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4)
705화 반격의 서막이 울리는 건가? (2)
대림동 이종환에게 안중을, 강서구 유섭우에게 안산을 맡긴 이병렬은 수원으로 움직였다. 그 외에 놈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아르윈의 필리핀 식구들을 외국인 노동자인 양, 세 곳에 나누어 뿌렸다.
“저기 보입니다, 형님.”
수원 중고차 매매단지 뒤편의 빌라 골목에 들어섰던 조봉진이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놈들이 알아챌 수 있으니 인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일감을 찾는 것처럼 도로에 서 있던 필리핀 직원 둘이서 조봉진을 향해 고갯짓을 하고는 도로 옆의 공터로 움직였다.
“가 보겠습니다, 형님.”
조봉진이 핸들을 꺾으면서 승용차가 커다랗게 돌았다.
원룸과 빌라촌을 증명하는 것처럼 24시 빨래방과 김치찌개, 순두부, 김밥 등을 파는 식당들, 편의점이 줄줄이 늘어선 2차선 도로였다.
조봉진이 차를 세우자 안쪽에서 기다렸던 모양으로 아르윈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리고는 창문을 내린 이병렬을 향해 짧게 인사했다.
“복싱 간판 오른쪽으로 보이는 회색 빌라입니다. 어젯밤에 야식을 사 가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그 뒤로 움직임이 없습니다, 형님.”
이병렬은 앞 유리를 통해 보이는 복싱 체육관 간판과 그 옆으로 뾰족하게 모서리를 내민 빌라를 차례로 눈에 담았다.
“배달을 시킨 게 아니라 사 갔어?”
“예, 형님. 세 놈이 나와서 족발하고, 치킨, 분식을 양손 가득 들고 들어갔습니다, 형님.”
“그 뒤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 형님.”
이것들이 냄새를 맡았나?
이병렬은 냉정한 눈으로 다시 한번 빌라를 노려보았다.
“준비는?”
“신월동하고 강남 식구들이 빌라 주변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형님.”
“뒤로 빠져나갈 곳은 없지?”
“옆 건물을 타고 넘어가도 우리 눈에 걸립니다, 형님.”
이 정도면 되겠다.
“태완이 형님이 경찰 작업하고 있으니까 연락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 애들 연장 확실히 차고 있으라고 해. 여차하면 그냥 칼 먹이라고.”
“예, 형님.”
고개 숙여 답한 아르윈이 편의점과 순두부찌개 식당 사이로 들어갔다. 아마도 안쪽 골목에 승합차를 세워 둔 모양인데, 저런 모습이 아르윈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증명하는 모습쯤 되겠다.
‘얼른 치워야 하는데?’
조태완의 연락을 바라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본 이병렬은 시선을 들어 복싱 간판을 보았다.
하필 복싱 간판이냐.
씁쓸하게 웃는 이병렬의 시선 속에서 사각 링과 땀을 비 오듯 흘리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병렬은 원래 몸이 날랬다.
그 바람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에 그를 탐내는 운동부가 참 많았다. 그렇게 감독의 권유로 처음 발을 담근 건 축구부였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야, 이 새끼야? 1학년 새끼가 패스하지 않고 골을 넣어?”
별 시답잖은 이유로 따귀를 때리는 선배의 턱을 시원하게 날리면서 이병렬의 축구부 삶은 6개월 만에 끝났다.
웃기는 건 축구부 선배들의 행태였다.
선배의 턱을 날렸다는 이유로 우르르 몰려왔는데 이병렬은 꿋꿋하게 놈들의 눈과 턱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버렸다. 그때는 왜 그렇게 가슴에 분노가 가득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지고 못 살겠는 걸 어떻게 하겠나.
떼로 달려드는 ‘다구리’를 감당하지는 못해 궁지에 몰렸던 이병렬은 결국 학교 복도의 유리창을 부숴서 깨진 날을 집어 들었다.
“와, 이 씨발 새끼들아! 내가 소년원 가는 대신 너희들도 축구 선수 절대 못 하게 할 거니까 오라고!”
교실마다 문과 창에 매달린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활극이었다. 원인 따질 거 없이 깨진 유리 날을 집어 든 이병렬은 퇴학 확정이었다. 그러나 이병렬을 퇴학시키려면 축구부 역시 두 명 정도는 무기정학을 받아야 하는데, 축구로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학부모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야, 이병렬. 2주 유기 정학으로 끝낼 거니까 축구부는 물고 들어가지 말자. 축구부도 더는 너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됐지?”
이게 무슨 속셈이지?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병렬에게 학생주임이 긴 숨을 내쉬었다.
“대신 네가 권투부에 들어가는 조건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병렬은 대강 상황을 알아챘다.
아들들을 진학시켜야 하는 축구부 부모들이 손을 쓴 거고, 또 권투부는 워낙 거친 놈들이 모인 곳이라 이병렬도 그곳에서 쓴맛을 볼 거라는 기대로 만든 제안이었다.
이병렬이 기질은 거칠었지만, 또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부당하게 억누르지 않는다면 달려들지 않는 놈이다, 이 말이다.
“이병렬입니다.”
권투부 첫날, 이병렬은 공손하게 선배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축구부를 혼자 상대했다더니 눈매가 좋다?”
헤드기어를 쓴 3학년 선배가 마우스피스를 빼며 이병렬에게 말을 걸었다. 전국대회에서 대놓고 우승하는 실력을 인정받아 복싱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권투부 주장 진광식이었다.
선배들이 공연히 때리는 일? 없었다.
청소와 심부름 정도야 1학년인 이병렬도 불만 없었고.
나중에 알았다.
3학년 주장 진광식이 이병렬에게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그날부터 이병렬은 학교에 가는 게 재미있었다.
축구부에 있을 때부터 어쩌다 들어가는 수업은 엎어져 있어도 못 본 척 넘어갔고, 점심 먹고 나서는 무조건 땀 흘리며 보냈다. 토할 때까지 매달리는 운동이 이병렬의 속에 있는 울분을 풀어 주는 느낌도 있었다.
“허억. 헉.”
이병렬은 그때 줄넘기와 주먹을 꽂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숨을 끊어서 뱉어! 뱉으면서 빨아들이고! 그래! 잘한다!”
신기한 건, 진광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병렬의 곁에 붙어서 함께 운동한다는 점이었다.
한 번은 집에 가는 길에서 운동장을 차지한 축구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인사도 안 해?”
가뜩이나 이병렬에게 배배 꼬여 있던 축구부 선배들이 이병렬을 빙 둘러쌌다.
인생 뭐 있냐?
붙어 주는 거지.
이병렬이 독한 각오로 이를 씹는 순간이었다.
“애 하나 둘러싸고 뭐 하는 거야?”
지옥 끝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 가라앉은 경고가 이병렬의 등 뒤에서 울렸다. 고개를 돌린 이병렬의 시선에 축구부 이십여 명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진광식이 들어왔다.
이마와 눈가에 매달린 흉터들, 끝이 쭉 올라가서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것처럼 매서운 눈매, 체형이 크지 않은 데도 진광식은 함부로 맞서기 어려운 아우라를 펄펄 뿜어내고 있었다.
“야, 이 씨발! 선배 씹는 걸 그냥 두고 보…?”
쉬익! 멈칫.
언제 날렸는지 못 봤다.
거칠게 항변하는 선배의 눈 1센티미터 앞에 진광식의 주먹이 달려가 있었다. 그리고 툴툴대던 놈은 고개조차 빼지 못한 상태에서 뻣뻣하게 얼어 있었다.
“애 하나 잡겠다고 떼로 몰려든 새끼들이 주절주절 말이 많아? 할 거면 얼른 시작하고, 아니면 앞으로 복싱부 앞에서 대가리 쳐들지 마.”
집에 가던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축구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병렬이 복싱부다. 앞으로 병렬이한테 말 거는 새끼 나오면 진짜 축구 못 하게 될 거니까 알아서 기어.”
진광식이 경고를 날린 직후였다.
호르르륵!
“야! 거기 뭐 하는 거야?”
축구부 감독의 호루라기 소리가 날아들었다.
누구라도 국가대표 상비군 소속인 진광식을 건드리기는 부담스럽다. 진광식이 이병렬에게 고갯짓을 던져 움직이면서 상황이 끝났다.
학교를 나선 진광식이 이병렬을 데리고 간 곳은 학교 앞 중국집이었다. 탕수육, 볶음밥, 짬뽕, 군만두까지, 이병렬이 의아할 정도로 진광식은 많이 주문했다.
“먹어, 인마.”
“형님은 드시면 안 되잖습니까?”
“그래서 네가 먹으라는 거잖냐. 냄새 죽인다.”
그날 진광식은 진짜 짬뽕에 담긴 면 다섯 가닥을 먹은 게 전부였다.
배가 꽉 찬 이병렬이 중국집을 나선 뒤였다.
“너보다 약한 친구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았다. 축구부 숫자에 밀리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씨익 웃으며 이병렬의 뒤통수를 툭 때린 진광식은 그 말을 끝으로 홀로 걸어갔다.
그때부터였다.
이병렬이 독기 어리게 복싱에 매달리고, 전국대회 고등부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건.
축구부는 어떻게 나왔냐고?
집에 가기 위해 이병렬이 운동장에 나서면 공을 차던 축구부원들이 급하게 한쪽으로 비켜서서는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 행복 챔피언이 될 때까지!
어린 마음에 품은 소망은 그랬는데, 세상은 이병렬의 행복을 끝까지 지켜 주지 않았다.
“씨발.”
수원의 복싱 도장 간판을 본 이병렬은 욕을 뱉어 내며 과거에서 훌쩍 현실로 돌아왔다.
강성태가 복싱을 했다면 어땠을까?
연예인 뺨 때리는 인물에 멋들어진 몸, 한 방에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실력까지, 격투기를 했어도 성공했을 거다. 그랬다면 이병렬은 여태 노래하는 주점 운영하면서 살고 있을 테고.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이병렬이 권투 도장 간판을 보며 픽 웃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난데, 별일 없어?
“벌써 도착한 거야?”
– 아직 좀 남았어. 잠시 뒤에 김형정이라는 분이 연락할 거야. 내가 보증하는 양반이라고 생각하고 통화해 주라.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뭐가 급한지 강성태의 전화가 뚝 끊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다시 몸을 떨었다.
이게 뭐야?
고개를 갸웃했던 이병렬은 우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병렬 씨 되십니까? 혹시 강성태 회장님 연락받으셨습니까?
“아! 지금 막 회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질문을 던진 이병렬은 운전석에 앉은 조봉진의 뒤통수와 그 앞의 유리창을 통해 밖을 살피면서 답을 기다렸다.
–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온 정보국 요원들을 상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면 지원을 할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이 양반이 조직이었어?
생각이 달리던 이병렬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직에 속한 사람 특유의 깔리는 음성이나 억양이 아니어서였다.
– 장례식장에서의 사건만 봐도 이병렬 씨의 능력이 충분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정보국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원이 일본의 정부나 정보국의 지원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보국 사람이겠네!
강성태의 언질, 말하는 태도와 내용을 들은 이병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일본 정부나 정보국의 지원이 어느 정도 선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였다가 난처한 상황이 있을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연달아 말을 하면서도 김형정은 이병렬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도움을 주신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 이병렬 씨가 중국 정보국을 상대하는 뒤쪽에서 우리 쪽 인원이 대기할까 합니다. 일본 정부나 정보국에서도 전혀 모르는 인원이니 혹시 모를 사태에 적절한 대비가 될 거 같습니다. 경찰이 끼어드는 일도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저기, 성함이?”
– 김형정입니다. 편하게 본부장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이름을 확인한 이병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말씀은 알겠는데 우리가 치려는 곳이 모두 세 곳입니다. 그건 아십니까?”
– 물론 알고 있습니다. 세 곳 모두 한 시간 내로 인원을 파견할 테고, 염려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용하게 철수할 겁니다.
“흐음.”
이병렬은 입술을 뒤틀었다.
이래서였나 보다. 강성태가 짧은 통화로 끝낸 건.
상황이 급하기도 하지만, 판단은 현장에 있는 이병렬에게 맡긴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요. 대신 일이 생기더라도 내 말에 따라 줘야 합니다. 다른 곳도 우리 식구들 지시에 따라 줘야 하고요.”
– 알겠습니다. 그럼 한 시간 내로 도착해서 이병렬 사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병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귀신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혹시 몰라 통화 버튼을 눌러 본 강성태의 번호는 전화를 연결할 수 없다는 응답을 되돌려주었다.
뭐가 이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이병렬이 입을 뒤틀었다.
어차피 김형정이 인원을 배치하는 데 한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거기에 아직 조태완의 연락도 없었고.
이병렬이 가라앉은 눈으로 빌라를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또다시 처음 보는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아주 씨발, 동네 번호 됐네.”
픽 웃은 이병렬은 검지로 통화 버튼을 누른 뒤에 스마트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생활하는 사람 특유의 깔리는 음성으로 전화를 받은 다음이었다.
– 병렬이냐? 나 광택이다. 오광택.
“누구?”
– 신사동 광택이라고.
이게 뭔…?
목소리는 분명 오광택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이병렬은 액정을 내려 번호를 다시금 확인했다.
“뭐야? 안 죽었어?”
– 죽기는 누가 죽었다고 그래?
“갑자기 사라진 거 아냐? 우리는 누가 작업해서 묻어 버린 거로 알았지. 그동안 어디에서 뭘 한 거야?”
– 사연 다 적으면 책으로 2부에 외전까지 나와. 나머지는 만나서 말하기로 하고, 조금 전에 김형정 본부장님 전화 받았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병렬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뭔가 많은 뜻이 담긴 듯한 웃음이 건너왔다.
– 이병렬 이름 듣자마자 내가 직접 연락하겠다고 했다. 세 곳에 있는 경찰이랑 작업 다 끝났으니까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대신 아까 통화대로 한 시간만 기다렸다가 들어가.
“아, 씨발! 뭐 하자는 거야?”
– 신강남파가 마약만큼은 막겠다고 나섰다가 일 커진 거 아냐? 그거 하라고. 경찰이랑 다른 거 걱정하지 말고. 지금부터 한 시간이다. 그럼 고생해.
뜬금없이 걸려 왔던 전화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전하고는 툭 끊겼다.
‘아무래도 이상해.’
목표한 빌라를 노려보던 이병렬은 볼을 씰룩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