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29)
710화 특별한 경고입니까? (1)
남산 호텔에 도착한 강찬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젊은 조직폭력배가 나이 든 조직원들의 호위를 받는 건가 싶은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은 이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강찬을 힐끔대고 있었다.
언젠가는 홀가분한 모습으로 이 호텔에 돌아올 거다.
염병할 전쟁과 감염의 위험만 치우고 나면 나머지는 뒷사람에게 맡기고 김미영과 함께 브런치 즐길 거고, 다예, 제라르와 함께 닭백숙 먹으면서 살 거다.
남모를 다짐을 품은 강찬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을 향해 방향을 튼 다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박중상이 짧게 고개 숙였다.
나이 어려, 소개받은 다음 날 부원장 겸 대테러 팀장으로 복직했어, 거기에 박중상이 인정하는 선배들이 줄줄이 강찬을 호위하며 나타났지,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다.
박중상이 버튼을 누르면서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강찬과 최종일 일행이 들어섰고, 뒤따라 움직인 박중상이 몸을 돌리고는 카드를 댄 뒤에 버튼을 눌렀다. 고작 버튼을 누르는 사소한 동작 하나였다. 그런데도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의 시선이 매섭게 움직였다. 닫히는 문틈으로 불쑥 손이 들어와 폭탄을 던지거나 권총을 갈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모습이었다.
경험은 이래서 무섭다.
온갖 고비에서 살아 돌아오고, 지랄 맞게 달려드는 적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넣은 대원은 눈빛부터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분명한 의지가 담긴다.
개 같은 인간이 이렇게 피로 얻은 경험을 중간에서 뚝 잘라?
하동선을 떠올린 강찬이 피식 웃을 때였다.
경쾌한 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이쪽입니다.”
박중상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복도를 걸은 다음이었다.
벨을 누르기 무섭게 문이 열렸고,
“안녕하십니까, 부원장님?”
무겁게 인사한 이용우가 한쪽으로 물러섰다.
나름 정리한 모양이었다.
침대와 2인용 소파, 벽에 붙은 책상의 의자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뭐 그렇게 딱딱하게 그래? 편하게 하자. 봉지 커피 있어?”
“있습니다.”
답은 이용우가 했다. 그러나 이용우를 슬며시 밀어낸 박중상이 커피포트 앞으로 움직였다. 편의점에서 사다 놓은 모양이었다. 비닐에 담긴 기다란 종이컵과 봉지 커피를 담은 사각 종이 포장지가 테이블에 기다랗게 서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같이 해.”
이두희가 함께 봉지 커피의 끝을 입에 물고 뜯었다.
그사이 최종일은 작은 초코바 크기의 도청 감시 기계를 문과 소파 테이블, 창에 붙였고, 이두희는 또 책상과 침대 앞에 있던 둥그런 의자를 가져와 소파 주변에 놓았다. 그래도 숫자가 부족해서 종이컵을 든 이두희와 박중상은 결국 책상에 걸터앉듯이 자리 잡았다.
달달한 커피는 언제나 분위기를 풀어 준다.
강찬을 시작으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다 같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였다.
“동철이 장례식장에 중국 정보국 놈들이 들이닥쳤었다. 커피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거지. 어떻게 알았을까?”
종이컵을 향해 시선을 떨구고 있던 이용우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자밀라를 의심하지는 못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라크를 탈출했으니 그럴 만하지. 그렇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작전 전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서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예.”
강찬에게도 그렇지만, 최종일을 비롯한 선배들 앞에서 쉽게 생각했던 점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답을 하는 이용우는 표정과 달리 기가 죽어 있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네가 죽고, 다음으로 함께하는 요원들이 당해. 너야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다른 요원들까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지. 임무를 주는 나는 더더욱 그렇고.”
답을 하는 것처럼 이용우가 고개를 좀 더 숙였다.
에효, 자식아.
자식을 혼내다가 풀죽은 꼴을 보는 아버지들 심정이 이럴까?
강대경은 분명 이럴 건데, 강철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확인이 필요했어. 그래서 자밀라가 듣는 자리에서 앞으로 할 일을 대놓고 이야기했었고, 다음으로 정보총국까지 나서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는지 조사했다.”
놀란 눈치였다.
불쑥 들려서 강찬을 바라보는 이용우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국내 파트는 오늘 중으로 정리된다. 하동선이 밀어낸 본부장과 팀장들도 전부 복귀시킬 거고, 대테러팀도 다시 구성할 거다.”
뭔가 시작되는구나!
강찬의 계획을 들은 박중상이 어떡해서든 끼어들고 싶은 표정으로 옆에 있는 최종일을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가서, 아직 어떻게 네가 커피콩을 지녔다는 정보가 흘러나갔는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그걸 해결하는 게 가장 급해. 그래야 다음 작전을 펼칠 수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하여간 특이해.
“커피콩을 먹은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이 감염 증상을 떨쳐냈다.”
“정말입니까?”
다예만큼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뻔뻔스러운 면도 있고.
시선을 든 이용우를 강찬은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커피콩을 이용해 복제약을 만든다면 느닷없이 상황이 뒤집혀. 가장 먼저 정치와 경제 쪽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 무조건 약을 구하려고 할 테니까.”
뭐 그리 당연한 말을?
뻔뻔해진 이용우의 시선이 강찬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들은 쉽게 약을 개발했다고 떠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몰래 건네지도 못해. 왜 그런지 알겠어?”
“약을 개발했다는 놈이 범인일 확률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피식.
이용우의 답이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밀라와 함께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로 출발해.”
“예?”
예상하지 못했던 지시를 받은 탓인지, 이용우는 얼이 반쯤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밀라의 동선과 통화, 혹은 대화가 어떤 식으로든 흘러나갔다. 국내에 있으면 계속해서 동선이 읽히겠지?”
“아!”
“스마트폰부터 도청이 의심되는 건 모두 바꿔. 그래도 출국한 사실 정도는 알아낼 거다. 그런데 너와 자밀라가 모가디슈의 하릴 하지즈 건물 근처에서 지내면 적들이 어떻게 생각할 거 같냐?”
“들통났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적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릴 하지즈를 버리거나 제거하지 않겠습니까?”
“하릴 하지즈는 이라크 왕세자다. 거기에 아버지가 시아파의 정신적 지주인데 쉽게 제거할 수 있을까?”
그렇구나!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것처럼 고개를 비틀었던 이용우가 곧바로 시선을 들었다.
“제가 이번 감염을 꾸몄다면 하릴 하지즈를 주범으로 몰아 세계적인 공적으로 만들겠습니다.”
더 블랙 요원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아무리 다예가 진화한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을 만큼 이용우는 빨랐다.
“그 빌어먹을 건물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는 게 첫 번째. 적들이 하릴 하지즈를 제물로 내놓게 되는 게 두 번째, 적들이 어떻게 장례식장을 노렸는지를 알아내는 건 부수입.”
“부원장님. 평화유지군에 몸담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적을 사살해도 됩니까?”
피식.
다부진 표정의 이용우를 향해 강찬은 특유의 웃음을 보여 주었다.
“소속을 밝혀야 하는 순간에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라고 밝히면 된다. 그 밖에 적의 사살, 폭파, 기타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상황실에 도움을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비공식적으로 이번 임무는 국가정보원 대테러팀 소속 더 블랙 요원으로 수행한다. 괜찮지?”
뭐냐, 이용우?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위해 다시 일하라는 말에 눈시울을 붉힌다는 거냐?
강찬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었다.
볼을 씰룩이는 이용우를 보며 최종일과 우희승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이용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시선을 끌어.”
“맡겨 주십시오.”
이번 임무 뒤편에 뭔가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답을 하는 이용우가 마른침을 삼켜 가며 의미가 분명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알았으면 됐다.
너를 속여 가며 이용하는 건 아니니까.
강찬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도로를 따라 달리던 조봉진이 공장 앞쪽 진입로에서 차를 멈췄다. 공장에 들어가는 도로는 물론이고, 주변을 덤프트럭이 빙 둘러 감싸고 있어서 아예 안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승합차와 승용차를 이중으로 세워 두어서 탱크로 밀고 들어가지 않는 한, 누구도 공장에 함부로 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누가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한 거야?
막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뒤따라 온 승합차에 수원에서 때려잡은 놈들을 잔뜩 실었는데 시간을 끌면 어쩌자고?
눈매를 비틀었던 이병렬은 승용차로 빠르게 다가오는 덩치 두 명을 보고서 창문을 내렸다.
“오셨습니까, 형님?”
“뭐냐, 이게?”
“태완이 형님께서 트럭 섭외해서 보내셨습니다. 강남 쪽 식구들도 뒤편에 있고, 형님.”
공장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던 이병렬이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해 냈다. 혹시 밖에서 촬영할지 모를 위험을 염려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공장 건물을 볼 수 없도록 트럭으로 막아 버린 게 분명했다.
“섭우는?”
“종환이 형님이랑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형님.”
“얼른 길 열어. 아르윈 식구들이 가져온 승합차 모두 들어갈 때까지 길 막지 말고.”
“예, 형님.”
상체를 숙인 덩치가 손짓을 하자 승합차와 승용차가 엇갈려 움직이며 길을 뚫었다. 조봉진이 승용차를 움직이면서 뒤에서 따르던 승합차들이 줄줄이 공장 정문 앞에 도착했다.
“후.”
승용차에서 내린 이병렬이 보는 앞에서 승용차와 승합차가 다시금 길을 막았고, 아르윈의 조직원들이 묶어 둔 중국 정보원 놈들을 끌어내 공장으로 옮겼다.
“씨발 놈이!”
콰악! 퍽! 퍼억! 퍽!
“야! 대강 하고 나머지는 들어가서 해!”
“예, 형님.”
공장에 들어가지 않으려 어깨로 들이받은 놈을 짓밟았던 덩치가 이를 갈아 대며 쓰러진 놈을 끌고 들어갔다.
흉측한 광경이기는 한데, 얼핏 보면 팽팽 돌아가는 공장에 원료를 잔뜩 실어 오는 모양새였다. 하기는 사람 잡는 공장이니까 원재료라는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겠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이병렬은 입에 물고서 양손을 감싸 불을 붙였다.
“후-.”
이병렬이 뱉어 낸 연기가 거칠게 흩날리며 사라진 다음이었다.
“전부 옮겼습니다, 형님.”
아르윈이 와서 고개를 숙였고, 그 직후에 공장에서 나온 유섭우와 이종환이 “오셨습니까, 형님?” 하며 상체를 기울였다.
“상한 동생들 있냐?”
“군복을 입은 양반들이 워낙 다부지게 눌러 놓아서 그냥 주워 오는 수준이었습니다, 형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복 입은 사람들이 연기까지 피우면서 눌러 놓아서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유섭우의 뒤에서 상황을 전하던 이종환이 은근하게 이병렬을 불렀다.
“중국 정보국 소속이라고 하셨는데, 안중에서 달아온 놈 중에 낯이 익은 놈들이 있습니다, 형님.”
“확실해?”
“전에 성태 형님께서 안중 광룡을 박살 내신 바람에 남은 놈들이라고 해 봐야 몇 놈 되지 않습니다, 형님.”
누구보다 조선족 조폭이나 중국 쪽 조직원을 잘 아는 대림동 이종환의 말이어서 이병렬은 힐끔 닫혀 있는 창고 안을 돌아보았다.
“지금 들어가서 찍을 수 있어?”
“예, 형님.”
“가 보자.”
이병렬은 곧장 공장 안으로 움직였다.
먼저 해결했던 놈들의 피 냄새를 제대로 지우지 못해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바닥에 세 곳에서 달아온 놈들이 빽빽하게 들어찼고, 한쪽에서는 해적이나 산적처럼 보이는 옷차림의 필리핀 조직원들이 먹던 볶음밥을 내려놓고는 몸을 세웠다.
“어떤 새끼들이냐?”
이병렬이 물었고,
“야! 아까 광룡 식구였던 놈들 끌어내!”
이종환이 고함쳤다.
미리 골라 놨던 모양이었다.
대림동 덩치들이 안쪽 벽에 붙어 있던 세 놈의 팔을 붙잡아서 이병렬 앞으로 데려왔다.
“버티지 말고 꿇어, 이 씨발 새끼야!”
퍽! 퍼억! 퍽!
구둣발로 허벅지를 연달아 찍어 대면서 세 놈이 이병렬 앞에 무너졌다.
분명 중국 정보국 소속 요원들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느닷없이 오광택이 나타난 것도 이해했고, 표식 하나 없는 군복을 입고 뛰어 올라가 문을 터트리고, 최루탄을 쏜 것도 그러려니 했었다.
세 놈을 향해 자세를 낮춘 이병렬은 고개를 기울여 피투성이인 얼굴을 하나씩 살폈다.
얼굴에 조직원이라거나 요원이라고 써 놓은 건 아니니까.
“이 새끼들, 우리말 할 줄 아는 놈들이냐?”
“전에 분명히 우리말로 대화했었습니다, 형님.”
오른손을 내민 이병렬은 가장 중앙에 있는 놈의 턱을 잡아 정면으로 보도록 돌렸다. 그 직후였다. 제대로 얻어맞아서 핏물이 가득 밴 놈의 눈동자가 꿈틀하고 움직여 이병렬을 독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중국 정보국 어쩌고 하는 놈들이 밀입국하는 걸 도왔다는 거네. 그렇지?”
이병렬이 질문을 던졌고,
“퉤!”
턱을 잡힌 놈이 당차게 핏물 섞인 침을 이병렬의 얼굴에 뱉었다.
“이 씨발 새끼…!”
놈을 향해 달려드는 덩치를 이병렬은 손을 들어 막았다.
“아르윈.”
“예, 형님.”
“밀입국 부탁한 새끼, 도와준 새끼, 방법과 경로, 들어온 전체 대가리 숫자, 이게 필요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형님.”
구석에 서 있는 필리핀 조직원을 향해 아르윈이 따갈어로 질문을 던졌고,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다.
“세 명밖에 안 돼서 전부 알아내기 어려울 거랍니다, 형님. 대신 한 가지만 찍어 주시면 두 시간 안으로 알아내겠답니다.”
아르윈이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핏물 올라온 광룡 놈의 눈을 향해 이병렬은 옅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