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30)
711화 특별한 경고입니까? (2)
나무로 된 문을 연 요원 두 명이 안쪽에 손을 잡고 선 다음이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흰색 머리칼을 늘어트린 문바키가 들어서서 기다란 테이블의 끝에 앉았다.
왼편에 네 명, 오른쪽에 세 명, 모두 일곱 명의 정보총국 간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리는 문바키에 집중했다.
“최근에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의 정보실에 한 대 얻어맞았다.”
냉정한 음성으로 입을 연 문바키는 앉아 있는 간부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감시 위성과 요원의 숫자, 1년에 사용하는 경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찾아 달라는 정보를 요구했으니 그 정도는 인정하겠다.”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냉랭한 표정으로 문바키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정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보총국이 모든 능력을 동원했는데도 결과가 없는 건, 총국장인 내 성격을 시험하기 위해서냐, 아니면 우리 요원들에게 사람 하나 찾을 능력이 없어서냐?”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른쪽 가장 근처에 앉은 간부를 향해 문바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런 뒤에 계속하라는 것처럼 턱으로 그를 가리켰다.
“평화유지군 정보실 미스터 김의 의견을 받아서 놓치고 있던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투로 한숨을 내쉰 문바키가 간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감시 영상으로 확보한 쥐의 동선입니다. 영상과 함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안을 내놓은 간부가 앞쪽의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문바키의 정면 벽에서 화면이 길게 내려왔고, 맨홀에서 고개를 내민 쥐의 머리가 커다랗게 피어났다. 설명을 할 만도 한데 입을 다문 간부는 도로 구석이나 혹은 더러운 박스 틈에 몰려 있는 쥐 떼의 사진을 연속해서 화면에 띄웠다.
“지금부터 유의해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간부가 버튼을 누르자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도로가 멀찍이 보였고, 그 위로 깨알처럼 촘촘한 점들이 박혀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붉은색 점들이 쥐 떼입니다. 또한, 좀 더 커다란 파란색은 위장한 우리 요원들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간부가 버튼을 누르면서 같은 장소의 화면이 올라왔다.
“보시다시피 파란색 우리 요원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쥐의 분포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뉴욕이 쥐 떼를 퇴치하기 위해 직원을 구한다던데 거기에 지원할 생각은 아닐 테고, 저 변화가 의미하는 게 뭐지?”
“시간대별로 특정 구역에서 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대는 CIA 국장 칼튼 숀이 바로 이 부분, 그의 사무실에 들어간 직후 혹은 10분 뒤의 영상입니다.”
레이저로 건물을 가리키는 간부 앞에서 문바키는 깍지 낀 손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지하를 통해 이동할지 모른다는 건 우리도 예상하지 않았나?”
“기존에 있던 하수구를 확인했었습니다만, CIA에서 비밀리에 터널을 뚫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상업 위성 두 곳을 동원했습니다.”
“우리도 있는데 왜?”
“CIA가 역으로 우리를 감시할 수 있다는 점과 주변국들의 감시를 위해 러시아가 수시로 상업 위성을 동원한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질문에 답한 간부가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같은 장소에서 마치 엑스레이 투시기로 찍은 듯한 영상이 피어났다.
“지하에 묻힌 광물을 파악하는 상업 위성 사진입니다. 이곳을 보시면 기다랗게 선이 이어져 있습니다.”
“칼튼 숀이 저곳을 이용했다?”
“영상 하나를 더 보시겠습니다.”
간부가 다시금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장소를 확인하기 어려운 엑스레이 영상이 올라왔다.
“여기 보이시는 건물에서 터널로 추정되는 선이 이곳 하수구로 연결되었습니다.”
“저 건물이 혹시?”
“칼튼 숀이 누군가를 만났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입니다.”
“후-.”
기다란 숨을 내쉰 문바키가 상체를 들고는 간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쥐 떼가 느닷없이 늘어난 건 알았다. 하지만, 그 구역을 지난 칼튼 숀이 새로운 터널로 움직였다는 가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엄청난 장비와 비용을 들이고 결국 창의력이 부족했다는 건가?”
“이번 추적을 통해 우리가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평가해 주십시오.”
최근 정보총국은 유능한 요원들을 꽤 잃었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경력을 생각해 넘어갈 만도 했는데, 총국장 문바키를 납치해 세뇌하려던 시도여서 누구도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했다.
유능했지만, 적과 손을 잡았던 요원들을 엄청나게 제거한 후유증으로 생각해서 문바키와 간부 모두 그 부분을 더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CIA와 우리의 대결쯤 되겠군. 오늘부터 칼튼 숀의 모든 행동을 1분 단위로 끊어서 보고해. 그가 먹은 샐러드에 들어 있는 채소와 드레싱의 종류부터 화장실을 사용한 횟수, 집에서 나설 때 부인과 키스를 했는지 단순하게 인사만 했는지까지 내가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알겠습니다.”
“프랑스의 안전과 영광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보총국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 의심스러운 부분이 발생하면 먼저 확인하고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이미 노숙인, 나이 든 부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행인, 청소부, 아이스크림 판매상 등으로 위장한 정보총국 요원들이 칼튼 숀의 동선 주변에 죽쳤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감시 위성이 모조리 달려든 상황이었다.
다짐처럼 간부들을 돌아본 문바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요원 두 명이 그의 뒤를 지키며 따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나직하게 몸을 떨었다.
“문바키입니다.”
– 바실리다.
전화 응대가 지랄 같다며 툴툴대던 강찬이 떠올라 문바키는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달았다.
– 언제까지 우리 위성을 독차지할 셈이지?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돌려줘야지 않나?
“몸통을 찾는 일입니다, 바실리. 이제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조이면 몸통을 찾을 겁니다.”
– 칼튼 숀을 먼저 제거하는 게 빠를 거 같은데?
“칼튼 숀은 절대 안드레이를 홀로 세뇌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안드레이를 망친 놈을 그대로 두실 겁니까?”
– 흥! 음흉한 프랑스인들과 오래 지내더니 입이 간교해졌군. 사흘이다, 문바키. 그 이후로 감시 위성의 절반은 우리가 운영하겠다.
“그 안에 기쁜 소식이 있을 겁니다.”
– 음흉한 프랑스인의 말을 믿느니 굶주린 흑곰과 악수를 나누는 쪽을 택하겠다. 아무튼, 사흘이다, 문바키.
뚝 끊긴 스마트폰의 액정을 내려다보며 문바키는 다시금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렸다.
***
천중명과 곽대출, 도깨비 대원들이 흥미롭게 바라보는 앞이었다. 강성태와 키란, 구르카 용병들은 먼저 벨트를 집었다. 서부 영화에서 권총과 탄알이 가득 꽂힌 벨트를 차는 무법자처럼 벨트를 건 다음이었다.
권총과 대검, 탄창을 허리에 건 강성태는 발목에도 하나씩 더 걸었다. 특수부대마다 복장과 무기가 다르다. 그리고 그런 특징을 알아본다면 무장하는 사람의 출신을 대강 짐작하게 된다.
방탄조끼를 입은 강성태는 수류탄과 탄창을 다시 조끼에 꽂았고, 이어서 두건을 집어서 머리에 뒤집어썼다. 마지막으로 강성태는 신형 AK 소총을 들어 탄창을 확인했고 노리쇠에 손을 걸었다.
철컥! 철커덕!
소총을 품듯이 안은 강성태가 총구를 아래로 내린 직후에 키란과 구르카 용병들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무장을 마쳤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천중명이 의미가 분명한 눈짓을 던졌다.
“이쪽으로 모이지?”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낸 곽대출이 강성태 앞으로 움직인 뒤에 널따랗게 펼쳤다.
“우리 위치가 이곳.”
검지로 위치를 가리킨 곽대출이 시선을 주었다.
“우리말을 알아듣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괜히 염려했네. 그럼 다시 시작하지. 우리 위치가 이곳이다. 체첸 용병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은 이곳이고, 검은 미망인의 위치는 여기와 여기, 두 곳이다.”
위치를 이해하기 쉽게 곽대출은 지도에 그려진 도로를 따라 검지를 움직였다.
“아무리 내전이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외부인인 우리가 총격전을 벌이는 걸 이해해 주지는 않는다. 또 하나, 교전 중에 이곳 주민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문제가 커진다. 자칫하면 시아파나 수니파가 끼어들 명분이 될 수도 있고.”
강성태는 빠르게 키란에게 시선을 주었고,
‘모두 알아들었습니다.’
키란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아들었으면 됐다. 혹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동료가 있더라도 키란이 설명해 줄 거라 그렇다.
“목표 지점까지 이동과 철수를 우리 직원이 도울 텐데, 만약 엉뚱한 부상자나 사망자가 생기면 우선 작전을 중단하자. 이해하지?”
“놈들 근처에 민간인이 많이 거주합니까?”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놈들을 돕는 현지인이 분명히 있어.”
“그렇다면 반군이 끼어들 명분이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싸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강성태의 질문과 시선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곽대출이 입을 열었다.
“저놈들의 목표가 우리 마리그 기지고, 이미 앞에 보냈던 놈들이 저렇게 잡혔으니까 분명 괴물로 변했을 거다. 그러니 반군이라고 해도 가까이 있지는 못해.”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이거.”
분명하게 답을 준 곽대출이 몸을 돌려 물이 담긴 팩을 받아서 들어 보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괴물로 변한 상태라면 이게 가장 효과가 커.”
설명을 마친 곽대출이 마개를 뽑으면서 움직여서는 묶여 있는 놈의 머리에 물총처럼 기다랗게 물을 뿜었다.
“끄아-아.”
“개새끼가?”
퍼억! 퍽! 퍼어-억! 퍽!
설명하는 동안은 넉넉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매서운 발길질이었다.
“부회장.”
“후-.”
천중명이 나직하게 부르고서야 곽대출은 몸을 돌렸다.
“이런 식이야. 이놈들을 완벽하게 해결하려면 목을 슥. 알지?”
손날로 목을 가로 그은 곽대출이 팩을 담아 놓은 상자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검은 미망인은요?”
“그건 우리에게 맡겨.”
목표 지점까지 이동과 철수, 무기와 장비, 물이 담긴 팩, 그 정도 지원했으니 검은 미망인만큼은 양보하라는 요구가 강렬하게 빛나는 곽대출의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민간인이 다치거나 죽어서 일이 번지면 바로 철수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을 하는 강성태를 향해 곽대출이 씨익 웃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매와 볼에 붙은 흉터가 곧 있을 처절한 싸움에 대한 흥분과 독기를 담은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지루하게 기다리던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손에서 울었다.
“알로?”
– 문바키입니다, 대장. 실마리를 찾은 거 같습니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이어진 대화에서 문바키는 회의를 통해 확인한 내용을 빠르게 털어놓았다.
쥐새끼도 아닌데, 지하에 터널을 팠어?
피식 웃은 강찬은 고개를 돌려 한남대교 아래로 펼쳐진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문바키. CIA의 눈을 피해서 뉴욕으로 이동할 방법이 필요해.”
– CIA 역시 온 힘을 다해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서 인원이 많으면 위험합니다.
“나와 제라르를 포함해서 열 명 정도.”
– 그 정도 숫자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장? 언제까지 터널에서 대기할 수 없으니 칼튼 숀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마침 적당한 인물과 이유가 있지.”
누군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 준비되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멈칫했던 문바키가 궁금증을 삼키고 전화를 마쳤다.
개새끼, 아니 쥐새끼.
지금까지 맞으면서 참았던 걸 한 번에 갚아 주마.
통화를 마친 강찬은 옆자리에 탄 최종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바키와 프랑스어로 통화하는 바람에 최종일을 비롯해 우희승과 이두희는 내용을 알지 못했다.
“휴가받은 대원들 스무 명이 필요해. 내일 오전에 보면 좋겠는데 놈들이 감시할지 모르니까 남산 호텔 객실에서 보자.”
“스무 명입니까?”
“일본에 열 명, 미국에 열 명.”
“사무실에 도착하는 대로 연락하겠습니다.”
답을 하는 최종일의 볼이 씰룩였다.
대테러팀이 해체될 때의 분노와 억울함, 엉망이 된 국가정보원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안의 울분이 한꺼번에 올라온 눈치였다.
이해한다. 저 감정을.
신사동 사거리를 통과한 승용차가 방향을 틀 때, 강찬은 다시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코드 레드를 발령하겠습니다.”
– 코드 레드입니까, 부원장님?
“그렇습니다.”
이제 반격인가?
수준도 안 되는 원장 때문에 굴욕적인 망신을 당했고, 다른 나라 정보국마저 인정하던 베테랑들이 해직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국가정보원이 제 모습을 찾는다.
– 타깃을 확인하겠습니다, 부원장님.
“일본 정보국 국장과 CIA 국장입니다.”
통화라는 게 희한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챌 때가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김형정 역시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처럼 감정을 누르기 위해 입술과 눈에 힘을 꾹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본 정보국 국장의 동선을 파악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CIA 국장은 어떻게 할까요?
“정보총국의 협조를 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시하면 다예가 알아낸 인물들을 모조리 체포했으면 합니다.”
– 증거가 필요합니다, 부원장님.
“일본 정보국과 내통해서 국내에 감염을 퍼트리려 한 혐의입니다. 하동선이 털어놓은 내용이니까 확인은 다예와 통화하시면 됩니다.”
–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뭐가 고마운 거지?
하기는, 확실한 한 방이 나올 때를 위해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구부리며 버틴 탓에 강찬마저 관절염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러니 김형정과 요원들이야 말해 뭐 하겠나.
삼성동 건물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지금껏 지루할 정도로 얌전하던 심장이 느닷없이 뛰었다.
염병할. 쉽게 가는 법이 없어!
두근두근. 두근두근.
저쪽 목숨을 노리는 거라면 우리도 죽음을 각오해야겠지?
알지 못하는 위험이 다가온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숨을 크게 들이마신 강찬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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