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45)
726화 우리 방식은 철저한 응징을 기본으로 한다 (2)
김포공항 도착 30분 전이었다.
관광을 떠난 사람처럼 전용 비행기의 앞쪽에서 태블릿을 확인하던 양범이 몸을 일으켰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안전부 부장 왕진상, 부부장 하진관, 거기에 전 부장인 양범이 탑승한 터라 좌석 앞과 뒤로 단정한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양손을 앞으로 잡고서 대기했다.
필요한 게 있을까?
눈치를 살피던 요원은 양범이 왕진상의 맞은편에서 멈춰 선 것을 보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부부장 하진관은 양범이 어렵다.
정보국 세상에서 살아남은 세월을 덮어 써서 속을 알 수 없는 눈매, 유럽과 아시아,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의 정보국 원로들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양범은 어느 것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뿐이냐?
아직 군벌, 그중에도 특히 현직 특수부대 화이트 울프와 퇴역한 특수부대원 모임인 블랙 울프 대부분이 지시를 따른다는 점도 양범이 지닌 위력이었다.
양범이 다가온 순간에 하진관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래 놓고는 또 아차 하는 표정으로 부장 왕진상의 눈치를 살폈다.
“안으로 들어가지?”
하진관의 처지를 안다는 투로 가볍게 권한 양범은 그가 비켜난 자리에 앉았다.
양범은 유독 눈가에 주름이 많았다. 그 바람에 웃을 때는 세상 이렇게 좋은 사람이 없는 느낌인데, 무표정할 때는 또 눈꼬리에 매달린 주름들이 인상을 강렬하게 바꾸어 주었다.
“차가 생각나서 오신 건 아니실 테고?”
“도착하기 전에 확인할 게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테러 말인데, 혹시 우리 대원들이나 요원들이냐?”
“그게 무슨…?”
“왕진상 부장. 말하기 직전에 네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가서 만나려는 러시아의 바실리나 한국의 무슈 강은 그런 걸 놓칠 인물들이 아냐. 만약 내가 했던 질문을 무슈 강이 했다면 이미 자백한 꼴이 되지.”
정말 표시가 났었어?
하진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순간이었다.
“하진관 부부장. 어떤 대화가 나오더라도 지금처럼 시선을 움직이지 마라. 곤란한 질문을 받거나 난처한 상황에 놓여도 나나 왕진상 부장을 바라보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답할 때는 짧게 고개를 숙여. 다부지게. 비록 그 지시가 권총을 뽑으라는 것이라도.”
“예에.”
답을 길게 뺀 하진관이 방금 양범이 내린 지시대로 고개를 짧게 숙였다. 그런 하진관을 힐끔 돌아본 양범이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이 먹었으면 좀 나약해질 만도 한데, 쇠질을 얼마나 해 댔는지 양범의 어깨와 팔뚝, 가슴이 젊은 요원들 못지않게 다부졌다.
“우리 대원들과 요원들을 보낸 것에 대한 보상책이 뭐지?”
“보상이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당연하게 한국에 뭔가를 내놓아야지.”
“양 부장이 떠들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정부 차원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테니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양범은 고개를 살며시 비틀고서 왕진상의 눈을 마주 보았다.
“최악의 순간에 무슈 강과 바실리를 제거할 수 있겠나?”
“그를 저격하라는 뜻입니까?”
“총, 칼, 그것도 아니면 달려들어서 목을 꺾어 놔도 괜찮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진상의 항변이 나온 직후였다.
“장담하는데 우리가 대원이나 요원들을 보낸 걸 알면 무슈 강은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부장과 부부장의 이마에 방아쇠를 당길 거다. 알겠나? 내가 왜 그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지?”
“그렇게 하고서 한국이 무사할 거 같습니까?”
“반격하면 과거 베이징 공항의 치욕을 다시 겪겠지. 이번에는 좀 더 크고 강력한 장소로 바뀔 수는 있겠군.”
“부장님! 한국을 상대하는 겁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이 왜 그 작은 나라를, 그것도 두 토막으로 갈라져 반만 남은 소국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띵. 띵, 띵. 띵.
[착륙 10분 전입니다.]너무 흥분하지 말라는 당부처럼 알람이 울렸고, 기장의 안내 멘트가 쇳소리 묻은 것처럼 건조하게 울렸다.
“그의 말 한마디면 전설의 비무장왕을 비롯해 검은 땅의 지배자라는 인물이 평화유지군을 이끌고 날아온다. 그 정도면 적당히 공항 하나 포기하는 선에서 끝내겠다.”
내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하진관이 더는 참지 못하고서 양범과 왕진상을 번갈아 보고 말았다.
“세계적인 수준의 특수부대가 합동 훈련을 요청하는 증평의 특수팀과 707도 움직인다. 물론 그들까지 날아온다면…, 좋아! 우리 화이트 울프를 갈아 넣어서 어떡해서든 막을 거 같기는 하다.”
“그 정도면 한국의 특수부대는 궤멸 수준입니다.”
“무슈 강이 국가정보원의 대테러팀을 이끌고 직접 오면 너와 나, 여기 부부장은 물론이고, 우리 정부에서 누가 죽을지 몰라. 그걸 부장이 감당할 수 있겠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장광택. 셔먼. 그리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국장들이 지금 부장 같은 말을 했었지. 아! 미국의 대통령도 그랬던 거 같기는 하군.”
양범이 나열하는 이름의 무게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내내 뻣뻣하게 버티던 왕진상의 눈가에 ‘설마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떠올랐다.
“공항 도착까지 5분쯤 남았다. 운이 좋으면 국가정보원까지 도착하는 30분 정도 더 벌 수 있겠지. 그 안에 사죄와 보상 방안을 고민해서 알려 줘.”
“정말 그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보부 부장과 부부장을 살해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후-.”
지친다는 느낌을 양범은 커다랗게 숨을 뱉어 내는 모습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감염의 치료 약을 얻어야 하는 건 우리 중국이지, 무슈 강이나 한국이 아냐. 고개를 숙이고 매달려도 모자란 판에 테러를 가해 놓고 이럴 때는 뭔가 믿는 게 있다는 거겠지.”
약점을 잡힌 것처럼 불편한 표정을 하고도 왕진상은 쓰다, 달다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왕진상의 앞에서 양범이 아쉬운 표정으로 하진관을 돌아보았다.
‘너는 아집으로 뭉친 부장 탓에 덩달아 죽는 거다.’
양범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글로 쓰는 것만큼이나 정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젊은 시절 모습을 그대로 지녔다고 하던데 보는 순간 알게 될 거다. 그의 닉네임이 왜 갓 오브 블랙필드인지. 진심으로 부탁하는데 그를 만나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름을 들먹이거나, 소국이 어쩌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마라.”
진지한 양범의 감정이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그런데도 왕진상은 입술을 오므린 채 볼을 씰룩이며 양범이 전한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아아아앙-.
공항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방향을 튼 비행기가 뚝뚝 내려앉으며 기울어진 창을 통해 어둠 사이에서 빛나는 불빛들이 양범의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강찬이 반갑다. 다만, 서로 다른 위치에서 마주 보아야 하는 부담이 양범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은 시간이었다.
[청와대는 오늘 오전 3시를 기점으로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 대테러 비상령을 내렸습니다. 현장에 국가정보원 대테러팀, 707 특임대대, 증평 특수팀, 35여단의 병력이 투입되었으니 총성이 울리더라도 놀라는 일이 없도록 당부했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연달아 전했습니다.]보도 전문 방송에 이어 일반 방송국도 연달아 속보를 내며 현장의 모습을 방송했다.
군인들의 모습에 익숙한 시민들도 헬멧에 복면, 소총을 앞에 든 특수부대원들의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와 함께 경비가 어떻기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항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
중국과 일본에서 출발한 전용기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보고를 받은 다음이었다.
강찬의 스마트폰이 청와대의 번호를 올려놓고 몸을 떨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찬은 몸살약을 먹고 난 사람처럼 쓴 입맛을 다신 뒤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부원장. 나 대통령 신문성이오. 부원장의 의견대로 대테러 비상령을 내렸는데 부정적인 의견만 잔뜩 올라오잖소? 이대로면 얻는 건 없고, 지지율만 깎아 먹은 거 아니오?
이런 지랄 같은 질문과 욕심 가득한 요구를 강찬이 막아 주지 않으면 목숨 걸고 나선 대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기자 브리핑을 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두 곳에서 우리 정부 요원을 총기로 습격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앞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정부는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게 좋습니다.”
– 지금도 반응이 이 모양인데 그렇게 해서 공연히 불안감과 불만 가득한 민심에 기름 붓는 건 아니오?
“어려울 때는 누구나 앞에 있는 사람의 등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럴 때,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강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때 신뢰가 생깁니다.”
– 그렇다면 말이오. 기자 브리핑을 할 때, 부원장이 옆에 서 있는 건 어떻겠소? 그림이 좋을 거 같은데?
화가도 아니면서 뭔 그림을 찾는 건지 원.
“제가 나가야 한다면 군복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공연히 그랬다가 대통령님께 집중돼야 할 시선이 제게 몰리면 얻는 게 없을 거 같습니다.”
– 그건 또 그러네. 알았소. 혹시 민정수석이 발표문의 초안을 보낼지 모르니 검토해 주고. 거! 그 사람 좀 달래 봐요. 욕도 좀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괜찮으면 발표 끝나고 민정수석을 국가정보원으로 보내 주십시오. 단둘이 10분 정도 조용하게 이야기하면서 좋은 관계를 만들겠습니다.”
– 그거 좋네. 그럼 내가 민정수석에게 국가정보원을 방문하도록 지시하겠소.
민정수석과 단둘이 10분이라.
통화를 마친 강찬은 피식 웃었다.
속 터지는 질문에 답한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은 거다.
***
최종일에게는 정말 끝없이 일이 밀렸다.
어떻게 하겠나.
믿을 만한 팀장들은 아직 복귀 전이고, 굳건한 기둥이던 김형정 본부장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서 정보팀을 이끄는 상황이니 말이다.
임시 출입증을 목에 건 기수호와 소진천의 이동을 위해 최종일은 디지털 전산실로 향했다.
디지털 전산실 위치야 기수호 실장이 더 잘 안다.
복도를 돌았고, 출입증을 두 번이나 찍은 최종일은 두 사람을 따라 디지털 분석실에 들어섰다. 용도를 알아보기 어려운 장비들이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불빛들을 번갈아 번쩍이며 안쪽에 잔뜩 있었고 그 앞으로 모니터를 세 개, 혹은 네 개씩 올려놓은 책상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실장님?”
“진천아!”
디지털 분석실 직원들의 반응을 확인한 최종일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임무에서 “강찬이다.” 하는 무전을 들은 대원들의 표정, 디지털 분석실 직원들의 눈빛과 반갑게 달려드는 모습이 꼭 그렇게 보였다.
“뭐가 문제야?”
“우리 자료가 나갔다는데 필수 시스템에는 흔적이 없습니다. 단독 망이라서 USB가 아니면 자료를 빼낼 방법이 없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기수호의 질문에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직원이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이곳도 전투 중이었구나.
비록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었지만, 정보가 빠져나간 통로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매달렸던지 직원들 모두 퀭한 눈과 헝클어진 머리칼,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 본 확인했어?”
“그 전에 비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아, 그렇지!”
디지털 분석실의 자료에 접근하는 권한을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기수호와 소진천의 임시 통행증을 받은 직원이 책상 앞의 단말기에 차례대로 가져다 댔다.
신기한 건 소진천의 반응이었다.
어딘가 주눅 든 듯한 태도이던 소진천이 홀린 것처럼 책상에 올려져 있는 모니터를 번갈아 확인하고 있었다.
“보안 확인했습니다.”
출입증을 단말기에 가져다 댔던 직원이 그런 소진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천아. 뭐 좀 알겠어?”
“히든 접속 기록 확인하셨어요?”
“그거야 했지.”
“제가 해 봐도 돼요?”
저 사람이 정말 서른 초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진한 음성과 억양이었는데 디지털 분석실의 직원들은 익숙한 모양이었다.
“뭐? 어떻게 해 줄까?”
“죄송한데요. 책상에서 전부 나와 주세요.”
“어? 그래!”
뭐 저런 요구를 하나 싶었던 최종일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은 채 소진천을 지켜보았다.
신기한 건 직원들의 반응이었다.
소진천이 요구한 대로 마흔 중반의 직원이 밖으로 손짓을 하자, 마치 엄청난 장면을 기대하는 표정들을 하고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진천의 뒤로 몰려가 겹겹이 둘러쌌다.
안 보이잖아?
상체를 기울이는 최종일을 본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잠깐 좀 비켜 줘.”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기수호가 소진천의 바로 뒷자리로 최종일을 데려갔다.
소진천은 가장 뒤편 중앙 책상에 앉아 정면의 장비들과 직원들이 자리를 비워서 외롭게 늘어선 모니터들을 차례로 돌아보고 있었다.
뭔데 이렇게 긴장돼?
책상에 앉아 모니터들을 살피는 소진천, 그를 숨죽인 채 바라보는 직원들, 전투 직전에 느끼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디지털 분석실 안을 움켜쥐듯 짓누르고 있었다.
최종일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소진천을 보는 순간이었다.
소진천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타다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닥.
그 직후에 최종일은 모니터를 향해 앉은 소진천의 뒷모습에서 맞서기 어려운 카리스마와 광기를 분명하게 느꼈다.
‘천재라던 게 이런 의미였어?’
소진천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무섭게 다른 책상에 올려진 모니터들이 임무를 받은 대원들처럼 각각 움직였고, 이어서 알기 어려운 문자열과 자료들을 빠르게 넘겼다.
“직위 해제된 직원들을 다시 부르는 거니까 신분증명 절차를 굳이 밟지 않아도 되지요?”
“부원장님 전결로 처리하겠습니다.”
그사이 기수호가 건넨 질문에 답하면서도 최종일은 소진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계획들이 밖으로 새 나갔다고 들었다. 거기에 예멘과 아프리카에서 움직이고 있고, 심지어 이용우와 자밀라라는 이라크 여자가 소말리아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천재 아니라 괴물이라도 좋다. 제물이 필요하면 나를 써도 상관없다. 정보가 빠져나간 경로만 잡아 다오.’
타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타다닥.
최종일은 정말이지 절박한 바람을 품고서 광기 넘치는 소진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였다.
“와-.”
앞쪽 책상에 놓인 화면들이 달각, 달각, 슬롯머신의 ‘7’자가 순서대로 떨어지는 것처럼 차례대로 같은 형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뭐지? 뭔데?
저게 대단한 거야?
궁금해서 고개를 돌린 최종일의 시선 앞에서 기수호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