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37)
718화 한편이라면서요? (3)
이동명을 보며 피식 웃은 강찬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서 돌아앉았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해서 살아온 세월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거기에 온갖 살벌한 구덩이에서 악착같이 살아온 강찬의 강렬한 눈빛을 제대로 마주 보는 인간 몇 없다.
“예멘을 틀어막는 데 아까운 대원들이 꽤 많이 희생됐다. 그런 희생을 치르고도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 예멘에서 버티는 건 우리가 손을 떼면 감염된 사람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올 놈들이 있어서다.”
강찬의 눈빛에 완벽하게 눌린 모양으로 원장과 변호사를 찾던 이동명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감염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빤히 아는 사람들의 목을 내 손으로 잘라야 하는 지옥이 펼쳐진다. 그런 상황에서 외교부 차관이라는 인간이 항구를 열었다. 그것도 일본 정보국의 협조 요청에 따라서.”
“나라를 위한 일인 줄 알았지, 그런 목적인 줄은 몰랐소. 그리고 아무리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법에 의해 판결받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소.”
피식.
이동명을 보며 피식 웃은 강찬은 스마트폰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그런 뒤에 번호를 찾아서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두르르륵. 두르르륵.
짙은 침묵 사이를 뚫고 울리던 신호음이 뚝 잘렸고,
– 여보세요?
쇠판을 긁는 것처럼 걸걸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하동선 거기 있지?”
– 앞에 있소. 스피커폰으로 바꿀 테니까 통화하쇼.
하동선이 있다고?
그럼 예멘에 전화한 거야?
이동명이 스마트폰의 액정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 여보세요?
조심하는 하동선의 음성이 이동명이 내려다보는 스마트폰에서 울려 나왔다.
“발표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
– 들었고, 내용도 손에 들고 있소. 언제든 정하는 시간에 발표하겠소.
누가 들어도 발표를 간절하게 바라는 음성이었다.
강찬이 내용을 대강 정해 주기는 했지만, 도대체 김형정이 어떻게 작성해서 건넸기에 하동선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걸까?
당황하는 이동명을 향해 시선을 든 강찬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불만 없지?”
– 고맙소, 부원장. 이제부터 내 이 한 몸을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불사르겠소.
“불사를 거까지는 없고. 대신 오늘 체포한 인간들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묻고 싶은데? 무엇보다 증거를 내놓으라며 변호사를 찾으니까 여간 곤란한 게 아냐.”
강찬이 힐끔 이동명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 내게 그들과 나눈 통화와 만나서 나눈 대화를 녹음해 둔 파일이 있소.
기막힌 하동선의 고백이 있었다.
“파일의 위치는?”
– 내가 사용하는 원장실 책장에서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이라는 책을 꺼내 보시오. 그 중간에 USB로 넣어 두었소.
하동선이 녹음 파일의 위치를 토해 낸 직후였다.
“원장님? 이동명입니다! 지금 제가 불법으로 감금돼서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향해 상체를 숙인 이동명이 다급한 음성을 토해 냈다.
뭐라고 할래, 하동선?
강찬은 아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 외교부 차관이 조국을 배신했다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야. 쓸데없이 버텨서 고생하는 부원장과 직원들 힘들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모든 걸 밝힌 뒤에 죗값을 받아.
“원장님이 내게 먼저 접근하셨잖습니까?”
– 나는 국가정보원을 책임진 사람이다. 당연하게 일본 정보국에 매수돼서 조국을 팔아먹는 정부 고위직을 수사했고, 그 과정에서 이미 일본 정보국에 협조하던 일당을 파악했다.
“원장님이 어떻게…?”
말 참 잘해.
몰랐다면 강찬도 속았을 만큼 하동선은 숨도 안 쉬고 엄한 질책과 명분을 쏟아 냈다.
이것들 통화는 이 정도면 됐고.
“다예! 발표 준비는 어떻게 됐어?”
– 카메라로 촬영해서 본부장님에게 보내면 알 아지라와 CMN을 통해 속보로 내보내기로 했소.
“시작해.”
– 알았소. 끝나고 전화합시다.
지시를 전한 강찬은 검지를 뻗어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 뒤에 고개를 유리 방향으로 돌렸다.
“허은실.”
– 예, 부원장님.
“원장실에 가서 USB 찾아. 그리고 안에 담긴 통화와 면담 녹음 확인해서, 안보에 관한 내용을 제외한 모든 녹음을 오늘 체포한 인간들 실명과 함께 전부 기자들에게 배포해.”
– 알겠습니다.
허은실의 답이 천장 구석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쏟아진 다음이었다.
“부원장님? 제가 모든 걸 밝히겠습니다. 그러니 실명과 통화 내용만큼은 비밀로 해 주십시오.”
지랄은?
책상에 올린 양손을 마주 잡은 이동명을 강찬은 한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외교부 차관까지 연관됐다고 하면 국가적 망신이 됩니다. 그러니 제가 관련된 부분은 비밀로 해 주시고, 대신 원장님처럼 뭔가 할 일을 주십시오!”
내내 쥐새끼처럼 나라의 기둥을 갉아 대다가 막상 죽게 생기니까 이번에는 하동선처럼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던진 영웅으로 만들어 달란다. 이런 개새끼는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걸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제발! 부원장님!”
이동명이 간절하게 매달릴 때였다.
– USB 확보했습니다, 부원장님.
“부원장님! 저를 보고 사는 노부모와 처자식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스피커를 통해 허은실의 보고가 들어왔고, 그 직후에 이동명이 눈물마저 보이며 강찬에게 애원했다.
“하동선이 발표를 마치면 중국과 일본이 거짓이라고 우길 수 있어. 뒈진 놈들이 요원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며 항의할 거고. 그러니 우리 쪽에서 증거를 내놓아야지. 그게 너와 오늘 체포된 인간들이고.”
“뭐든 하겠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라도 쓰겠다는 것처럼 이동명이 다시금 책상 위에 올린 두 손을 꼭 잡았다.
“변호사와 의논해 봐.”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연락할 곳도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이런 새끼에게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
그런 사람 있잖나.
인상은 사나운데 속 깊은 정이 느껴지는 사람, 곽대출은 같은 편인 강성태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 주지 못해서 아쉬운 사람처럼 보였다.
모가디슈 외곽에 있는 창고형 단층 건물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물과 식사, 상처의 치료까지, 그사이 곽대출은 정말이지 살뜰하게 강성태와 키란, 구르카 용병들을 챙겨 주었다.
“더 필요한 건 없어?”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회장님. 붕대를 교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에이! 이런 상처에 자꾸 신경 쓰면 몸뚱이가 건방져져요.”
농담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적당히 막 대하는 게 좋아. 그래야 곪았다가는 이 사람이 아예 파내겠구나 싶어서 스스로 낫는다니까!”
곽대출의 눈빛을 보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나 본데요?”
“회장님이 직접 챙기신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강성태를 다독인 곽대출이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희생된 구르카 용병의 서류 때문이었다.
소말리아에서의 출국이야 지경그룹이 벌써 해결했지만, 한국의 공항에 제출할 서류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 건물은 원래 용도가 뭐였을까?
창고형 건물 안을 강성태가 돌아볼 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천중명이 도깨비 대원 두 명과 안으로 들어왔다.
강성태는 천중명의 손에 들린 A4 용지 크기의 종이봉투를 보았다. 서류 문제만 해결되면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출발하면 되겠지?
자리에서 일어선 강성태가 옆에 둔 가방을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강 회장.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다가온 천중명이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급한 연락이 와서.”
곽대출을 돌아보았던 강성태는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천중명에게 집중했다.
“내가 말한 분 있지? 괴물이라던.”
“알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작전을 펼칠 계획이라면서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어때?”
“작전이라면 혹시 여기 동료들까지 포함하는 겁니까?”
“그래야겠지.”
위치를 알고 달려와 기습을 해도 희생자가 나오는 게 작전이었다. 그런 면에서 느닷없이 협조를 요청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무리할 건 없어. 의견을 물어본 거니까.”
천중명이 넉넉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희생자가 나온 상황이라 동료들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마주한 천중명의 표정에 올라온 생각이 글로 써 놓은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제가 이대로 돌아가면 회장님과 부회장님, 여기 계신 분들만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괜찮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서운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가 봐도 강성태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내놓은 답이었다.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천중명의 뒤편에 선 곽대출을 찾았다. 그 역시 천중명이 말한 작전의 내용을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는, 계속 함께 있었으니 들을 틈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 줌 염려나 두려움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강성태가 부담 갖지 않기를 바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작전이 언제입니까?”
“괜찮다니까.”
“한편이라면서요? 회장님과 부회장님, 그리고 여기 계신 선배님들을 외면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잘 때마다 감성원 아저씨가 나와서 괴롭힐 겁니다. 언제 시작합니까, 작전?”
강성태의 당찬 대꾸를 모두 들었다.
천중명은 물론이고 곽대출과 도깨비 대원들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다.
“20시간 뒤에. 작전을 함께하겠다면, 희생된 구르카 대원을 우리가 준비한 비행 편으로 한국에 먼저 보내는 게 어때?”
“감사합니다.”
강성태가 답을 한 직후였다.
내내 말없이 지켜보던 곽대출이 씨익 웃었다.
왜 그럴까?
강성태는 웃는 곽대출의 모습이 어쩐지 감성원과 비슷하게 보였다.
***
인천 공항 3층 벤치에 앉은 이용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출국이다. 소말리아를 향해.
손에 든 탑승권과 여권으로 다리를 툭툭 내리치면서 이용우는 시선을 돌렸다.
정보원이나 요원의 첫 번째 자격 요건이 눈에 띄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당장 공항에서조차 시선을 당기는 자밀라는 아예 실격 수준이었다.
‘부원장님에게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강찬이 자밀라와 함께 움직이라고 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강찬을 떠올렸던 이용우는 믿음을 다지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오마르와 자밀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위험한 지역에 딸을 보내는 오마르는 지금이라도 가지 말라며 붙잡고 싶은 감정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딸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듯 억지로 만든 미소 아래 감정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외국에 나간 이용우를 외롭게 기다릴 부친 이춘섭도 저런 눈빛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입술을 뒤튼 이용우가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주머니에 넣어 둔 폴더폰이 몸을 떨었다.
“야? 아버지 아니냐?”
“몰라. 처음 보는 번호인데?”
누군가 하는 박중상의 표정 앞에서 이용우는 우선 폴더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용우? 나 강태산이다.
느닷없이 뭐야, 이 괴물이?
액정을 확인한 이용우는 폴더폰을 얼른 귀로 가져갔다.
“뭐냐?”
– 소말리아로 출발한다고 들었다.
“맞아.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 동철이 일 고맙다고.
“아이, 씨발.”
느닷없이 신동철의 미소와 그의 장례식, 홀로 남은 김옥자가 동시에 떠올라서 이용우는 대뜸 욕을 뱉었다.
– 변한 게 없냐, 너는? 그래도 부원장님이 이번 일에서 너 하나 건졌다고 하시더라.
“진짜로 그런 말씀을 하셨어?”
– 나는 너처럼 사기 안 치니까 믿어도 돼.
“야, 이 씨…!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해? 훈련받다가 배가 고파서 뱀 한 마리 빼돌린 걸 아직도 떠드냐?”
툴툴대는 이용우의 항변이 날아가기 무섭게 듣기 좋은 강태산의 웃음이 넘어왔다.
– 소말리아에 도착하면 택시 조심해.
그런 뒤에 건너온 강태산의 조언에 이용우는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 끊는다. 중상이에게 안부 전해 주라.
“너도 몸조심해.”
피식.
강태산 특유의 웃음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에이, 기분 나쁜 웃음은 여전하네!
그러면서 이용우는 이제야 강태산이 강찬을 흉내 내듯 웃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데 그렇게 받아?”
“태산이.”
“뭐? 강태산?”
이용우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주변을 돌아본 박중상이 급하게 시선을 가져왔다.
“예멘에 있다고 하지 않았냐?”
“도착하면 택시 조심하란다.”
“하우, 씨발. 습격이 있다는 거 아냐? 너 괜찮겠냐?”
“비행기 타기 직전인데 달라질 거 있냐? 그나저나 태산이도 움직이지 싶다.”
“그런 거 같지?”
출발 직전에 걸려 온 전화, 택시를 조심하라는 은어, 호텔에서 보여 주었던 의미심장한 강찬의 눈빛, 뭔가 엄청난 작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강찬만 해도 징그러운데 강태산까지?
“누군지는 몰라도 졸라 곤란해지겠네.”
두 사람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뱉은 이용우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