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6)
707화 어떤 놈을 먼저 죽일까요? (1)
‘염병할’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긴 비행 끝에 강성태는 소말리아의 아덴 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당시에 본 적은 없지만, 1970년대 김포공항이 이런 모습이지 싶을 정도로 아덴 아디 공항은 열악했다.
공항 건물 앞에서 비행기가 멈춘 뒤였다.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어서 키란과 열네 명의 용병이 몸을 세웠다. 구르카 용병으로 뛰면서 이보다 열악한 환경이야 지겹도록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내려선 공항의 시설이 아니라 그 뒤에 감당할 전투가 아니겠나.
“감염 탓인지 세계 곳곳의 정보국들이 미쳐 날뛴다. 우리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몰라. 긴장하자.”
강성태가 나직하게 경고했고, 키란이 확인처럼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갈아입을 옷과 몇 가지 물품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진 강성태는 여권을 손에 들고 문을 향해 움직였다.
열린 문을 통해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강성태에게 소말리아의 햇살과 바람, 그 속에 담긴 흙가루가 달려들었다.
‘얼른 끝낸다. 대신 확실하게 정리해 주마.’
무엇보다 방심하다가 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활주로를 살핀 강성태가 공항 건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어?’
예상하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곁으로 다가온 키란이 강성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공항 건물에서 나오는 천중명과 곽대출을 향해 눈가를 좁혔다.
상상이나 했었나?
지경그룹 총수와 그의 심복이라는 부회장이 사파리에 군복 바지를 대신한 듯한 진 바지, 면티에 각진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기가 막힌 심정에도 강성태는 먼저 천중명과 곽대출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서 와.”
“어떻게 된 겁니까?”
“뭐? 감염? 보다시피 멀쩡해.”
“이번 작전만큼은 제가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명 정도는 괜찮잖아?”
확실히 천중명은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돈이 많아서, 혹은 그룹 회장이라서가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마주했을 때 풍기는 기운이 그랬다.
“나름 성의를 보이겠다고 무기까지 준비했는데 받아 주지?”
이런 남자를 어떻게 거절하겠나.
그룹 총수면서 감성원을 잊지 못해 전투에 직접 나서는 남자를 말이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시선을 너무 끌어. 회장님과 내가 직접 나온 이유가 마리그 경비를 위한 인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려는 거니까 이제 움직이지?”
천중명이 거스르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풍긴다면 곽대출은 야생에서 뛰어다니던 늑대가 이를 감추고서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얼굴과 목덜미, 손등에서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강렬한 눈매와 정말 잘 어울렸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뵙겠습니다.”
“지경그룹 회장님께서 직접 나오셨는데 그러면 서운하지.”
강성태에게 말을 던진 곽대출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받은 공항 직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기가 막힌다.
다가온 직원이 여권을 받아서 스탬프를 찍어 대는 모습이 말이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이제 나갈까?”
“알겠습니다.”
천중명이 몸을 돌렸고, 강성태와 곽대출, 이어서 키란과 동료들이 뒤를 따랐다.
***
들어 보고 판단하려고 했다.
– 야! 깡미!
“요원 유강미!”
– 너 왜 대답 안 해? 해 보자는 거야?
그러나 독 오른 허은실의 음성을 듣는 순간 강찬은 마음을 굳혔다.
“허은실?”
스마트폰을 향해 강찬이 이름을 부른 직후였다. 멈칫한 침묵이 먼저 흘렀고,
– 복직을 축하드립니다! 부원장님!
허은실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한 인사가 스마트폰을 통해 튀어나왔다.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종이컵을 든 최종일과 우희승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테이블로 다가왔다.
– 대테러팀 팀장 역할까지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공손해?”
– 이러지 않으면 작전에 안 넣어 줄 거 같으니까! 이렇게라도 작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차민정 팀장님 보내고 생일 때마다 혼자 울었어! 고등학교 동창! 아프리카 전투! 어떤 핑계라도 좋으니까 나 꼭 넣어 주라!
간절한 소망을 들은 최종일이 유강미를 향해 ‘누구?’라고 했다가 ‘허 대위님’이라는 입 모양을 보고는 그럴 거 같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허은실.”
– 예, 부원장님.
변화무쌍한 건 진짜 인정이다.
“휴가를 핑계 댈 거고, 사망해도 개인적인 사유로 처리된다. 괜찮아?”
– 감사합니다!
이를 꽉 붙였는지 허은실의 답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들렸다.
“네 시간 준다. 정리하고 여기 유강미에게 연락해.”
– 대위 허은실! 부원장님의 지시를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유강미가 함께 듣고 있어서 어쩌면 자존심 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허은실은 진심이 드러난 대꾸를 내놓았다.
통화가 어지간히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액정을 확인하는 유강미의 표정에 안도하는 감정이 맴돌았다.
“너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기에 이런 식으로 말이 나가?”
“허 대위님 아시잖아요? 세 명이 휴가를 신청한 뒤에 곧바로 부원장님 복직되셨다는 소식이 들리니까 뭔가 있구나, 하신 모양이에요.”
질문을 던졌던 최종일이 답을 듣고는 그럴 만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독거미 출신 요원들 불러서 체력이랑 능력 검증하냐?”
이건 무슨 소리야?
“여전하세요. 요원이 돼도 수준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1년에 두 번씩 불러서 체력과 능력 검증하세요.”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는 강찬을 향해 유강미가 답을 내놓았다.
“여자라서 총알이 비껴 간다고 생각할 거면 당장 그만두라고 다그칠 때 눈매가 꿈에서도 나온다니까요.”
설명을 덧붙인 유강미가 질렸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의 반둔두에서는 뭔가 어설펐던 허은실이 진짜 독거미가 된 모양이었다.
“인원은?”
“모두 휴가 신청했고, 처리됐습니다. 지시한 장소에 모두 도착했으니까 그곳 작전 끝내면 모두 이곳으로 집결할 겁니다.”
다 됐나?
최종일의 답을 들은 강찬은 몸을 일으켜 창으로 향했다.
서울의 빌딩을 담은 유리 맞은편으로 다가서는 강찬과 그 뒤에서 각오를 다지는 최종일, 우희승, 유강미의 모습이 비쳤다.
감당하겠냐, 이런 사람들을?
뜨거운 피와 그 피만큼이나 진한 독기를 품은 사람들을 그러게 왜 건드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든 강찬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피식 웃었다.
힘겹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직 태극기만을 바라보던 비무장 지대 대원들의 한이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가 싶어서였다.
***
겁이 없고, 흔히 말하는 ‘도라이’들도 있지만, 깡패라고 해서 다 깡다구 끝판왕은 아니다. 당연하게 겁 많은 놈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최대한 덩치를 키우고, 떼로 몰려다닐 때 더 악랄해진다.
“후-.”
이병렬은 태어날 때부터 힘으로 누르는 걸 견디지 못했다.
몸이 날래고 성격도 있어서 눈이 돌아가면 주먹이 먼저 나간 뒤에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 이병렬이 인내심을 배운 건 고등학생 시절 권투부 주장을 만나서고, 다음으로는 깡패 생활에 몸담고 나서였다.
이병렬이 별것 아닌 거에 주먹을 뻗으면 동생 하나는 유치장에 들어가야 한다. 깡패가 된 놈들에게 허세를 가르치면 평생 거들먹거리면서 인생 망치는 거고.
김진용과 서달수, 조봉진을 만나면서 이병렬은 손님이 던진 수박이나 포도, 딸기를 맞거나 혹은 잔을 휘둘러 뿌린 술에 얼굴이 젖어도 웃는 낯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깡이 없어서? 주먹이 약해서?
아니.
마트나 편의점에서 싸게 살 수 있는 맥주와 국산 양주를 비싸게 팔아 얻는 수익에 손님들의 취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도 들었다고 생각해서였다.
“형님….”
주방에서 지켜보던 서달수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매달리는 눈물을 보고도 이병렬은 웃었다. 김진용과 서달수, 조봉진이 세상을 바로 살아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씨발. 한 시간만 기다리라더니….”
차 안에 앉아서 복싱 간판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옛 생각이 떠올라서 이병렬은 욕을 뱉었다. 그런 뒤에 창에 머리를 기댄 것처럼 몸을 기울여 복싱 간판 위로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잘 있냐?’
조봉진이 있어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멍청한 새끼.
따귀나 때리는 이병렬이 뭐가 좋다고 대신 칼을 맞은 건지, 조금 더 잘해 주지 못한 게 걸려서 이병렬은 또 볼을 씰룩였다.
‘진용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 돼서 오늘 뺐다. 그 새끼 이제 폼이 잡혔다. 봉진이는 아직 어설퍼서 내가 데리고 다니고.’
서달수가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양, 이병렬이 엉뚱한 생각을 떠올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나다, 광택이.
“한 시간 지났다. 더 기다리라고 할 거면 집어치워!”
– 성격 여전하네.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건데, 그 새끼들 아무래도 함께 죽자는 거 같아.
“뭔 씨발, 한 시간씩 기다리게 해 놓고 김밥에서 단무지만 빼 먹는 소리를 해? 왜? 함께 죽자고 하면 내가 아이고 무서워, 하고 얌전히 돌아갈 거 같아?”
자존심이 상한 이병렬이 당차게 대꾸한 뒤였다.
– 펜타닐 알지? 놈들이 같이 죽자고 그거 뿌리면 병렬이 너는 몰라도 동생들은 애꿎게 죽거나 중독돼. 중독성이 필로폰의 이백 배라 바로 해독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예전 같으면 같이 욕을 뱉으며 받았을 오광택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현실을 알려 주었다.
– 이 새끼들, 어젯밤부터 꼼짝 않고 있다며? 들이닥칠 거 알고 버티는 걸 수 있잖아? 조직원 같으면 대가리 조아릴 수 있는데, 정보국 요원이면 죽는 쪽을 선택한다고 보는 게 현명해.
“그래서 어쩌자고?”
– 문만 우리가 따자.
“뭐?”
– 문을 우리가 따겠다고. 펜타닐 분말만 해결할 테니까 뒤는 그쪽 식구들이 알아서 해.
“오광택? 너 지금 어디 있어?”
눈을 찌푸린 이병렬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당장 보이는 건 없었다.
– 병렬아. 나, 오광택이야. 신사동 광택이! 그런 내가 나이 떠나서 친구 먹은 사람이 세상에 딱 둘이다. 너도 나이 어린 보스랑 친구 먹었다니까 내 심정 이해할 거 아냐?
“갑자기 뭔…?”
– 나는 강성태같이 멋진 보스 못 만났다. 대신 그보다 백 배는 징그러운 인간을 만나는 바람에 온갖 곳 돌아다니다가 귀 하나 잃었다. 그런데 귀 잃은 거보다 나 믿고 따르던 도석이 상한 게 더 아프다. 지금도 그 새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하필이면 조금 전까지 서달수를 떠올리던 이병렬에게 이런 소리를 지껄일까.
– 자존심 잠깐 접고 동생들 생각하자. 그게 네가 믿고 따르는 신강남파 보스 방식 아니냐?
“씨발, 어디 연설 학원 다녔냐?”
말문이 막힌 이병렬이 툴툴대는 것처럼 대꾸를 던진 뒤였다.
– 5분 뒤에 승합차 들어간다. 동생들에게 말하고, 우리가 문 딴 뒤에 신호하면 들어오자.
점잖은 오광택이라니?
이병렬은 픽 웃고 말았다.
– 상황 봐서 우리는 빠질 거니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얼굴은 보고 가야지?”
– 내가 말했지? 징그러운 인간 만났다고. 일이 또 생겨서 가 봐야 해.
“약 뿌린다며? 우리도 위험한데 너는?”
– 일단 지켜봐. 뒷수습 알아서 하고. 5분 뒤다. 안산하고 안중에도 연락 부탁해.
당부를 마지막으로 오광택의 전화가 끊겼다.
뭐 하자는 건지?
액정을 바라보던 이병렬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봉진아. 아르윈한테 가. 가서 5분 뒤에 승합차가 와서 밀고 올라갈 거니까 일단 지켜보라고 해.”
“예? 형님?”
“가서 그냥 전하기만 해. 문 따러 온 거니까 지켜보라고. 그 뒤에 밀고 갈 거니까 연장 차고 있으라고! 얼른!”
“예, 형님.”
조봉진이 운전석에서 나간 뒤였다.
이병렬은 스마트폰을 들어서 유섭우의 번호를 눌렀다.
뭐냐, 이게?
뒈진 줄 알았던 오광택이 다 튀어나오고.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냐?
툴툴대는 심정과 달리 이병렬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
강찬은 무섭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대테러팀을 해체한 하동선이 이상한 발표를 터트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가정보원 부원장 겸 대테러 팀장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뿐이냐?
느닷없이 비상령을 때려서 요원들을 긁어모았다.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을 위해 차의 벽을 타고 기다란 의자를 붙여놓은 승합차 안이었다.
“준비됐지?”
“예.”
이어셋 형태로 귀에 걸어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통신 되는 무전기, 검회색 군복, 몸에 걸린 무기와 장비, 방탄조끼까지, 가장 안쪽에 앉은 오광택은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2조! 시작하면 바로 입구 개방해.”
– 알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대기 중인 승합차에서 답이 넘어왔다. 이 무전은 대원들이 모두 듣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문을 열고, 펜타닐을 저지하는 선까지다. 나머지는 뒤에 들어오는 인원이 맡아서 처리한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 온 적도 없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강찬의 요구였다.
어차피 적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일단은 감추라고.
이래야 적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1분 전이다. 대기해.”
시간을 확인한 오광택은 들고 있던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후욱. 후욱.
남일규와 양동식 선배처럼!
방독면을 뒤집어쓴 오광택이 눈매를 차갑게 가라앉히고는 양동식을 흉내 내는 것처럼 히죽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