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3)
704화 반격의 서막이 울리는 건가? (1)
이용우는 확실히 강찬이 그동안 알던 요원들과는 성격부터 다른 부류였다. 뻔뻔한 면이 특히 그렇다. 이런 놈이 솔직하지 못하면….
– 제가 떠난 뒤에 홀로 기다리는 것만은 못 하겠다는 자밀라의 말을 들으면서 교통사고로 먼저 간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강찬의 생각을 뚝 자르는 것처럼 이용우의 음성이 건너왔다.
– 허락하시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자밀라가 이런 임무에 얼마나 적응하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현장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싶습니다.
강찬은 피식 웃었다.
마음에 담기는 게 두려워서 한 걸음 빼는 이용우의 마음을 들여다본 거 같아서였다. 그러나 감정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면 애꿎은 죽음을 대가로 치른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임무에 훈련받지 않은 사람을 보내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모가디슈에 있는 빌딩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 임무인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거고.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빼놓은 것도 문제야.”
– 죄송합니다.
“알았으니까 우선 대기하고 있어.”
– 부원장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대기해.”
– 예.
뚝 자르듯 지시를 던진 강찬은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 내용을 함께 들은 제라르를 비롯해 최종일과 이두희, 우희승, 심도원, 유강미까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테이블로 옮기자.”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강찬이 움직였고, 일행이 뒤따랐다.
어느 틈에 사무실 공간을 파고든 햇살이 천장에 켜 놓은 불빛보다 강렬하게 테이블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강찬은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우선 하나씩 해결하자. 가장 급한 건 감염이 우리나라에 번지지 않게 하는 거고, 혹여 감염자가 입국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발견해서 조치하는 거다. 국가정보원이 비상 체제로 가동될 테니, 김형정 본부장에게 통제하라고 하면 될 거 같고.”
강찬은 분명하게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니까 놈들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나 본데, 이제부터 갚아 줄 생각이다. 첫 번째 타깃은 CIA 최고책임자 칼튼 숀 국장이다.”
어후!
강찬의 스타일을 익히 아는 최종일이지만, 상대를 듣는 순간 그의 표정에 놀라움이 분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갚아 준다는 게 어느 선입니까?”
“이마에 구멍을 뚫어 줘야지.”
최종일의 질문에 강찬은 곧바로 답을 주었다.
“여기 있는 인원과 비상 연락망의 숫자는 놈들이 짐작조차 못 하는 조직이니까 이게 진짜 기습이지. 정보총국 문바키와 의논해서 방법이 나오는 대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강찬의 스타일을 익히 아는 최종일, 이두희, 우희승, 심도원이 단단하게 답을 하는 반면, 유강미만큼은 긴장을 감추지 못해 마른침을 삼켰다.
***
차동균은 수송기를 아프리카로 보냈다.
무엇보다 공항에서 버티는 인원의 식량과 약품, 그 외에 샴푸와 화장품 같은 일상용품이 부족해서였다. 이어서 그는 공항 담벼락에 대원들을 줄줄이 세웠다. 힘든 거 안다. 숫자도 부족하다. 그러나 점점 더 몰려드는 감염자를 상대해야 했고, 그 틈에서 기적적으로 달려온 피난민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쏴아아아-.
소방 호스로 뿌려 대는 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고, 그 범위만큼은 텅 비었다. 죄인들이 들어서지 못하는 성스러운 땅처럼 감염자들이 들어서지 못하는 공간으로 이따금 감염을 피해 달려온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어떻게 왔을까?
“헬프 미!”
쏴아아아아-!
조사는 나중이고, 뛰어든 사람들과 주변을 향해 대원들이 물을 뿌렸다.
“끄아아-아!”
불행하게 살려 달라며 매달리던 가족 중에도 한둘은 감염이 드러나기도 했다.
“컴온! 컴 히어!”
작은 문을 열고 나간 대원들이 다급하게 손짓을 보내도 감염된 아버지, 어머니, 혹은 자녀를 두고 차마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강제로 구해야 할까?
아니면 감염을 무릅쓰더라도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선택을 존중해야 할까?
차동균은 검문에서 물을 뿌리던 예멘 남자들을 정문에 배치했다.
“아이들을 생각하세요! 그대로 두면 결국 감염돼서 죽습니다!”
예멘 말로 경고한다. 거기까지였다.
아이들만 보내고 남는 남편, 특히 부인은 어쩌지 못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정말 방법이 없나?
“후-.”
직전에 일가족을 구해 낸 차동균이 숨을 길게 내쉴 때였다.
벌컥 문을 연 석강호가 상황실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 있나?
얼핏 보기에도 석강호는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이 개새끼! 도착만 해 봐. 그냥!”
“누구 말입니까?”
“하동선이라는 개새끼.”
세상천지에 국가정보원 원장을 저렇게 원색적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강찬과 석강호 둘밖에 없을 거다.
뭔지는 몰라도 도착하면 시끄럽겠는데?
“무슨 일입니까?”
“이 새끼가 어쩐지 하는 짓이 수상하더니….”
이를 북북 갈아 대는 석강호는 조금 전에 강찬과 통화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럴 때 내가 대장 곁에 있어야 하는데, 멍청한 놈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처리 못 하고 여기로 보내는 거 아냐?”
“멍청한 놈이 누구입니까?”
“외인부대 사령관 지낸 놈!”
“그거야….”
전 외인부대 사령관을 멍청한 놈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고 할 수는 없고, 눈알을 부라리는 석강호 앞에서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고, 차동균이 어정쩡한 답을 내놓았다.
“하여간, 대장이 나한테 알아보라는 게 있었거든. 하동선 도착하면 무조건 조용한 방에 넣어. 혼자. 다른 짓 못 하게 입과 손발 꽁꽁 묶고. 내가 들어가서 조용하게 대화할 테니까 다른 사람 절대 못 들어오게 해 주고. 알았지?”
“알겠습니다.”
대화? 그것도 석강호가 조용하게 건네는 대화라니?
죽여 달라며 애원하는 하동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답을 한 차동균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세 번의 시도 끝에 천중명은 물을 머금었고, 그렇게 입에 고였던 고약한 냄새를 씻어 냈다.
“푸후-.”
양치질 배우는 아이도 아니고, 고작 입을 헹궈 내는 모습을 곽대출이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마시지는 못하시잖아?”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지금도 토할 거 같다.”
“흐흐흐흐.”
“웃음이 나오냐?”
“그냥 나오네.”
“안 되겠다. 담배 하나 주라.”
빠르게 움직인 곽대출이 물병을 든 천중명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후우.”
담배에 불을 붙인 천중명이 연기를 뱉어 낸 다음이었다.
“담배 맛은 느껴지셔?”
“역하기는 한데, 맛은 분명히 알겠어. 고생했다.”
“나야 지켜보기만 했는데 뭐. 그나저나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시려나?”
“심하냐?”
“재래식 화장실하고 대화하는 느낌 정도 됩니다.”
곽대출의 표현이 기발해서 천중명은 허탈하게 웃었다.
“강성태 회장은 언제 도착이지?”
“10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머리 좀 쓰면 어떻습니까?”
“머리를? 어떻게?”
“우리가 잡은 놈들 말입니다.”
담배를 눌러 끈 천중명은 궁금한 눈으로 시선을 주었다.
“검은 미망인의 숫자도 있다 하니까 남편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들 아직도 살아 있냐?”
“생수병 뚜껑에 구멍을 뚫어서 빨대를 꽂았습니다. 그걸 머리 위에 하나씩 묶어 둬서 10초에 한 방울씩 정수리에 물이 떨어지게 해 뒀습니다. 비명은 지르는데 죽지는 않았습니다.”
상태를 설명하는 곽대출의 눈이 앞뒤 가리지 않는 도깨비 대원 특유의 잔인한 눈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놈들을 풀어 준다고 해서 검은 미망인에게 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괜히 무기 들고서 우리에게 달려들면 피해가 더 커져.”
“회장님은 이제 도깨비 타이틀 떼셔야겠어.”
“무슨 소리야?”
“풀어 주기는 누가 풀어 줘? 몸뚱이에 폭탄 잔뜩 감아서 던져 주는 거지. 검은 미망인이 그놈들을 확인할 때 내가 버튼을 누를 겁니다. 인간적인 면이 어쩌고 하실 거면 그냥 사모님 곁에 계셔. 내가 애들하고 알아서 할게.”
곽대출을 바라보던 천중명이 픽 웃었다.
***
연달아 걸려 오는 전화 탓에 강찬이 회의실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아침을 주문한 최종일 일행은 제라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 유강미 요원을 제외하고는 블랙 헤드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연구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긴 설명할 필요는 없고.”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능숙하게 우리 말을 이용한 제라르의 설명이었다. 내용을 모르는 유강미가 잠시 일행을 돌아보았으나 당장은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며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십여 년 전부터 정보국 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은 블랙 헤드의 거래와 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부터 대장과 나, 다예가 대외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놈들을 찾기 시작했지.”
그런 거였구나.
제라르의 설명을 듣던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닥터 로일이 정보총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윤곽이 잡혔는데, 곧바로 세뇌와 감염이 일어났지.”
이어서 제라르는 양동식 소령의 죽음과 강태산의 활약, 정보총국 문바키의 구출, 예멘의 상황을 빠르게 들려주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했으니까 대장 성격에 오래 참은 거지. 감염이 더 번지기 전에 경고 차원에서라도 꼬리들은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CIA 국장이 꼬리라고?
적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사실 때문인지 테이블 주변에 긴장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래서일까? 최종일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
여기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정보실인가, 아니면 국가정보원 아프리카 분실인가?
“공항, 항만은 당장 시행하고, 고속철도와 버스터미널, 지하철역까지 최대한 서둘러서 검역해야지.”
– 정말 그 정도까지 해야 합니까?
“레벨 원이 목숨 걸고 예멘으로 간 이유가 뭐겠어? 이번 일을 미루다가 감염이 번지면 뒷감당할 수 있어?”
–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레벨 원과 통화가 안 되는 겁니까?
“하아-.”
언제 이렇게까지 무력한 집단이 됐을까?
이건 뭐 밥을 차려 준 것으로 모자라 어떤 반찬을 먹어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알려 줘야 하는 수준이었다.
“정보총국과 러시아 정보국이 함께 움직인다니까! 그런 상황에서 레벨 원이 세세한 지시까지 할 수 있겠어?”
– 예.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고개를 저어 가며 앞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닥터 로일과 자밀라의 신원 확인서입니다.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정보총국에서도 특별히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자료를 확인했던 신광선이 내용을 간단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참담한 얼굴로 다가와서 넉 장짜리 서류를 새롭게 내려놓았다.
뭐지?
신광선의 표정을 확인한 김형정은 방금 건네받은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손으로 적은 이름과 생년월일, 출신 지역, 조부와 조모, 부모의 이름으로 봐서 과거에 작성된 호적증명서처럼 보였다.
“하등원(河藤原)? 일본 이름이지, 이거? 후지와라?”
“사진에서 보셨던 레벨 원의 조부입니다. 일본 장학생으로 쿠니타치(國立, 국립) 대학교를 졸업했고, 이후에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명예 일본인으로 품위를 받았으며, 일본 정부 지원금까지 받았습니다.”
“후-. 담배 있나?”
서류를 넘겨 사진을 확인한 김형정이 신광선을 흉내 내는 것처럼 참담한 표정으로 요구를 건넸다.
“아니다. 커피도 필요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형정이 커피 테이블로 움직여 종이컵을 꺼냈다. 그리고는 봉지 커피를 뽑았다가 그대로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해도 터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콰앙! 쾅! 쾅! 콰앙!
죄 없는 커피 테이블을 내리치던 김형정이 마지막에는 한쪽 끝을 힘껏 잡아챘다.
콰다-당!
커피 테이블이 쓰러지면서 종이컵과 봉지 커피들이 사무실 한쪽으로 길게 밀려났다.
“서럽지 않은 죽음이 없었다. 우리 회사 벽에 별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흘리던 가족들의 피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왜 그토록 안타까운 죽음을 대가로 올려놓은 회사를 저런 인간이 망치게 하냐고!”
고함을 버럭 지른 김형정은 벽을 짚고서 거친 숨을 연달아 토해 냈다.
“후-.”
겨우 진정된 모양이었다.
몸을 돌린 김형정의 눈이 전에 없이 번득였다. 마치 몽골 작전에 투입되기 직전처럼 말이다.
“부원장님이 옳았어. 레벨 원을 그대로 두었다면 감염이 번졌어도 통계는커녕 희생자 숫자마저 쉬쉬하면서 숨겼겠지. 우리는 그런 작업에 매달려서 희생자를 만드는 일을 도왔을 테고.”
걸음을 옮긴 김형정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컵과 봉지 커피를 두 개씩 집었다. 그런 뒤에 온수기로 움직여 봉지 커피 두 잔을 만들었다.
말은 없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하나를 신광선에게 내민 김형정은 그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찰칵.
“후-.”
담배에 불을 붙인 김형정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가 놓쳤을지 모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난번에 이용우 요원을 중국 정보국 놈들이 노렸던 적 있지?”
“예. 신동철 대원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왜 폭력 조직이 아니라 중국 정보국이 펜타닐을 돌렸을까, 의심스러웠는데 그 일과 일본 정부, 혹은 정보국의 접점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예?”
놀라는 신광선을 보며 김형정이 분명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전 일본 정보국 국장의 딸로 보이는 히놀 사키코의 연구. 일본 정부의 장학금과 후원금을 받은 친일파의 손자인 원장, 세뇌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약물인 펜타닐. 그리고 그런 약물을 헐값에 우리나라에 유통시킨 중국 정보국.”
‘이런 씨….’
듣고 있던 신광선이 불쑥 올라온 욕을 삼켰는데 입 모양으로 들은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우선 강성태 회장에게 연락해서 추가로 얻은 정보가 있는지 확인해.”
“황성규 씨를 통하겠습니다.”
“번호를 줘 봐. 부원장님과 통화한 뒤에 내가 직접 연락하는 게 빠르겠다.”
피우던 담배를 종이컵에 담은 김형정이 책상으로 움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