들릴 때였다. 제라르가 한쪽 팔에 한 놈씩, 차장 둘을 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왔다.
“보도 멋지게 될 거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세계적 특종으로. 그렇게 국가정보원의 이름을 날려. 남은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자부심이라도 남게.”
말이 끝난 뒤였다.
피식.
넌 이미 기회를 잃었어. 선택권도 없고.
애처롭게 흔들리는 하동선의 눈을 향해 강찬이 냉정한 느낌으로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