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46)
727화 확실히 확인했나? (1)
어둠, 언제 어디에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지 모를 적, 인공폭포 아래에서 오목교로 이어진 탄천을 수색하며 오광택은 황량했던 몽골의 벌판을 떠올렸다.
많이 발전했다. 오광택.
죽어도 좋으니 전투에 끼워 달라며 욕을 바락바락해 대던 몽골에서의 오광택이 지금은 국가정보원 대테러팀 중 한 개 팀을 이끌고 있었다.
어깨에 건 소총을 겨눈 채 어둠 속을 살피던 오광택이 왼손 주먹을 위로 들었다. 검지와 중지로 좌우를 가리킨 오광택이 총을 겨누고서 앞으로 움직였다.
물이 흐르는 아래쪽이었다.
흔들리는 잡풀 가까이 움직였던 오광택은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야간 투시경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맞은편 아파트에서 달려온 조명 탓에 함부로 착용하기 어려웠다.
– 좌측, 이상 없습니다.
– 우측, 이상 없습니다.
양쪽으로 나뉘어서 달려갔던 대원들의 보고를 들은 오광택은 그제야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순간이면 강철규나 강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들인지를 실감한다. 태교를 어떻게 해야 그런 능력을 타고나는 건지, 임신 중에 전쟁 영화만 골라 본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다가온 대원들을 확인한 오광택은 본부와 연결된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1번 독수리, 구역 확인 이상 없음. 반복한다. 1번 독수리, 구역 확인 이상 없음.”
오광택이 무전을 보낸 뒤였다.
띠루룩.
– 상황 확인했다. 1번 독수리. 다음 지시 전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한다.
띠루룩.
“카피.”
짧은 휴식을 받은 오광택은 답신을 보내고 소총을 앞으로 돌려 안았다.
“개새끼들이 어디 있는 거지?”
“CCTV상으로 이쪽이 확실하다는데, 물을 타고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념 같은 오광택의 말을 받아 준 대원이 검게 흐르는 물을 돌아보았다.
저런 어둠 속에서 엎드려 바닥을 짚어 가며 흘러가면 발견하기 어렵다.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여서, 강의 본류에 합류하면 어디까지 떠내려갈지 가늠하지 못한다.
분명 그에 대한 수색이 있겠지만, 당장 갑갑한 심정을 어쩌지 못해서 오광택은 군데군데 불이 들어온 맞은편의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대원들의 사기를 배려했을 거다.
온 힘을 다해 울음을 삼키던 이혜영이 말이다.
빤한 평수, 세월을 품은 가구, 신발장 앞에 놓인 운동화와 슬리퍼, 거기에서 만 원, 이만 원 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서서 울음을 참던 이혜영과 놀라 우는 여동생을 안아 주며 버티던 아들의 표정을 오광택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볼이 씰룩일 정도로 이를 씹었던 오광택이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다시피 나는 깡패 출신이다. 특채로 대테러팀에 들어왔고, 세월 먹어서 팀장이 됐지만, 못 배웠고, 무식하다. 그래서 우리 부원장님처럼 멋지게 말 못 한다.”
경계 태세를 풀지 않은 형태로 서 있던 대원들이 힐끔 오광택을 돌아보고 있었다.
“깡패는 말이다. 나와바리 뺏기면 끝이다. 비무장왕이라는 노인네와 비무장지대 대원이라던 나이 든 양반들도 몽골 땅을 한 뼘도 안 뺏기고 지켰고, 아프리카 반둔두에서도 금 그어 놓은 안쪽만큼은 지켜 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와바리에서 개새끼들이 우리 동료를 살해한 거다.”
대테러 팀장으로 벌써 7년이 넘어간다.
함께한 대원들은 당연하게 오광택이 얼마나 독종인지, 얼마나 처절한 작전 현장을 경험했는지 모두 안다. 그런데 지금 대원들을 향한 베테랑 팀장 오광택의 눈빛에서는 깡패 특유의 오기와 독기까지 담뿍 묻어나 있었다.
“잘못돼서 내가 옷 벗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는 지켜 주마. 그러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개새끼들만큼은 꼭 잡자. 부탁한다.”
빠르게 흐르는 계곡물처럼 대원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휘몰아칠 때였다.
“경험 내려 주자면서요? 여기에 형님만큼 경험 많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책임은 우리가 각자 알아서 나눌 거니까 일 생기면 형님은 뒤로 좀 빠지세요.”
오광택과 가장 오래 지냈던 대원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놓았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앞은 우리가 알아서 맡을 테니까 형님은 형님 같은 독종 대원들 키워 내시라고! 그래서 다음에는 대테러팀 해체되는 일 없게 하시라고요!”
“야, 이 무식한 새끼야. 고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누굴 가르쳐?”
오광택이 으르렁거렸는데,
“해체도 됐었는데 옷 벗는 거 겁낼 사람이 누가 있어요? 우리 다 같은 생각이니까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잡읍시다, 형님.”
독하게 빛나는 오광택의 눈빛 앞에서도 대원은 하고 싶은 말을 기어이 다 쏟아 냈다.
“역시 배운 사람 말이 확실히 설득력 있지?”
“너는 씨발. 꼭 이런 순간에 팀장님 물 먹이는 소리를 해야겠냐?”
“내가 뭐?”
선 굵은 감정이 오간 직후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능청맞은 대화였다. 결국, 오광택은 어처구니없는 느낌의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고맙다.
그래서일까?
눈빛에 독하게 피어났던 오광택의 독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지는 것처럼 순서대로 떠오르던 화면이 마지막 모니터를 채운 직후였다.
“우와-아!”
지금까지보다 월등히 높은 탄성이 디지털 분석실 직원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린 최종일 앞에서 기수호 역시 억지로 흥분을 누르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도 최종일의 시선을 느꼈는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우리 전산은 단독 망이라 누군가 정보를 빼 가려면, USB로 복사했거나 시스템에 드러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심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심어 놓은 프로그램도 그렇지만, USB를 이용한 복사 기록 자체를 삭제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건 그렇지.
이 정도는 최종일도 알아들었다.
“조금 전에 진천이는 시스템에 여러 가지 업무를 지시한 겁니다. 그 명령이 저 많은 모니터에 하나씩 다른 화면으로 나왔던 거고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진천이가 시스템에 숨어 있던 프로그램에도 업무를 던져 줬습니다.”
“숨겨 놓았다면서요?”
“그렇죠. 그러니까 숨어서 업무를 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기수호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중앙 앞쪽의 모니터가 검게 바뀌면서 붉은색 명령어가 줄줄이 올라왔다.
“잡았다! 잡았어!”
그와 동시에 로켓 발사에 성공한 관제팀처럼 디지털 분석실 직원들이 손을 마주치며 기뻐하고 있었다.
“저 모니터에 붉은색으로 올라오는 내용이 어떤 명령어를 넣었는지, 지금껏 어떤 정보를 어떻게 빼내 갔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확인하셔야죠?”
“저건 시스템이 숨겨진 프로그램에게서 자백받는 것처럼 받아 내는 내용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바꿀 겁니다.”
설명을 들은 최종일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빠르게 입력하는 소진천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었다.
‘잡을 거야.’
대원들과 요원들에 비해 나약해 보이는 그의 어깨에 강한 의지가 담뿍 피어나 있었다. 붉은색 글자들이 올라오는 모니터를 노려본 채 빠르게 손가락을 놀리는 소진천을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정말 가 봐야 할 시간이었다.
“저는 이제 그만….”
아쉬움을 삼킨 최종일이 기수호를 향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붉은색 글자들을 빠르게 흘리던 모니터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화면을 멈춘 채 깜박였다.
직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소진천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아버지네.’
몸을 돌려 기수호를 바라보는 소진천의 표정을 보며 최종일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릴 때였다.
“찾았니?”
“예. 여기 등록된 직원들의 휴대폰을 이용했어요. 들키지 않으려고 그때그때 무작위로 선택해서 통화, 문자, 그리고 전원이 켜져 있을 때는 도청기로 사용했어요.”
그게 가능해? 그랬던 게 맞아?
소진천의 설명을 들은 최종일은 아예 얼이 반쯤 나가는 심정이었다. 설명대로라면 절대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을 진행하고 있던 꼴이었다.
무엇보다 보안만큼은 자신한다는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스마트폰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적이라면 요행을 바랄 수조차 없는 싸움이었다.
“우리 직원들은 왜 못 찾았을까?”
“검색하는 장소를 피하는 기능이 있었어요. 시스템 전체를 검색하면 휴대폰에 숨었다가 다시 시스템으로 돌아오는 방식이에요.”
서른 근처의 나이치고는 유치하게 들리는 말투였는데 지금 최종일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소진천이 거인이나 괴물로 보였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막았어?”
“예. 처음에 붉은색 글자들이 올라올 때 전화의 감청이나 도청을 막았고요. 그동안 빼내 간 통화와 문자 내용을 출력해 달라는 명령을 넣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어요.”
“잘했다. 애썼어.”
기수호가 소진천의 어깨를 다독이는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 요원분들이 더 당하지 않는 건가요?”
울 거 같은 표정으로 소진천이 담고 있던 억울하고 분한 질문을 내놓았다.
“그래. 이렇게 해 놨으니까 더는 억울하게 당하는 분들이 안 나오실 거야. 잘했어. 우리 뭐 좀 먹고 쉬자. 잠시만. 남은 건 자네들이 처리할 수 있지?”
마지막에 고개를 돌려 질문하는 기수호를 향해 직원들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는 답을 주었다. 그리고는 직원들 모두 힘겨운 전투에서 길을 열어 준 대원을 치하하는 것처럼 소진천의 어깨를 다독이고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직후였다.
소진천의 등을 품은 자세로 기수호가 몸을 돌렸다.
“열두 시간 정도는 매달려야 할 작업이었습니다. 그걸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보시는 앞에서 해결한 겁니다. 얼른 간식 먹이고, 재워야 합니다.”
소진천을 안다시피 데려가는 기수호가 최종일에게 나직하게 건넨 설명이었다.
“숨겨진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그걸 분석해서 단숨에 변형시켰습니다. 우리에게 프로그램을 찾아 주고 진천이가 했던 것처럼 변형시키라고 하면, 디지털 분석실 모든 직원이 달려들어도 닷새, 아니면 일주일 정도 걸렸을 겁니다.”
문을 나서는 소진천과 기수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최종일에게 디지털 분석실 직원이 속삭이듯 설명을 추가해 주었다.
“이걸 가져가서 보시면 됩니다. 저희는 이 내용을 김형정 본부장님께도 보내겠습니다.”
그러면서 출력한 종이를 최종일에게 내밀었다.
***
지금껏 여유 있었다.
몇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수십 수 앞을 내다보는 체스의 달인처럼 느긋하게 대처해 왔다.
“뭐라고?”
그런 맥퍼슨이 처음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슈 강? 갓 오브 블랙필드?
닉네임이야 아무렴 어떠냐고 비웃던 그의 표정에서 가뭄에 말라 버린 대지처럼 여유가 사라졌고, 이어서 딱딱하게 굳었다.
“확실히 확인했나?”
“예. 여러 경로를 모두 확인했는데, 정확하게 3분 전부터 우리가 이용하던 모든 통로가 막혔습니다.”
맥퍼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운이 좋았든, 능력이든 상관없다.
숨겨 놓은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해도 최소 일주일은 걸려야 정리할 수 있다. 그사이 프로그램이 지금껏 이용하던 경로를 통해 알려 주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혀 기색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단숨에 모든 경로가 막혔단다.
“역추적의 가능성은?”
“프로그램을 수정한다 해도 어렵습니다만, 수정하려고 들면 최악에는 자폭하게 설정해 두어서 그건 불가능합니다.”
“흐음.”
앞에서 직원의 보고를 들은 맥퍼슨은 확인처럼 책상 앞에 놓인 음성 변환 장치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역추적은 어렵다.
세계적인 프로그램 능력자는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아무 곳에 널린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본과 중국의 정보국은?”
“경로가 끊기기 전에 한국의 공항에 도착했다는 보고까지 확인했습니다. 이동 상황을 확인하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경로가 막혀서 우선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후-.”
카드 게임을 하면서 맥퍼슨은 상대방이 엎어 놓은 카드의 속까지 들여다보며 싸웠다. 그런데 느닷없이 상대방의 패가 가려졌다.
“파견한 대원들을 모두 불러들일 수는 있나?”
“한국에 있는 중국 요원들은 우선 철수 중이고, 아프리카는 바로 연락하면 됩니다.”
보고 내용이 이상한데?
“예멘은?”
“이미 작전에 돌입해서 지금 철수하면 오히려 꼬리를 붙잡힐 확률이 높습니다.”
의심스러워서 던진 맥퍼슨의 질문에 최악의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예멘은 그대로 진행해. 그리고 최악의 사태에도 우리의 위치나 관련 정보가 저들에게 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다시 한번 확인해.”
“알겠습니다.”
답을 한 직원이 나간 뒤에 맥퍼슨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장치에서 8번을 눌렀다.
뚜우우. 뚜우우.
디지털 음성 변환 장치에서 쇳소리 묻은 신호음이 울린 뒤였다.
– 무슨 일이오?
볼과 턱선이 늘어진 노인이겠구나 싶은 나이 든 음성이 장치에서 튀어나왔다.
“작전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 지금껏 믿고 맡겨 달라던 것과는 너무 다른 요청인데 무슨 일이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심어 두었던 프로그램이 삭제된 모양입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내 큰소리치던 맥퍼슨의 무책임한 보고에 분노가 끓어올랐던가.
– 미스터 맥퍼슨.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정보국 모임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뜻이오?
“현재 상태는 그렇습니다.”
– 작전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생각해 둔 다음 계획은 있소?
“지금껏 막고 있었던 감염을 대대적으로 퍼트리려고 합니다.”
뜻을 밝힌 맥퍼슨은 침묵하는 음성 변환 장치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렸다.
– 우리가 원했던 건 한국에서의 전쟁이오, 미스터 맥퍼슨.
“감염을 통해 반드시 이뤄 내겠습니다.”
– 흐음. 이번 건의는 위원회 안건으로 처리하겠소.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려 주겠소만, 혹시 필요하면 영상으로 초대할 테니 직접 의견을 밝히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답과 함께 음성 변환 장치의 종료 버튼을 누른 맥퍼슨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갸웃한 그는 노트북을 당겨 와 마우스를 움직였다.
달각. 달각. 달각.
그가 마우스를 조작하며 화면을 여러 차례 바꾼 뒤였다.
노트북 화면 왼편에 천진해 보이는 소진천의 얼굴이 가득 나왔고, 오른편으로 그에 관한 기록이 줄줄이 올라왔다.
“전과자잖아? 다크 웹을 뚫어 낸 공로로 국가정보원에 특채된 전과자? 사회성도 많이 떨어지는 놈이 어떻게?”
달각.
고개를 들이밀다가 맥퍼슨은 그만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화살표가 다른 방향으로 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트북 화면 가득히 정장을 입고서 승용차에서 내리는 강찬의 모습이 떠올랐다.
피식.
고개만 돌려 화면 쪽을 바라본 강찬은 특유의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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