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152)
733화 끔찍하군 (1)
정보 세상의 경험과 경력이 확연히 부족한 하진관이 대놓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앞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마누엘 야닉을 제거해 주면 된다.”
뜸을 들이며 분위기를 살핀 바실리가 나름 별것 아니란 투로 요구조건을 내놓았다.
이미 한번 실패한 팀을 데리고 같은 작전을 나서라고?
바실리의 태도로 봐서 기강이나 능력이 망가진 모양인데?
“일본 문제를 내가 해결하면 되는 거지?”
“이봐, 주연.”
거절하는 강찬을 바실리가 빠르게 불렀다.
“후계자 없이 은퇴하는 게 뭘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았나? 따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키우던 불곰을 누가 제거했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 봐 주는 게 도리 아닌가?”
은퇴 안 할 거면서!
강찬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부탁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성격상 매달리는 건 또 죽어도 못 하고, 바실리의 불만 가득한 표정이 볼만했다.
“좋아! 솔직하게 말하지. 안드레이 놈이 지휘한 이후로 우리 아이들이 풀어져 버린 모양이다. 알잖나? 지휘관이 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처음 증평의 특수팀을 방문했던 강찬 역시 갑갑한 심정을 느꼈었으니 바실리의 아쉬움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언제 적으로 만날지 모를 스페츠나츠를 지휘하면서 가르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저어질 일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한번 실패했던 작전에 바로 다시 투입하는 건 가서 죽으라는 거다, 바실리.”
“일본 정부를 해결하는 것과 함께 양범이 중국의 국가안전부 부장이 될 확실한 선물을 내놓지.”
하여간 늙은 여우.
거절을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바실리가 은근한 눈빛으로 양범을 방패처럼 내밀었다.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거절당하고도 문을 나서지 않는 잡상인 같은 모습을 보이느니 벌써 러시아로 돌아가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했다.
세월을 품어 내려앉은 눈꺼풀로 매달리는 바실리를 보며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장소와 필요한 인원 모두 내가 정한다. 전원 사망하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 내 명령에 무조건 따르되 반항하면 사살해도 괜찮다는 조건이라면 받아들이지.”
“흐음.”
세계를 떨게 하던 스페츠나츠의 위상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거절하지 못하는 바실리의 반응은 무거운 한숨이었다.
능력 있는 지휘관 아래에서 익힌 경험은 이래서 무섭다.
한 번, 두 번, 죽음에 맞서는 처절한 전투를 경험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익힌 것들을 아래로 물려줘야 하는데, 안드레이는 오히려 과거의 경험마저 흐리게 만든 모양이었다.
“장소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끔찍하군. 상대는?”
“시아파.”
적을 확인한 바실리가 괴기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섬뜩한 미소를 그렸다.
“필요한 인원은?”
“24명.”
“아예 짜 놓았던 것 같군.”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양범을 돌아보았던 바실리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출발은?”
“지금 바로 출발하라고 지시해.”
“그건 정말 마음에 드는군.”
스마트폰을 꺼내 들던 바실리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총사령관. 호수에 알코올을 떨어트린 거 같은 한국 술이 있는데 혹시 아나?”
“소주 말입니까?”
“그게 있다면 샌드위치와 함께 부탁하지.”
취향 참.
피식 웃는 강찬을 못 본 척, 바실리가 스마트폰의 버튼을 눌렀다. 그래 놓고는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로 고개를 들었다.
“아! 이번에 보내는 아이들 가운데 드미트리라는 녀석을 눈여겨봐 주면 좋겠다.”
“유리 바스첸코?”
“기억하는군. 공항에서 자네와 총사령관을 안내했었으니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나.”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는 투로 바실리가 스마트폰을 귀로 가져갔다.
“나다. 24명을 소말리아로 파견해.”
지시를 마친 바실리가 안도하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
특정 지역을 감시한 영상이 있는가 하면, 방범 CCTV처럼 지정된 공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촬영하는 위성도 있다.
멕시코의 누에보 레온.
정보총국의 안느는 수일, 혹은 수개월 전의 감시 영상 자료까지를 확보해서 해당 지역을 살폈다.
비밀리에 하는 수색이었다.
심지어 정보총국 내부에서도 일급 자료 취급 허가자만 접근할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하아.”
영상과 자료를 확인하던 안느는 모니터에서 상체를 세웠다. 그런 뒤에 결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 알로?
“안느입니다, 총국장님.”
– 발견한 게 있나?
“그 문제로 전화 드렸습니다. 영상에 잡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정보원을 이용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지경그룹과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김형정 본부장의 협조를 요청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프랑스라고 해도 직급이 깡패다.
그것도 문바키의 지시 한마디에 조용하게 제거될 수 있는 안느의 위치라면, 과거 경력 따지고, 아버지 라노크의 위치, 강찬과의 친분을 들먹이다가 명을 재촉하기보다는 공손한 게 현명한 처신이었다.
– 마드모아젤의 판단에 대한 확신은?
“두 곳에서 정보가 나갈 확률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진행을 맡아.
“감사합니다, 총국장님.”
통화를 마친 안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문바키는 안느를 항상 마드모아젤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러 준다. 그만큼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다만, 최근 들어 더욱 냉정해진 문바키의 표정과 태도, 음성이 요원들을 옥죄는 것만은 분명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
아니면 감정이라는 걸 완벽하게 잃어버린 사람쯤?
정보총국 내부의 임원과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던 사건 이후로 가뜩이나 냉정하던 문바키는 아예 흐르는 피마저 차갑게 바뀐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하얀 머리칼의 문바키가 똑바로 바라볼 때의 섬뜩함은 설명하기 정말 어렵다.
“제거해.”
문바키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명령을 들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악몽에 시달린다면 이해할까? 산전수전 다 겪은 요원들인데 말이다.
고개를 흔들어서 잡생각을 떨쳐 낸 안느는 다시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김형정과 황성규에게 내용과 영상을 전하는 게 우선이었다.
***
좌석은 말할 것 없고, 진동과 소음까지 수송기를 이용하는 비행은 일반 여객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힘겨웠다.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은 겨우 견디는 수준일 텐데 로일은 확실히 달랐다. 질끈 머리를 묶은 그녀는 자료를 펼쳐 놓고 지금까지 얻은 데이터에 관해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예멘 사람들이 듣는다면 피를 토할 만큼 분통 터질 테지만, 연구원으로 감염이 크게 번진 장소에 있었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또한, 커피 농장에서의 사건과 구해 낸 아이를 통해 얻은 혈액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자료였다.
“닥터, 로일?”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던 로일은 어느 틈에 다가온 강태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투에 나선다고 들었다.
언제일지 확실치는 않지만, 짐작하기로는 수송기에서 내리면 곧바로 전장으로 나갈 게 분명했다.
정말 두렵지 않나?
총구 앞에 적이 있고, 그 적이 이쪽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이?
“예멘 공항에서 급하게 보내온 영상입니다.”
로일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강태산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시선을 준 스마트폰 화면에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과 무너지는 것처럼 아래로 고꾸라지는 사람의 영상이 올라왔다.
“감염자인가요?”
영상에 놀라 시선을 들었던 로일이 다시금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한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물줄기를 뿜어 대는 영상이 나왔다.
“정문을 수리하는 사이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답니다. 쓰러진 사람들은 사망한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조금만 늦게 출발했다면 혈액을 채취했을 텐데…. 아! 그쪽 의료진 있지요? 그분들에게 혈액을 채취해 달라고 해 주겠어요? 공항으로 생필품을 보내는 수송기가 돌아올 때 전해 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 영상을 내게도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가능하면 공항에 계신 분들에게 관련 영상을 좀 더 확보해 달라고도 부탁해 주세요.”
“예.”
짧은 답을 한 강태산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캡틴 강.”
로일이 강태산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지?
사무적으로 돌아보는 강태산의 반응이 서운한 것처럼 로일은 입술을 샐쭉였다.
“수송기에서 내리면 바로 출발하나요?”
“지금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알았어요. 이해해요. 그렇다면 작전이 끝나면, 그러니까 임무를 마치면 평화유지군 기지로 돌아오는 건지는 답해 줄 수 있나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강태산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답하지 못하는 거예요?”
“답이 아니라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해서 장담하지 못한다는 게 정확한 답인 거 같습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왜 군인이 되었을까?
강인한 체격도 그렇지만,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할 능력이면 목숨이 위태로운 특수부대 지휘관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세상에서 성공하지 않을까?
“더 궁금한 게 없다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잠시만요.”
직선적인 성격의 로일은 초록색 눈동자로 강태산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꼭 군인으로 지내야 해요?”
“무슨 뜻입니까?”
“의무 복무 그런 게 아니면, 아니 그렇다고 쳐도 변상을 통해 군인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묻는 거예요.”
속마음을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일의 질문을 받은 강태산의 반응은 피식하는 웃음이었다. 사람을 묘하게 짓누르는 느낌의 웃음 말이다.
진짜 기분 나빠, 저 웃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부모의 사랑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로일의 대꾸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강태산이 입을 열었다.
“군인의 삶이 고통스러웠다면 벌써 이 군복을 벗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흘린 땀과 피가 누군가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알게 되면서 지금 생활에 만족합니다.”
“캡틴 강의 가족은요? 전투에서 언제나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질문했던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로일 앞에서 강태산이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거절당한 거지?’
‘로일 성격 몰라? 괜히 불똥 튀지 않게 모른 척 넘어가.’
동료들이 큼큼대는 표정으로 자료에 시선을 떨군 뒤였다.
로일은 걸어가는 강태산의 왼쪽 어깨에 매달린 대검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장 나이 든 군인과 강태산만 어깨에 대검을 걸고 있는 것으로 봐서 특별한 의미라는 건 알겠다. 정확한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선택받은 군인, 혹은 독한 훈련 과정을 통했다는 게 아닌가 짐작만 했다.
그만큼 어렵겠다.
강태산이 군인의 삶을 포기하는 건.
저런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앞쪽으로 움직여 가장 나이 많은 군인과 무언가를 의논하는 강태산을 로일은 좀 더 지켜보았다.
***
바실리와 양범을 보낸 강찬은 출국하기 전, 마지막 숙제를 받아 드는 심정으로 민정수석 홍진용을 맞았다.
“강찬 부원장?”
얼굴을 본 홍진용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가를 좁혔다. 그런 뒤에 확인해 달라는 듯한 시선으로 최종일과 우희승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알아서 답을 할 거라 기대했던 모양인데, 직접 질문하지 않았으니 대답하기 어렵다. 대신 최종일과 우희승, 그리고 대원들은 확실히 부원장을 대하는 태도로 강찬의 지시를 기다렸다.
“음성이 젊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어릴 줄은 몰랐네.”
정치하는 인간들의 음흉함이라니.
탄식인지, 반말인지, 그것도 아니면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뱉어 낸 홍진용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강찬을 다시 살폈다.
“우선 확인할 게 있으니까 가시죠.”
더는 시간이 아까워서 강찬은 몸을 돌렸다.
비상령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과정이었다.
강찬의 눈빛과 표정, 뒤따르는 대원들의 태도, 마지막으로 대테러 복장과 몸에 지닌 무기들에 눌린 것처럼 홍진용이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지난 강찬의 앞에서 대원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국가정보원 지하는 또 처음이네.”
개새끼가 말끝 참 희한하게 끝낸다.
힐끔 홍진용을 본 강찬은 피식 웃었다.
단둘이 10분,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서 봐주는 거니까 지금은 뭐든 지껄여. 대신 그만큼 10분이 고통스러워질 거다.
지하 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다음이었다.
강찬은 곧장 회의실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움직였다. 음료를 비롯해 회의실에서 사용할 비품들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어둑한 조명, 소총을 앞으로 든 대원들, 무거운 분위기에 놀란 홍진용이 앞뒤를 살필 때였다.
강찬이 던진 눈빛을 받은 최종일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역겨운 피비린내와 죽은 사람에게서 나는 특유의 악취가 복도를 향해 풍겨 나왔다.
“욱.”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홍진용이 손등으로 코를 막았다.
피식.
고개를 돌린 강찬은 팔을 뻗어 홍진용의 멱살을 꽉 움켜쥐었다.
“뭐…!”
그리고는 그대로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오