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
593화 지휘관은 양동식 소령으로 하겠습니다 (3)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새하얀 문바키는 누구보다 강찬을 따랐다. 특히 “대장.”이라고 부를 때면, 어릴 적의 그 설레던 눈매를 하곤 했다.
“대장.”
“라파엘이 특별한 홍차를 대접한다는데, 앉아.”
강찬이 앞쪽 자리를 시선으로 가리키자 문바키가 조용하게 앉았다. 그를 핑계로 다가온 어둠이 별장 주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쪼로로록.
라파엘이 능숙하게 홍차를 따라 주고 뒤로 물러났다.
특별하게 권한 차는 맛을 보는 게 예의니까.
문바키와 함께 홍차를 마신 강찬은 고맙다는 시선으로 라파엘을 돌아보았다. 잔을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한국의 정보국에서 대장의 지시를 취소했습니다.”
피식.
“그 외에 아프리카의 연구진과 함께 움직인 강태산에게서 독특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문바키는 총에 맞고도 버티는 적들과의 대치, 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간략하고 정확하게 전해 주었다.
“보조 배터리를 발전시킨 모양이지?”
“예?”
“전에 한국에서 상대했던 놈들. 내가 의식을 잃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잊었어?”
“아!”
충직하기는 하지만,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다예나 제라르와 달리 문바키는 세세한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건 분명한데 아직 누가 지휘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태산이가 말한 아랍인들의 신원은?”
“이라크에서 실종된 민병대 소속입니다. 민병대는 수니파인 이라크 특수 경찰이 납치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경찰은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양동식 소령은?”
“지금쯤이면…….”
시계를 확인한 문바키가 시선을 들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겁니다.”
어느 틈에 이렇게 성장했지?
깔끔한 정장에 점잖은 태도로 시계를 확인하는 문바키를 보며 강찬은 가볍게 웃었다.
“문바키. 네가 나와 행동하는 게 프랑스 내부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 정보국, 특히 강대국들의 눈에 거슬린다는 건 잘 알지?”
“조심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다시 홍차 잔을 집어 들었다. 특별한 차라더니 확실히 뒷맛이 묵직했다.
“내가 아프리카를 깔고 있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어. 그동안 이 땅에서 해 먹던 게 막히니까. 그건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는 말이 현실을 일깨워 준 모양이었다. 강찬을 향해 시선을 준 문바키는 무거운 눈빛으로 대꾸가 없었다.
“아무리 양동식 소령과 대원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세계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정보총국과 외인부대가 있잖습니까?”
“위원장님은 늙었고, 너는 아직 세력이 부족해. 한국 내부에서도 아프리카 진출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인데 프랑스는 어떨까?”
짐작하고 있었나 보다. 문바키도. 지금 벌어지는 사건들이 여러 나라 정보국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가리를 찾아야 하는데…….
강찬이 어둠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찬은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 두고 아예 스피커폰 통화를 눌렀다.
“알로?”
– 무하마드 하산이요, 무슈 강.
“하고 싶은 말을 해.”
이라크 정보부 부장 무하마드 하산, 뚝딱거리는 프랑스어로 밝힌 이름을 들은 문바키가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 프랑스어가 불편해서 그런데 영어로 통화해도 되겠소?
“좋을 대로.”
강찬이 허락한 다음이었다.
– 아프리카에서 특수팀이 출발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소. 이라크로 향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오?
역시나 아랍어 특유의 뚝딱거리는 억양이 묻은 영어가 건너왔다. 형식은 질문인데 실제로는 항의에 더 가까웠다.
“무하마드 하산. 어느 나라나 파견하는 정보원을 체포하라며 특수 경찰과 경찰특공대까지 보낸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것도 대한민국만 콕 짚었던데?”
– 그는 통상적인 정보 수집이 아니라 국가 정보에 접근하는 행위를 했소.
아무렴 불쾌해서 체포하겠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 나름 고민한 핑계겠다.
– 또한, 한국 정보국은 요원을 보내 바그다드 시내에서 폭발을 일으켰고, 현지 경찰과 대치 중이요.
이건 뭐야?
날카롭게 시선을 든 강찬의 앞에서 문바키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둘 중 하나 아니겠나?
보고 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방금 일어난 일이거나, 누군가 문바키에게 보고하는 통로를 방해했거나.
“정보국이 개입한 사건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게 먼저 알렸어야 맞지 않나?”
– 이번 건은 간첩을 체포하는 일이오.
“그렇다면 체포해. 대신 양동식 소령과 마주한 뒤에 정확한 증거와 설명을 내놔야 할 거다.”
– 무슈 강?
겁나겠지?
세상 특수팀 모두를 털어도 가장 지독하고 미친 지휘관으로 평가되는 양동식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무하마드 하산. 내가 참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아 둬. 진짜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양동식 소령과 강태산이 함께 갔을 거라는 사실도.”
– 크흠.
“누구나 반드시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설 때가 있지.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내 맞은편에 설지, 나와 함께 설지. 물론, 너의 선택에 대한 내 답은 양동식 소령인 거고.”
– 꼭 이래야겠소?
“내 닉네임이 뭔지 잊었나 본데, 다시 가르쳐 줄까?”
– 끄응.
고통을 이기려는 것처럼 건너온 무하마드 하산의 신음이 빼흑슈의 어둠 사이로 잽싸게 사라졌다.
“필요한 게 있다면 정중하게 부탁해. 무리한 요구라고 여겨지면 고개 숙이고. 경고하는데 절대로 내게 총이나 칼을 들이밀면서 요구하지 마. 특히 내 뒤쪽에서 무기를 들었다면 살기를 바라지 말고. 알았어?”
– 특수 경찰을 물리겠소.
피식.
이라크 정보부 부장의 양보에도 강찬은 피식 웃었다.
– 무슈 강? 경찰을 물리고, 정보원의 안전 귀국을 보장하겠소. 그러니 이번 일은 이쯤에서 끝냅시다.
“이봐, 무하마드 하산. 내 뒤에서 총을 들어 놓고, 끝내자고 하면 끝내야 하나? 너무 편한 계산법 아냐?”
– 더는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없소.
“그럼 결정할 수 있는 놈의 이름을 내놔.”
멍청한 새끼.
정보국의 수장이라는 놈이 누군가의 지시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토록 쉽게 떠들다니.
침묵 속에서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답을 못 하겠지?
뱉으면 죽을 테니까.
“좋아. 한 번은 봐주지. 정보원, 총격전을 벌인 요원,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게 끝내. 또 하나, 강제추방이니 뭐니 해서 시선 집중시키지 마. 이 정도라면 나도 양동식 소령을 불러들이지.”
– 알았소. 당장 특수 경찰과 경찰특공대를 철수하겠소.
마음이 급한 모양인지 짧은 답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그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번에는 이집트 정보국장의 이름이 스마트폰에 올라왔다.
“문바키. 지금 전화하는 놈들을 철저하게 감시해. 분명 누군가 한 놈과 연결될 테니까 그놈을 찾아.”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짧게 고개 숙인 문바키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이었다.
“알로?”
통화 버튼을 누른 강찬은 홍차 잔을 집어 들었다.
***
타다당! 퍼서석! 타당! 퍼석!
이라크 경찰특공대가 쏜 소총이 앞쪽 유리를 커다랗게 터트렸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타다당! 퍼버벅.
그 직후에 다시 날아든 총알이 안쪽 벽을 요란하게 터트렸다.
살고 싶었을까?
바닥에 쓰러져 있던 특수 경찰이라는 놈이 머리를 감싼 자세로 버둥대며 이용우가 기대선 벽 쪽으로 기어왔다.
철컥.
이용우가 권총을 돌리자 바닥에 있던 놈이 애처로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거기까지만.’
더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로 이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무식한 새끼들.
상점의 바깥에서 안으로 대뜸 총을 갈기면 어쩌자고?
양손으로 잡은 권총을 아래로 향한 자세에서 이용우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셋이라는 특수 경찰 중 둘을 쓰러트렸고, 경찰특공대는 당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빨리 좀 사라져!
이 기회에 옥상으로 튀라고!
홱!
탕! 타앙! 타앙!
이용우는 유리 바깥으로 손을 돌려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세 발이라고! 알잖아!
1층에는 절대 못 들어온다는 의미와 내가 맡을 테니 너는 빠져나가라는 뜻을 이용우는 더할 수 없이 정확하게 밝혔다.
“후-.”
다시금 아래로 권총을 내린 이용우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만간 경찰특공대가 밀고 들어올 게 분명했다.
다섯 놈쯤 죽일 수 있을까?
소총을 뺏을 수만 있다면 다 죽일 것도 같은데?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다면 밖에서부터 해결하고 왔지, 이렇게 요란하게 떠들지 않았다.
유리 옆의 벽에 붙어 선 이용우는 고개를 슬며시 돌려 깨진 유리 조각을 밟는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물론 섬광탄이나 연막탄, 최루 가스탄이 날아들 수도 있지만, 이라크와 바그다드의 특성과 인질을 잡았기 때문에 수류탄만은 어렵다.
“이러다가는 어차피 죽소.”
지금의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것처럼 바닥에 엎드린 특수 경찰 놈이 나직한 아랍어로 이용우에게 말을 걸어 왔다.
죽으려고 이러는 건데?
내가 ‘더 블랙’으로 뛰어들었다면 외곽에서부터 하나씩 처리했지, 절대 자동차를 폭발시키지 않아.
놈을 향해 이용우가 픽 웃는 순간이었다.
“압둘라! 상황을 종료하고 우리는 모두 철수할 테니 안쪽에 있는 한국인에게 그렇게 전해!”
복도를 통해 뜻밖의 내용이 아랍어로 달려들었다.
이제 와서 뭐라는 거야?
이용우가 바닥에 쓰러진 놈을 바라볼 때였다.
“오늘 일은 오해로 인한 우발적 충돌로 끝낸다! 의심스러우면 한국의 정보국에 알아보라고 해! 우리는 철수할 거고, 한국인의 안전을 보장한다!”
당최 믿기지 않는 내용이 또다시 복도를 타고 넘어왔다.
“위쪽에 있는 한국 정보원은 이미 소식을 들었을 테니 그쪽에 알아봐도 된다!”
말이 끝난 다음이었다.
요란하게 떠드는 아랍어가 연달아 들렸다. 굳이 번역하자면 ‘오해였다’라거나 ‘철수한다’ 정도였다.
이것들이 말도 안 되는 약을 팔아?
이용우가 권총을 다부지게 잡는 순간이었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접이식 휴대폰이 바지에서 급하게 울었다.
뭐야, 이거?
오른손에 권총을 든 이용우는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필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두어서 왼손으로 꺼내기 더럽게 불편했다.
“여보세요?”
– 야, 이 미친 새끼야! 상황 끝났어. 그러니까 얌전하게 빠져.
대꾸하기 무섭게 신광선의 음성이 이용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 커피 중개상과 관광객 모두 무사하다. 오해로 인한 우발적 사건으로 정리했으니까 너도 그냥 나와. 참! 인질 잡았어?
“이쪽 특수 경찰로 알고 있습니다.”
– 너도 참. 그놈 풀어 줘. 알았지?
한국어 대화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랍어로 달려들었던 내용을 함께 들었던 놈이 이쯤에서 끝내기를 바라는 시선으로 이용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여기에서 끝냅니까?”
– 아니면? 물러나는 놈들 뒤통수에 총알이라도 박을래?
“진짜 뒤탈 없겠습니까?”
– 강제 출국도 없단다. 그러니까 조용하게 빠져.
“알겠습니다.”
– 다친 곳은 없냐?
마지막에 들려온 걱정에 이용우는 픽 웃었다.
– 웃음이 나오냐? 너는 하여간. 들어와서 보자.
“끊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용우는 폴더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직후였다.
자각. 자각.
유리를 밟으며 다가오는 걸음이 분명하게 들렸다.
이 새끼들이 수를 써?
삽시간에 눈빛이 변한 이용우가 이를 악물었고,
“거기 한국 사람 있습니까?”
그 뒤에 너무나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오해가 있었답니다. 내가 다가갈 테니 준비하세요.”
자각. 자각.
유리를 밟는 소리는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다음이 뭐야?”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됐냐?”
박중상의 대꾸를 들은 직후에 이용우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적이 머리에 총을 겨눴다고 이용우를 위험에 빠트릴 박중상도 아니지만, 만에 하나 그런 경우라면 분명 엉뚱한 대꾸를 했을 게 분명했다.
자각자각.
깨진 유리 틈으로 덩치가 커다란 박중상이 ‘더 블랙’답지 않은 순박한 눈빛과 표정으로 나타났다.
“저 인간 내보내자.”
“어떻게 된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다. 긴 이야기는 자리 피해서 하고, 우선 저 인간부터 보내자.”
다가온 박중상을 향해 이용우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