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3)
594화 나는 왜 매번 이러지? (1)
살면서 이렇게 마음 편한 세월이 있었나?
조태완의 건물 앞에 선 박노익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1층 입구를 바라보았다. 카페처럼 꾸몄다. 왼편은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였고, 오른쪽은 당겨 여는 문이었는데 입구에 김석문이 서 있었다.
박노익을 발견한 김석문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그 녀석, 참.’
다른 건 몰라도 김석문까지 얻는 걸 보면 조태완이 인복 하나는 타고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정영권의 앞으로 뛰어들어 회칼의 날을 잡고 버텼던 사건 이후로 김석문의 이름 석 자가 전국에 휘날렸다.
그뿐이냐.
호남의 일빳다 깡패라는 유충일이 조성호만큼이나 예뻐하는 동생이 되었고, 보스의 친위대라는 최치곤이 강성태의 일정을 알려 주는 위치가 되었다.
“그거 이리 주고, 여기에서 기다려.”
“예, 형님.”
문기주에게서 쇼핑백을 받은 박노익은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형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나?
밥 대신 돌덩이를 처먹나 싶을 정도로 김석문은 태도마저 듬직하게 바뀌었다.
“형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형님.”
김정훈을 모를 텐데도 희한할 만큼 김석문은 점점 녀석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었다. 김석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박노익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어서 와.”
박노익은 일반 덩치들처럼 상체를 깊게 숙이지 않는다. 건방진 게 아니라 조태완이 그 정도로 인정하는 위치에 있다는 의미였다.
“이거 받으십시오.”
“뭐야?”
박노익이 건넨 쇼핑백을 열어 본 조태완이 멋쩍은, 그러나 반가운 표정으로 웃었다.
“자네가 왜 이런 걸 사?”
“제 나이에 조카를 얻는 게 어디 쉽습니까?”
“뭐 그런 소리를…….”
이번 웃음은 쑥스러움이 묻었다. 그러면서도 조태완은 앙증맞은 아기 옷을 들고서 헤벌쭉 웃었다.
“이거 저기 놔둬.”
“예, 형님.”
덩치 한 명이 홍차 달인 물을 가져오면서 기쁨의 시간이 지났다.
“무슨 일이냐?”
“안동에 있는 작은 조직 하나가 교창이에게 연락했답니다, 형님.”
“또?”
조태완이 이렇게 반응할 정도로 박노익의 보고는 아예 일상이었다.
“조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놈들은 모두 줄 서서 오는 모양새라 저도 좀 기가 막힙니다.”
“그것참. 처음에 보스의 의견을 들을 때는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방식이라고 여겼거든? 그런데 그게 이렇게 돌아오네.”
“숙소 생활비, 급여, 업소 개설, 거기에 출연진까지 밀어주는데 어떤 조직이 싫다 하겠습니까? 동생들 삥 뜯는 양아치 새끼들이 툴툴대나 본데 행사장에서 사람대접 못 받으니까 하나둘 알아서 꺾이는 모양입니다.”
박노익의 말에 조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우리 보스가 정한 방식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파한 방식이라는 거 아십니까?”
“뭐?”
박노익이 건넨 질문에 홍차 물을 마시던 조태완이 얼른 잔을 내려놓았다.
“이슬람이라는 종교 말입니다. 어떤 지역이든 점령하면 독립성 인정해 주고, 세금 깎아 주고, 거기에 지원도 해 줬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고개 숙이는 영주가 늘면서 이슬람이 급속도로 퍼졌답니다.”
“그런 건 어디에서 들었어?”
“상장사 마귀 새끼들이 해 준 말입니다.”
“음.”
새삼 깨달았다는 것처럼 조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앞쪽 창으로 돌렸다. 박노익, 김석문, 그 안에 함께 있던 다른 덩치들 모두 알았다. 강성태가 그리워서 먼 곳을 돌아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언제 온다고 했었지?”
“상황 봐서 정한다고 했는데 전화라도 해 볼까요?”
“일도 없는데 괜히 바쁜 보스 귀찮게 할 필요 있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태완의 눈은 ‘얼른 해 봐.’라는 의미를 담은 채 빛나고 있었다.
***
강성태는 천중명을 처음 보았다.
“워낙 이름을 들어서 아는 사람 같습니다.”
접견실로 들어선 천중명이 손을 내밀었고, 강성태가 예의를 잃지 않은 자세로 마주 잡았다.
이 양반은 뭐지?
손을 마주 잡은 뒤에 강성태가 시선을 들자, 천중명이 빙그레 웃었다.
걸어올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룹의 회장치고 이상할 정도로 단단한 느낌이었는데, 막상 손을 마주 잡는 순간에는 용병 회사의 경력 오래된 임원을 마주한 게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들었다.
손은 놓아야 하니까.
의아해하는 강성태를 보며 곽대출 부회장이 기특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조금 수상하기는 했다. 다음은 은선곤을 소개할 차례였다.
“이쪽은 은선곤 실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천중명입니다.”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닿았습니다. 멕시코 프로젝트 한국 컨소시엄의 실장을 맡은 은선곤입니다.”
은선곤이 정중하게 고개 숙였고, 천중명은 기다렸던 동생을 만난 형처럼 손을 내밀었다.
강성태와 은선곤의 인사가 끝난 다음이었다.
“멕시코에서 여기까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 박승양이 십조 원 넘게 굴리는 게 누구 덕분인데 이깟 길을 마다하겠습니까? 제가 멕시코도 돌아보았고, 오며 가며 여기 은 실장에게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천중명의 짧은 인사에 외우고 있었나 싶을 만큼 정신없는 박승양의 대꾸가 삽시간에 튀어나왔다.
이 대목에서 동화가 나오겠지?
은선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때였다.
“인사들 하셨으니 이제 앉아서 미숫가루 드시죠.”
은선곤의 예상대로 꿈틀대던 박승양의 입을 곽대출이 틀어막았다.
음료를 권하고, 가볍게 마시느라 잠시 시간이 흘렀다.
“강성태 회장. 기분 언짢겠지만, 그룹의 생리상 우리 강 회장의 과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양팔을 1인용 소파의 팔걸이에 올린 천중명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특별한 경력을 지니고 있던데 무엇보다 내 시선을 끈 건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강성태는 시선을 준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박승양마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는 건 뜻밖이었다.
“해적을 옹호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해적이 왜 생겼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기록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작전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한 게 전부입니다.”
솔직한 강성태의 대꾸가 나쁘지 않은 모양으로 천중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소말리아는 어업으로 살아가는 나라였습니다. 힘겨운 나라라 멀리 나가기는 어렵고, 대부분 인근 연안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지요. 1인당 소득이 100불 근처라면 상황이 이해되겠죠?”
“대략 알 거 같습니다.”
“이곳에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그걸 노렸지요. 톤당 천 달러 정도 하는 산업 폐기물을 소말리아 인근 바다에 버리는 대신 톤당 3달러를 주었습니다.”
이게 말이 돼?
박승양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눈가를 좁히는 강성태와 달리 놀란 얼굴로 곽대출을 돌아보고 있었다.
“해안 근처는 오염돼서 고기가 없고, 각종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멀리 나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규모 어선이 불법 조업으로 소말리아 어부들을 밀어냈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게 선박 납치였지요. 무기는 얼마든지 구하는 나라니까.”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말리아의 해적 소탕 작전에 나섰나?
어쩌면 질책처럼 들릴 수 있는 내용을 천중명은 전혀 불쾌하지 않도록 덤덤하게 풀어냈다.
“산업 폐기물은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지경은 소말리아에서 산업 폐기물 처리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해안가를 정비할 거고, 우리나라 어선을 포함한 불법 조업을 막을 계획입니다.”
이쯤에서 내용이 나오겠지?
“정부군, 반군과도 협상을 마쳤습니다. 문제는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약물입니다. 말했듯이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조차 없습니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 해도 그런 이들에게 약을 공급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거지요.”
“회장님께서는 제가 그걸 막았으면 하시는 겁니까?”
대답 대신 천중명은 의지를 전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에서 이름을 떨친다는 조직들이 연결돼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뇌부야 용병 회사와 계약해 틀어막는다 해도, 저 아래 하부 조직은 그룹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였다.
적당하게 인사하고, 덕담만 나누고 헤어지지는 않으리라 짐작했지만, 앉기 무섭게 이런 내용이 나오리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나는 문제를 던졌다. 남은 건 너의 결정이고.’
날카로운데 덤덤하고, 강인한데 부드러운, 언젠가 나이가 들면 천중명과 같은 저런 눈을 지니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강성태는 먼저 떠올렸다.
“회장님. 왜 꼭 소말리아입니까?”
“흐음.”
강성태의 질문에 천중명은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이곳은 바다에서 얻지 못하면 죽음밖에 안 남는 곳입니다. 그런 곳을 유럽과 세계 각국의 어선들이 난도질했습니다. 이들에게도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룹 회장이 저런 식으로 계산해도 되는 건가?
강성태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가볍게 미소지은 천중명이 시선을 돌렸다.
“은선곤 실장이라면 내 말을 좀 더 설명해 줄 것 같은데, 어때요?”
“지경그룹은 지금껏 콩고민주공화국의 반둔두 개발 사업에서 성과를 이뤘습니다. 공항이 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물류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독점적인 항만을 확보해야 하고, 그 장소로 소말리아를 택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항만은 그렇다 치고, 그 많은 장소 중에 특별히 소말리아인 이유는?”
“우선 해적에 몸담은 인원을 바른길로 이끈다는 명분을 지닐 수 있고, 다음으로 산업 폐기물을 버리던 유럽의 추악한 일이 알려지면 곤란할 나라들이 조용하게 묵인하리라는 이점이 있으며…….”
강성태가 살며시 돌려본 앞에서 천중명은 직전과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사람에 대해 욕심이 있다더니…….’
그렇다고 천중명이 대단한 시계나 보석을 보는 것처럼 탐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은선곤은 어디까지 성장할까?’ 내지는 ‘내가 지원한다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정도의 기특한 표정이었다.
“농사조차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지만, 관광지로 개발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말리아 해안을 지나는 상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홍보 효과를 덤으로 얻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멕시코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조사했고, 판단한 내용입니까?”
“질문하셔서 대답은 했으나 부족했습니다, 회장님.”
“강명그룹 정세원 회장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겠어.”
대화의 끝에서 천중명이 엉뚱한 평가를 내렸고, 은선곤은 대꾸 없이 고개만 숙였다. 강성태는 모르는 내막을 천중명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선곤을 좀 더 바라보던 천중명이 시선을 가져왔다.
“내용은 됐고, 남은 건 강성태 회장의 판단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예, 회장님.”
“만약 우리 그룹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비용과 지원 등도 함께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말끝에서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천중명이 곽대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성태 회장이 나서면 지역의 안내와 통역에 우리 쪽 직원과 안전 요원을 파견하겠소. 혹시 도깨비라고 들어 보셨나?”
“죄송하지만 처음 듣습니다.”
“그래?”
대화에 나선 곽대출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꺼덕거렸다.
***
2층의 사무실로 들어선 이용우는 두 자루의 권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총기 수집상 되려고 했냐?”
“그럼 이걸 들이미는데 그냥 죽어?”
독한 훈련들을 함께 견뎌 왔던 사이고, 그 뒤에는 워낙 살벌한 위기들을 뚫고 살아온 요원들답게 박중상과 이용우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커피 드십시오.”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한 정보원 조기영을 배려한 농담이기도 했다. 서른 후반으로 몸집이 작은 체형의 그가 머그잔을 내려놓고는 섬뜩하다는 표정으로 권총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막말로 정보국마다 우리 같은 블랙의 소재를 대강은 파악하고 있잖습니까? 특별한 정보를 얻은 게 있어야 짐작이라도 할 텐데 대뜸 특수 경찰이 달려드는 데다 경찰특공대까지 몰려드니…….”
당최 모르겠다는 투로 조기영은 고개마저 저었다. 하기는, 특별한 정보가 있었다면 이런 소란이 있기 전에 이미 보고했겠다.
“구조 요청은요? 특수 경찰이 은밀하게 다가왔을 텐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술라이만 이븐 니아지라는 정보원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 새끼, 참.”
“왜? 뭐 있어?”
대뜸 욕을 뱉어 내는 이용우를 박중상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세 발 갈겨 준 놈.”
“말을 말아야지.”
박중상은 기가 막힌 눈치고, 조기영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느닷없이 체포한다고 몰려든 것도 이해 안 되고, 총질까지 한 상태에서 없던 일로 하자는 건 말이 안 되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 뒤에 박중상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외부 활동이나 거래한 내용이 있습니까?”
“명색이 커피 중개상입니다. 당연하게 한국으로 보낼 커피를 매입했는데…….”
이용우의 질문에 답하던 조기영이 한쪽에 쌓인 상자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조기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