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19)
700화 혹시 이 사람이? (3)
김미영은 어느 곳에서든 새벽 4시에 일어난다.
학생 때 공부하던 습관이었는데, 외교관이 되고부터는 네 시간, 혹은 다섯 시간 자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확인하고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양치와 세수를 마친 김미영은 노트북과 책, 태블릿을 가지고 식탁으로 움직였다. 요즘은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종류의 커피를 언제고 마신다. 밀폐 용기에 담아 두었던 원두를 기계에 부은 김미영은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소리가 울린 다음이었다.
머그잔을 든 김미영은 식탁으로 옮겨 가 노트북의 전원을 눌렀다. 한국의 기사, 불어권 뉴스, 마지막으로 영문판의 순서로 보도 전문 사이트를 결제해 두었고, 개인적인 친분으로 얻는 뉴스도 있었다.
‘제발….’
언제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을지 모르는 가족의 삶은 이렇다. 강찬, 무슈 강, 갓 오브 블랙필드, 평화유지군, 외인부대의 단어로 기사를 확인한 김미영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으면 꽁꽁 묶어서 거실에 두고 싶다.
밥 먹이고, 차도 타 주고, 간식도 주고, 이따금 묶어 둔 밧줄의 끝을 잡고서 산책도 하고 싶다.
“풋!”
어쩐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김미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쁜 뜻이 아니라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다가 산책쯤 즐기고…, 그게 반려동물인가?
웃음을 억지로 삼킨 김미영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 상태로 강찬을 떠올렸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언젠가 김미영이 건넨 질문이자 요구에 강찬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피식하는 특유의 미소였다.
“내가 외교관이 되면 혼자 벌더라도 함께 지내기로 했잖아.”
“지금 나갈 수 있어?”
처음에는 산책이라도 하자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아파트를 나선 강찬은 지하주차장으로 향해서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꼬박 두 시간 반을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국립대전현충원이었다.
화려하게 핀 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며 김미영은 이상하게 목이 콱 멨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국립대전현충원’이라는 간판, 기와를 얹은 건물, 널따란 주차장, 그 안에서 핀 매화꽃을 본 순간 감정이 올라왔다.
강찬은 손을 내밀어 김미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으로 움직였다.
장엄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슬픔의 덩어리라고 표현할까?
일정한 간격으로 빼곡하게 서 있는 묘비가 끝도 없는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국제빌딩, 리비아, 프랑스,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그 외에 말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된 대원들과 요원들이 여기 잠들었다.”
저토록 많은 이들이 희생됐는데 왜 제대로 알거나 들은 적이 없을까?
“오열하는 가족을 두고 떠난 대원이 있고, 홀로 살아서 외롭게 떠난 대원도 있어. 죽어 가는 순간에 내 눈을 보며 대한민국을 부탁한다는 대원과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당부하던 대원도 있었고.”
전에 없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설명하는 강찬의 곁에서 김미영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강찬이 말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희생이 있는 줄 정말 몰랐다.
알아주지도, 알려지지도 않은 희생이 억울하지 않았을까?
“임무를 받아서 용감하게 나선 길의 끝에서 희생된 대원 누구도 이 땅과 이 나라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명 더.”
강찬이 고개를 돌려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김미영을 조용하게 들여다보았다.
“송창욱이라는 분이 있어.”
“나, 그분 알아.”
아버지 김관식을 추천한 분을 왜 모르겠나.
“나한테 묻더라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냐고? 그래 놓고 낡아서 삭기 직전의 태극기를 선물이라고 남겼어. 대원들, 송창욱 초대 청장이 남긴 태극기, 그게 내가 짊어진 짐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어?”
독립운동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바람에 휘날린 매화꽃이 새하얀 눈발처럼 흩날리는데 김미영은 뭐라고 입을 열지 못했다.
띠잉. 띠잉.
속보를 알려 주는 노트북의 알람이 김미영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반사적으로 키패드에 손을 올린 김미영은 화면에 떠 있는 화살표를 속보 칸으로 옮겼다.
[프랑스 정보국과 러시아 정보국,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하다.]이게 무슨 소리야?
현실로 돌아온 김미영은 검지와 중지를 내려 내용을 살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원장, 감염 방지 공조를 위한 협의에서 러시아 정보국 의장의 생명을 구하고, 감염의 진원지로 파악되는 예멘으로 향했다. 러시아 의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는 함께 작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정보국이 인정한 사실이다.]속보라 그런지 왜 생명이 위험했는지, 또 어떻게 구했다는 건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프랑스와 러시아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광범위한 협력을 약속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건 말이 안 돼.’
외교관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보더라도 정보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법은 없다. 혹여 발표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 대변인이나 외교부를 통하지 이런 식으로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혹시 이 사람이?
“국가정보원 원장이 문제가 많은 건 대사관에 있는 동안에도 알았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분들이 좌절하는 모습도 보았고요. 원장을 만나더라도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이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너무 티 나게 하지는 않았으면 싶어요.”
김미영의 요구에 강찬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요원들의 사기를 꺾지는 않았다.
뭐라고 하겠나.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뒤틀었던 김미영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우우우웅. 우우우웅.
휴게실에서 잠들었던 강찬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잠에서 깨어났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올려 둔 스마트폰이 액정에 불을 밝힌 채 요란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염병할, 전화기!
팔을 뻗은 강찬이 스마트폰을 집을 때였다. 건너편 소파에 늘어졌던 제라르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몸을 일으켰다.
“알로?”
– 바실리다. 조금 전에 약을 받았고, 원장이 국가정보원의 요원들과 통화하고서 출국했다. 물론 속보로 내보냈으니 확인해.
아직 강찬에게 매달려 있던 잠이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닭털처럼 훌쩍 날아가는 소식이었다.
“약은?”
– 지옥에서 주워 왔나 싶은 커피 맛이더군.
“추적은 어떻게 됐어?”
– 위성 영상을 확인한다고 하지 않았나?
“잠깐 잤다.”
– 세월 좋군.
바실리 특유의 빈정대는 대꾸가 넘어온 다음이었다.
– 우리와 프랑스의 감시 위성이 원장의 이동 경로와 모가디슈의 건물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다.
차가운 말투와 달리 바실리의 음성에 흥분과 기대가 또렷하게 묻어 있었다.
– 나를 제거하기 위해 안드레이를 세뇌했고, 감염을 노린 데다 체첸 놈들까지 보냈는데, 내가 멀쩡하면, 저쪽 놈들이 신경을 곤두세울 만하지. 이런 계획을 생각해 내고, 원장을 이용하다니? 주연은 확실히 다르군.
피식.
강찬이 특유의 웃음으로 대꾸한 다음이었다.
– 말한 대로 내가 약을 먹었다는 정보를 정보총국에서 CIA에 흘릴 거다. 감염이 시작된 미국이 어떻게 움직일지 몹시 기대가 커.
계획을 되짚으며 더욱 흥분한 게 분명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전에 없이 바실리의 음성이 높았다. 그리고,
– 고맙다, 무슈 강.
정말 세상이 끝장나나 싶은 바실리의 인사가 건너왔다.
바실리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고?
의아해하는 감정이 채 마무리되기 전이었다. 전화가 뚝 끊겼다.
“대장.”
기가 막혀 헛웃음을 토해 내는 강찬에게 제라르가 물병을 내밀었다. 뚜껑을 열어 시원하게 물을 마신 강찬은 방금 걸려 온 통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예멘에 가서 다예를 만나면 대장에게 죽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어지간히 하동선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말과는 달리 석강호가 원장을 괴롭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라르의 눈가에 잔뜩 묻어 있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나풀거리도록 밖으로 내놓은 셔츠, 허리띠를 풀어 놓은 바지 차림으로 제라르가 나간 뒤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전화기가 또 울었다.
“여보세요?”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잠깐 통화되십니까?
“말씀하세요.”
답을 한 강찬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 회사에서 급하게 문의가 들어왔는데 모른 척하기 어려워서 전화드렸습니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거 같은 김형정의 요청이었다.
– 삼성동 건물 1층에 레벨 원을 수행하는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철수하라는 레벨 원의 지시를 전화로 받았다고 하는데 느닷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경호 요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보고 문제도 있고요.
흥미로운 눈초리로 다가온 제라르가 들고 왔던 종이컵을 강찬 앞에 놓아주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일반인이 들어오지 못하는 구역으로 움직입니다. 예전에 요원들이 대기하던 곳인데 기억하시죠?”
– 알고 있습니다, 부원장님. 그렇다면 그곳을 통해 레벨 원을 내보내신 겁니까?
“마지막을 명예롭게 마치고 싶다는 원장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 부원장님.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가정보원의 수장 자리가 비면 최소한의 역할도 하기 어렵습니다.
강찬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형정이었다.
삼성동 건물에서 느닷없이 사라진 하동선이 러시아 정보국 의장을 구하고 예멘으로 향했다는 보도를 확인하고서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강찬은 테이블 한쪽에 밀려나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집었다.
찰칵.
“후-.”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본부장님. 경험 많은 임원은 모조리 정리했고, 대테러팀은 해체했습니다. 원장과 그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딸랑이들을 예멘으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그런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국가정보원이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식.
손가락에 담배를 끼운 채로 강찬은 종이컵을 들었다.
“나라를 좀먹는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있는 게 낫다는 말을 본부장님이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연락이 오면 원장 부재에 대비한 비상 체제로 운영하라고 하시고, 앞으로도 변화가 없으면 임원들이 차례대로 예멘으로 가게 될 거라고 전해 주세요.”
강찬의 의지가 어떤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 알겠습니다, 부원장님.
각오가 선 것처럼 단단하게 들리는 답을 끝으로 김형정이 전화를 끊었다.
“대장? 진짜 놈들이 움직이겠습니까?”
“우리가 약을 가진 걸 알 테니 로일 박사에게 전달되는 걸 막아야 할 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수해야지. 거기에 체첸 용병의 이동 경로까지 밝혀졌다. 이 정도 되면 하릴 하지즈도 얌전히 앉아 있기는 어렵지.”
강찬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제라르가 위장약 광고에 나오는 모델처럼 후련한 미소를 그려 냈다.
“놈들이 움직이면 단숨에 뒤를 치자. 놈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대원들을 동원하면 효과가 더 좋겠지?”
“아!”
강찬의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은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
남산 호텔 숙박비 정도야 이용우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말이다. 겨우 몇 시간 자자고 비싼 호텔비를 낼 생각 따위 평소에도 없었다.
호텔이나 모텔이나 침대에서 자는 건 같잖아?
생각은 그랬는데 막상 남산 호텔의 객실에 들어선 이용우는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에 마음을 뺏겼다.
쾌적한 실내와 푹신한 침대는 또 어떻고?
털써-억!
팔을 쭉 펼치며 침대에 몸을 던졌던 이용우는 거짓말처럼 그 직후에 잠에 빠져들었다.
“커헉. 푸후우-.”
신동철의 장례식장을 지키느라 쌓인 피로에 박중상이 지켜 준다는 믿음에 기대면서 이용우는 유리가 떨릴 정도로 요란하게 코를 골았다.
“크하-악. 푸후-우.”
꿈에서 이용우는 녹색이 짙게 깔린 언덕 아래를 기분 좋게 내려가고 있었다. 햇살 죽이지, 바람 살랑대지, 꿈인데도 초록의 풀냄새가 이용우의 가슴을 청량하게 씻어 주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언덕을 다 내려온 다음이었다.
이용우의 앞에서 양팔을 벌린 여자가 보였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천이 그녀의 팔과 어깨에서 천사의 날개인 양 나부꼈고, 빛나는 햇살이 아우라를 만들 듯 이용우의 눈을 파고들었다.
누구냐, 너는?
궁금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여자가 몸을 돌렸다.
염병할, 역광!
그녀의 머리 뒤편에서 달려드는 햇살 때문에 이용우가 인상을 찌푸린 직후였다.
불쑥.
여자가 이용우를 향해 고개를 깊게 들이밀었다.
“자밀라?”
이용우가 부른 이름에 화가 났을까?
자밀라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얼굴이 악귀처럼 끔찍하게 뒤틀렸다.
뭐가 이렇게…?
이용우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깨어났다. 그런데도 흉측한 얼굴은 여전히 이용우의 시선 앞에 있었다.
‘이, 씨발!’
이용우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뻗었다.
콰직!
“아! 아흐, 이 씨발!”
뭔 악귀가 욕을 해?
눈을 끔벅이며 상체를 일으킨 이용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맞다. 호텔 침대에서 잠들었다.
그러면 악귀는?
시선을 돌린 침대 옆에서 왼쪽 눈두덩을 움켜쥔 박중상이 다시금 욕을 뱉어 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