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43)
724화 당연한 걸 왜 굳이 말합니까? (3)
“여보세요?”
– 청와대 민정수석 홍진용입니다. 지금 갑호 비상사태에 준하는 명령을 내린 게 맞습니까?
“우리 요원 두 명이 임무를 위해 나선 길에서 총격에 쓰러졌습니다.”
– 그 보고는 이미 받았습니다.
“요원들의 정확한 상태는 조금 뒤에 보고받을 텐데, 그 지역을 완전히 봉쇄하고 범인을 색출할 예정입니다.”
– 하아. 부원장님.
지친다는 감정과 적대감이 완벽하게 드러난 대꾸였다.
–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으로 이동하신다는 걸 아는 분이 이런 식으로 병력을 동원하면 이제껏 보여 준 부원장의 태도와 더불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친 새끼.
대통령을 시켜 준다고 해도 도망칠 사람에게 뭐가 의심된다고?
강찬은 숨을 내쉬며 감정을 눌렀다.
“대한민국 안에서 요원이 총격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대통령이 이동하기 몇 시간 전입니다. 그런 사건을 조용하게 처리하면 적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압니까?”
강찬의 반문에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우선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방문은 말할 것 없고, 이 시간 이후로 사건이 일단락될 때까지 모든 일정을 취소하는 게 맞지, 총격을 가한 범인을 체포하려는 병력을 문제 삼는 건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참아야 한다는 건 안다. 그런데 당최 버릇없는 애새끼처럼 징징대기만 하는 놈을 상대하자니 가뜩이나 독해진 눈매가 더욱 독하게 변하고 있었다.
강찬의 날카로운 지적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 부원장, 당신 지금 대통령님을 대통령이라고 불렀어?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유치한 대응이 스마트폰을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강찬의 인내심이 뚝 소리를 내며 끊어져 나갔다.
“홍진용, 너 지금 어디 있어? 청와대야?”
– 여보세요?
“야! 요원 두 명이 총에 맞은 상황인데 뭐 호칭을 따져? 우리 요원을 저격한 개새끼들이 청와대로 달려가면 네가 막을 거야? 아니지? 애꿎은 경호원들이 목숨을 내놔야 하는 거잖아, 이 원숭이만도 못한 인간아!”
– 전화 끊겠습니다.
뚝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강찬은 기가 막힌 웃음을 흘렸다.
가서 대통령에게 고자질해라.
대신 이번 일이 잘 풀리면 혹시 넘어가 줄지 모르겠는데, 잘못 풀리면 홍진용 너는 나랑 조용한 방에서 단둘이 10분 정도 봐야 할 거다.
볼을 씰룩인 강찬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
호랑이 굴로 걸어가는 여우의 심정이 이럴까.
사사키 요시하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호랑이 주둥이에 머리를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이 얍삽한 여우 새끼야!’
화가 난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로 깨무는 순간 사사키 요시하라의 머리통이 부서질 테고, 이 좋은 세상과도 끝이다.
“그가 정말 다짐만 받고 끝낼 거라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자리를 지켜 준다고 했으니 믿을 만하지 않소, 사사키 국장?”
항변하는 사사키를 다카하시 총리는 한국의 대통령을 내세워 틀어막았다.
“한국인은 교활해서 말을 쉽게 바꿉니다.”
“그렇다고 명예와 강단으로 살아온 우리 일본이 면담을 피하는 건 수치이자 치욕이오. 또 하나. 일을 이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사사키 국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사사키는 다카하시 총리의 야비한 눈매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잘 만나 총리가 된 염소!
사사키가 다카하시 총리를 씹어 댈 때였다.
“국장님.”
전용기 앞에서 요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눈가를 좁히는 사사키의 앞으로 요원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속보가 분명한 화면이었다.
경찰특공대, 정복을 입은 경찰, 그리고 한눈에 봐도 살벌한 무장을 갖춘 국가정보원 대테러팀, 헬멧에 복면과 검은 군복이 특징인 707 특임대대, 그 밖에 당장 전쟁을 일으키나 싶을 정도로 많은 군인들이 도로 곳곳에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한국의 국가정보원 요원이 총격을 당했답니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과 삼부요인을 노린 암살 계획이거나….”
“빠가야로! 대통령을 노렸다면 바로 청와대로 갔겠지, 왜 국가정보원 요원을 노려!”
“그 요원이 대통령 경호를 위해 움직이는 길이었답니다.”
워낙 말이 안 되는 설명에 분통을 터트렸던 사사키는 방금 들었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요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런 내용까지 모두 보도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또한, 국가정보원에서 감염을 막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정보국 수장들을 초빙했고, 그 자리에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강찬이구나!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조리 발표할 정도로 미친 짓을 할 사람은 그밖에 없다!
“국가정보원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프랑스, 러시아의 협조 아래 감시 위성까지 동원했다고 발표했고, 체포할 때까지 시민의 협조를 적극 요청했습니다.”
멍하니 내용을 듣던 사사키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퍼뜩 표정을 바꿨다.
“그래서? 모임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건 변함이 없겠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 전달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알았다. 변동 사항이나 다른 보도가 있으면 바로 보고해.”
“예!”
단단하게 답한 요원이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고 물러간 다음이었다.
멍청한 인간!
어쩌면 이런 순간에 그렇게 멍청한 짓을!
이를 악무는 바람에 볼을 씰룩이던 사사키는 결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주변에 사람이 있나 없나를 둘러본 그는 스마트폰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얼른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서너 번 울린 뒤였다.
– 헬로우?
여유로운 음성이 스마트폰을 통해 건너왔다.
여유를 부려? 일을 이렇게 꼬아 놓고서?
“어떻게 된 겁니까, 맥퍼슨 상?”
– 뭐가 말이오?
“한국의 요원을 습격한 일을 모르십니까?”
– 허허허.
“웃을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 오늘 중국과 일본의 정보국 수장들을 불러들인다고 해서 가벼운 경고를 했을 뿐이오.
이건 또 뭔 소리야?
사건이 뻥뻥 터지고 일이 홱홱 돌아가는데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처럼 사사키는 이유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무슈 강은 단순하고, 무식하며, 지극히 폭력적이오. 마초 기질도 있어서 자기 사람을 건드리는 걸 못 참지.
“그렇다면 오늘 모임에서 허튼짓을 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요원을 저격했다는 말씀입니까?”
– 그것도 있고, 건방지게 내 뒤를 캐는 데 대한 경고도 포함돼 있소.
“흐음.”
대단한 사람이다. 미스터 맥퍼슨은.
강찬을 상대로 경고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과감하게 총질을 해 댈 정도로 말이다.
– 한국의 갱단이 설치는 바람에 우리 계획이 틀어지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망친 건 아니오. 조만간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계획을 실행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되겠소.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 우선 무슈 강이 완벽히 힘을 잃거나 죽어 주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소? 물론 그 전에 오늘 밤처럼 그의 손발이 하나씩 총에 맞아 사라지면 더욱 좋을 테고. 안 그렇소?
“그러니까 그 기간을 얼마로 보시냐고 물었습니다.”
– 길지 않을 거요. 그럼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끊겠소.
이걸 답을 들었다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두루뭉술하게 빠져나간 거야?
고민하던 사사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은 강찬의 요구대로 다시는 한국에 요원을 파견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위기를 넘기면 나머지는 맥퍼슨이 알아서 하겠다.
강찬만 잡으면 모든 게 확실해질 테니까.
“후-.”
오냐. 원한다면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으마. 그것만으로 안 된다면 구두라도 핥는다. 대신 한국을 손에 넣은 뒤에는 그의 부모와 부인을 교도소에 처넣고 통쾌하게 웃어 주마.
각오를 다진 사사키 요시하라는 넥타이를 매만진 뒤에 좌석에 몸을 기댔다.
“대단해.”
생각하면 할수록 한국에서 총격을 가하라고 지시한 맥퍼슨의 결단과 그의 지시에 따라 실제로 방아쇠를 당길 만큼 강한 조직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
민정수석 홍진용이 전화를 끊은 뒤였다. 예상대로 청와대의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다시 울었다.
욕을 처먹었다고 징징대며 일렀을 테니, 홍진용의 형이 전화한 거겠다. 누군지 빤히 알 거 같아서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찬은 스마트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부원장? 나 신문성이오. 무슨 생각으로 특수부대를 모조리 동원한 거요? 게다가 민정수석을 함부로 대했다던데 그 점에 대해서도 해명하시오.
요구가 건너오기 무섭게 강찬은 바로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향하는 모든 경로에 국가정보원 대테러팀 대원들과 동원 가능한 요원들을 모두 배치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시받은 요원이 집을 나서다가 총격을 당했습니다. 요원들에게 내린 지시, 요원의 주거지, 심지어 출발하는 시점까지 적이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내가 이동하는 경로에 요원들을 배치한 건 어떤 이유에서요?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많은 곳에 정보원을 두었고, 러시아와 프랑스 정보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대통령님의 동선을 지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만약 이번 사건을 쉬쉬하며 처리하면 먼저 대통령님이 이동할 때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 아!
염병할! 이런 말에 감탄이 나오냐!
속이 터질 거 같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위해 강찬은 끊어진 인내심을 양손으로 붙잡는 심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위험한 사태에 대비해 대통령님이 국가정보원에 참석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 아하!
감탄사 다양해서 참 좋겠다.
머릿속이 단순해서 더 좋겠고.
“이번 일로 대통령님이 불참해도 명분을 쥐게 되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이동 중에 있었을지 모를 심각한 테러를 예방한 셈입니다.”
– 흐음.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청와대는 뭐라 발표하면 되겠소?
상황이 긴박해서 그런지 신문성과 통화한 이후 처음으로 정상적인 질문이 나왔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범인을 체포해 국민이 안전하게 사는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표하십시오. 더불어 어떤 위협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하시면 반응이 좋을 겁니다.”
– 너무 강한 거 아니오?
“이미 우리나라 최정예 특수부대를 동원한 상태입니다. 강한 모습을 보이십시오.”
– 알았소.
만족한 모양이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오광택과 이 양반이 협상하면 누가 더 불리한 결과를 얻을까?
입맛을 다신 강찬은 스마트폰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문바키가 정보총국의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의 정보국 대가리가 통화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찾을 방법은 없다.
통화한다고 해도 워낙 교묘한 방법으로 숨은 놈이라 찾는다는 보장도 없다.
“부원장님.”
결과를 기다리는 강찬을 최종일이 무겁게 불렀다.
“심도원 요원이 이송 중에 사망했답니다.”
젠장! 젠장! 젠장!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답답한 속을 풀어내는 것처럼 창으로 움직여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삼성동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재미있냐?
네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한 짓 중에 오늘이 제일 멍청한 짓이었다는 것만 알아 둬.
김포공항에서 대테러팀 관련 질문을 던지던 모습과 마지막에 울컥하던 심도원의 눈빛을 떠올린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작전을 다 알고 있었다.
요원들의 신상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거고.
유리에 비친 강찬은 피식 웃었다.
“최종일. 이동명 아직 국가정보원에 있지?”
“확인하겠습니다.”
착 가라앉은 강찬의 질문에 최종일이 바쁘게 연락했고,
“국가정보원 숙소에 있습니다.”
하는 답을 내놓았다.
“예멘과 이용우에게 연락해서 적들이 움직임과 동선을 모두 알고 있다고 알려 줘.”
“예.”
연달아 지시를 내린 강찬은 창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아직이냐, 문바키?
그러면서 간절한 심정으로 전화를 기다렸다.
강찬의 속마음을 들었을까?
우우우웅. 우우우웅.
기다리던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대장! 찾았습니다! 사사키 요시하라가 걸었던 전화와 연결된 장소를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그래! 이걸 바랐다!
고생하는 걸 빤히 알면서 대원들 지랄같이 동원해 가며 요란을 떨었다고!
왼손에 스마트폰을 든 강찬은 오른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