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8)
709화 어떤 놈을 먼저 죽일까요? (3)
통화를 마친 석강호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왼쪽 뺨이 퉁퉁 부어 있는 하동선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이름을 토해 낸 놈들을 잡아 조져야 하는데 증거를 찾을 시간이 없다는 말 들었지?”
스피커폰도 아닌 통화를 하동선이 어떻게 듣겠나?
거기에 입을 열면 따귀를 때리고, 또 입을 다물면 권총을 뽑아 다리를 겨누는 통에, 질문을 받으면 뺨과 다리 중 하나는 내놓아야 한다.
“이 새끼가 사람 말을 씹어?”
“그게 아니고….”
쫘아아아아아-악!
얼마나 세차게 때렸는지 이번에는 휠체어의 한쪽 바퀴가 붕 떴다가 아슬아슬하게 내려앉았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 입 열지 말랬지?”
입을 열면 따귀를 갈긴다. 그냥이나 갈기나? 따귀를 갈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두툼한 손바닥이 유연하게 날아서 찰진 소리를 터트리는데, 그 바람에 하동선의 왼쪽 볼 중앙에 손바닥과 손가락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졌고, 반대편보다 두 배쯤 부풀어 있었다.
이 새끼는 이 정도면 됐고.
석강호가 고개를 돌리자 움찔했던 차장 둘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나마 얼른 사실을 털어놓았던 차장은 손자국이 하나밖에 없는데 끝까지 버텼던 차장은 하동선의 몰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히죽 웃은 석강호는 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밖에 대원 있지?”
고함을 지른 직후였다.
문이 열리고 아까 휠체어를 밀었던 대원 셋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것들 좀 데리고 가자.”
“예.”
대원들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뺨이 퉁퉁 부은 채 눈물과 코피를 흘리는 하동선과 차장 둘을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래 놓고 묵묵하게 휠체어 뒤로 움직여 밖으로 밀었다.
이대로 끌고 가서 죽이나?
머릿속이 복잡한 세 사람 앞에서 통로를 지난 석강호는 다시금 활주로로 나섰다.
뿌연 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흙먼지, 담벼락을 타고 세운 초소와 그 안에서 경계 선 대원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입구에 서 있는 소방 사다리 트럭,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예멘 공항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구급차가 있는데도 석강호는 말 한마디 없이 대각선 방향으로 줄줄이 세워 놓은 비행기 옆을 지루하게 걸었다.
멀리서는 짐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던 게 바닥에 앉아 쉬는 대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까지 다가간 다음이었다.
완벽한 무장에 시커멓게 얼굴이 그을린 곽철호가 석강호를 향해 다가왔다.
“문을 열어.”
“예.”
나 좀 봐! 나를 좀 보라고!
국가정보원 원장을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한 번쯤 물어볼 만도 하잖아!
“문을 개방한다! 물 준비하고! 거기 네 명이 나가서 경계해!”
언제나 그렇듯 하동선의 소망을 외면한 곽철호가 연달아 지시를 던졌다.
끼이-익.
문이 열리기 무섭게 먼저 나간 대원 네 명이 앞을 막아서는 것처럼 소총을 겨눴고, 그 뒤를 석강호와 휠체어 세 대가 따랐다.
쏴아아아-.
소방 사다리 위에 있던 대원이 호스를 좌우로 흔들어 커다란 물줄기를 뿌려 낼 때였다.
‘세상에!’
하동선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줄기가 만들어 낸 축축한 경계 바깥에 있는 이들은 완벽하게 피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실제로 피가 엉겨 붙은 사람의 머리나 팔을 들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영상으로야 봤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진심으로 몰랐다.
“크아-하악!”
대원들과 석강호, 하동선, 차장 둘을 본 놈들이 터져 나오는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제 좀 알겠냐?”
휠체어 뒤로 돌아온 석강호가 하동선과 차장 사이로 상체를 기울이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꼴 당하지 않도록 공항과 항만을 지키랬더니 감염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소리를 지껄여?”
놀라서 돌아보는 하동선의 정수리를 손으로 덮은 석강호가 그의 고개를 앞으로 비틀었다.
“똑바로 봐! 펜타닐로 시작해 이름도 지랄 같은 아메바에 감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런 약품을 들여온다는데 다른 놈도 아니고, 국가정보원 원장이라는 새끼가 길을 열어 줘?”
“나는….”
꽈악.
“끄으-.”
입을 여는 하동선의 머리칼을 움켜쥔 석강호가 목을 뽑으려는 것처럼 위로 들었다.
“너 사실은 한국인 아니지? 그래서 내가 허락할 때만 입 열라는 우리말을 못 알아먹는 거지!”
앞을 경계하는 대원 넷은 거짓말처럼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대테러팀 해체하고, 완벽하게 키우는 데 5년 걸리는 특수부대 대원들을 10년 되면 물러나게 한 이유가 뭐? 비용이 많이 들어서야?”
“끄으-.”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 날고 기는 장교들과 대원들이 와 있는 이유가 갈 곳이 없어서라는 게 말이 되냐고!”
“끄아! 끄아아!”
손가락에 감아쥔 머리칼을 얼마나 위로 들었는지, 하동선은 멀쩡한 한쪽 발과 휠체어 손잡이를 짚은 팔을 이용해 반쯤 일어서다시피 상체를 들고 있었다.
털썩!
하동선의 머리칼을 놓은 석강호는 독이 뻗친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런 뒤에 오른손 검지를 들어서 하동선에게 가리켰다.
움찔, 하동선이 상체를 뒤로 뺀 직후였다.
“어떤 놈을 먼저 죽일까요? 알아맞혀 보십시-오!”
마지막에 석강호가 ‘오!’를 뱉는 순간에 건너편에 앉은 차장을 가리켰다.
“저는 이미 아는 걸 다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으로 보내 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차장이 비명처럼 애원을 던진 직후였다.
그랬나?
고개를 갸웃했던 석강호가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입술을 늘였다.
“알아맞혀 주세-요!”
다시금 흥얼대는 말투로 검지를 번갈아 움직인 석강호가 마지막에 하동선을 가리켰다.
“안 돼! 하지 마! 오지 말라고!”
따귀를 맞는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하동선이 다급하게 비명을 질러 댔다.
“늦었어, 이 개새끼야!”
대원이 비켜난 틈으로 움직인 석강호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붙잡고서 앞으로 걸었다. 경계 서던 대원들을 지나친 석강호는 눈이 새하얗게 뒤집힌 채 괴성을 지르는 놈들을 향해 곧장 걸었다.
철컥! 철컥!
경계를 서던 대원들이 석강호만은 지키겠다는 양 따라붙었고,
쏴아아아-.
소방 사다리 위쪽에 있는 대원이 석강호와 경계 서는 대원들, 그리고 휠체어가 흠뻑 젖을 정도로 연신 물을 뿌렸다.
“안 돼! 제발! 안 돼-애!”
멈칫.
석강호가 휠체어를 붙든 직후였다.
상체를 바싹 뒤로 뺀 하동선의 바로 앞에서 팔을 뻗어 대던 괴물들이 물을 얻어맞고는 비명을 토해 내며 뒤편으로 물러났다.
쏴아아아아-.
호스에서 뿜어진 물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아래에서 석강호는 휠체어를 빙글, 돌렸다. 머리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눈가를 지나치는데도 석강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름 다 나왔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려던 건지, 누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그것만 말해.”
고함 지르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죽이네, 살리네, 협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비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질문을 던지는 석강호의 눈빛에는 분명 죽음이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담겨 있었다.
***
오랜만에 들르는 추억의 남산 호텔이었다.
변하지 않은 도로처럼 나이 든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섰는데, 그 틈에서 새로 지은 놈들이 으스대는 것처럼 키를 높다랗게 세우고 있었다.
이 도로를 참 열심히 다녔다.
그 끝에서 이따금 가평의 개천에서 닭이나 삶아 먹는 평화로운 날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숨어 지내다가 적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꼴이었다.
1차선을 달리던 이두희가 유턴을 위해 차를 세운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몸을 떨며 강찬을 찾았다.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아예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하동선이 털어놨소.
벌써 끝냈다고?
놀란 강찬과 달리 조수석에 탄 우희승과 옆자리의 최종일이 궁금한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일본의 후원을 받은 놈들이 대놓고 작업했던 거요. 하동선이 일본 정보국과 손을 잡았고, 입국은 국회의원 세 놈, 외교부 차관 한 놈이 나서서 처리했다니까 확인해 보쇼.
“증거는? 명단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니까.”
– 내가 누구요?
“다예 아니냐?”
사람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을 워낙 술술 풀어내니까 사람이 이상하게 비굴해진다.
– 조금 전에 하동선이 죄다 통화했고, 내용을 모두 녹음했다는 거 아뇨. 그거면 되지 않겠소?
진짜 이렇게까지 머리를 썼어?
느끼는 건 같은 모양인지, 최종일과 우희승이 감탄한 표정으로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
구르카 용병들을 위해 승합차 두 대를 제공한 곽대출은 강성태를 지프로 안내했다.
“부회장님이 직접 운전하십니까?”
“이래 봬도 베스트 드라이버야. 안심해.”
강성태의 질문을 능청맞게 받은 곽대출이 운전석에 올랐다. 그대로 두면 천중명이 조수석에 탈 분위기여서 강성태는 재빠르게 먼저 곽대출의 옆자리에 올랐다. 강성태의 마음을 알아본 모양으로 픽 웃은 천중명이 뒷좌석에 올라탄 다음이었다.
부으으응.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강성태를 돌아본 곽대출이 지프를 움직였다.
“체첸 용병들 말인데, 아무래도 마리그 기지를 노린 거 같지?”
“소말리아에 다른 목표가 없지 않습니까?”
천중명의 질문에 강성태가 짧게 답할 때, 지프가 공항의 출구를 빠져나왔다.
오랜만이다. 소말리아.
이런 모습도 있구나.
강성태는 공항 바깥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과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눈에 담았다. 해적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동한 탓에 이렇게 모가디슈를 달린 적은 없었다.
당시에 강성태를 가르쳤던 감성원이 모가디슈의 하늘 어딘가에서 내려다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잠시 하늘을 보았던 강성태는 시선을 내리며 현실로 돌아왔다.
“무기는 어떻게 합니까?”
“평화유지군이 가져온 무기와 장비가 있고, 우리가 준비한 게 또 있어서 충분할 거야.”
그럼 무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따르는 승합차를 확인했다. 지프가 일으킨 뿌연 흙먼지를 뚫고 뒤를 꿋꿋하게 따르고 있었다.
승합차 뒤로 승용차 하나, 다시 승합차 하나.
도로를 살핀 강성태는 천중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 함께하실 겁니까?”
“뭐? 체첸 용병들 상대하는 거?”
“예.”
“피해서 될 일이 아니고, 피할 방법이 없으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잖아. 완벽하게 이기거나, 저쪽을 완전히 무너트리거나.”
천중명의 답이 나온 직후였다.
울퉁불퉁하지만 그나마 포장된 도로를 달리던 지프가 시장통을 연상시키는 비포장 길에 들어섰다. 고개를 앞으로 돌린 강성태는 좌우로 붙어서 있는 1층 건물을 빠르게 살폈다.
“그렇게 건물을 살피는 건 어디에서 배웠지?”
“레드 워터 시절에 기본을 익혔고, 멕시코에서 곤잘레스 회장을 경호하며 버릇이 들었습니다.”
“강 회장이 보기에 이곳은 어때?”
“우리 뒤편에 차량 두 대, 그리고 지금 지나온 길 양쪽에 있던 대원들 정도 확인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알아봤어?
지프를 몰던 곽대출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5분쯤 비포장도로를 달린 지프가 왼편의 공터를 향해 방향을 틀었고, 이어서 20미터쯤 거리에 있는 창고 앞에 멈췄다. 키란과 구르카 용병들이 탄 승합차, 강성태가 확인했던 두 대의 차량이 줄줄이 멈춰 설 때였다.
커다란 창고 문이 사람 하나 드나들 정도로 열렸고, 실제로 두 명의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인상과 눈빛, 움직임만 봐도 도깨비 대원 출신이라는 점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다부진 느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두 대의 차량에서 내린 남자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으로 창고의 입구를 둥그렇게 막았다.
“인사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자.”
시선을 던진 천중명을 따라 강성태는 창고 안으로 움직였다. 그 뒤를 키란과 구르카 용병이 따랐고, 마지막에 바깥을 돌아본 곽대출이 안으로 들어섰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설 때는 눈을 반쯤 감는 게 적응이 빠르다.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일이었다.
“끄으-으.”
안으로 들어선 강성태는 처참한 몰골로 구석에 묶여 있는 남자들을 향해 좀 더 눈가를 좁혔다.
강성태보다 월등히 커다란 덩치, 덥수룩한 수염, 각진 턱.
‘혹시…?’
시선을 돌린 강성태 앞에서,
“감성원 선배가 상대했던 놈들.”
세상 냉정한 음성으로 천중명이 답을 주었다.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 차라리 총알에 다리나 팔이 뚫리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부연 설명을 내놓는 천중명 앞에서 강성태는 흉측한 몰골의 체첸 용병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놈들을 이곳에 두신 이유가 있습니까?”
“부회장이 독한 계획을 세웠는데 말릴 방법이 없었다.”
강성태는 상처를 가득 안은 곽대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의 주변에 서 있는 도깨비 대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마리그 기지를 연달아 노린 적, 그로 인해 희생된 동료들, 감성원 선배의 아까운 죽음, 분노를 삼키고 있는 곽대출과 도깨비 대원들에게서 핏빛 독기가 은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