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36)
717화 한편이라면서요? (2)
강찬이 떠난 뒤에 이용우는 오마르, 자밀라와 함께 시내로 나섰다. 물론, 두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명분으로 박중상도 따라붙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통신사 대리점이었다.
무슨 조합이 이래?
자밀라의 미모, 점잖게 생긴 오마르, 깡패인가 싶은 박중상, 뻔뻔한 인상에 아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용우, 직원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을 상담하던 중년 손님까지 신기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스마트폰 좀 보여 줘요. 너무 신형 말고.”
“중저가를 찾으시는 모양인데 얼마까지 생각하세요?”
“후-.”
진열장에 팔을 걸친 이용우는 고개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도 좀 먹고삽시다. 무슨 말인지 알 테니까 군소리하지 않을게. 적당한 거로 그냥 주쇼.”
말끝에서 이용우는 박중상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이후는 순조로웠다.
“이런 스마트폰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라크에서는 스마트폰이 꽤 귀하고, 한국에서의 중저가 수준만 돼도 소위 먹어주는 기종이 된다.
“한국 번호로 받은 거니까 앞으로 이걸 써.”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스마트폰을 바꿔서 도청의 걱정을 덜어낸 이용우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세상에!”
역시나 중저가 브랜드 매장을 위주로 돌았는데, 오마르와 자밀라의 감동은 그칠 줄 몰랐다.
“이 옷 어떠세요? 너무너무 잘 어울리실 거예요.”
매장 직원의 호들갑이 귀찮기는 했지만, 이용우는 묵묵하게 옷을 갈아입는 오마르와 자밀라를 지켜보았다.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점잖은 바지와 셔츠, 재킷을 두른 오마르와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친 자밀라는 백화점에서도 단연 시선을 끌었다.
“두 분은 안 사요?”
“알잖아? 좋은 옷 사 봐야 우리는 금방 찢어져. 적당히 샀으면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미안해하는 자밀라와 오마르를 데리고 이용우는 또 백화점의 식당가로 향했다. 확실히 자밀라는 시선을 끈다.
이국적인 외모도 그렇지만, 커다란 눈과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속눈썹, 화보에서 툭 튀어나온 듯 매력적인 인상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느낌이었다. 식당가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불고기와 파전, 공깃밥과 냉면을 나누어 먹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시선이 자밀라와 이용우에게 달려들었다.
‘혹시 속아서 한국에 왔나? 아니면 나쁜 가이드에게 걸린 거 아냐?’
자밀라의 미모에 끌려 달려들었던 시선이 이용우에게 도착해서는 비슷한 의문을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선 따위 상관없이 배를 채운 이용우는 마지막으로 빙수 전문점에 들러서 팥빙수와 망고 빙수를 주문했다. 박중상이 주문한 빙수를 가지러 간 뒤였다.
“뭐예요?”
“뭐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요. 호텔에 찾아왔던 분이 뭔가 지시한 거잖아요? 혼자 모가디슈에 가는 거예요?”
내내 한국의 여유롭고 풍요로운 모습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던 자밀라가 이제는 알아야겠다는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자! 한국을 대표하는 빙수입니다.”
쟁반에 빙수 두 그릇을 들고 돌아온 박중상이 이용우와 자밀라를 번갈아 보고는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어. 허락도 받아야 하고.”
짧게 말한 이용우는 오마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밀라와 함께 모가디슈에 가려고 합니다. 둘만 갑니다. 임무가 있어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먼저 가겠다고 했잖아요?”
“자밀라?”
말끝을 붙들고 나서는 자밀라를 이용우가 경고하듯 나직하게 불렀다. 그런 뒤에 다시 오마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빠?”
“자밀라. 이건 나와 미스터 리가 나누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오마르가 경고하듯 자밀라를 눌렀고, 이어서 답변을 바라는 시선으로 이용우를 찾았다.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 뒤에 저 아이의 삶은 누가, 어떻게 보장하나?”
“치료와 경제적인 부분의 보상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과 국가정보원에서 해 줄 겁니다.”
“그렇군.”
마치 자밀라가 커다란 부상을 입었거나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은 것처럼 오마르는 표정이 무거웠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고소한 콩가루와 달콤한 망고를 수북하게 올려놓은 빙수 두 그릇이 품고 있던 냉기를 모두 뿌려 댄 것처럼 테이블 주변에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후-.”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시선을 떨구고 있던 오마르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가족의 명예를 핑계로 여자의 삶을 짓밟는 세상이 싫어서 목숨을 잃더라도 저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었네.”
비장한 음성으로 심정을 토해 내는 오마르의 모습을 자밀라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라크에 남은 채로 저 아이 혼자 이곳에 왔다면 원하는 대로 했겠지? 이라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소중한 딸의 선택을 존중하네. 그러니 저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함께 가게.”
차마 자밀라를 돌아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용우를 따라가겠다는 선택을 존중한다던 오마르가 빙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저기, 이게 녹는 거라서 이제는….”
눈치를 살피던 박중상이 숟가락을 내밀자 오마르가 말없이 받았다. 그 직후였다.
“나는 의사라는 지위와 내가 쌓은 조그만 부, 명예, 모두 다 저 아이를 위해 버렸네. 내가 원하는 게 저 아이의 행복 하나여서 그랬네. 그리고 지금 저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미스터 리, 자네고.”
“감사합니다.”
뭐야? 무슨 대화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달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박중상이 고개를 돌렸을 때, 자밀라가 커다란 눈으로 이용우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국장실로 들어선 사사키 요시하라는 거대해 보이는 나무 책상으로 돌아가 안쪽에 앉았다.
“명예롭게 자폭이라도 하든가! 갇힌 상태로 죽어 버리면 뭔가 노렸다고 자백하는 꼴이잖나!”
분노 섞인 원망을 쏟아 내는 그의 왼편에 욱일기, 오른쪽에는 일본 정보국 CIRO(내각정보조사실)의 깃발이 서 있었고, 벽을 타고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투구와 갑옷, 일본도 세 자루가 걸려 있었다.
“어쩐다?”
시선을 돌린 사사키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일본도를 노려볼 때였다.
따라라랑. 따라라랑.
책상에 놓은 그의 스마트폰이 벨 소리를 요란하게 터트렸다. 고개를 빼서 액정을 확인한 사사키는 오른손 검지를 길게 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사키 요시하라요.”
– 국장? 칼튼 숀이오.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돼서 유감이오만, 한국에 침투했던 중국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거나 희생됐소.
“알고 있습니다.”
이를 꽉 깨문 것처럼 사사키는 씹어서 뱉는 음성으로 대꾸를 던졌다. 알다 뿐이냐? 머저리 같은 중국 요원들 때문에 당장 사사키가 강찬에게 찍힌 꼴이 됐다.
– 그런 점에서 일본의 입국 통제는 참 적절한 대책이었소.
“하아- 참. 칼튼 숀 국장님.”
– 말씀하시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 예멘에 버티면서 광범위하게 번질 거라던 감염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지경그룹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물과 경제권을 움켜쥐고 있지요.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대책이 있으십니까?”
–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을 텐데요?
이런 야비한….
칼튼 숀의 질문을 받은 사사키 요시하라는 입술을 뒤틀며 볼을 씰룩였다.
“말씀대로 중국 요원들이 체포되거나 죽었고, 우리에게 협조하던 한국 내 인물들이 긴급 체포되었으니 조만간 무슈 강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 그렇겠지요.
앞에 앉아 있다면 일본도를 뽑아 목을 뎅겅 잘랐을 만큼 뻔뻔하게 들리는 칼튼 숀의 대꾸에 사사키는 다시금 볼을 씰룩였다.
“지금껏 국장님이 바라는 대로 협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전화한 거요. 히놀 사키코 가와구치와 하릴 하지즈를 던져 줄 생각입니다.
워낙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에 사사키는 반문조차 내놓지 못했다.
– 그래서 말인데, 사사키 국장이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소.
“나는 아직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 무슈 강을 직접 상대할 자신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언젠가는 뱀보다 사악한 이 인간의 이마에 총알구멍이 뚫린 꼴을 보고 만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관 위에 하얀 국화를 올려놓는다. 짧은 상상을 펼친 끝에서 사사키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히놀 사키코와 하릴 하지즈를 내놓는다고 무슈 강이 다른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 시간을 벌면 됩니다. 길지 않습니다.
“우선 고민하겠습니다.”
– 아직 여유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렇게 하시지요.
사사키의 반응이 못마땅하다는 대꾸와 함께 통화가 뚝 끊겼다.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은 사사키는 욱일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국인이 감정에 따라 약속 따위 헌신짝처럼 뒤집는다면, 미국인은 이익을 위해 태도를 바꾼다. 그 바람에 정직하고 강직한 일본인은 늘 당하기만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전 정보국 수장 가와구치였다.
어차피 막판에 몰린 상황이라면 미국의 이익을 미끼로 감정에 휘둘리는 한국을 유혹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 아닐까?
“무슈 강! 무슈 강! 무슈 강!”
그 인간만 죽일 수 있다면 히놀 사키코쯤 백 명이라도 던져 줄….
가만?
이를 갈며 강찬의 이름을 외치던 사사키 요시하라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일본도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런 뒤에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히죽 웃었다.
***
안중을 벗어난 강찬은 그대로 국가정보원 건물로 향했다.
정문을 지나 커다랗게 도는 회전 도로, 중앙에 선 돌비석, 국가정보원의 외형은 변함이 없었다. 건물 앞에서 내린 강찬은 제라르, 최종일 일행과 함께 곧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조사실이 있는 지하 1층의 출입문 앞에서였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출입 인가가 있어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대원이 앞을 막았다가 최종일이 보여 준 신분증을 확인하고서 비켜났다.
누구지?
확인하는 시선으로 강찬을 살피는 대원 앞에서 최종일이 문을 열어 주었다.
강찬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앞쪽에 깔린 유리와 녹음 시설, 테이블에 있는 마이크가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허은실과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요원이 따라 몸을 세웠다.
강찬은 앞쪽에 깔린 유리 너머의 공간에 시선을 주었다.
중앙에 있는 책상의 왼쪽에 마흔 중반의 남자가 있었고, 맞은편에 젊어 보이는 요원이 신분증을 걸고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동명 외교부 차관입니다.”
허은실이 짧게 이름과 직책을 알려 주었다.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 뒤에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저 인간도 맞았어?”
“체포 당시에 규정을 따지기는 했지만, 심하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광대뼈가 내려앉은 인간은?”
“치료가 먼저라 별관 2층에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허은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만나 보고 싶은데?”
“이쪽입니다.”
뜻밖이라는 듯 시선을 던졌던 허은실이 곧장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잠깐 보고 올 테니까 여기에 있어.’
제라르에게 시선을 준 강찬은 허은실을 따라 오른쪽 문을 통과했고, 짧은 복도를 거쳐 다시 조사실 문에 도착했다. 허은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 있던 요원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원하고 나가 있어.”
“예.”
무섭게 느껴지는 허은실이 젊어 보이는 강찬에게 공손하게 고개 숙이고 나가는 모습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처럼 이동명이 강찬을 올려다보았다.
“후-.”
허은실과 요원이 나간 뒤에 강찬은 이동명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몸을 옆으로 틀고서 다리를 꼬았다.
“믹스 커피 있으면 주라. 담배가 있으면 더 좋고.”
유리를 향해 강찬이 말을 전하자 곧바로 천장 구석에 달린 스피커에서 “예.” 하는 답이 나왔다.
정체가 뭐야?
더욱 궁금한 눈을 한 이동명이 강찬을 살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요원이 들어와 종이컵 두 개와 담배, 라이터를 놓고 나갔다.
찰칵.
“후우-.”
강찬은 먼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커피 마실래?”
반말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적응하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동명을 향해 강찬은 피식 웃었다. 그런 뒤에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종이컵을 내려놓은 강찬은 옆으로 앉은 자세에서 이동명을 향해 고개만 돌리고서 입을 열었다.
“당신 정도면 크게 아쉬운 거 없이 살잖아?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누리며 살 테고? 그런데 왜 일본 정보국과 손을 잡은 거지?”
“나는 그런 적 없소.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이렇게 감금하는 게 법에 위배된다는 건 알고나 하는 거요?”
어깨를 들썩인 강찬은 유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법에 위배된다는데?”
–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이적행위자, 혹은 동종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48시간 동안 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습니다.
피식 웃은 강찬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원장을 불러 주시오.”
“원장은 지금 예멘에 있어.”
“그럼 부원장이라도 만나게 해 주시오.”
“내가 부원장이야.”
뭐라고?
답을 해 달라는 것처럼, 혹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이동명이 검게 보이는 유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직후였다.
– 지금 계시는 분이 국가정보원 부원장님이십니다.
스피커를 통해 답이 나왔다.
‘말도 안 돼!’
다시금 강찬을 향해 돌아온 이동명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묻는다. 외교부 차관이 뭐가 부족해서 일본 정보국과 손을 잡은 거지?”
“나는 그런 적 없소. 그리고 변호사를 불러 주시오.”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 새끼가.
개만도 못한 새끼와 마주 앉아 있어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봉지 커피를 마시는데 입이 쓴 느낌이었다. 계속 상대하다가는 괜히 피투성이를 만드느라 기운을 쏟을 거 같은 예상에 강찬은 반쯤 남은 종이컵에 피우던 담배를 넣었다.
“둘 중 하나를 택해.”
“뭘 말이오?”
“매국노로 죽는 거, 아니면 그냥 죽는 거.”
뭐 이런 조건이?
강찬의 제안을 들은 이동명이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서 답을 하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