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1)
702화 염병, 이게 뭔 소리야? (2)
몸을 세운 박중상은 맞은 자리가 뻐근한 모양으로 윙크하듯 눈을 끔벅였다.
“에이, 개새끼.”
“미안하다고 했잖냐?”
“그러게 왜 자다 일어나서 주먹을 날려, 이 새끼야?”
“지랄 같은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깼는데 내가 얼굴을 들이대고 있으면 너는 어떻게 했을 거 같냐?”
“그야 나도 냅다…. 아흐! 말이나 못 하면!”
역시나 주먹을 날렸을 거란 답을 내놓던 박중상이 말문이 막힌 것처럼 툴툴댔다.
“그런데 왜 깨운 거야?”
“아!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뭔데?”
“레벨 원이 느닷없이 러시아에서 정보국 의장을 구하고 예멘으로 간다고 발표했어. 그것 때문에 회사가 뒤숭숭해.”
말을 시작한 박중상은 보도에 나온 내용과 국가정보원의 분위기를 들려줬다.
“회의실에서 너도 화약 냄새 맡았지?”
“나야 그만둔 놈이라 상관없지만, 요원인 너는 일단 모른 척해. 그게 좋아.”
“그래야겠지? 아, 참! 잠 깼으면 자밀라에게 가 봐라.”
“왜?”
꿈에서 보았던 자밀라의 얼굴이 떠오른 이용우가 급하게 물은 다음이었다.
“뭔 생각을 하는지 소말리아에 가겠다며 난리다.”
“소말리아에? 거기를 왜 가는 건데?”
“난들 아냐? 내가 담당자니까 의논하는 거라면서 소말리아로 가겠다더라.”
침대 옆에 놓인 디지털 시계를 들여다본 이용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새벽 여섯 시였다.
“언제 그런 건데?”
“그 말 듣고 바로 온 거니까 10분쯤 됐다. 그건 그런데 너도 참! 요원이었던 놈이 어떻게 문을 열고 흔들 때까지 코를 고냐?”
박중상의 질책을 외면한 이용우는 호텔 내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맞은편 자밀라 객실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어설프게 들리는 우리말 응대였다. 목이 잠겨서 그런지 뭔가 촉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눈이 참 커.
– 여보세요?
엉뚱한 생각을 하던 이용우는 얼른 정신을 잡았다.
“소말리아에 간다고 했다며?”
– 맞아요.
아랍어로 건넨 질문에 자밀라는 촉촉한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거기를 갑자기 왜 간다는 건데?”
– 소말리아에 갈 거죠?
“누가?”
– 어제 만난 젊은 분이요. 커피콩을 드리는 걸 보면 상관인 거잖아요. 그분과 대화에서 소말리아, 모가디슈, 데그마다 빌딩이 나왔잖아요? 그 뒤에 미스터 리가 무서운 얼굴로 답했고요.
고작 몇 개 단어만으로 정황을 짐작했다고?
아차차!
감탄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소말리아에는 왜 가겠다는 건데?”
– 데그마다 빌딩이요. 검색해 봤더니 그곳에 하릴 하지즈 왕세자가 운영하는 커피 유통 회사가 있었어요. 그걸 조사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뭐?”
– 커피콩, 커피 농장, 이라크 왕세자가 운영하는 커피 유통 회사,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잖아요. 나도 갈게요.
꿈이 징그럽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보다.
“쉽게 생각할 게 아냐.”
– 미스터 리가 아랍어에 능통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동양인이라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내가 할게요.
“뭘 하는데?”
– 뭐든요.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박중상 앞에서 이용우는 눈가를 찌푸렸다. 느닷없이 매달리는 자밀라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다음으로 지랄 맞은 꿈이 떠올라서였다.
악귀로 변해 달려드는 자밀라?
꿈을 그대로 해석하면 마지막 순간에 자밀라에게 당한다는 의미 아니겠나?
– 같이 가요.
이용우의 불안한 심정을 움켜쥐는 것처럼 자밀라의 음성이 다시 다가왔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냐.”
– 그럼 나 혼자라도 갈 거예요.
“야?”
– 왜요?
워낙 당찬 대꾸여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용우도 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 미스터 리 혼자 보내 놓고 마음 졸이는 거 못 하겠어요! 반군에게 몰려 피 흘리다가 베란다로 뛰어내리는 상상하면서 기다리는 거 못 하겠다고요! 내가 괜히 커피콩 줍는 바람에 죽을 곳에 가는 거잖아요!
“누가 그래?”
– 그러니까 함께 가요. 나랑 가면 의심받는 게 줄잖아요.
“자밀라? 진짜 왜 이러는 거야?”
– 나도 몰라요. 왜 이런지. 하지만 위험한 곳에 간 미스터 리를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건 못 하겠어요. 그러다가 못 보게 되면….
이거 혹시 그린 라이트?
왜? 무엇 때문에?
이용우마저 눈이 확 떠지는 미모에 영특하기까지 한 자밀라가 도대체 왜 인생을 시궁창에 던지려는 거지?
“자밀라 너 혹시 나 좋아하냐?”
– 그럴 리가 있어요?
파사삭.
머리 위에 떠 있던 녹색 등이 배트에 맞은 것처럼 요란하게 깨졌다.
– 커피 마시러 와요. 와서 얘기해요.
“알았다.”
느닷없이 통화를 마친 이용우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게 밀당이라면 자밀라는 공중부양을 할 정도로 고수였다.
이용우가 멋쩍은 얼굴로 입맛을 다실 때였다.
“왜 그러는 거냐? 좋아한다고 그래?”
아랍어를 대강 알아듣는 박중상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럴 리가 있냐?”
“사람 일 모르더라. 혹시 말이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서 묻는 건데….”
“없어! 우리 아버지 걸고 말하는데 네가 상상하는 거지 같은 일 절대 없어! ”
다부지게 답을 한 이용우는 점퍼를 집었다.
“어디 가?”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잔다.”
가자미처럼 눈알을 옆으로 한껏 돌린 박중상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용우를 살폈다.
“야! 그 방에 자밀라의 아버지도 같이 있어. 갈 거야? 말 거야?”
“가야지! 가서 뭐라는 건지 알아야 나중에 보고하지.”
다짐처럼 말을 뱉은 박중상이 이용우를 뒤따라 움직였다.
***
새벽 6시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제라르가 여자 한 명과 남자 네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안녕하십니까?”
가장 앞에서 인사하는 남자는 중년이 된 최종일이었다. 강찬이 웃으며 내민 손을 잡은 최종일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나이가 들더니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거야? 왜들 이래?”
이어서 손을 잡는 이두희와 우희승 역시 웃고는 있지만,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 뵙습니다.”
심도원과 악수한 강찬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오랜만이네?”
“다시 봬서 정말 기쁩니다, 부원장님. 저와는 악수 안 하십니까?”
이런 요구를 어떻게 거절하겠나.
강찬은 픽 웃으며 유강미의 손을 잡았다.
“앉을까?”
“커피 드십니까?”
고갯짓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던 강찬은 재미있다는 투로 웃고 말았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간 것처럼 이두희와 우희승이 커피 테이블로 움직이고 있어서였다.
이래서 살아 있는 게 좋은 거다.
다시 만나서 웃고, 커피 마시고, 담배도 피울 수 있어서.
모처럼 만났다.
달달한 커피도 앞에 두었고.
오랜만에 본 반가움으로 충분히 들뜰 만한 상황이었는데 이상스레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던 제라르가 강찬을 슬며시 보았다.
조국을 위해 다시 뛰겠다며 비상 연락망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금 찾아온 다섯 명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제라르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
이 사람들은 이미 할 만큼 했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이 겨우 얻은 안정된 삶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였다.
피식.
무거운 분위기에서 강찬이 마음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부원장님.”
종이컵을 내려놓은 최종일이 강찬을 불렀다.
과거에는 일선에서 뛰던 독한 요원이었던 최종일이 지금은 요원들을 지휘하는 간부처럼 보였다.
“우리는 선배들처럼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먹고사는 걱정하지 않을 만큼 받고, 연금도 나옵니다.”
뭔 소리야?
강찬의 시선을 확인한 최종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원장님을 뵈려고 그랬나 봅니다. 어젯밤 꿈에서 양동식 선배님을 뵈었습니다. 잘 지내냐고…. 당신들이 더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기다란 숨소리로 감정을 누른 최종일이 다부지게 시선을 들었다.
“혹시 다시 본 제 모습이 너무 나태해져서 망설이시는 거라면 오늘부터 신병처럼 훈련하겠습니다. 언제, 어디, 어떤 임무든 상관없습니다.”
최종일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이두희와 우희승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라도 가족에게 미안했던 양동식 선배와 외롭게 사시다 홀로 가신 남일규 선배처럼 우리도 후배들에게 이 나라, 이 땅을 위해 싸우는 선배들이 있다는 걸 알려 주게 해 주십시오.”
“불행해질 가족도 생각해야지?”
“부원장님을 뵙는다고 안식구에게 말했습니다.”
606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최종일을 몰아쳤던 부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건 진짜 강찬도 궁금하다.
생각은 비슷했는지 제라르도 고개를 돌린 채 최종일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 있으면 지나다가 불쑥 들러서 물이나 한잔 마셔라. 그렇게 선배들에게서 받은 마음의 빚을 털 때까지 집은 돌아보지도 마라.”
미친….
하마터면 안식구 이야기를 전하는 최종일에게 욕을 할 뻔했다.
“다른 사람은 그렇더라도 유강미는 곤란하지 않아?”
강찬은 상체를 편 자세로 앉아 있는 유강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산이 경호팀에서 제가 막내였습니다. 그날 차민정 팀장님이 몸을 던져 막아 주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지금도 잠이 들 때면 차민정 팀장님의 모습이 떠올라 뒤척입니다, 부원장님.”
참고 있던 감정이 말을 하면서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개를 떨궜던 유강미가 임무를 맡은 대원의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너는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태산이를 꼭 지키라고. 지금도 그 음성과 눈빛, 미소가 생생합니다, 마음의 빚이라는 거 부원장님께서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강찬을 향해 각오를 쏟아 낸 유강미가 보고를 마친 것처럼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남일규와 양동식, 비무장지대 대원들이 그토록 후배들을 위하더니 결국 이런 요원들을 남긴 모양이었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각오를 듣고도 다른 소리를 하는 건 반칙인 거다.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던 시절을 들추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줄이고, 요약하자면 이번에 감염을 일으킨 놈들이 워낙 비밀리에 움직여서 나와 제라르, 석강호도 비슷하게 숨어 지냈다고 보면 돼.”
종이컵을 들어서 남은 커피를 마신 강찬은 다시 말을 이었다.
“감염에 관련된 소식과 보도는 알고 있을 거고. 오늘 부른 건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인원이 필요해서다. 과거에 경험했던 작전 이상으로 위험해. 사망해도 금전적 보상 외에 아무것도 없고.”
앉아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던 최종일이 시선을 가져왔다.
“이 숫자로 됩니까?”
“부족해.”
“몇 명이나 필요하십니까?”
“대략 이십 명.”
강찬의 답을 들은 최종일이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뒤틀었다.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까 그만큼 더 위험해.”
“부족한 게 아니라 넘치는 게 문제입니다.”
뭐라는 거야?
“비상 연락망을 구축해서 대기하는 인원이 저희 빼고 마흔여섯 명입니다. 나중에라도 내용을 알게 되면 전부 마음의 빚을 더 받았다며 악을 쓸 텐데 그게 걸립니다.”
멍청한 사람들.
엉뚱한 인간이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서 한직으로 밀어내거나 해직을 통보했는데도 뭐 그렇게 좋다고 줄을 서 가며 죽을 자리에 가려고 발버둥 치는 건지.
“언제 출발입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여성 요원은 몇 명이 필요하십니까?”
“이렇게까지 진행될 거라 예상하지 못해서 나도 작전을 검토해 봐야 알겠는데?”
강찬의 답을 들은 최종일이 시선을 돌렸다.
“유강미? 독거미 출신 후배들이 몇 명이지?”
“다섯 명입니다.”
이건 강찬에게 알려 주기 위해 건넨 질문과 답이었다.
“작전을 알려 주시면 저희가 인원을 추려서 보고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찬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서울의 빌딩 숲 사이로 솟아난 태양이 새로운 날을 밝혔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창을 통해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끝에서 떨어져 지낸 세월이 무색할 만큼 익숙한 질문을 최종일이 던졌고, 우희승이 일어나 종이컵을 포개 가며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