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38)
719화 당신이 원한 거 맞지? (1)
사사키 요시하라는 이러다가 분통이 터져 죽지 싶었다.
“미친 것도 아닐 테고,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카타르와 미국에서 연달아 정보가 날아드는데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이 긴급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국장실 전용 팩스 앞에 서 있던 사사키는 출력된 A4 용지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용에 집중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최근 일본과 중국의 정보국이 우리 대한민국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요원들을 파견했고, 그들을 통해 펜타닐과 그보다 독성이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유통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미쳤어! 이 인간은 미친 거야!”
상상하지 못한 내용에 혼잣말을 내뱉으며 사사키는 계속해 내용을 읽어 나갔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은 밀입국한 중국 요원들을 모두 체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이 전원 펜타닐 분말을 이용해 자살하였음을 밝힙니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 원장인 나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서 양국의 정보국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동시에 무겁게 경고합니다.]“빠가야로!”
본인의 죄를 쏙 뺀 건 말할 것 없고, 오히려 하동선의 발표 내용에는 사명감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정부와 정보국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을 경우, 이후에 벌어지는 불행한 사태는 중국과 일본의 정보국 책임임을 분명하게 통보합니다.]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하기에는 하동선에게 걸린 약점이 워낙 많았다. 당장 통화만 녹음해 뒀어도 사사키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
피식 웃는 강찬의 얼굴을 떠올린 사사키가 왼손으로 입가를 쓸어내릴 때였다.
삐이익. 삐익.
책상에 둔 인터폰이 급하게 울었다.
“뭐야?”
– 총리대신 각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인터폰에 손을 올린 사사키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며 다카하시 총리가 들어섰다.
“각하!”
고개를 끄덕인 다카하시가 마치 주인인 양 움직여 책상 앞에 있는 소파의 상석에 앉았다.
사사키가 다가가 소파 앞에 섰는데도 다카하시는 앉으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일들에 관해 보고가 올라오는데 어떻게 된 일이오?”
모르는 일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를 들었고, 심지어 세세한 부분의 수정까지 요구했던 총리가?
사사키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다카하시 총리의 요구는 분명했다. 독자적인 행동으로 일본에 폐를 끼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라는 의미였다.
“할 말 없소?”
냉정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다카하시 앞에서 사사키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죽기 아니면 강찬 죽이기!
“현재 입국을 통제한 상황입니다. 적당한 빌미로 한국의 해군 선박 하나를 침몰시키겠습니다.”
“뭐요?”
사사키의 제안을 들은 다카하시가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그가 독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보이는 특유의 반응이었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6위요. 주저앉더라도 상대방의 목숨줄을 끊겠다는 독침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장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소.”
“총리대신 각하?”
“들으시오, 국장! 정규군과 예비군의 숫자, 훈련의 수준, 미사일 숫자만 따지면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적수가 안 돼요!”
그거야 뭐.
산불을 끄러 다니는 자위대의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사키 역시 익히 아는 현실이었다.
“서울이나 부산의 길을 막고 총기 분해할 사람을 찾으면 성인 남자 열 명 중 일곱이 손드는 나라가 한국이고, 탱크를 던져 놓으면 한 시간 안에 운행하고 포탄을 발사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오!”
말을 하다가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적당하게 한국을 몰아 대다가 ‘한국 개새끼!’라는 결정타로 지지율을 얻던 총리에게 해군 선박을 격침하자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국이 보복하겠다며 나서면 미국과 중국이 지켜만 보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이용해 먼저 총리대신 각하의 지지율을 높이는 겁니다.”
지지율이라는 미끼를 들은 총리가 입을 다물었다.
“다음은 한국이 또 자국 내 문제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거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사이에 제가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받겠습니다.”
“흐음.”
연달아 던지는 사사키의 미끼에 총리는 흥미를 느끼는 게 분명했다.
“이번 발표문에 중국도 걸려 있습니다. 미국 CIA도 곤란해집니다. 그러니 그들과 손을 잡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걸림돌이 되는 인물만 제거하면 끝입니다.”
“그 전에 당장 국가정보원 원장이 발표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되는 거 아니오?”
거의 다 왔다.
이제 미끼를 앞에 두고서 물지 말지를 고민하는 총리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던지는 일만 남았다.
“한국 행정부와 정치권에 압력을 넣으십시오. 경제 관계 단절 정도로 압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한국 무역에서 우리가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는 현실과 1인당 소득이 한국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소?”
“한국의 언론 특성을 아시잖습니까? 당장 망할 것처럼 떠들 겁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 손을 쓰셔야 할 겁니다.”
다카하시 총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었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로 보였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 편입니다. 아시아를 벗어난 국가인 우리는 한국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고 미국, 중국과 함께 의논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그렇게 한다고 칩시다. 문제가 되는 한국의 부원장을 어떻게 할 셈이오? 나는 이번 발표도 어쩐지 그 사람의 작품인 거 같소만?”
“한국의 대통령과 협상해 보십시오. 이번 발표의 책임을 물어 다시 직위 해제하지 않으면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적당히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살면서 이렇게 머리가 팽팽 돌아간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사사키는 막힘없이 답을 내놓았다.
될까?
눈가를 좁힌 채 고민하는 다카하시 총리를 향해 사사키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한국을 완벽하게 굴복시킨 총리대신 각하가 되시는 겁니다. 지지율이 역대 최고를 찍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사사키의 말을 들은 다카하시의 입가에 감추지 못한 웃음의 흔적이 스쳤다.
“이번은 실수가 없어야 할 거요.”
“감사합니다. 총리대신 각하!”
몸을 꼿꼿하게 세운 사사키가 다부진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
월급에 생명 수당까지 살뜰하게 모아 장만한 신월동의 24평 아파트였다.
“나 왔어.”
“왔어요?”
국가정보원 김포공항 분실에서 근무하던 심도원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서재로 사용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부인 이혜영은 가지런하게 접은 속옷을 지퍼백에 담고 있었다.
미안하지.
저런 사람에게까지 말하지 않고 임무를 위해 떠나는 게.
“갑자기 무슨 출장이에요?”
“그러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심도원의 너머에서 비닐 팩에 속옷을 담은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래?”
“김포공항에서 근무하던 당신이 느닷없이 해외로 출장 간다는 게 이상해서 그래요. 정말 별일 없는 거죠?”
대테러팀 대원으로 근무할 때 말이다. 현관을 들어서는 심도원을 보며 매번 안도의 숨을 내쉬던 사람이었다. 그래 놓고 또 김포공항 분실로 발령받은 날에는 실망한 심도원을 안아 주며 언젠가 다시 돌아갈 날이 있으리라고 위로해 주었었다.
저 사람에게도 비밀로 하고 출발하는 임무였다.
정성껏 챙기는 저 가방도 고스란히 승용차의 트렁크에 보관해야 한다.
“여권은요?”
“따로 빼 뒀어.”
내일 아침에 분명 다른 국적, 혹은 다른 이름이 찍힌 여권을 받을 거다.
무사히 와서 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다 됐어요. 저녁은요?”
“우리 삼겹살 먹을까?”
아차차!
새로 받을 여권을 생각하다가 습관대로 툭 답했던 심도원은 얼른 안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방을 잠그고는 윗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안사람이 시선을 똑바로 들고 있었다.
“대테러팀 다시 구성된 거예요?”
“여보?”
“나한테는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대테러팀 임무로 가는 거예요?”
잠시 침묵하던 심도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직후에 이혜영이 가방을 향해 시선을 떨어트렸다.
삼겹살이 툭 나올 줄은 심도원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테러팀 대원으로 중요한 작전에 나설 때면 전날 습관처럼 선택했던 바로 그 메뉴를 말이다.
말없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심도원을 향해 이혜영이 울음을 이겨 낸 미소를 담은 얼굴을 들었다.
“당신이 원한 거 맞지?”
“미안해.”
“다녀오면 이제는 힘들어하지 않는 거지?”
“그건 모르겠어.”
심도원이 답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가방 앞에서 일어선 이혜영이 다가와서 앉아 있는 심도원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심도원 요원이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 팀장님께 보여 드리고 와. 당신이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오고. 약속해.”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말하는 이혜영을 올려다보며 심도원은 “그래.” 하고 듬직하게 답했다.
“우리 진짜 오랜만에 삼겹살 먹는다. 그렇지?”
“고맙다.”
“우리 남편 멋있어.”
출장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눈물을 매단 이혜영이 안쓰러워서 심도원은 아내의 허리를 꼭 안았다.
***
최종일은 안사람의 번호를 누르고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그러면서도 가게 앞에 오가는 사람 중 수상한 인물은 없는지 바쁘게 시선을 돌렸다.
–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그냥. 다른 일 없나 해서 걸었다.”
걸걸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던 부인의 픽 하는 웃음이 스마트폰을 통해 건너왔다.
– 중요한 임무야?
“응.”
– 그런 거 같았어. 부탁 하나 해도 돼?
“말해.”
최종일이 전화했다는 사실과 묵직한 음성을 통해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울게. 그러니까 당신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특수 요원답게 어떤 상황에서도 비겁하지 말자.
“그건 염려하지 마.”
– 혹시 못 돌아오면 밤마다 하늘 보며 당신 찾을 테니까 그때 반짝여. 나는 그거면 돼.
“고맙다.”
최종일이 덤덤한 음성으로 답을 돌려준 다음이었다.
– 돌아오면 전화는 해 주라.
“그러지.”
짧은 당부를 전한 그의 아내가 답을 하기 무섭게 전화를 툭 끊었다. 이래 놓고 혼자서 마음 졸인다. 마치 훈련병을 전장에 보낸 교관처럼 종일 스마트폰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말이다.
가볍게 웃은 최종일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맥퍼슨은 늘 여유롭던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슈 강 성격에 오래 참은 거지. 이제 그가 움직일 모양이니 우리도 조금은 서둘러야겠다.”
– 방송은 어떻게 할까요?
맥퍼슨이 상체를 기울인 책상 위 마름모꼴로 생긴 검은색 기계에서 음성이 나오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나오는 음성을 아예 다른 소리로 바꾸는 기계였다.
“우리가 속보를 막는다고 해도 다른 보도 채널을 이용하면 의미가 없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준비했던 인원을 움직이는 게 낫겠지.”
– 얼마나 동원할까요?
“흠.”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것처럼 한숨을 내쉰 맥퍼슨이 잠시 시간을 끌었다. 오크 톤 책상과 책장, 스탠드를 이용해 밝힌 실내 장식만 보면 학자의 연구실이라고 생각하기에 좋았다.
잠시 고민하던 맥퍼슨이 결심한 표정으로 기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국가정보원 요원부터 예멘에 있는 주요 인물들을 동시에 제거하는 게 좋겠다.”
– 미스터 맥퍼슨. 지금 지시대로 움직이면 우리 쪽이 어느 정도는 드러납니다.
“무슈 강이 약을 지니고 움직인다면 우리도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지. 이왕 드러나는 거라면 이상하게 끼어든 그 이라크 여자의 목을 꼭 손에 넣고 싶군. 함께 다니는 한국의 요원 놈 목과 함께 말이지.”
– 알겠습니다. 예멘에 있는 병력이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장소는 제가 알아서 정해도 되겠습니까?
“좋아.”
– 감사합니다.
답이 건너온 직후에 파란색으로 빛나던 검은색 기계의 중앙이 붉게 바뀌었다.
통화가 끊겼다는 사실을 확인한 맥퍼슨은 왼편에 있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이 먹은 요원들을 긁어모을 정도라면 내가 그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지?”
혼잣말을 뱉은 맥퍼슨이 검지를 노트북 키패드에 올린 뒤에 버튼을 눌렀다.
달각. 달각. 달각.
그가 손을 누를 때마다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허은실, 유강미의 사진이 액정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달각. 달각. 달각.
이어서 제라르와 석강호를 연달아 담았던 액정의 마지막에 강찬의 얼굴이 또렷하게 담겼다.
“흥.”
검지와 중지를 붙여 권총처럼 만든 맥퍼슨이 액정에 담긴 강찬의 이마를 겨눴다. 그리고는 “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지를 꾹 눌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