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
596화 나는 왜 매번 이러지? (3)
하늘씩이나 되면 우리 말 정도는 알 거 아냐?
왜 대답을 안 해 주는 건데?
어둠이 짙어 가는 하늘을 보던 이용우는 서글프게 웃었다.
“당신이 전화하게 시켰냐? 내가 여기에서 죽는 게 싫어서?”
운이 닿아 비밀을 알아내면 신광선에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몰려오는 놈들을 피해 도망갈 마음 역시 당연하게 없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핑계는 말할 것 없고,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던지는 마지막은 그림도 죽인다.
“내가 당신에게 가는 게 싫었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던 이용우는 손에 들고 있던 폴더폰을 들여다보았다.
언제였더라?
“저는 뭘 해도 안 되는 놈인가 봐요.”
연달아 훈련에서 성과를 얻지 못해 좌절했을 때였다. 투박하게 굵어진 손으로 비타민 음료를 권했던 아버지 이춘섭은 이용우처럼 볕에 그을린 눈을 들었다.
농사를 권할까?
“아버지는 많이 못 배워서 아는 게 없어. 그래도 네가 내 아들이라서 아는 건 있다.”
이런 대화가 민망한지 바닥에 놓였던 바구니를 당겨 간 이춘섭은 안에 담긴 옥수수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너는 뭘 해도 안 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늦게 되는 거뿐이다. 아버지라서 알아. 내 아들이라서 알고.”
민망한 가운데서도 아들인 이용우에게 용기와 믿음을 심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춘섭은 가장 탐스럽게 알을 키운 옥수수를 매만졌다.
“농사짓다 보면 일찍 폈다가 벌레 먹혀 떨어지는 놈이 있고, 나중에 맺혔는데 이렇게 탐스럽고 튼실한 놈이 있거든. 내가 아는 너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누구보다 빛날 거다.”
감동을 느낄 틈도 없이 말을 마친 이춘섭이 느닷없이 이불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자자.”
속을 보인 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들킨 게 쑥스러울 일일까? 그 말을 끝으로 이춘섭은 대놓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도 말랐던 아버지가 지금은 6개월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은 채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단다.
입술에 힘을 꾹 준 이용우는 부친 이춘섭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허공에 울리는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힘겨움이 묻은 이춘섭의 음성이 건너왔다.
“아버지. 저 용우요.”
– 뭔 소리를 들었냐?
아버지라는 존재는 참 무섭다. 겨우 이름만 밝힌 건데도 이춘섭은 흔들리는 이용우의 감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 아버지는 네가 나랏일을 하는 게 자랑이었다. 가끔 힘든 얼굴로 와도 내 아들은 언젠가 나라를 위해 활짝 필 무궁화가 될 거라고, 늦지만 누구보다 굵은 열매가 될 거라 믿었다.
“아버지?”
– 아버지 부끄럽게 안 할 거지?
뭐라고 답하지?
이용우는 마른침만 삼켰다.
– 용우야.
“예, 아버지.”
– 제대로 마무리하고 와. 아버지가 일하다 받아 온 비타민 음료가 많아.
‘복남이 아주머니 가게에서 사 오셨다는 거, 이제 압니다. 아버지.’
차마 내놓지 못한 대꾸였다.
– 이번에 오면 엄마 보러 가자.
“예, 아버지.”
– 잘하고 올 거지? 끝까지?
“예.”
마지막 질문에서 이춘섭의 음성 역시 이용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흔들렸던 음성이 민망한 것처럼 전화가 뚝 끊겼다.
늙어 버린 부친 이춘섭이 홀로 우는 건 아닐까.
이를 악문 이용우는 커피 상자들이 쌓여 있는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이면 귀국하는 게 맞다. 이 빌어먹을 사무실에서 빠져나간다고 해서 누구도 이용우를 탓하지 않는다. 심지어 은퇴한 놈이라 문제를 일으키기보다는 조용하게 사라지는 게 더 뒤처리 편한 일이었다.
“씨발.”
운명, 이 개새끼.
절대 나라 위해 목숨 걸지 않을 거라 악을 써 대며 온 바그다드에서 민병대와 마주하게 했고, 박중상을 보게 만들었으며, 특수 경찰, 경찰특공대까지 달려들 정도로 심각한 정보가 있는 장소에 혼자 남게 꼬드겼다.
그래 놓고 선택을 강요해?
“엄지환 선배도 이랬었겠지? 도저히 물러날 수 없어서?”
대한민국을 위해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낸 국가정보원의 전설, 그러고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하나의 별로 벽에 걸린 엄지환, 이용우는 사진으로 보았던 선배 엄지환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폴더폰을 다부지게 접었다.
***
아프리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숙소였다.
지경그룹이 천중명을 비롯한 임원들과 직원, 방문객들을 위해 급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호텔보다는 최고급 게스트하우스 느낌이었다. 대신 에어컨, TV, 냉장고, 침대, 무엇보다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가 감탄을 자아냈다.
창가에 앉은 은선곤은 신기한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신강남파 보스라는 직책은 따지지 않더라도 나이가 아래인 은선곤을 두고 저렇게 직접 뭔가를 만드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와서였다.
뭐지, 이건?
멕시코에서 아프리카까지, 정신없이 달려와 몸과 마음이 지친 은선곤은 코를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에 집중했다. 냄새만 맡았다. 그런데도 몸 안에서 활력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강성태가 만드는 음식이 궁금한 은선곤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딩동댕동.
문 앞의 벨이 울렸다.
누굴까?
궁금함은 정말이지 짧았다.
“강 회장? 이거 무슨 냄새요?”
음성만으로도 표정이 완벽하게 예상되는 박승양이 문고리를 흔들고 있었다.
“열어 드려.”
“예, 회장님.”
은선곤이 문을 연 다음이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박승양은 일직선으로 강성태에게 다가갔다.
“뭡니까, 이게?”
“라면입니다.”
“냄새가 전혀 다른데? 거기에 작은 새우들이랑 다시마가 잔뜩 들었잖아? 이런 라면이 있어요?”
“마트에서 파는 해물 수프를 따로 넣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모실까 해서 넉넉하게 끓였습니다. 드실 거죠?”
“캬하!”
그 뒤로 라면 한 그릇을 먹는 동안, 콩쥐와 팥쥐, 엘비스 프레슬리,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라면을 끓이라고 했다는 분식집 어머니의 가르침 등 듣도 보도 못했던 비유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흐! 이제야 속이 좀 풀리네.”
바닥에 찰싹 붙었던 다시마 조각까지 싹싹 입에 털어 넣었던 박승양이 만족한 듯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요구하는 시선으로 은선곤을 돌아보았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역시! 우리 은 실장은 대단해요. 옛날에 말이지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커피를 타는 게 좋겠다. 은선곤은 지시를 받은 직원처럼 조용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거.”
쩝쩝대며 은선곤을 보았던 박승양이 홱 바뀐 시선으로 강성태를 눈에 담았다.
“곽대출 부회장이 직접 소말리아로 갔다던데 혹시 아시나?”
“회장님.”
너스레를 떠는 박승양을 강성태가 나직하게 불렀다. 믹스 커피를 준비하던 은선곤이 귀를 쫑긋 세울 만큼 강성태의 음성은 묵직했다. 내내 입을 쉬지 않던 박승양 역시 분위기가 바뀐 것을 알아챈 것처럼 지금까지와 다르게 침묵으로 강성태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을 맡게 되면 우리 식구 중 누가 피를 흘리며 쓰러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결정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이병렬, 태완 형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했어요?”
“대신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일하자고 부탁할 인원은 있습니다.”
“오호라?”
믹스 커피가 담긴 잔을 스푼으로 저으며 은선곤은 두 사람을 바로 떠올렸다.
“먼저 천중명 회장님께 몇 가지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연락은 그 뒤에 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강 회장은 이미 천중명 회장의 계획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 말씀이신가?”
쟁반에 종이컵 세 개를 올린 은선곤이 몸을 돌렸을 때, 강성태는 잔잔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새벽종이 울리며, 새 아침이 밝아야 하는데 아프리카의 태양은 유독 지겨운 느낌으로 떠오른다.
아침을 먹은 다음이었다.
강태산은 이준호와 대원들을 테이블에 불러모았다.
“어젯밤 일로 봐서 짐작하겠지만, 아포코에서 은고우아라까지는 산을 뚫고 가는 건 쉽지 않아.”
죽은 적들을 모아 둔 방향을 돌아보았던 강태산은 다시 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완벽한 전투 상태로 이동할 텐데, 그 전에 묻는다. 이번 임무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
질문을 던진 강태산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괜찮다. 다 이해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수 있다.
“대위님? 저는 어차피 갈 거니까 커피 준비하겠습니다.”
가장 빠르게 답을 한 건 이준호였다.
“다른 사람은?”
“이 정도면 없는 거죠. 얼른 커피 마시고 출발하시죠.”
덩달아 임우람이 당차게 나오며 살로이와 프란시스코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지원해서 강태산의 아래로 달려온 놈들인데 임무에서 빠지겠다는 게 더 이상하겠다.
“여기를 잘 봐둬. 이쪽에서 들어가 이 방향으로 가로지른다. 험한 지역은 왼편을 기준으로 움직일 테니까 미리 준비하고, 문제가 생겨서 떨어지면 이 지점으로 모여.”
강태산의 시선을 향해 대원 일곱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뒤에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대원 일곱이 움직였다. 그리고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로일이 다가왔다. 손수건을 말아서 이마 위로 감았는데, 그녀의 각오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표식처럼 보였다.
“어젯밤에 마셨던 커피 준비하는 거면 나도 줄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강태산은 이준호를 향해 눈짓으로 로일을 가리켰다.
“이대로 계속 가나요? 앞으로도 어젯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타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임무는 로일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을 보호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원하는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강태산이 무시했다고 여긴 눈치였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이대로 계속 갈 건지, 어젯밤처럼 죽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건지요!”
대번에 표정과 눈빛이 날카롭게 바뀐 로일이 쏘아붙이듯 강태산을 몰았다. 영어로 주고받는 대화였다. 프랑스 외인부대원들이 궁금한 눈으로 이쪽을 보았다가 괜히 끼어들지 말자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피식.
“그 웃음이요. 보는 사람이 기분 나쁜 건 알아요?”
“로일 위긴스 제네거 박사.”
“말씀하세요. 캡틴 강.”
“저 앞의 산을 보세요. 저 안을 빠르면 사흘, 길어지면 닷새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외인부대원과 우리 대원 중에서 누구든 원하지 않을 경우 이곳에서 돌아갈 권리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길입니다.”
“돌아간다고요?”
강태산은 태양을 받아 초록으로 빛나는 로일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어떻든, 적이 나오면 결과는 항상 같습니다. 죽이든가, 죽든가. 대신 지금처럼 좀 더 위험한 장소와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어젯밤의 끔찍한 장면과 머리를 파고드는 총성이 떠올랐는지 올라섰던 로일의 눈매가 한 꺼풀 풀렸다.
“그럼 어젯밤에 나왔던 사람들이 또 나타난다는 거예요?”
“최악의 상황이라면.”
조금 전의 독기는 어디에다 팔아먹었는지 로일은 느닷없이 두려움을 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아요?”
그런 뒤에 엉뚱한 질문을 내놓았다.
배는 안 고픈가?
하마터면 질문을 던질 뻔했다. 그러면서 뭐가 이렇게 사사건건 궁금한 건지 말을 막 배우는 아이를 상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러니까 박사가 됐겠지.
궁금한 게 많아서.
터무니없는 생각을 떠올렸던 강태산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웃음, 기분 나쁘다고 했죠!”
반응으로 봐서 로일은 포기할 마음이 없는 거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자, 커피입니다.”
피곤한 여자 같은데 그만 상대하시죠.
그 틈을 파고든 이준호가 달달한 믹스 커피를 놓아주었다.
어젯밤에 알려 준 대로 컵의 주둥이를 손으로 막은 로일의 모습을 보면 적응하려는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커피를 마시는 동안 두려운 눈초리로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인부대, 강태산의 대원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무기들을 점검하는 사이, 커피를 다 마신 로일이 컵을 내려놓았다.
“암세포만 공격해서 파괴하는 연구를 했었어요.”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강태산이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이용하면 완벽하게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시작했고, 라이언 밀러와 제이미 융언 박사가 합류했어요.”
강태산은 배낭을 앞에 둔 채 이미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로일의 동료 둘을 돌아보았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어요. 특히 체내에 블랙헤드 에너지를 넣는 연구는 동물 실험의 단계에 이르렀으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엉뚱한 방향으로 이용된 거예요. 어젯밤처럼요.”
대강 그런 이유였구나.
지랄 맞은 적을 살피겠다며 고개를 빼 든 건. 그런데 말이다. 그런 연구를 했다고 해서 꼭 로일과 연구팀이 이 빌어먹을 장소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는 건가?
짧은 침묵의 끝에서였다.
강태산의 의문을 알아챈 것처럼 로일이 바싹 다가섰다.
“미안한데요. 캡틴 강. 만약 내가 이상하게 변하면 총을 쏘든, 물을 끼얹든 반드시 당신이…….”
뭐라는 거야?
강태산은 눈가를 좁혔다.
“사실은요. 내 몸에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들어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니고, 에너지 파장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작은 폭발 사고가 있었어요.”
어쩐지 저 위험한 숲을 반드시 뚫고 가겠다더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태산은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종류의 사고였다.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몸에 담겼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습니까? 어지간한 양이 아니고서는 검사조차 되지 않을 텐데요?”
“캡틴 강.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로일이 나직하게 질문을 건넨 직후였다.
“준비 마쳤습니다, 대위님.”
그사이 10분이 흐른 모양이었다. 다가온 이준호가 강태산과 로일의 표정을 번갈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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